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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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향교마을을 떠날 때부터 요란하게 울리던 새납대와 고취대, 피리대들이 읍을 가까이하면서 더욱 기세를 올리였다. 처음에는 느진하닢(아주 느린 노래)으로부터 가읏두닢(보통속도)으로 상승되다가 점차 가읏세닢, 잦은하닢(매우 빠른 속도)으로 비약하며 무엇을 쫓듯 다급하고 기운차게 주변의 산야를 울리였다.

그것은 린석이 생각해낸것이였다. 적아의 력량을 타산하여 애초부터 기세를 올리면 싸움을 하지 않고도 읍으로 들어갈수 있으리라고 타산했던것이다.

아닌게아니라 강변까지 나와 의병대와 맞서보겠다고 하던 고을의 군사들이 멀리에서부터 겁을 먹고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단 한번의 접전도 없이 유유히 동헌앞까지 행진해들어갈수 있었다.

그때 군수 리찬익은 동헌으로 쓸어드는 륙방관속들과 아전들 지어 파수군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며 싸움에로 내몰았지만 케는 이미 글렀다. 세개가 다 활짝 열려진 대문안으로 의병들이 유유히 밀려들고 그 가운데로 류린석이 무장들의 호위를 받으며 동헌우로 성큼 올라선것이다.

《이게 무엇들이냐, 너희들에게는 나라의 법도 없느냐?》

찬익이 갈팡질팡 소리를 질렀다. 그에 대해 린석이 쓴웃음을 짓고 대꾸했다.

《그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당신에게 통고한바가 있었다. 그래도 듣지 않으니 우리가 왔다. 나라에 왜적이 들어와있고 임금이 곤욕을 당하고있는 이때에 우리가 따라야 할 법도란 어떤것이냐. 법이란것도 시대에 따라 변하며 그것이 나라와 백성을 위할 때는 죄가 되지 않으며 곧 새 법으로 된다는것을 모르는가.

만약 당신이 우리의 법을 따르지 않고 계속 방해를 놀면 용서치 않겠소.》

《흥, 어디서 붓대나 쥐고 코물눈물이나 짜던 선비나부랭이들이… 나는 너희들을 당장 쫓아내되 말을 듣지 않으면 관군을 동원하여 없애버리라는 감영의 지시를 받았다. 당장 물러가라!》

《거듭 말하지만 지금 나라가 왜놈에게 먹히우느냐 마느냐 하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있소. 당장 무기고를 열어 백성들을 무장시키며 창고를 털어 군량미를 보장해야겠소. 집행하시오.》

《무기? 군량? 그것이 어디에 있어. 어디에 있기에 내놓는단 말이냐.…》

찬익이 악을 썼다. 그때 사석을 비롯한 의병들 한무리가 다시 쓸어들었다. 그중 몇사람이 뜰아래에 멍석을 몇장 깔더니 가지고 들어온 물건들을 그우에 쏟아놓았다.

우불구불하고 꽃무늬가 현란한 책상, 의자에 자기로 만든 왜화로, 꽃병, 차잔, 쟁반 그리고 에짚트의 주단, 브라질의 커피, 미국산담배, 안경, 수건, 향수 그밖에 어느 나라 물건인지 알수 없는 진귀한 물건들이 산처럼 쌓였다. 그것이 끝나자 사석이 뜰우의 찬익을 쏘아보았다.

그 서슬에 기가 죽은 찬익이 황망히 눈을 피하느라 했지만 때는 늦었다. 사석의 군사들이 뛰여올라가 그를 아래로 끌어내렸던것이다.

《이것이 어디서 난 물건들이냐? 이 병 하나의 값이 얼마냐?》

사석이 자기로 된 꽃병 하나를 들고 찬익에게 따졌다.

《사십엔…》

찬익이 눈을 찡긋거리며 대답했다.

한순간 마당이 터지는듯 한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우선 그 값이 왜돈으로 불리운데 놀랐고 다음은 값이 엄청나게 비싼데 놀랐다. 당시 소 한마리값이 15~18엔이였으니 크기가 한뽐 될가말가한 사기쪼박 하나의 값이 소 3마리, 쌀로 환산을 하면 대두 75말값과 맞먹는 셈이다. 그런 물건들이 이놈의 집에 꽉 차있으니 그가 어떤 놈인가 하는것은 가히 알만 하다.

《그 돈은 다 어디서 났느냐, 어디서?…》

사석이 다시 들이댔다. 찬익이 이번에는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외로 돌렸다. 그 서슬에 옆에 섰던 이전에 사석과 함께 취조를 당하던 철덕군 하나가 달려들어 주먹으로 면상을 한대 쥐여박았다. 뒤따라 수십명 의병들이 일시에 와 하고 달려들어 죽탕이 되도록 때려주었다.

린석의 령으로 겨우 뜯어말린 다음 옥에 가두었다.

《저 찬익이란 사람을 어쨌으면 좋겠나.…

내가 이렇게 묻는것은 그가 임금의 이름으로 군수가 되였던 사람이요 또 당장 군에 정사를 돌봐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하겠기때문이요.》

그가 마루우에 앉은 여러 의병장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주용규가 한마디 하고 김복한이 또 한마디 하자 여러 사람이 들고나왔다. 그를 살려둘뿐아니라 동헌도 내여두어 정사를 보게 하되 곧바로 의병들의 요구를 받아물게 하자는것이였다.

그에 대하여 사석이나 김백산, 서상렬이들은 무조건 사형을 주장하였다. 저런 놈들은 백년을 살아도 나라와 백성은 물론 임금도 생각할줄 모르고 오직 저 하나밖에 모르는 짐승과 같다는것이였다.

그들이 옥신각신하며 주고받는 말을 듣고있던 린석이 교의를 툭툭 두드렸다.

《지금 많은 군수, 현감, 현령들이 리찬익과 같이 왜놈과 싸우기를 두려워하며 오히려 그들과 손잡고 나라를 파는 역적행위를 하고있소.

이런자들을 먼저 처단하겠다는것은 이미 내가 전국에 보낸 격문에도 명백히 씌여있소. 곧 저놈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는것으로써 다른 고을의 수령방백들에게 경계가 되도록 하시오.》

그의 위엄있는 목소리에 모든 의병장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여 응하였다. 그리고 다음날로 찬익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였다.

군안의 수만군중이 그것을 기뻐하며 북과 꽹과리를 들고 거리에 나와 춤을 추었다. 그 기세를 타고 린석은 다시한번 전국에 보내는 격문을 발표하였다.

 

…우리는 우리 나라를 침범한 일본오랑캐놈들과 싸우기 위하여 제천을 점거하고 오늘 이곳에 군사를 전개하였다.

저 쪽발이 왜놈들은 일찍부터 우리 나라를 침범하고 력대로 우리와 싸워온 불공대천의 원쑤다.

최근에는 저들이 개화한것을 턱대고 오만하게도 군사를 들이밀어 왕궁을 침해하고 국모까지 살해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예로부터 평범한 백성도 부모의 원쑤는 5대를 내려가며 갚는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국모의 원쑤임에랴. 우리는 피를 물고 일어나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움으로써 오늘날의 수치와 분노를 씻을것이며 기어이 복수를 하고야말것이다.

그럼에도 저 군수 리찬익이놈은 왜놈들과 은밀한 련계를 맺고 그들을 도와주었으며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여 저 하나의 영달만을 꾀하여왔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여있고 임금과 백성이 다같이 고통을 당하고있는 이때에 저 하나만을 생각하는 저런 놈들은 언제 가도 나라와 백성은 안중에 없고 나라까지도 서슴없이 팔아버린다.

예로부터 외부의 적을 치려거든 그들을 끌어들이는 내부의 적부터 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에 우리는 의병들과 군내 백성들의 이름으로 리찬익이란 놈을 단호히 처단하고 이를 세상에 공포하는바이다.

오늘날 왜놈과 싸우지 않고 눈치를 보거나 형세나 관망하는자들은 다 우리의 적이다. 만약 이 격문을 받고서도 왜적과 싸우지 않거나 방해하는자가 있으면 그가 군수이든 관찰사이든 공경재상이든 관계없이 처단하리라는것을 선포한다.

나라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이 시각 저 하나만 생각하며 편안하게 살아갈 자리는 이 세상에 없다. 이것은 나라를 근심하는 우리 의병들의 한결같은 의사이며 정의에 립각하여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울 우리들의 결의이다.

이에 상하귀천, 남녀로소 재산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함께 일어나 싸울것을 전국에 다시한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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