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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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송로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기침을 깇었다. 어쩐지 고독하고 울적한 기분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모두 그렇게 심상해서들 있지 말구 이야기랑 나눕시다. 우리야 어쩔수 없이 별난 곡절로 인연이 맺어진 사람들이 아니요?》

진옥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더없이 친근한 눈매로 로인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습니다. 아버님께서 도와나서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닌지 오랬을겁니다. 그 멀고 위험한 길에 유격대 녀대원을 싣고 내려와 하루이틀도 아닌 오랜 나날 그처럼 정성을 기울여 상처를 돌봐주신 아버님의 은혜를 진정 무엇으로 갚아드리면 좋겠습니까?》

《그런 말 마오. 나라 위한 싸움에 나섰다가 전장에서 총탄 맞고 쓰러진 부상자인데 그 몸을 스치고 지나칠 사람이 어디 있소.

내앞에서 다시는 그런 소리 마오. 나는 그새 유격대 부상병한테서 한두번만 놀라운 광경을 발견한게 아니요. 그렇게 운신할수 없는 몸으로 밤마다 현경이를 데리고 앉아 눈을 틔워주노라 무진애를 썼구 나를 향해서는 스스로 지쳐 쓰러지는 순간까지 유격대의 사상을 인식시키노라구 론전을 벌렸으며 오늘은 또 이렇게 일어나 역으로 가고있는게 아니요. 내 비록 유격대의 사상에 공명하지 못하구 딸을 떠나보내긴 하지만 유격대 부상병을 대하고난 인상만은 지울수가 없소. 이건 보통사람의 의지와 담력으로 해낼수 없는 일이란 말이요.》

로인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진옥의 눈에는 덧없는 서글픔과 회오의 아픈 자책이 어리여있었다. 진옥은 힘이 들고 상처의 동통이 쑤셔오는데다 몸까지 얼어들어 견디기 어려웠다.

진옥은 자신도 다잡을수 없이 떨려오는 입술을 간신히 움직여 숨가쁘게 외웠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저는 지금 이자리에 제가 아니고 다른 유격대원이 부상을 입고 누워있다면 어떻게든 아버님 마음을 돌려세우고 현경이의 앞길도 밝게 틔워놓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한 보름이나 한달, 아니 그보다 더 적은 시일이 걸릴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때 가면 아버님께서 우리 원정부대가 이 북만땅에서 놈들을 어떻게 때려부시고 조국광복의 그날을 앞당겨가고있는가를 아시게 될터인데 바로 그 한달을 기다리지 못하고 현경이를 상해로 떠나보내게 만들었으니 제가 어찌 장군님을 모시고 싸우는 조선의 혁명가라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생각하면 저는 아버님께 미안하고 현경이앞에도 죄스러움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지금 온 만주땅천지에서 뜻을 가진 애국자들이 김일성장군님을 향해 구름같이 모여들고있는 때에 응당 아버님께서 누구보다 앞서 장군님을 따라야 할것이지만 아버님의 손에서 생명을 구원받고 지금도 막대한 수고를 끼치면서 병구완을 받고있는 제가 아버님을 똑똑히 도와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유격대의 군복을 입고있는것부터가 민망스러워 견딜수 없습니다.

이제 현경이가 상해로 떠나고 아버님 손에서 제가 아무 할일 없이 병구완이나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하기 이를데 없구요. 아버님, 마지막으로 진심을 다해 말한건데, 제말이 잘못되였다면 리해하여주십시오.》

말을 마치자 진옥은 몇번 거친 숨을 모두어쉬며 의자에서 일어서려는듯 등받이에 웃몸을 젖히더니 그대로 두손을 무겁게 떨어뜨리며 현경이옆으로 쓰러졌다.

현경이는 깜짝 놀라 진옥의 몸을 받들어 안았다.

《언니, 언니 정신을 차려요. 예? 정신을 차리라구요!》

현경이는 진옥이의 몸을 마구 흔들어대며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미 고요히 다물어버린 진옥의 입에서는 더운 숨결조차 흘러나오지 않았으며 얼굴은 파리해지고 두눈은 살포시 감겨져있었다.

《이애, 어떻게 되느냐.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백송로는 완연 공포를 느끼고 두손을 화들화들 떨었다.

그는 진옥이가 단순히 병으로가 아니라 자기 마음속의 괴로운 번민을 안고 모대기다가 이렇게 쓰러졌다고 생각하였다. 정말 세상에 이런 녀자도 있단말인가.

백송로는 마부에게 소리를 질러 의원이 있는 부락을 찾아 말을 달리라고 분부하였다.

마부의 세찬 채찍소리와 함께 풍마차는 딩굴듯이 언땅에 뛰여오르며 달리기 시작하였다.

현경이는 진옥의 몸을 끌어안은채 흑흑 소리내여 울고있었다. 현경에게는 진옥의 일이 생각할수록 목메이고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로상에서 쓰러질 몸에 자기 발로 똑똑히 걸어나와 마차에 앉은 진옥이의 그 굳센 의지속에는 과연 무엇이 살아 숨쉬고있었는가? 그동안 밤마다 진옥이옆에서 눈을 뜨고 키를 자래워온 현경이긴 하였지만 이렇게 진옥이가 자기를 따라나와 로상에서 쓰러질 지경으로 모든 면에서 어리고 허약했던 자기이고보면 이 눈물겨운 하소연을 아버지를 향해서만 할수가 없었다.

현경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자기에 대한 쓰라린 회오의 감정을 동시에 품고 각일각 꺼져가는 진옥이의 몸을 안타깝게 부둥키고있었다.

마차는 어떤 부락 의원네 집앞에서 멎었다. 그때 행길로부터 한떼의 군중이 왁짜하게 떠들어대며 밀려오고있었다. 백송로와 현경이는 진옥이의 몸을 받들어내리느라고 딴데에 정신을 팔 여유가 없었고 마부가 뛰여나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았다.

군중들은 유격대의 큰 부대가 대구를 쳤다고 하면서 대구촌으로 달려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 소식을 듣자 백송로와 현경이는 다같이 깜짝 놀랐다.

현경은 행길로 달려나가 한번 더 자세한 내막을 물었다.

《어떻게 되였다느냐?》

진옥이를 의원앞에 안아다 눕혀놓은 백송로가 삽짝안으로 뛰여드는 현경이를 향해 물었다.

《아버지, 유격대의 큰 부대가 대구를 쳤다는게 틀림이 없대요. 경찰들이 무리루 죽어넘어졌대요.》

《그러니 사실이라는것이냐. 아, 어쩌면 이렇게도 희한한…》

백송로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만 슴벅슴벅하고있었다.

《아버지, 제가 대구에 얼핏 갔다오겠어요.》

《대구에?》

《예, 세상소식을 좀더 똑똑히 알아야겠어요. 얼마나 손꼽아기다리던 소식이예요.》

《그러려무나. 간바에야 똑똑히 알고 돌아와야지 나는 도저히 내 정신 같지 않다.》

그때 저쪽 의원이 있는 방으로부터 의원이 중얼중얼 푸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의원이 무슨 이야기를 하셔요?》

《이애, 그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구촌에나 가보아라. 어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느냐?》

백송로의 눈에는 눈물이 굴러나기 시작하였다.

현경은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흑흑 흐느끼며 밖으로 달려나와 풍마차를 탔다. 말 못할 슬픔과 목메이는 격정을 한가슴 안고 달리는 처녀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졌다.

북만땅의 어디 가나 흔하게 볼수 있는 투박한 귀틀집들이 촘촘히 들어앉고 그사이에 가게방, 음식점, 리발소, 약방, 마철전, 야장간, 려인숙 같은것들이 드문드문 늘여앉은 대구촌에서는 그중 큰 건물이 높은 망루가 솟아있는 수비대병영이고 그옆의 마구간 같은 기다란 귀틀막이 자위단과 경찰관파출소의 건물인데 그것들이 현경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현경은 부락의 가운데를 가르고 지나간 큰길을 그냥 내달려 수비대의 병영이 있던 자리에서 잠간 마차를 멈추고 일대를 둘러보았다. 신통히 수비대, 자위단, 경찰관파출소의 건물들은 불에 타서 재만 남았는데 지금은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도 하나 없고 말같은 커다란 만주토견들이 털이 북실북실한 발을 옮겨가면서 무엇을 냄새 맡고 눈속을 파헤치고는 피묻은 누런 《토벌대》의 옷자락을 물어당기고있었다.

현경은 마차를 타고 자기들이 하루밤 쉬여간 려인숙으로 달려들어갔다. 비록 하루밤이긴 하였으나 앓는 처녀까지 데리고 들어와 집주인을 어지간히 당황하게 만들었던 현경이가 마차를 타고 경황없이 나타나는바람에 려인숙은 수선거렸다.

현경은 려인숙주인에게서 유격대가 적을 어떻게 쳤고 하루밤 대구에서 묵으면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상깊은 추억을 남겼는가를 세세히 들었으며 대구촌에서 무려 열두명의 청년이 유격대를 따라갔는데 그중에는 려인숙주인의 아들도 끼여갔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그뿐만아니라 경박호로 흘러드는 큰 물줄기가 지나간 대구 서남쪽의 소구에서도 적들이 녹아났고 더구나 유격대를 뒤따르던 큰 《토벌대》 하나는 강둔덕에서 완전전멸되였는데 그때 혼비백산해 달아난 주인없는 군마들이 대구촌에까지 나타나 안장을 진채 한동안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고 하였다.

현경은 기뻤다. 얼마나 기뻤던지 현경은 눈물까지 흘렸다.

현경은 려인숙에서 하루밤 묵고 소구촌의 형편을 보고싶어 그곳에 달려가 다시 하루밤을 더 지내고는 유격대의 뒤를 따라 곧추 남호두로 올라갔다.

그 림시에는 남호두 동쪽등판에서 유격대를 추격해온 기마대가 길을 막고 앞뒤에서 공격하려다가 무리죽음을 당하고 겨우 살아온 몇놈들이 병영에 처박혀 부상처를 치료하고있는데 그것들두 매일같이 시체가 되여 병영문을 나서고있다는 소문이 남호두의 촌락을 바람처럼 휩쓸고 지나던 때였다.

현경은 남호두에 와서 이 소식까지 듣고나니 세상이 온통 유격대의것인듯이 생각되였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자기의것이였다. 얼마나 눈물겹게 바라고 축원하던 그것이 이루어진것인가?

진옥이가 밤마다 들려주던 그 모든것이 현실로 나타난것이다. 그 의로운 사람들, 그 막심한 시련을 헤쳐가고있는 잊지 못할 사람들, 그분들의 앞길에 승리가 있고 영광이 있기를 그 어느 한시인들 축원하지 않은 날이 있었던가? 이 소식을 알면 아버지는 어떠하실가?

그것을 생각하자 현경의 눈에서는 다시금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아버지는 벌써 무서운 죄인이다. 세상을 그렇게까지 암매하게 해석하고 사람을 그처럼 용렬하게 대했던 아버지, 이제 무슨 낯으로 천지가 뒤집힌 이 놀라운 세상을 들여다보며 남들처럼 웃고 떠들며 기뻐할수 있으랴.

륙십평생 독립운동에 떨쳐나 하루도 발편잠을 못자고 피와 땀을 뿌려온 아버지, 착오와 실패, 락망과 오뇌의 쓰디쓴 환영을 가슴에 붙안고 희망없는 내 나라, 내 겨레의 슬픈 모양에 그리도 깊은 한숨을 내짓던 아버지, 아버진들 이 나라의 독립전에 큰 경륜이 트이기를 그 얼마나 바랐고 그 얼마나 처절히 기대했으랴? 그렇건만 한생의 무서운 재난속에 마음이 얇아지고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는 문전에 다달은 광명한 세계를 외면해버리지 않았는가? 이것이 과연 애국자니 지사니 하고 그처럼 도고히 떠들어대며 목침으로 방바닥을 땅땅 울리던 독립운동자들의 슬픈 모습이였단말인가? 이 비극, 이 엄청난 시대의 착오, 이 암매한 생활의 넉두리, 이 박약한 인간들의 거동!…

현경에게는 그 모든것이 통분하였다. 어제까지도 자기를 둘러싸고있었던 그 모든것, 그 허울좋은 비극의 소산들이…

현경은 모르고 살아온 그 나날의 슬픔과 고독이 아까왔고 이제 드디여 깨우치고나 바라보는 이 세상의 밝은 광채에 눈물이 쏟아졌다.

한생의 단 한순간, 아버지도 자기도 진실로 인간답게 살고 진실한 인간의 참삶을 영위할수 있었던 귀중한 순간을 놓치고만것이다.

《아버지, 우리는 이제 무슨 낯으로 그분들을 대하겠어요. 무슨 량심으로 진옥언니를 추억하겠나요!》

눈물이 앞을 막아 세상이 온통 뿌옇게 들여다보이는 처녀는 마부와 함께 마부대에 앉아 가는 말에 채찍을 얹었다. 마차바퀴는 웅뎅이에 빠져있었다. 말도 마차도 선자리에서 신고를 겪고 마부가 뛰여내려 야단을 치고있었으나 현경은 그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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