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2 장

불타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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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아침 린석은 해뜨는 시간을 리용하여 망궐례를 조직하였다.

망궐례란 고을의원들이나 서울에서 오래동안 지방에 내려와있는 관리들이 관아에 차려놓은 궐패를 향하여 매달 초하루날과 보름날에 절을 하는 례식을 말한다. 한것을 설을 며칠앞둔 때 아닌 때에 망궐례를 조직한것은 이제부터 그들이 동헌을 차지하고 군의 정사를 좌우지하게 되였으니 그들로서 다지는 맹세가 있어야 하고 형식도 갖추어야 하는때문이다. 그 궐패란것이 《궐》자를 새긴 나무패쪽에 불과하지만 그자체가 대궐을 가리키는것이요. 또 그가 향하는 방향이 임금이 있는쪽인것만큼 좀 멀기는 하지만 곧 왕을 향하여 인사를 올리는것으로 된다.

 

아, 성스러운 밝은 하늘과 더불어 높은 덕과 은혜인자하신 인망으로 이 땅의 모든 신민에게 교화의 혜택을 베풀어주시는 상감마마께 삼가 인사를 올리나이다.

신 류린석과 리춘영을 비롯한 선비유생들과 여러 백성들은 나라가 왜적의 침입을 당하매 그 위급함과 치욕을 금할수 없어 여기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놈들과 비밀리 내통하며 나라의 실정을 알려주던 군수 리찬익을 처단하고 고을을 점거하였는바 상감께 정중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사유를 고하고 놈들을 기어코 이 땅에서 내쫓을 결심을 굳게 다지며 삼가 궐례를 지내는바입니다.…

 

린석이 앞에서 먼저 궐패를 향하여 글을 외우고 절을 하면 모든 의병장들이 따라하면서 끊임없이 절을 하였다. 이렇게 하고 린석이 정식 동헌을 차지하자 온 고을바닥은 새로운 소문으로 들끓었다. 그가 어떤 정사를 펼것인지, 백성들에게 무엇을 해줄것인지, 의병싸움은 장차 어떻게 될것인지 하는 각이한 추측과 제나름들의 판단이 고을의 지경을 넘어 순간에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것이 린석이 발표한 격문과 더불어 더 많은 사실들을 과장보충하며 더 빨리 퍼져나갔다는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삼일이 지나면서부터는 의병대가 제천뿐아니라 충주감영까지 차지했으며 장차 서울까지 진공하리라는데로 번져갔다.

그렇다고 그것을 나쁘게 볼것이 없다. 거기에는 바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념원이 반영되여있기때문이다. 당대의 대부분 사람들이 왜놈에게 강점당할수 있다는 불안하고 치욕스러운 압박감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있었던것이다.

소문은 아무래도 좋았다. 린석은 단지 왜놈들과 싸울수만 있으면 그만이였다. 그는 자기가 고을의 원이나 사또라고 생각해본적은 한번도 없었고 또 원해본적도 없었다. 그것은 도의 관찰사가 승인을 해야 하고 중요하게는 왕의 인준을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그는 지금 관찰사가 틀고앉은 충주감영을 겨냥하고있다. 거기에 왜놈 《토벌대》대장 이다찌중좌란놈이 주둔해있고 관찰사 김규식이 있다. 두해전에 어지를 악용하여 의병을 해산시켰던자다.

다음번 목표는 충주다. 거기로 쳐들어가 이다찌놈을 처단하고 김규식이놈도 없애버려야 한다. 왜놈도, 나라를 파는 놈도 다 같은 적이다. 새해전으로 충주성점거에로…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의병들의 사기도 높고 신심도 확고하다.

그리하여 드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하루는 충주의 감영에서 왔다는 사람이 린석을 찾아왔다. 김규식의 말이라고 전하는데 부대를 당장 해산하라, 그렇지 않으면 관군을 동원하여 짓뭉개버리겠다, 지금 여기에는 일본군 《토벌대》대장 이다찌중좌가 와있다. 그는 너희 의병 같은것은 파리 때려잡듯 없애치울수 있다고 한다, 개별적으로는 너 류린석이도 잘 안다고 한다. 그가 당신을 장삼리사와 같은 시골뜨기라고 하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자기 권총으로 이마빡을 쏘아죽이겠다고 한다, 그가 할일이 없어 이런 시골구석에 와있는것이 아니니 이 말을 지극히 명심해듣고 즉시 자기 명을 시행하라는것이였다.

그것이 린석의 반발심을 더욱 격동시켰다. 그는 자기가 며칠내로 충주로 찾아가겠으니 맞을 준비나 잘해놓으라는 충고를 주어 왔던 사람을 돌려보내고 공격준비를 더욱 다그쳤다.

알아본데 의하면 요즘 김규식은 이다찌놈과 매일 마주앉아 커피와 코코아향료를 마시며 기생놀이를 벌리고있다고 한다. 놈은 이다찌가 선물로 주는 유리잔이나 고뿌, 꽃병따위를 받고는 수십, 수백섬의 식량은 말할것 없고 수달피, 해송자, 필봉, 자초, 인삼, 사향, 안심향과 같은 특산물까지 섬겨바친다고 한다. 명색이 도의 관찰사인 그가 나라와 백성은 등을 져도 왜놈중좌와는 등지고 못살겠다는 자세다.

충주에로, 충주에로! 올해 설은 충주에서 맞자! 이다찌놈은 조선사람의 원쑤, 우리모두의 원쑤이다. 이다찌, 김규식이를 처단하자.…

의병들의 기세는 더욱더 높아졌다. 충주에로 진격할 날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린석이 동헌에 앉아 몇몇 의병장들과 함께 바로 그일을 의논하는데 파수군이 달려와 춘천에서 사람이 왔다고 알려주었다.

(춘천에서?…)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쳤다. 춘천에서 왔던 사람을 돌려보낸것이 바로 며칠전이 아니였던가.

아닌게아니라 그가 정신도 가다듬기전에 대문밖에서부터 곡성이 울리며 누군가 안으로 튀여들어왔다.

《아이고 나리님, 원통합니다. 어머님께서 끝내 별세하시였습니다. 아이고… 나리도 안계시는데서 내내 나리의 이름만 부르시다가 그냥 가셨습니다.》

그가 그만 뜰아래에 펑덩 엎드리며 곡을 했다. 순간 린석도 갑자기 솟구치는 설음에 가슴이 꽉 메이고 눈앞이 새까매졌다.

어머님이 끝내 가셨구나, 내가 없는데서…

길을 떠날때만 하여도 이번만 무사해주기를 바랐던 어머니였다. 전번에 사람이 왔을 때에도 이번만 무사해주기를 속으로 빌었던 그였다.

그렇게 며칠만이라도 견디여주면 반드시 큰일을 치고 집으로 돌아갈수 있으리라고 믿었던것이다.

그런데 하늘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피가 끓고 열의에 불타던 심장을 알아주려 하지 않았다. 세상은 왜 그리도 매정한가.…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달려왔다. 의병들이 삼문밖에 일제히 엎드리여 곡을 터뜨렸다. 의병장의 일이자 다름아닌 자기의 일로 아는 그들인것이다.

즉시 의병장들의 모임이 조직되고 거기에서 린석의 출발을 결정했다. 린석은 피물이 진듯 붉어진 그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내가 가면 여기 일은 어쩔텐가. 지금이 어느때라구.》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천의에 어긋납니다. 하늘의 뜻을 저바리고 여기에 있는다고 하여 일이 잘될수 없습니다.》

중군 리춘영이 말했다. 군수장 안승우도 가만있지 않았다.

《보십시오. 대장님은 전번에 꼭 가셔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어머님께서 아드님을 굳게 믿고 다시 오기를 기다리며 세상을 떠나지 않으셨을것입니다. 이번에 또 가지 않으면 두번다시 죄를 짓는것으로 됩니다.》

린석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금은 자기가 자리를 뜰수 없고 떠서는 안된다는 자각이 무겁게 자리잡고있었다. 더구나는 전번에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고도 집에 가지 않던 선봉부대의 한 젊은이의 모습이 되살아나며 가서는 안된다고 그를 꼭 붙잡고있었다. 반토굴안에서의 그 연설은 또 얼마나 열정적이였던가.

하면서도 다른 한켠으로는 가지 않으면 천벌을 받으리라는 두려움과 그때문에 한생을 죄의식속에 살게 된다는 불안이 무서운 공포심을 몰아왔다.

서로 융합될수 없는 두 생각이 부딪칠 때마다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는사이에 안승우가 출발준비가 다 되였다고 알려주었다. 린석이 갈수 없다고, 가서는 안된다고 대답할 때마다 오히려 독촉은 불같이 더 달아올랐다. 그가 보통의병도 부모의 상가에 가지 않는데 대장인 내가 갈수 있느냐고 하자 반대로 평민은 가지 못해도 할수 없지만 대장은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수 더 높이 떴다. 그를 배행할 선두대렬은 먼저 떠났다고 했다.

더 앉아배길수도 없었다. 무작정 잡아떠밀기도 하거니와 그대로 앉아있자니 숨이 막히고 근심만 북받쳐 견딜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결심했다.

《내가 가서는 안된다는것을 알면서도 가지 않을수 없다는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부모를 떠난 영웅호걸이 어디 있겠는가. 하늘이 무너지고보니 숨도 바로 쉬기 힘들다. 그런만큼 내 속히 어머님을 만나보고 돌아와 싸움을 계속할것이다.》

이렇게 결심을 하였다. 승우와 함께 몇십명이 그를 따랐다. 바래주는 대오가 십리에 늘어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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