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제 2 장
불타는 성
2
(3)
명령을 받고 백산이 방에 들어섰을 때는 벌써 모든 의병장들이 모여있었다. 류린석이 마지막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고 의미있게 눈인사를 보낸 다음 좌중을 향하였다.
《여러 의병장들과 의병들이 모두 잘 싸웠네. 그러나 지금처럼 해가지고는 안될것 같네. 그래서 방략을 좀 달리하자 하니 잘 알아두었다가 그대로 해야 하겠네.》
먼저 그가 이렇게 말하고난 다음 주용규가 나섰다. 역시 무관다운데가 있는 그는 일체 설명을 피하고 필요한 몇마디만 하였다.
《무모한 희생을 피하고 전과를 높이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하자고 하오.
첫째, 모든 의병부대들은 방금 전진했던 계선까지 접근하여 일체 접전을 피하면서 눈으로 흉장만 높이 쌓고 대기하며 고취악대와 기발만 계속 공격자세를 취하여 적들을 긴장시킬것!
둘째, 서상렬의 보총수 서른명을 다섯명씩 여섯조로 나누어 성의 전면에 분산배치하며 그들이 눈전호에 대기하고있다가 기관총이 나타나는데 따라 집중사격을 퍼부어 완전제압할것!
셋째, 김백산선봉부대는 기관총이 제압되는데 따라 쐐기형으로 남먼저 성에 돌입하며 기어코 남문을 열어제낌으로써 전체 부대들의 공격에 돌파구를 열것.
넷째, 대기하고있던 모든 부대들은 성문이 열리는데 따라 일거에 공격을 단행하여 신정 (낮 4시)까지 기어이 성을 점령할것!》
부대가 다시 진지를 차지하려고 흩어져갈 때 린석이 백산을 불러세웠다.
《싸움을 잘하라구… 노루고기를 잘 먹었네.》
느닷없이 그가 말했다. 백산은 영문을 알수 없어 멍청히 섰다. 싸움을 잘하라는 말은 리해할수 있으되 노루고기는 여기에 무슨 상관인가. 이 아닌 때에…
《예, 그것은 제가 아니라…》
그는 얼결에 말을 뗐다가 그만두었다. 그 말을 하자면 오째와 함께 미영의 말을 꺼내야 하겠는데 그야말로 아닌 때인것이다.
《알고있네. 하지만 오째도 보낼만 하니 보냈지.》
린석이 또 의미있는 말을 하고는 백산의 어깨우에 손을 얹었다.
《싸움을 잘하라구. 이번 싸움변경도 자네를 보고 힘을 얻어 한 일일세.… 자네가 기관총수놈을 쏴없앴지? 그놈만 잘 제압해도 성은 문제없네. 기어이 성문을 자네가 열어야 해!》
그가 또 의미있게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두번째 공격이 시작되자 백산의 기세는 곱으로 올랐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린석이 왜 싸움을 잘하라고 특별히 당부를 했는지, 전혀 당치도 않은 때에 노루고기에 대한 말은 왜 꺼냈는지 알수 없었다. 하면서도 곱절 용기를 낸것은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신심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아닌게아니라 적들은 우리의 고취악대가 고아대는데 따라 거기에 대고 미친듯이 사격을 하였다. 그 틈을 타서 서상렬의 보총수들은 성가까이에 접근하여 든든히 눈전호를 파고 기관총에 대한 조준사격을 할수 있게 되였다. 그에 따라 기관총소리도 점점 뜸해지고 그 틈을 타서 백산의 부대는 성가까이까지 바싹 다가갈수 있었다.
다음부터 조총수들은 물론 궁수들까지 성가퀴를 향해 조준사격을 시작하였다. 수백자루의 조총과 또 그만한 수의 화살이 일시에 성우로 향하자 놈들은 성가퀴밖으로 얼굴도 내밀지 못했다. 그 틈을 타서 수십개의 사다리가 성벽에 걸리고 거기에 의병들이 달라붙었다. 그제서야 대가리를 내민 적들이 총탁과 총창을 휘둘러댔으나 때는 늦었다. 그보다 더 길고 예리한 날창과 칼들이 우죽뿌죽 솟아올라왔던것이다.
그렇게 성우에 남먼저 올라선 백산이 막아서는 놈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발로 차면서 성문쪽으로 접근해갔다. 뒤따라 올라온 오째와 다른 의병들이 그의 후위를 담당하며 새로운 전역을 펼쳤다. 왜군들은 점점 쫓기고 밀리우며 뒤여져갔다.
그때 어디선가 한무리의 군사들이 새로 나타났다.
《우리는 감영군이요. 당신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싸움을 거부하고있었소.
김복한나리의 일도 잘 알고있소. 우리를 받아주시오. 왜놈들과 싸우겠소.》
《싸우자, 왜놈들을 치자!》
누가 한마디 하자 그들이 일제히 합세했다.
성문을 지키고있던 왜놈들이 그들을 향해 총질을 했다. 그러자 독이 오른 군사들이 벌떼처럼 소리를 지르며 그리로 달려갔다. 총질을 하던 왜놈군사들이 그들의 손에 맞고 발에 채우며 순간에 쓰러졌다.
백산이 다가가자 그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 백산이 그들을 하나하나 잡아이끌어주었다. 그리고 이미 빗장마저 벗겨진 성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거기로 의병들이 쓸어들었다. 백산이 《남풍루》라고 쓴 문루에 올라서보니 드넓은 눈판에 널렸던 의병들은 거의나 보이지 않고 성에 달라붙어있었다. 성벽우에서는 벌써 감영군과 의병들이 합세하여 동문인 《녕영루》로 달려가고있었다. 거기에서 왜병들이 총질을 하는데 격분한 군사들이 일시에 돌진하는것이다.
마침내 그곳의 적들도 완전히 구축되고 동문마저 열리였다. 성은 완전히 의병들에 의해 장악되였다. 거리로 사람들이 쓸어나오고 린석이 말우에 높이 올라 성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감격에 겨워 만세를 불렀다. 저 사람이 류린석인가. 지금 상복을 입고 말우에 올라앉은 체소한 저 사람이 그렇게도 자주, 그렇게도 격렬한 열정으로 왜놈들을 반대하여 일어나라고 호소하던 사람인가 하고 저저마다 보고싶고 만세를 불러주고싶어하는것이다.
백산도 어느덧 환영군중의 한사람이 되였다. 그를 바라보는 눈에 어째서인지 눈물이 고여나왔다.
왜서일가. 그가 의병장이래서? 아니면 상복을 입은 몸이래서일가…
그것은 아니였다. 원인은 알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처음 그를 제천의 향교에서 그리고 보은의 속리산속에서 만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때 그들을 무턱대고 욕했던 일들이 후회된다. 그의 견결한 애국심과 반일정신을 보지 못하고 량반일반에 대한 증오의 감정만을 토했던것이다.
이제는 하나의 마음으로 통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할 운명의 한 궤도에 올라섰다. 그러자 그것이 보다 더 가까운 혈육의 관계처럼 그의 마음을 이끌어갔다. 부모가 없는 그에게는 늘 자기를 친자식처럼 이끌어줄 혈육이 그리웠다. 지금의 눈물도 그래서 나는것일가. 아까 느닷없이 싸움을 잘하라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것도 자기에 대한 남다른 관심에서 한 말이 아닐가. 느닷없이 노루고기를 잘 먹었다는것은 무슨 뜻에서 한 말일가.
그의 명령에 더 복종하고싶다. 이제 더 큰공을 세우라면 목숨이라도 걸고 나서고싶다. 이제라도 그앞에 뛰여나가 나는 이렇게 싸웠노라고 어리광이라도 부리고싶다. 아, 나에게도 그런 아버지가 계신다면…
그때 누군가 갑자기 팔을 부여잡았다. 오째였다.
《선봉장님, 그놈들이 달아났대요. 〈토벌〉대장놈과 관찰사놈이 저 공신루(북문)로 해서 방금전에 …
이제라도 빨리 추격하면 따라잡을수 있답니다.》
말이 끝나기도전에 그는 벌써 사람들속을 헤쳐가고있었다.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했는지 알수 없다. 그저 성을 빼앗았다는 거기에만 취해있은것 같다.
그는 얼핏 만난 사람에게서 무작정 말을 빼앗아타고 북문쪽으로 달렸다. 휑하니 열린 성문에는 벌써 아무도 없다. 눈우에 찍힌 무수한 발자국과 수레바퀴자국만 놈들이 방금전에 성을 빠져나갔다는것을 짐작케 했다.
다시 말을 때려몰아 산굽이를 몇개 돌아서자 한무리 사람들이 보였다. 마주치는 저녁해빛에 눈이 부신데 그사이사이로 몇마리의 말과 마차들이 나타났다사라졌다 했다.
그들사이가 점점 좁혀지자 불시에 총소리가 들려왔다. 놈들이 그를 알아보고 쏘는것이였다.
백산도 총을 찾았다. 그러나 몸에는 총이 없었다. 아까 성에 올라서면서 보총대신에 칼을 들었던것이다. 총소리에 놀란 말이 앞발을 추켜들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두렴없이 박차를 가했다. 그러자 눈앞에 관찰사 김규식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났다. 그가 비록 본적은 없었지만 몇명의 관리들과 장교들속에 휩싸인 모습이 틀림없이 그라고 단정했다.
놀라운것은 그들에 앞서 또 한무리의 도망군들이 내빼고있는것이였다. 그것은 왜놈의 무리였다. 싯누런 군복차림에 번쩍거리는 왜칼에 박차에 가죽띠를 두른 색다른 장식이 그것을 짐작케 했다.
옳았다. 행렬이 산굽이를 도는 동안 온몸이 그대로 드러난 이다찌놈이 보였다. 가슴에 누런줄을 드리운 군복을 입고 류달리 싯누런 견장과 령장이 어깨와 목에 붙은 새까만 코수염쟁이였다.
보다 놀라운것은 그 마차뒤를 따르는 또 다른 마차에서 와다나베대위를 알아본것이였다. 그놈이 마차에 앉아 기관총수놈에게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총을 쏘아대고있는것이였다.
지금 놈들은 파렴치하게도 관찰사일행을 저들의 방패막이로 뒤따라세우고 그사이사이를 노리며 자기에게 총탄을 퍼붓고있다. 몸에 총이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있다면 저가운데서 피맺힌 몇놈이라도 잡아 제낄수 있을것이다. 그런데 총이 없다. 그럴수록 눈에서는 더 불이 일었다.
마침내 관찰사일행을 따라잡았다. 막아서는 장교놈들을 칼로 뿌리치며 곧바로 김규식에게 달려들었다. 지금도 왜놈의 총알막이나 하며 놈들의 뒤나 따르고있는 너절한 놈. 내 기어코 너를 잡아 김복한대장님의 복수를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며 말이 나란히 하는 순간 번개처럼 몸을 날리며 규식의 말우로 뛰여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그놈의 목을 힘껏 그러안았다. 순간 날아오는 총탄에 말이 곤두박히고 그들은 동시에 눈우로 날아떨어졌다.
백산은 몸에 강한 충격을 받으며 어디론가 곤두박히는 둔탁한감을 느꼈다. 그 순간 머리속에 떠오르는것은 김규식을 사로잡았다는 쾌감이였다. 끝내 김복한대장님의 복수를 했다. 저 보은의 속리산속에서 그가 지독히도 모욕을 했던 복한대장님, 그때 무례했던 저를 용서하십시오.…
다음은 아무것도 생각할수 없었다. 눈앞이 새까맣게 흐려지고 무수한 별찌들이 어지러이 춤을 추었다. 얼마후 눈을 떴을 때는 자기가 두툼한 눈우에 누워있고 푸르싱싱한 소나무가 흐느적이며 자기 얼굴을 쓰다듬고있는것을 알아보았다. 이상한것은 아직도 그우에 두툼하게 쌓인 눈이 피처럼 빨갛게 보이는것이였다. 그것뿐아니라 그가 누운 땅과 산비탈 그리고 바위우에 덮인 눈전부가 모두 새빨간색이였다.
웬일인가.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는 여전히 영문을 알수 없었다. 그러자 눈앞에 또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하늘이 온통 빨간빛으로 물들어있었던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거대하고 장쾌한 모습이였다. 무한대한 하늘이 힘차게 갈아엎은 밭이랑마냥 줄을 지어 아득히 뻗어갔는데 지는해의 노을빛이 그것을 빨갛게 물들이고있었던것이다. 파도를 치며 아득히 뻗어간 이랑들은 어렸을 때 그가 부모들과 밭갈고 씨뿌리던 잊지 못할 고향마을의 자기네 땅으로 이어졌다. 그때 자기 어깨를 두드려주던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 이렇게 묻는것 같았다.
《자식, 너두 이젠 장가를 가야 하지 않겠니. 어디 봐둔 처녀라도 있으면 말해라. 내가 다 봐주지 않으리…》
《아버지, 제가 군공을 세운 다음에요. 오늘도 성문을 제가 열었어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돼요. 우리 대장님은 저에게 싸움을 잘하라고 몇번이나 당부를 했어요. 지금은 그가 나의 아버지나 같애요. 그렇게 정이 가거던요.…》
자기가 그렇게 말한것 같다.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자기를 본것도 같다. 아, 그 아버지, 지금 어디 있을가…
어디선가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자기를 찾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닌지. 자기를 찾아 저 밭이랑을 찾아헤매는 아버지 아닌지…
그러나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였다. 여러 사람들이 떠들며 자기를 향해 가까이 오고있다. 하다가 불시에 한 목소리가 옆에 와서 멎었다.
《아, 여기에 있습니다. 선봉장님이… 선봉장님!》
오째였다. 이어서 여러 사람들이 달려왔다.
백산은 의식을 차렸다. 그러나 옴짝할수 없었다. 무엇때문엔지 사람들이 자꾸만 자기를 흔들어댔다.
《팔을 놓으십시오. 이젠 됐습니다. 관찰사놈을 사로잡았습니다. 》
오째가 그를 돌아눕혔다. 그때에야 그는 한쪽팔이 저리도록 아프다는것을 느꼈다. 알고보니 그때까지도 김규식이놈을 한팔로 꽉 그러안고있었다.
아까 말우에서 그놈과 함께 날아떨어지던 일이 얼핏 떠올랐다. 그런즉 성공했구나. 저 왜놈의 개를 이 손으로 붙잡았구나.…
《지금이 어느 시인가?》
그가 물었다. 하늘은 여전히 불타고있었다.
《선봉장님, 유초(5시)입니다. 그러나 성은 신정에 점령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백산은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잠들듯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