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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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식이, 거사를 앞두고 이게 무슨 짓인가. 당장 닭값을 물어주게!》

이야기를 듣고난 린석이 엄하게 소리쳤다.

정식이 어물거리더니 염낭에서 엽전 몇잎을 꺼내 옆사람에게 주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린석이 백산에게 말했다.

《선봉장, 됐네. 앞으로 더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고 오늘은 그만하세.》하고 돌아서려 하는데 백산이 말했다.

《대장님, 다된것이 아닙니다. 긴급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모두가 돌아섰다. 린석은 물론 뒤따라왔던 춘영이나 승우도 아연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자는겐가?》

《군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군률을 어긴 이상 죄상을 조사하고 철저히 그에 의해 처리해야 합니다.》

한순간 모두가 긴장했다. 듣고보니 그럴듯했던것이다. 아닌게아니라 그들도 엄격한 군률에 대하여 말을 많이 했고 의병들에게 그렇게 강조도 했다. 그리하여 류린석자신이 직접 《의병규칙》이란 규정을 만들어 그대로 하기로 만장일치를 보았다. 거기에는 상관의 명령에 대한 복종체계를 비롯하여 의병들 호상간 문제 의병과 민간인들과의 관계문제 등 여러가지가 밝혀져있다. 나라의 법이 여기에 통하지 않는 이상에는 그 《의병규칙》이 나라법이상 우뚝 솟아있는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한순간이고 분위기는 즉시 백산에 대한 타매로 돌아갔다. 그것은 무엇보다 당장 출발을 앞둔 때에 그런 사소한 문제에 매달려 전부대의 행동에 지장을 주겠는가 하는것이였다.

다른 원인도 있다. 한낱 평민인 백산이 량반자를 걸고늘어진다는것이였다. 하물며 정식은 이름난 서울량반의 자식이 아닌가.

바로 이러한 조건들이 지금 만사를 제쳐놓고 빨리 출발을 해야 한다는데로 의지를 모아가고있었다.

마침내는 린석이 자세를 낮추었다.

《선봉장, 내가 그대의 심정을 모르는바가 아니야. 하지만 세상에는 사세부득이한 조건도 없지 않는바이야. 큰일을 생각해야지.》

《저는 바로 그 큰일을 생각해서 주장하는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있는 고을로 향합니다. 그때에 무슨 일이 생겨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미 나타난 허물을 놓고 있을수 있는 결함을 사전에 경계하지 않으면 그때에는 사태를 수습할수 없습니다. 그가 량반이라고 용서하고 시간이 촉박하다고 다음으로 넘긴다면 언제한번 규률을 세울수 없으며 결국은 그것으로 의병대가 망합니다.》

하는데 이번에는 서상렬도 한마디 끼여들었다.

《선봉장의 말이 옳습니다. 법은 만인의 공유물로서 대장 한사람이 좌지우지할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두번은 어길수도 있겠지만 다음부터는 법자체를 걷잡을수 없게 헝클어뜨릴것입니다.》

그때까지도 린석은 이 일을 마무리하고 빨리 대오를 출발시키려고 하였다. 그런데 상렬이까지 그렇게 나오니 생각이 달라졌다. 역시 군률을 제쳐놓고는 의병싸움자체를 생각할수 없다는것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제 저들을 세워놓고 재판놀음을 벌릴것인가. 지금 리찬익이란 사람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고을을 방비하느라 벅적 고아댈터인데 어느 하가에 동헌에 앉아 옳으니그르니 하는 판결놀음이나 하고있겠는가.

하는데 백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장님, 빨리 출발합시다. 그러되 그들만은 여기 남아서 따로 처벌을 받게 합시다. 그들은 다른 의병들과 함께 행동할 자격이 없습니다.》

여기서 린석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혔던 물목이라도 터진듯 속이 후련했던것이다.

사실 그도 홍정식이네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당장 어떻게,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백산이 그 방법까지 대주지 않는가.

생각할수록 그가 기특하고 정이 끌리였다. 결국 그의 의견대로 홍정식이하 전원을 향교에 떨구어 차후 지시를 받도록 하고 전부대에 출발명령을 내렸다.

향교앞마당에 모였던 의병부대는 출두를 알리는 천아성의 뚜뚜― 하는 긴 신호와 함께 북과 꽹과리, 새납, 대각, 소라소리들이 어지럽게 날리는 속에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소리에 앞서 기발들이 일제히 들리워 전대오가 기의 숲처럼 무수히 설레이였다. 각 부대가 저마다 준비한 주장기, 청도기, 도방기, 금기따위와 함께 전부대적인 청룡기, 백호기, 현무기, 주작기들과 인기(대영장인기), 오방고조(동서남북, 중앙표시), 표미기 등 각색 기발들이 이미 진행해온 훈련에 따라 립기(세우기), 요기(흔들기), 초기(좌우로 흔들기), 점기(앞뒤로 흔들기), 안기(눕히기) 등에 능통한 기세로 일제히 휘날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제일 앞대렬에는 이 고을의 주인인 제천의병대가 서고 다음에는 선봉대, 그뒤로는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에서 온 여러 부대들이 따라서고 맨뒤에는 서상렬의 부대가 후위를 담당하고 섰다.

류린석은 그 힘찬 대오의 맨 앞장에서 나갔다.

바로 무수한 기발들이 날리고 고취대가 굉음을 웨치는 속에 흰 말을 타고 흰 두루마기에 흰 갖신에 반백의 수염을 날리며 힘차게 나갔다. 그 량옆에는 사석과 백산이 나란히 하고 뒤에는 부대들에서 특별히 선발된 무장들이 몇십명 따라섰다.

그때 미영은 출발준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집을 돌아보고있었다.

구석구석에 정이 들고 인연이 깊이 맺어진 집이였다. 하면서도 자기를 옴짝 못하게 붙잡고 얽매여둔 집이였다. 그래서 언제든 집을 뛰쳐나가보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군 하였는데 이제 그것이 실현되게 되였다. 물론 그것은 영원한것이 아니며 며칠 아니면 몇달일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기가 아끼던 양털을 댄 녀자용두루마기에 남바위(휘양)를 두르고 부대를 따라 달리기 시작하였다. 어제 저녁 내리다 만 눈이 수천사람의 발에 밟히고 짓이겨져 길이 미끄러울대로 미끄러웠다. 그는 몇번이나 넘어지며 그냥 달렸다. 그런 속에도 머리속에는 백산이 말하던 불사약을 훔쳐가지고 월궁으로 올라가 옥토끼로 변하였다는 상아라고 하는 처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도 그런 녀자가 될테야. 그래서 남다른 모습으로 영원히 남아있겠어. 아니, 그이만 그렇게 보아주면 돼. 아 월궁선녀, 옥토끼, 과연 내가 그렇게 될수 있을가.…)

그는 자기가 언제든 남다른 녀자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봉장은 그렇게 살라고 했다. 특히 왜놈과 싸움에서 력사에 이름을 남기는 녀자가 되라고 했다. 내가 정말 그런 녀자가 될수 있을가.

이렇게 생각하며 무작정 앞으로 달릴 때 백산은 역시 누구보다 대오의 앞장에서 나가고있었다. 바로 큰아버지 류린석대장과 어깨를 겨루며 나란히 하고있는것이다. 또 그옆에는 사석대장이 함께 가는데 지금 그들은 무슨 이야긴가 나누며 유쾌히 웃고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는지 알수 없다. 군중에서 울리는 취타악기들의 요란한 굉음이 주위를 진동하고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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