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2 장

불타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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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류린석창의대장이 떠나가자 고을은 갑자기 부모없는 집처럼 허전하고 한산했다. 리춘영이 그사이 모든 일을 맡아하기로 되였으나 역시 그는 중군이였지 대장은 아니였다.

…내가 없는 사이에 일체 군사행동을 하지 말것, 규률을 엄수할것, 백성들과 관계를 잘 가질것 등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했다.

그것은 필요하며 엄수해야 할 문제들이였다. 그러나 생각처럼은 되기 힘든 문제였다.

《이 사람이 다시 현감이 된 기분이겠구만. 이제부터 잘 보여야 하겠는데 어떻게 잘 보인다?》

벌써부터 리린영이나 김복한이들이 그와 놀자고 들었다. 복한이 하는 말에 린영이 제꺽 나섰다.

《방법을 내가 대주지. 누구에게 잘 보이자면 우선 목적이 뚜렷해야 해. 세력을 얻자는것이냐, 명예를 얻자는것이냐, 리속을 얻자는것이냐 하는데 따라 방법이 달라져야 하거던.

그다음은 뢰물과 아첨일세. 그렇다고 무턱대고 앞에 나서는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책망하는척하면서 속으로 칭찬하고 성난척 하면서 호의를 보여야 하고 먼저 의심을 사게 하고 믿도록 하게 하는 방법이 뒤따라야 하네. 이것이 바로 눈치놀음이라는것인데…》

《아, 그 방법 참으로 복잡하고 까다롭다. 진짜 방법은 단 한가지야. 아무리 벗이라 해도 세번 달라고 해서 밀치지 않는 놈 없고 아무리 원쑤라 해도 세번 주어서 친하지 않는 놈 없다고 하지 않나. 그저 이것이면 다야. 고여바치는것이상 없다는것이야.》

《그렇게 할 힘이 없는 놈은 어떻게 한다?》

《방법이 있지. 아래방에서 잘 뵈울바에는 부엌에 가서 곱게 뵈라고 하지 않나. 낮추붙으라는것이야.》

《그럴 힘도 없는자는? 부엌에도 힘이 있어야 붙을게 아닌가?》

《그때에는 옷을 입은채로 물속에 뛰여드는 수지.

돈많은자들은 수레를 타고도 오히려 신이 젖을가봐 바들바들 떨지 않나.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거침없이 물속에 뛰여드네. 한것은 그 옷이 새것이 아니며 또 몸에 아까울것도 없는때문이지. 그러한 사람들은 세상에 부러운것도 두려운것도 없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하는데 그것 또한 락으로 안다네.…》

리춘영이 그들의 말을 들으며 허허 따라웃다가 뚝 그쳤다. 일변 괘씸한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자기를 알기를 우습게 알고 놀려대자는짓이나 아닌가. 이러다가 군률까지 다 헝클어뜨려놓겠다.…

하는데 대문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몇사람이 동헌안으로 몰려들어왔다. 바라보니 뜻밖에도 제천에 떨구어놓았던 홍정식의 서울패들이였다.

《자네들이 여길 어떻게 올라왔나?》

《대장님의 상가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저희들이라고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가 뜰아래서 장한듯이 말했다. 그것이 춘영을 더욱 놀라게 하였다.

《상가소식? 그건 어디서 듣구…》

《다 아는 수가 있답니다. 방금 군수장님까지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부조를 좀 했습니다.》

하고는 옆사람에게 말하여 돈꿰미가 든 보자기를 마루우에 올려놓게 하였다.

리춘영이 더욱 놀랐다.

《으응? 자네들이 무슨 돈을 이렇게…》

《약소하지만 군사에 보태쓰십시오. 그리고 군수장님이 말씀하기를 저희들이 앞으로 다시는 말썽이 없이 복무를 잘하라고 하시였습니다. 여하튼 저희들도 의병에 들자고 찾아온 몸이니 지나간 잘못은 용서하시고 필요한 대목에 긴히 써주십시오.》

춘영이 그들의 모습을 측은히 바라보다가 허허 웃었다.

《마음이 기특하군. 그런데 이런 돈이 있으면서 왜 남의 닭은 활로 쏘아잡았나?》

《노느라고 그랬습니다. 저 닭서리라는것이 있지 않습니까.》

백산에게 매를 맞았다는 젊은이가 말해서 모두 소리내여 웃었다. 리해가 되였던것이다. 그만큼 그들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도 생겼다.

《자네들한테 무슨 일을 시켰으면 좋겠나. 할만 한 일이 있으면 말해보게.》

《충주성내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기에 들어가 적들의 내정을 렴탐해올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여러 사람이 함께 웃었다. 역시 생각이 기특하다 해서였다.

이렇게 그들이 충주로 향할 때 김백산은 서상렬을 찾아갔다. 요즘 선봉대도 그의 부대처럼 꾸리자고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것이 많았던것이다. 그런데다 대장까지 가고말아서 급기야 달아올랐던 열이 식고말았다. 그가 언제 오겠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대장님이 가는 길을 우리가 막아야 하지 않았을가요?》

백산이 물었다. 상렬은 인적이 없는 조용한 거리를 한참이나 말없이 걸었다.

《대장님이 가는 길을 우리가 어떻게 막겠소. 문제는 대장자신이 결심하는것이지.》

《서대장님은 저에게 군사의 일이란 일도할단(단칼에 베는것)의 방법으로 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하고싶었지. 하지만 할수 없었네. 의병장들이 거의다 주장을 하는데 나나 자네 한두사람이 반대한다고 해서 될일이 아니였거던. 반대로 우리가 대장의 의사를 따르지 않으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으로 되고 그렇게 되면 파가 갈리여 종당에는 부대가 망하게 되오.》

리해가 갔다. 결국은 상렬이 부대가 갈라지지 않기를 바라서 하고싶은 말을 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렇다면 린석이 간 일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잘했다는것인가 잘못했다는것인가.

그에 대하여 묻는 말에 상렬도 똑바른 대답을 못하고 허허 웃음으로 넘기였다.

《그것까지야 어떻게 알겠소. 그사이 일이 생기면 잘못된것이요 생기지 않으면 잘되였다고 보아야지.…》

그들이 이렇게 대화를 나눈지 며칠이 되였다. 그사이 백산은 더 자주 상렬을 찾아갔었다. 그에게 신식군대의 조련법을 배우고 시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기 위해서였다. 특히 백산은 그가 공주격전시 자기의 군사들을 반변에로 이끌고 농민들과 함께 왜놈과 싸운데 대하여 남달리 존경심을 품고있었다. 그것이 두사람을 더욱 가깝게 하였다.

바로 그날도 백산은 상렬을 만나러 가고있었다. 그런데 리춘영이 사람을 시켜 의논할 일이 있으니 동헌으로 오라는 기별을 보내여왔다.

급히 달려가보니 벌써 의병장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한가지 급한 일이 있어 모이라고 했습니다. 다름아니라 좀전에 충주관찰사 김규식으로부터 비밀한 봉서가 도착했는데 그것은 김복한의병장님께 보내온것입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지금 왜군의 대부대가 제천을 들이칠 계획인데 그때에는 의병이 견디기 힘들다는것입니다. 그래서 관찰사가 생각하기를 자기는 의병대가 망하기를 바라지 않으니 차라리 의병이 먼저 충주를 타고앉으라는것입니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것은 김복한의병장님이 봉서를 그대로 읽어주는것으로 알게 하겠습니다.》

리춘영이 여럿을 향해 설명하고 복한이 봉서를 그대로 줄줄 읽어나갔다.

내용은 방금 춘영이 말한 그대로였다. 다만 자기와 약속만 하면 성안에 무사히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겠다는 상세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부언할것은 제가 김규식관찰사를 잘 알고있다는것입니다. 그와 자주 들놀이도 나갔고 글짓기도 하는 사이였습니다. 한마디로 믿을수 있습니다.》

봉서를 읽고난 복한이 하는 말이였다.

잠시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 한마디 했다.

《관찰사는 왜놈과 통하는 역적이 아니요? 전에도 우리를 해산하라고 호령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의병을 돕겠다는거요?》

그러자 이번에는 홍정식이 나섰다. 물망에 오른 봉서를 가지고온 당자가 다름아닌 그였던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관찰사가 저에게 간곡히 한 말이 있습니다. 즉 자기도 처음에는 일본이 개명하여 문명한데가 있으리라고 믿었다는것입니다. 또한 청일전쟁때부터 정부에서 그들을 잘 돌봐줄데 대한 지시가 있어서 가깝게 지내기는 했지만 알고보니 왜인들이란 교활하고 간사하며 믿음이 가지 않는 인간들이라는것입니다. 거기에 의병들을 박산내겠다고 벼르는 꼴이 심상치 않으니 자기는 조선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수 없다는것입니다. 》

《중군의 결심이 어떠한지 먼저 말씀해주십시오.》

지금껏 말이 없던 서상렬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춘영이 당황하여 머뭇거리다가 복한을 돌아보았다. 그가 대답하라는것이였다.

《이미 말한바이지만 나는 관찰사를 믿습니다. 나는 이 일이 성공하면 피를 흘리지 않고 충주를 타고앉을수 있다는데 대해 모두가 류의해주길 바랍니다.》

《세상에 다투지 않고 얻어지는 성공이 있을수 있습니까. 위험은 항상 안일하게 성공을 바라는데서부터 오는 법입니다.》

서상렬이 근엄한 표정으로 저력있게 자기의 주장을 렬거해나갔다.

《미리 련계가 있었으리라 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규식으로 말하면 철저한 왜놈의 개로 알려져있는데 어떻게 한장의 종이로 그가 우리와 한편이 되였다고 믿을수 있겠소?》

《서대장은 싫으면 그만두구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겠소. 옛날 고양의 술사(중국 한나라때 고양지방사람)는 세치밖에 안되는 혀를 잘 놀려 70개의 성을 함락시켰다고 하오. 세상에 그런 실례가 허다한데 우리라고 왜 못하겠소.》

《그들은 다 한 나라 사람이였고 한 겨레였기때문에 가능하였소. 그러나 우리의 적은 왜놈이요. 세상에 왜놈들처럼 간사하고 교활한 적은 없소.》

예상치 않던 다툼이 벌어졌다. 기상을 보아서는 시작부터 양보를 하지 않을 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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