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2 장

불타는 성

2

(1)

 

린석은 말을 때려몰았다. 바로 며칠전에 눈물을 뿌리며 갔던 길을 오늘 또 눈물속에 되돌아오는것이다. 금방 상가를 당해 상복을 그대로 입고있는데 또 새로운 상가가 났던것이다.

복한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살같이 린석에게 날아갔다. 그 소식을 듣자 린석은 참지 못하고 돌아섰다. 무슨 일에나 가림없이 물덤벙술덤벙 나서기를 잘하던 복한이였다. 성미가 급하여 사람들의 웃음도 사고 그때문에 손해도 많이 보는 그였지만 이제 보면 그것이 큰 장점이기도 하였다. 사람의 흠을 보고 그 장점을 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누구에게 꾸밈도 거짓도 모르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였다. 설사 행동이 거칠고 덤비며 말을 망탕 하더라도 조금도 숨김이 없기에 좋았다. 그것이 그대로 복한이였다.

한것을 왜놈들이 죽였다. 저 이다찌란놈이, 그때 자기에게 권총을 빼들었던 바로 그놈이였다.

(내가 잘못했어. 떠나지 말았어야 했을 부대를 떠난것이 잘못이였어.…)

머리속에는 몇번이고 이런 생각이 고패쳤다. 자기가 있었더라면 결코 복한을 성으로 들여보내지 않았을것이였다.

뼈저린 후회가 소식을 받자마자 돌아서게 하였다. 이제라도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해 리씨가 앞을 막았다.

《저도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그가 서둘러 문지방을 나서는데 안해가 문밖에 지켜섰다가 하는 말이였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어딜 가는지 알고?》

《전장엘 가지 않습니까. 거기엔 제가 할일이 없나요?》

《정신이 나가지 않았나?! 가만히 입을 닫히고있소.》

대번에 욱박질렀다. 그렇게 버릇이 되여온 안해였다. 그만큼 자기 말에도 성실했다. 이번 상가때에만 하여도 그는 집안의 대소사를 다 맡아하면서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앞에서 곡을 어느 한번도 무성의하게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린석은 어머니의 사망이 그의 잘못때문이라고 푸념을 했다. 역시 녀편네에 대한 멸시와 무시에서 오는 굳어진 버릇이였다.

《당신께선 늘 녀자는 녀필종부와 삼종지례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다면 제가 당신이 없는 빈집이나 지키고 앉아 무엇을 하겠습니까. 같이 가서 뒤일을 봐드리겠습니다.》

《누구를 망신시키지 못해 안달이 났나. 세상에 녀편네를 데리고 전장엘 떠다니는 사내가 어디 있다구. 두번다시 입밖에 내지도 마오.》

이렇게 눌러놓고 떠나온 그였다. 이제와서 보니 그것도 후회가 되였다. 어머니도 남편도 없는 넓고 너렁청한 집에 밤낮으로 혼자있을 그의 정상이 가긍해보였던것이다. 그것이 또한 복한의 죽음이라는 슬픔우에 또 한차례의 눈물을 쏟게 하는것이였다.

이렇게 그가 제천에 도착하니 기다리고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땅에 엎드려 곡을 했다. 상기도 벗지 못한 때에 그가 또 상주가 되여 나타난데 대한 슬픔이였다.

지금 린석은 꺼칠한 베고의적삼에 베두루마기, 베감투, 허리에 휘여감은 왕바같은 굵은 왼새끼, 역시 왼새끼로 엉성하게 얽은 짚신발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런 차림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으면 안되게 된 그의 가슴이 얼마나 아프랴 하는것이였다.

그러나 그때에 이르러 린석의 생각은 달라졌다. 그는 동헌에 들어서는 즉시 자기부터 눈물을 거두고 사람들을 하나하나 불러일으켰다.

《일어나라구, 일어들… 복수를 해야지. 지금은 눈물이나 쥐여짜고있을 때가 아니야!》

그리고는 군수가 앉던 그 교의에 좌기했다.

《권총을 쏜 놈이 이다찌였다지. 그놈을 기어코 복수해야겠소.》

《성안에 있던 복한의 친구들이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들도 그의 죽음에 치를 떨고있습니다.》

린석의 물음에 춘영이 대답했다. 린석이 없는 사이에 벌어진 일을 놓고 누구보다 자책이 큰 춘영이였다. 그러나 린석은 그것을 따지지 않았다.

《우제가 장하게 갔네. 그는 우리가 저 봉대에서 다진 맹세를 잊지 않았네. 이제 그 원쑤를 기어이 갚아야 하는것이 우리의 임무일세.》

《알겠소이다-》

린석의 말에 모든 의병장들이 머리를 숙여 대답했다.

복수, 그것은 이미 린석이하 모든 의병장들과 의병들의 가슴에 새겨진 표적으로 되였다. 그날을 을미년이 지나고 병신년이 시작되는 새해의 첫 초사흗날로 정했다.

그날이 다가오기 전 바로 정월초하루날에 눈이 내렸다. 섣달그믐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함박눈이 새해의 첫아침까지 잠시도 멈출줄 모르고 쉬임없이 쏟아져내렸다.

태백산줄기를 분수령으로 하는 강원도와 충청도지방은 눈이 내리는 량이 많고 내리는 족족 쌓여 겨울을 나는것으로 유명하다. 하여 이곳 사람들은 일단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박우물이나 이웃집까지 새끼줄을 늘였다가 그것을 휘둘러 구멍을 내거나 줄을 따라가며 길을 찾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사이에 눈에 묻히여 마을이 홀딱 없어지고말기때문이다. 특별히 많이 내릴 때는 열다섯자(5~6메터)씩이나 쌓인다. 눈에 묻히지 않는것은 오직 박우물뿐이다. 그래서 꿩이 날아와 자주 우물에 빠지기도 한다. 때로는 노루란놈이 그속에 빠지거나 소외양간 지어는 남의 집 부엌으로 뛰여드는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지방 사람들은 눈만 오면 노루사냥을 하는데 그때에는 어느 집에서나 노루를 통채로 부엌장마루대에 달아매놓고 겨우내 먹는다. 당장 먹을것이 없으면 꾸어먹기도 하는데 그러면 어느 집에서나 달라는대로 베여준다. 그만큼 갚아주기가 쉽기때문이다.

《노루뒤다리 꾸어먹듯 한다》, 《노루뒤다리처럼 생각한다》는 이 지방 속담도 그래서 생겨난것이다.

바로 그러한 날에 김백산은 지휘소로 정한 농가에 엎드려 충주성싸움에 대한 구상을 하고있었다. 류린석대장이 그날 어떻게 해서라도 김규식과 이다찌놈을 잡아 복한대장의 복수를 하자고 선언했던것이다.

어떻게 하면 잡을수 있을가.…

하는데 밖에서 웬놈의 짐승이 짹짹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며 오째가 나타났다.

《선봉장님, 한놈 잡았습니다. 어떻게 할가요?》

오째가 말하였다. 짹짹거리는 소리는 그의 어깨에 둘러멘 노루란놈이 내는 소리였다.

《어떻게라니, 각을 떠서 부대들에 나누어주게.》

《아닙니다. 통채로 군수장님께 보내야 하지 않을가요?》

《군수장이라니, 거긴 왜?》

백산이 의아해하는데 오째는 오히려 새물새물 웃으며 딴전을 피웠다.

《왜라니요. 그가 군수장이니까 그러지요. 그리구 또 미영이 그의 따님이 아닙니까.》

그제서야 짐작이 갔다. 그것이 대뜸 백산의 화를 돋구었다.

《내가 말하지 않던가, 의병들에게 나누어주라고?!》

《그건 따로 사냥을 조직하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에는 얼마든지…》

《말을 듣지 않을텐가. 당장 호패를 몰수하겠다.》

한마디에 기가 쑥 들어갔다. 호패를 빼앗는다는것은 곧 그의 죽음을 의미하는것이기때문이다.

그는 말없이 물러가고 백산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싸움이 어려울것이다. 왜놈들은 기관총과 신식보총으로 쏘아댈것이고 여차하면 대포를 갖다댈수도 있다. 공주성싸움에서도 바로 그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물러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데 지금은 눈까지 와서 정황이 더 어렵게 되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그때에 문이 다시 열리며 오째가 나타났다.

《선봉장님, 새해 문안인사가 도착했습니다. 나와서 받아주십시오.》

백산이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앉았다. 하다가 그만 앉은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도착했다는 새해문안인사차가 다름아닌 미영이였던것이다.

키를 넘는 눈속을 헤쳐오느라 길게 입은 솜덧저고리는 물론 치마와 남바위까지 홈빡 눈에 묻혀있었다. 다만 홍조를 띤 얼굴과 먹물을 뿌린듯 유표하게 대조되는 까만눈만이 그가 알고있는 미영의 모습그대로였다.

손에는 둥그런 쟁반을 싼 보자기가 들려있었다.

《새해문안인사를 드리옵니다. 부디 귀한 몸 건강하시여 나라위한 싸움에 큰 공을 세우기 바라옵니다.》

백산이 미처 어쩔새없이 미영은 보자기를 풀고 커다란 놋잔에 술을 부어 그앞에 내밀었다.

잔에는 넘치는 술, 쟁반에는 옹근 꿩이 한마리, 눈처럼 흰설기가 몇모 그리고 이 산속에서는 보기 힘든 어물까지 차례로 놓여있다.

백산은 술을 들기도전에 취한듯 자기를 잃어버렸다.

《미영씨, 이렇게 올바에는 차라리 문안하인이라도 할것이지…》

그가 중얼거렸다. 하인이라도 보낼것이지 하는 소리다. 량반집들에서 새해날아침이면 저저마다 하녀들을 곱게 단장시켜 친정이나 잘 아는 사람들에게 대신 보낸다는 말을 들은 생각이 나서였다.

그러나 그렇게 한잔 들이키고났을 때 처녀는 이미 그자리에 없었다. 그때에야 그에게 아무것도 보내준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봉장님, 제가 갔다오겠습니다.》

오째가 다시 나타났다. 어깨에는 아까 그 노루가 얹혀있었다.

《어딜 간단 말인가?》

《인사가 있어야지요. 벌써 선수를 떼웠는데요.》

하고는 다른 말을 할 사이도 없이 눈속으로 사라졌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