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2 장

불타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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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의 마지막날 그리고 새해 병신년을 맞으며 내리는 눈이 무엇인가 희망을 안겨주는것이 아닌가. 국치를 당했던 을미년의 분노를 가시고 새해에는 분명 무엇인가 달라지는것이 있을상싶다.

여하튼 그해에는 쏟아지는 눈에 열뜬 의병들이 모두 떨쳐나 노루사냥, 토끼사냥, 꿩사냥으로 설을 즐겁게 보냈다. 과세(지나간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것)를 잘해야 그해 복을 많이 받는다고 하였는데 과연 이해에는 무엇인가 달라지는것이 있는것 같다.

계획대로 충주성공격을 단행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내린 눈으로 사방은 눈천지로 화했다. 어디를 가도, 어디를 보아도 눈이다. 그러나 의병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충주로 향하는 한길에 모여들었다. 이윽하여 전 대오가 충주로 향할 때 두텁게 쌓인 눈은 수천의 발길에 지심이 울리듯 웅글게 떨었고 한번 지나가기만하면 그대로 넓은 대로로 활짝 열리군 하였다.

그렇게 제천에서 충주까지 가는동안 누구도 싸움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을 몰랐다. 그 의병들 매 사람들이 가지고있는 생각들은 저마다 다를수 있으나 공통된 하나의 심리만은 변함이 없었으니 그것은 나라의 원쑤인 왜놈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는것이였다. 특히 이다찌놈과 김규식이놈을 그대로 둘수 없었다.

이러한 복수심은 지금 대오의 앞장에서 말을 타고가는 류린석창의 대장의 이름과 더불어 더 확고히 굳어져있었다. 그가 이미전부터 위정척사론의 주창자의 한사람이며 벌써 여러차례에 걸쳐 전국에 격조높은 격문을 날린 반왜반침략의 선각자가 아닌가. 그런 그가 지금 상복을 입고 전장에 나섰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신성화된 인물로 떠받들리기에 충분하다.

세월이 지나면 후대들이 그때 류린석의 부족점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론할수 있다. 그러나 봉건유교교리와 도덕관념의 무제한한 구속과 자신이 평생 신념으로 간직해온 주자가례(봉건적례의범절에 관한 축문 또는 그 규정)의 요구를 박차고 과감히 상복을 입은 몸으로 전장에 뛰여들었다는 그자체만으로도 영웅으로 떠받들리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또한 수천명 의병들의 사기를 돋구어주는 고무적힘으로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설상강행군으로 충주에 도착한 제천의병대는 즉시 성을 포위하고 왜놈들이 가설해놓은 전화선을 끊어버리고 도로들을 차단했다.

린석은 성에서 얼마간 떨어진 한 민가에 지휘소를 정하고 전체 의병장들을 모이게 했다.

거기에서 먼저 한마디 연설을 했다.

《제장들은 들으라. 마침내 우리는 그렇게 바라던 왜놈들과 첫 싸움을 벌리게 되였다. 지금 저 성안에는 왜놈토벌대장 이다찌놈과 그 졸개들 그리고 왜놈에게 붙어서 나라를 파는 역적 김규식놈이 있다.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그대들이 잘 알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무릅쓰고 놈들을 처단하며 성을 탈환함으로써 우리 겨레는 살아있으며 왜놈들과 끝까지 싸우겠다는것을 내외에 엄숙히 선포해야 한다.…

오늘은 병신년 새해의 섣달초사흘이다. 그러나 의기를 든것은 을미년의 저 국모가 살해된 그때이다. 이것을 잊지 말자. 국모의 원쑤를 갚고 국치를 씻자고 일어났던것이다. 여기에는 기어이 원쑤 왜놈을 내쫓고 내 나라를 굳건히 지키자는 많은 뜻이 담겨져있다. 이것을 잊지 말고 저 뾰족봉에서 다졌던 맹세를 엄숙히 지키여 죽기로써 싸워이겨야 한다.…》

그의 말이 끝나자 여러 의병장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여 다시한번 맹세를 다졌다.

충주성은 충청도지방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오래전부터 그 위세를 자랑하고있는 성이다. 둘레가 3천 650척이요 높이가 8척으로서 그리 크다고는 볼수 없으나 성전체가 정교한 돌로 쌓여있고 허줄한데가 전혀 없어 좀처럼 달라붙기 힘들게 되여있다. 그것을 미리 내탐한 의병대에서는 부대마다 사다리를 수십개씩 준비하여 일제히 성벽에 달라붙게 하였다.

미정(낮 14시)에 창의대지휘소에서 대평소의 높고 긴 신호로 첫 돌격신호를 내렸다. 그러자 각 부대들에서 같은 소리로 화답을 하고 뒤따라 취타악기들이 진동을 하면서 싸움을 고취하였다. 성을 둘러싼 주변의 산야들이 일시에 발칵 뒤집혔다. 의병들이 일시에 와와 소리를 지르며 성에로 육박해갔다. 기발들도 일제히 성을 향하여 기웃하고 달려나갔다.

그 순간 린석은 찌르는듯한 충격으로 가슴이 달아올랐다. 그토록 벼르고벼르던 왜놈과의 싸움이 마침내 시작된것이다.

이겨야 한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이 첫 싸움의 승패에 따라 온 나라의 의병들도 일어나는가 마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가 결정된다. 나라의 총리방에까지 뛰여들어 총을 휘두르던 저 이다찌놈이 어제는 나의 제자이며 문우이기도 한 복한이를 죽이였다. 어떻게 용서할수 있단말인가. 내 기어이 침략자를 징벌하여 비명에 먼저 간 혼들을 위로하리라.

린석은 마을앞 등성이에서 되도록 전장가까이로 나가 싸움장면을 주시하였다.

싸움의 승패는 매 의병들이 어떻게 싸우는가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보다는 그것을 지휘하는 장관들에게 많이 달려있다. 그만큼 그는 이미 왜놈과 싸움에 숙달된 서상렬이나 김백산이들과 충분히 토의를 진행하였다.

지금 보건대 일이 뜻대로 되는것 같다. 모든 부대들이 사방에서 거의 같은 속도로 성을 향해 조여들고있다. 그럴수록 공격을 재촉하는 고취대가 기세를 올리고 기발들은 더욱 열정적으로 펄럭인다. 그에 비하여 눈덮인 산야에 외로이 솟은 성은 죽은듯 조용하다. 멀리에서 보면 성은 의병들의 파도에 금방 덮치일듯 납작하게 긴 고리모양으로 누워있다.

의병들이 활 두어바탕거리에까지 접근하였다. 그러자 린석의 마음은 더 긴장해졌다. 위험은 이제부터 시작되는것이다. 의병들은 쏠수가 없고 적들이 쏘기에는 가장 적중한 거리인때문이다. 화승총을 쓸수는 있으나 공격서렬에서는 사용이 불리하다. 화승총 한방을 놓자면 주머니에서 진흙을 꺼내여 이겨서 (녹여서) 약통실안에 다져넣고 거기에 화약을 장진한 다음 다시 진흙으로 구멍을 막고 총신강안으로 철알을 한줌 쏟아넣은 다음 진흙속으로 박아넣은 쑥(혹은 취)심지에 부시를 쳐서 불을 달고 그것이 타들어가 화약에 불이 달리기를 기다렸다가야 대방을 조준하는데 그러는동안이면 보총으로 그를 몇번이나 소멸할수 있는것이다. 의병들이 가지고있는 이러한 약점들이 지금 린석의 마음을 긴장하게 하고있는것이다.

바로 그때다. 갑자기 어디선가 철망치로 무엇을 급속히 두드리는듯 따따따따 하는 소리가 들렸다. 린석이하 뒤에 따라선 춘영이나 용규들도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소린가 했다. 순간이 지나서야 기관총소리라는것을 알아차렸다. 이어 여기저기서 귀청을 째는 보총소리들이 터져올랐다.

린석은 긴장한 마음으로 성의 제일 남쪽정면을 맡고있는 백산의 부대를 바라보았다. 첫 사격때에 앞서가던 몇사람이 눈우에 쓰러졌다. 사방으로 눈가루들이 뿌려지고 벌 한가운데 선 나무가지들이 아츠러운 비명을 지르며 가지들을 흩날렸다. 그가운데 백산이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분명 눈우에 엎드리라는것일것이다. 그러나 난생처음 총구앞에 나서보는 많은 의병들은 미친듯 울부짖는 기관총탄이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것만 같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뛰였다. 이러한 현상은 백산의 부대뿐아니라 거의 모든 부대들에서 다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잠간, 마침내 대부분 의병들은 눈을 파고들어가 그속에 몸을 피했다. 순간에 다시 하얀 눈뿐인 벌 한가운데로 누군가 한사람이 우뚝 일어섰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알지 못할 소리로 몇마디 웨치더니 이어 화승대를 쳐들고 성을 향해 다가갔다.

《…이 쪽발이 왜놈들아, 무섭지 않다. 네놈들이 뭐길래 내 나라 땅에 들어와서… 모조리 쳐죽이고말테다. 대가리를 내밀지 못하겠느냐…》

땅! 하고 그의 손에서 화승대가 터졌다. 그러나 그 소리는 너무도 작고 외로왔다. 성우에서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잠시후 조용해졌던 성우에서 또다시 기관총이 터지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그는 나아갔다.

《나오라, 이놈들. 모조리 쳐죽이고말테다.… 대가리를 내밀어. 왜 움쩍못하는게냐, 무섭지…》

바로 그 순간에 울부짖던 기관총탄 하나가 그의 몸에 맞았다. 그와 함께 피가 솟구쳐나오면서 주변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때까지도 부상자는 끄떡하지 않고 몇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하다가 하기 싫은 일에 억지로 끌리듯 그자리에 서서히 쓰러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린석의 눈에 불이 일었다. 그뿐아니라 눈속에 엎드려 전방을 감시하던 모든 의병들이 분노에 치를 떨었다.

백산이 장총을 뽑아들고 기관총수를 겨누었다. 그때까지 상반신을 드러내놓고 제노라하고 마음대로 휘갈겨대던 기관총수놈이 단방에 얻어맞고 성아래로 곤두박혔다. 의병들이 만세를 부르며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잠간. 또다시 짖어대는 기관총탄에 또 몇명이 쓰러졌다.

백산이 다시 그놈을 쏘았다. 그러나 혼자서는 끊임없이 사수를 갈아대고 위치까지 바꾸어가는 놈들을 당할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에 전부대에 퇴각을 알리는 징소리가 울리였다. 이어서 의병장들은 지휘소에 모이라는 전령이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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