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 회)
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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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전장의 여기저기로 바람처럼 내달리며 기마대를 지휘하던 사람이 주보중의 앞으로 말을 달려왔다. 그는 말에서 뛰여내리는 즉시로 주보중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주보중동지, 인사를 드립니다.》
기마대의 지휘관은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머리를 떼였다.
《아니, 이 무슨 일이시오. 생명의 은인이 무릎을 꿇는 법이 어디 있소. 일어나시오. 제가 우리 부대 병사들의 이름으로 인사를 드리리다. 기마부대의 지휘관은 누구시오?》
주보중은 황황히 총을 목갑안에 넣으며 다그쳐 물었다. 순간 기마대의 지휘관은 허리를 펴고 성큼 일어섰다. 그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글썽거리고있었다.
《주보중동지, 제가 왕이산입니다.》
《아니?》
주보중은 깜짝 놀라 크게 입을 벌린채 넋없이 서있었다.
《주보중동지의 이름은 많이 들었으나 만나보기는 지금이 처음입니다. 혹시 주보중동지가 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왕이산이 여기까지 말하자 주보중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소. 왕이산의 이름을 잊다니요? 나는 얼마전에 왕이산부대의 무장을…》
《그렇습니다. 나는 얼마전에 주보중동지의 명령으로 야밤중에 무장해제를 당한 부대장입니다. 인민의 재산을 로략질하는 토비집단이라는 규탄을 받고 무장을 제가…》
《제발 그만해주시오. 가슴아픈 해후는 따로 풉시다. 그런데 당신이 그 왕이산이라니 나는 진정 믿기가 어렵구려. 당신이 부대의 무장을 빼앗기고 병영을 떠나 어느 목재판인가 갔다는 말도 들었고 거기서 부대를 해산해버렸다는 이야기도 들은것 같소. 그런데 어떻게 되여 당신이 이자리에 나타났소?》
주보중의 가슴속에 숯불같이 달아올랐던 더운 숨결이 희슥희슥 살가시가 박힌 마른입술을 지지면서 흘러나왔다.
《그렇지요. 나는 주보중동지에게 원한을 가졌댔지요. 그럴수밖에 없었지요. 무장과 겨울나이식량을 빼앗긴 부대는 아사지경에 이르렀댔소. 나는 부대를 이끌고 몇사람의 독립운동자들을 찾아갔더랬지요. 하지만 그들에게서 별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총이 없는 부대는 로상걸식을 하면서 거지떼처럼 방황했지요. 무슨 수가 따로 있겠습니까?》
《당신이 나때문에 숱한 고생을 했구려. 우리 동무들이 당신들을 너무 혹독하게 대했던가보오. 우리가 그렇게 과격히는 하지 말았어야 했을것인데…》
주보중은 가슴이 저려오는듯 한손을 넓게 펴서 가슴언저리를 꾹 눌렀다. 이마에는 밭이랑같은 깊은 주름이 새겨지고 마른입술사이로는 더운 숨결이 휘파람소리를 내면서 새여나왔다.
《아니, 주보중동지, 그러지 마시오. 나는 그때 확실히 비적대장이였소. 나는 왕이산이라는 자기 이름을 버리고 왕청수라는 이름을
달았댔습니다. 왕이산이라는 비적대장의 이름을 가지고는 한끼의 음식도 하루밤 잠자리도 얻을수 없었지요. 우리는 정처없이 부락들과 산판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뜻밖에도 노루목촌에서
그저 하늘에서 오신것 같은 거룩하신
〈제가 왕청수입니다. 은인의 부르심을 받고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내가 이렇게 아뢰여드리자
〈어째서 자기 이름으로 대답하지 못하오. 나는 왕이산을 알지 왕청수를 모르오. 나는 왕이산을 찾았지 왕청수는 찾지 않았소!〉
그 순간 나는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리고말았지요.》
주보중은 불시에 가슴속의 넋을 어디엔가 다 빼앗긴듯 큰 키를 구부정하고 서서 조용한 말로 물었다.
《
《그렇습니다.
《그랬댔소.
주보중은 넋나간 사람처럼 어쩔바를 모르고 헤덤볐다. 총알에 숭숭 구멍이 나고 어디에 걸려 찢어지기도 한 군복자락이 그의 큰 몸에서 너펄거렸다. 그는 번열이 나서 모자까지 벗었다.
《아,
《그렇지요. 여기서 만나뵈웠지요.
《당신은 하늘이 준 복을 받았소. 당신같이 행운이 트인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가요? 부대의 무장도 이곳에서 받으셨소?》
《무장만이 아니라 인원도 보충받았지요. 우리 부대의 반수이상을 친솔부대의 성원들로 꾸려주셨소. 나의 부대에는 유격대 소대장을 하던 동지도 망라되였습니다.》
《누군데? 원정부대의 지휘관들은 한번씩은 다 만나 통성을 했으니 모르는 사람이 없소.》
《그렇다면 하연성소대장동지를 아시오?》
《하연성동무말이요. 알다뿐이겠소. 그 동무는 왕청중대의 소대장인데 실은 사령부 경위소대장의 임무를 수행하고있었소.》
《그렇다면
왕이산은 새삼스레 가슴이 뜨거워올라 입술을 후들후들 떨었다.
《그래 당신이 그들을 지휘하시오?》
주보중은 커다란 울대뼈를 움직여 가까스로 마른침을 삼키면서 물었다.
《지휘라기보다 사랑을 받아안은 셈이지요. 나는 그렇게밖에 달리는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부럽소. 당신이 부럽소. 세상에 행운이 있다면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할거요.》
주보중은 온 골짜기가 떠나갈듯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그러나 눈에는 눈물이 그렁하게 고여있었다.
《나를 나무람 마오. 나는 그만 실성한것 같소. 그래 이런 때 똑똑한 자기 정신으로 배기지 못하는법이지. 내가 밀영에 들어앉은사이에
바깥세상이 그렇게도 달라지다니. 인민에게 수치를 들쓴 왕이산의 이름을 혁명가의 이름으로 빛내라신
《고맙습니다. 각오는 비장하지만 영웅으로까지야 되였겠습니까? 하긴 진펄에 빠진 한 인간의 존재를 금빛으로 닦아내세우시려는
왕이산은 머리를 숙이고 사무쳐오는 격정에 어깨를 떨었다. 잠시후 왕이산은 고개를 들었다.
젖어있는 그의 눈언저리는 벌겋게 상혈되여있었다. 그는 말을 계속하였다.
《우리는 그동안 이 일대에서 적의 〈토벌대〉들을 족치면서 반일부대들을 묶어세우는 활동을 벌렸댔습니다. 그러던중에 우리는
주보중은 모자를 벗으려고 손을 올렸으나 모자는 벌써 벗은지 오래였다.
그는 입술을 떨며 고개를 숙이였다. 어떻게 이 순간의 감격을 이대로야 지탱해나갈수 있으랴. 주보중은 다리가 휘청거려 금시 쓰러질것만 같았다. 그는 얼결에 손을 뻗쳐 왕이산의 어깨를 붙들었다.
《내가 부상을 당해 성한 사람이 못되고보니 이렇게 당신에게 의지하게 되오. 용서하시오. 지금 내 마음은 어떻다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소.
왕이산동무, 서로의 각박한 처지에서 본의아니게도 운명의 대결조차 할수 있었던 우리가 이렇게 눈물겨운 해후를 하게 되였으니 이 역시
왕이산은 주보중의 눈에 비낀 순진한 애원의 빛을 찾아보자 울컥 목이 메였다.
《주보중동지,
왕이산은 절도있게 한발 뒤로 물러나 거수경례를 붙였다.
한동안 말을 못하고 온몸을 후들후들 떨고있던 주보중은 와락 달려들어 왕이산을 그러안고 얼굴을 비볐다.
《고맙소, 고맙소. 왕이산동무, 북만땅골짜기에 락엽처럼 흩어져 돌아가던 혁명가들이 이제는 하늘을 잡고 땅을 차고 일어나 싸우게 되였소.
우리 다시는 〈토벌대〉놈들의 추격에 들어 정신없이 쫓기지 않아도 될것이며 무장을 뺏고 군률을 세워서라도 혁명을 하려는 모대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것이요. 북만땅처처에 고였던 혁명가들의 눈물겨운 력사는 이미 과거로 되였소. 의기가 있어도 싸울수 없고 용맹을 가지고도 이길수 없었던 북만의
혁명가들이 이제는 이 땅을 종횡으로 주름잡으며 달리게 되였소. 이제는 머리들고 해와 달도 보게 되였구려. 아, 엄혹한 시련의 계절은 깨여진
얼음장처럼 밀려가는가보오.… 이
두사람은 다시한번 힘껏 껴안고 어깨들을 들먹였다.
다음날 주보중은 하연성소대장이 인솔해가지고 달려온 반일부대들까지 만나보고 원정부대를 향해 떠났다.
오랜 나날 주보중이와 아무 인연이 없이 제멋대로 돌아가던 여러명의 반일부대장들이 사심없이 그의 부하된 립장에서 주보중을 바래웠다. 이때의 주보중의 마음은 온 세상을 그러잡은듯한 장쾌한 기분이였다.
이로부터 이틀후 주보중은 남호두 북쪽등판에서 원정부대를 인솔하고오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