
(제 53 회)
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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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동란사를 기록하고있는 력사문헌들에는 나폴레옹의 로씨야원정같은 거창한 력사적사변을 취급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력사적사건들은 어떤 한두
인물의 영웅적행동이나 조잡한 사고에 의해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수십가지 복잡한 사건들의 련쇄속에서 어쩔수없이 일어나고야마는 우연적이고 필연적인
현상의 종합적인 결과라고 기록하는 실례가 많다.
로마제국의 멸망이나 오홍제국의 붕괴, 히틀러독일의 파멸과 같은 어마어마한 사건의 문헌기록에도 필시 그러한 주석과
견해가 따르기 일쑤이다.
그러나 좀더 광의의 의미에서 고찰할 때 인류사의 거창한 행정들을 반드시 그렇게만 기록할것이 아니다. 인간의 상상이나 장구한 경험들이
말해줄수 없었던 그러한 영웅적이고 장엄한 력사적변천이 출중한 한 위인의 의지로 창조되고있다는것을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피어린
투쟁속에 놓여있었던 항일무장투쟁사가 실증하고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열정과 의지, 거창한 담력이 모든 력사적행정의 비범한 순간들을 창조하는 원천으로 되고있었던것이다.
1934년의 북만원정도 한 위인의 비상한 열정과 의지가 어떠한 력사를 창조하며 기록하고있었던가를 생생히 밝혀주는
귀중한 순간들의 련쇄속에 놓여있었다.
백선일중대장은 북호두의 수비대가 경박호를 넘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때 원정부대의 행군로정은 어쩔수없이 남호두를 지나 경박호대안을 옆에
끼고 행군하게 되여있었던 당초의 로정을 바꾸어 륙도촌이나 횡도하자 일경으로 진출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것은 수천명의 적을 뒤에 달고
행군하고있는 원정부대가 경박호를 건너오게 될 북호두의 수비대와 정면에서 부딪치게 된다면 어쩔수없이 앞뒤에 적을 붙인 상태에서 어려운 싸움을
벌리지 않을수 없기때문이였다.
원정부대의 모든 지휘관들과 주보중의 유격부대 지휘관들까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행군대오의 선두에 선 김택근소대장에게 경박호연안으로 행군을 계속하라는 명령을 내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한흥권중대장에게 사로잡혔던 왜군중위가 거의 얼빠진 상태에서 해놓은 말을 그닥 탐탁히 여기시는 눈치가 아니였다. 어쩌면
그놈이 아주 악질이여서 헛정보를 불수도 있고 혹은 제정신이 아닌 까닭에 혀가 돌아가는대로 아무 소리나 해버렸을수 있다고도 짐작하시는것 같았다.
백선일의 이러한 추측은 장군님께서 이 지대 지형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북호두에 정찰을 보내여 수비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알아오도록 과업을 주신 그 순간부터 확정적인 사실로 믿을수 있게 되였다.
주보중부대의 대원과 김택근소대의 정찰대에서 한사람이 얼음을 타고 밤중에 경박호를 건너갔다. 그들은 북호두에 들어가 하루밤을 묵으면서
수비대의 움직임을 내탐해가지고 부대에 돌아왔다. 그들의 정찰자료는 왜군중위가 제공한 정보와 신통히 일치하였다. 래일새벽 북호두의 수비대가 얼음을
타고 경박호를 건너와 원정부대의 앞길을 막아나설 심산이라는것이였다. 정찰병들은 주보중이 누워오는 마차곁에서 장군님께
보고하였다. 그새 놈들의 추격에 들어 부상처가 더 심해진 주보중이였으므로 장군님을 만난 이후로 내내 마차에
누워오고있었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주보중의 마차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걸어오시였는데 그러다보니 마차안에 누워있는
주보중이와 마차둘레에 서있던 지휘관들이 모두 정찰병들의 말을 들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약속이나 한듯이 장군님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벌써 대단히 난처하고 당황해하는 기색들이 어려있었다.
한흥권중대장은 마차버주기를 잡고 약간 고개를 숙이고 서서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마차둘레의 지휘관들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방금 무엇인가
물으실듯 의문이 실린 눈길을 한사람에게 멈추시였다. 그는 훈춘중대의 백선일중대장이였다. 백선일은 장군님께서 질문을
던지시기만 하면 곧 대답해드리려고 몸가짐을 바로하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의 얼굴을 잠시 살피시고는 곧 다음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거기에는 김택근이 서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김택근에게도 오래 시선을 멈추시지 않고 다음사람에게로 차례로
눈길을 돌리시다가 마차에 누워있는 주보중에게 시선을 멈추시였다.
《주보중동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군님께서는 여러 사람의 얼굴을 굽어보시면서 물으실듯물으실듯 하다가 묻지 않으시고 끌어온 그 질문을 바로 주보중을
향해 하시였다.
주보중은 반쯤 내려감았던 눈을 치켜떴다. 그의 얼굴은 평온하고 지어 화기로운 분위기에 싸인것 같이도 보였다. 지금 이자리에서 주보중이처럼
여유작작하고 마음이 안정되여있는 사람은 오직 그 혼자뿐인것 같았다.
《김일성동지, 마차에 누워가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저는 정황이 어떻게
달라지던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는 한에는 문제될것이 없다는 배짱 하나로 누워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대기를 짚고라도 일어서지요.》
《그래도 내 보기엔 주보중동지만큼 사색을 기울이는 사람이 지금 없습니다. 마차에 누워가는 대신으로 머리는 곱절이나 쓴단말입니다. 지금도
주보중동지는 무엇인가를 느끼고 깊이 추적하고있는 표정입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참 김일성동지두, 생각이 바이 없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김일성동지의 심중의 생각을 점치고있는중입니다. 지금 이 마차둘레의 지휘관들은 대부분 북호두의 수비대놈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우리의 행군로정을 바꾸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있는데 김일성동지는 그놈들을
맞받아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있거든요. 놈들을 살려두면 그냥 따라올것이고… 그러니 놈들을 아예 쳐없애자는것이지요. 김일성동지께서
삽살개처럼 그냥 따라오는놈들의 성화를 순순히 받자고 하겠습니까.
김일성동지야 언제나 공격자세에 계시는분이지요. 공격으로써 역경을 순경으로 변화시키며
공격으로써 모든 불리한 국면을 유리한 환경으로 전변시키는것이 김일성동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놈들의 〈토벌〉이 날마다 심해지고있는 동만땅에서 대담하게 북만원정을 단행하신것도 공격정신이며 이 북만땅에서의 원정행군도 이
공격정신으로 일관되여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니 북호두수비대를 피해간다는게 말이 됩니까. 아니지요. 나야 김일성동지의
성미를 잘 알지요.》
장군님께서는 갑자기 허리를 길게 펴며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아주 놀랍습니다. 그게 어디 마차에 누워가는 사람의 생각입니까. 나는 누군가 바로 그렇게 담력이 있고 신심이 넘치는 이야기를 해주기
바라면서 이사람 저사람의 얼굴을 지켜보고있는참입니다. 그럴듯한 생각입니다. 나는 이걸 주보중동지의 발기로 믿고 지지할 결심입니다.》
《아닙니다. 이건 내 생각일수 없지요. 김일성동지는 왜군중위에게서 정보를 입수한 그
순간부터 북호두의 수비대를 녹여낼 구상을 하셨을겁니다. 우리 동무들중에 몇사람이 나더러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장군님께서
북호두의 수비대가 경박호를 넘어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경박호연안으로 행군하라고 하시는걸 보니 왜군중위의 정보를 그닥 탐탁히 여기시는것 같지
않다고말입니다. 나는 겉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동무들이 모르는 소리를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북호두의 수비대가 경박호를 넘어올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때문에 오히려 경박호가까이로 행군로정을 정하시는것이다, 아무 목적이 없이야 무엇때문에
길을 이렇게 멀리 에돌아가겠는가 하구요.… 그런데 정찰병들이 바로 김일성동지께서
기대하고계시는 그 소식을 가져왔거든요. 사람들은 모두 긴장하였지만 김일성동지만은 속으로
쾌재를 올리고계셨지요. 그러니 내 마음이 여유가 있을수밖에 없지요. 나는 불안이 없습니다. 정황이야 어떻든 이 싸움은
김일성동지께서 은근히 기다리고계시는 싸움이 아닙니까.
한흥권동무, 지금 뒤따르는 적들이 얼마나 됩니까?》
한흥권이 주보중의 심각한 눈길을 감촉하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에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
《한 이삼천명 됩니다. 액목현과 돈화현에서 많은놈들이 보충되여왔지요.》
《이삼천명… 상당한 수자군요. 놈들의 기동은 어떻습니까. 몇마장뒤에 놈들이 따라오고있습니까?》
이번에도 주보중은 한흥권을 향하고 질문을 던졌으나 장군님께서 대답해주시였다.
《서너마장거리로 쫓아오고있습니다. 팔도하자에서 묻어온놈들은 지칠대로 지쳐 변변히 맥추는 부대가 없는데 새로 보충된놈들이 기세를 돋굽니다.
이놈들도 단단히 봉변을 치르고야 정신이 들가봅니다. 어디서 이놈들의 버릇을 가르쳐야 할것인가, 지금은 당장 북호두의 수비대를 쳐야 할 일이
급합니다. 그런데 뒤따르는놈들도 이통에 함께 혼뜨검을 내주어야 하겠거든요. 무슨 수가 있어야 하겠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마차둘레의 모든
지휘관동무들이 생각해두어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지휘관들에게 잠시 여유를 주실 생각으로 마차에서 떨어져 행군대오의 뒤로 걸어가시였다.
장군님께서 대원들을 고무하시며 좀더 다그쳐 걷자고 하시는 말씀이 바람결을 타고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