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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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촌에서 유격대의 유인전술에 걸려 끌고갔던 병졸들을 다 죽이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목단강으로 도망쳐간 녕안지구 《토벌대》대장 가라시마 쥰이찌소좌는 다시 《토벌》력량을 긁어모아가지고 유격대를 추격하고있었다.

가라시마가 지휘하는 《토벌대》에는 한개의 보병대대와 기관총중대 박격포소대가 배속되여있었고 한개 기병중대가 망라되여있었다. 수십대의 포병마차와 짐마차들이 사방에서 삐거덕거리고 말들이 밟아대는 말발굽소리가 산등판과 골짜기들을 소란하게 울렸다.

《토벌대》들은 거의 구분을 알수 없는 긴 대렬을 이어붙이고 겨끔내기로 선두를 교체하면서 추격을 계속하였다.

시일이 흘러감에 따라 병졸들과 군마들은 모두 지치고 마차들도 견뎌내지 못하였다. 유격부대는 산골짜기와 산마루를 따라나가지 않고 대각으로 가로질러 나가군하였으므로 탄약과 식량을 만재한 짐마차들이 그런 험지들을 곧바로 통과할수 없었다.

짐마차들과 보병들사이의 간격은 날마다 늘어났다. 길없는 험지들을 에돌고 토막토막 끊긴 대오를 수습하느라면 유격부대는 어느새 몇마장사이의 거리를 단숨에 내달려 멀리 자취를 감추군하였다.

가라시마는 촌락들과 목재판들에서 닥치는대로 말들과 마차를 빼앗아 지친 말들을 교체하고 깨여진 마차들도 바꾸면서 추격속도를 높이려고 악을 썼다. 그의 말발굽소리가 가까와지는데 따라 종다리에 각반을 팽팽히 둘러쳐 흡사 여윈 메뚜기다리처럼 보이는 수백병졸의 종다리들이 겨끔내기로 재게 움직이면서 소가죽군화를 당겨신은 발로 언땅을 딱딱 굴러찼다. 그러나 아무리 단기를 뽑아 위세를 보이려 해도 그들은 지칠대로 지친 산만한 무리였다. 병졸들은 일제히 귀덮개 모자를 내리우고 팔짱을 끼였으며 고뿔을 만난자들은 마스크를 쓸수 있다는 명령이 내려져 부대의 반수가 녀자들의 돈지갑을 가져다 아구리를 벌려 입에 붙인것 같은 반질반질한 검은 가죽마스크를 걸고있었다.

그리하여 얼핏보면 병졸들의 반수가 입이 없거나 혹은 입과 코언저리를 진탕에 매닥질해놓은것 같이 보였으며 표정들은 둔하고 무감각하여 석공의 정끝에서 생겨난 돌비름같이도 생각되였다.

추격종대들은 한번에 두마장거리를 이어달리지 못하고 화토불을 피우고 언몸을 녹였다. 휴식은 삼십분을 초과하지 못하였다. 느린 놈들은 불을 피우다 말고 불이 달린 삭정이나 드덜기를 들고 대렬에 들어섰다. 긴 대렬은 마치 갑작스런 화재를 들쓴것 같이 연기속에 휘감겼다.

병졸들은 허공중에 채찍을 높이 쳐든 장교들이 말을 달려 눈앞으로 다가들어야 불토막들을 내던졌다. 어떤 깜찍한 녀석들은 군용밥통에 불을 넣어 가슴에 품고가다가 장교의 채찍에 맞기도 하고 또 어떤 소가죽같이 질긴놈들은 옷소매안에 그냥 불토막을 넣고 가다가 군복소매를 태웠으며 외투솜을 파먹고 타들어가는 불을 끄느라 팔소매안에 눈을 퍼넣는 소동을 벌리기도 하였다.

밤길을 걷다가 발목을 접질리운놈, 낭떠러지에 굴러나 다리뼈를 분질리운놈, 뒤집어진 마차에 깔려 팔이나 어깨죽지나 가슴팍의 뼈를 상한놈… 전장의 부상자가 아닌 비전투손실인원만도 수두룩하였다.

걸을수 없는자들은 마차에 올라타고 경상자들은 마차버주기를 잡고 다리가 옮겨지는대로 허둥지둥 걸었다.

도대체 이 고달프고 승산없는 길을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

원정부대는 바로 《토벌대》를 이모양 이지경으로 지치고 병들게 하려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면서 어디론가 한정없이 끌고가는것 같았다.

그러한 불안은 병졸들만이 아니라 장교들도 한결같이 느끼고있었다.

길은 끝이 없었다.

기마중대는 마상에서 얼대로 얼었다. 그들은 모두 고뿔을 만나 재채기를 하고 코물을 흘리고 마스크를 꼈다. 말들의 코언저리에서 귀밑까지 치달아올라가며 허연 성에가 매달려있었다. 말주둥이 아래로는 고드름이 드리워있었다. 털끝에 가닥가닥 드리운 고드름들은 말이 다리를 옮기는데 따라 좌우로 흔들리면서 서로 부딪쳤다.

무서운 북만의 겨울이였다.

수송대는 기마대와 보병들보다 한결 형편이 어려웠다. 그들은 마차바퀴의 굴대까지 묻히는 눈속을 헤쳐가느라 어깨로 마차를 떠밀어야 했으며 경사가 급한 언덕이나 산기슭으로 치달아오를 때는 마차의 짐을 부리워 등으로 지어날라야 하였다. 그들은 보병들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그들에게는 오직 자기들나름으로 생각해낸 하나의 편리가 보병들을 이기고있을뿐이였다.

그들은 쉴참마다 큰 불무지들을 만들고 그속에 돌을 집어넣어 달구었다가 행군이 시작되면 마차에 달군 돌을 싣고 떠나군하였다. 병졸들은 불돌무지에 쉬파리떼처럼 달라붙었다. 그들은 저마끔 한점의 온기라도 더 제몸에 빨아들이려고 서로 손을 내밀고 얼굴을 들이밀고 하다가 그것으로는 성차지 않아 장갑을 벗어 달구고 모자를 벗어 달구고 하였으며 나중에는 불돌까지 채여 외투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때문에 싸움까지 벌렸다.

그렇게 강하고 몽둥이매로 다스려지는 왜군의 군률도 북만의 그 엄혹한 추위속에서 생겨나는 온갖 해이며 뜻밖의 불상사들을 도저히 막아낼수가 없었다. 《토벌대》들은 기진맥진하여 녕안땅이 끝나고 액목땅이 시작되는 마록구에 당도하였다. 놈들은 부랴부랴 원정부대가 며칠 묵어간 귀틀막농가들과 산판인부들의 합숙에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소구에서 긴급통보가 날아왔다. 유격부대의 후위에서 따라오던 이사무라대위의 《토벌대》가 소구일경에서 전멸이 되다싶이하였으며 그곳의 자위단이 유격대에 완전투항해나섰다는것이였다.

액목현땅으로 그냥 깊숙이 행군해나갔으리라고 짐작했던 유격대가 어느새 가던 길을 돌아서서 녕안땅인 소구에서 《토벌대》를 족치고 자위단까지 항복시키고만것이다. 그러니 유격부대가 그새 톺아온 수백마장의 먼길을 되돌아 다시 녕안땅으로 진격해들어가는것이 아닌가?

《토벌대》부대장들은 혼비백산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녕안땅의 중심부에는 지금 똑똑히 수비할만한 무력조차 없었다. 그새 사방에서 몰려들었던 《토벌대》들은 겨끔내기로 원정부대의 뒤를 따라 녕안땅이 끝나는 이 액목현경에 밀려내리고있었던것이다. 이제 원정부대가 다시금 녕안땅 중심부로 진출하는 날에는 핫또리의 운명조차 칠성판에 오를판이였다. 그렇다고 이 액목현경에 밀려내린 《토벌》부대들을 재빨리 녕안의 중심으로 돌려세울수 있는가?

그럴수 없다. 지금같이 지치고 해이된 부대를 가지고는 유격부대의 기동을 쫓을수가 없는것이다.

가라시마소좌는 이 순간에야 비로소 관동군 사령부의 참모인 핫또리가 원정부대의 어떤 큰 작전에 수동적으로 말려들어 큰 고뇌를 겪고있다는것을 똑똑히 알았다.

가라시마는 부랴부랴 핫또리에게 현지의 상황을 알리고 경박호건너쪽에 있는 북호두의 일군수비대를 급히 출동시켜달라고 간청하였다. 핫또리는 사태의 엄중함을 새롭게 체험하였다. 핫또리는 즉시에 북호두의 수비대에 출동대기명령을 내렸다.

이무렵에 핫또리가 액목현과 돈화현에서 새로 긁어모아 출동시킨 《토벌대》들이 달려왔다. 추격집단은 이전보다 배나 되는 력량으로 행군을 다그쳤다.

가라시마는 행군속도가 느린 보병대에서 기병을 분리시켜 기병중대만으로 유격부대의 후위를 급습하리라 작정하였다.

수천명의 추격집단과 분리된 기병중대는 마록구와 소구사이 로상에서 가라시마의 명령을 받자 곧 소구 북쪽등판을 치달아올라가 유격대가 행군해나간 남호두방향으로 전속력을 놓아 달렸다.

기마중대의 애숭이중위는 가라시마가 몇번이나 유격부대의 후위를 물고들어가 혼란을 조성하는 일만 하라고 일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격부대의 행군로를 어방짐작하여 알아낸 다음에는 무모하게도 앞길을 가로질러 선두를 타격할 심산으로 대구와 남호두나이의 큰길을 따라 중대를 달리게 하다가 원정부대의 기습을 받았다. 큰길은 언제나 왕청중대의 정찰대가 감시하고있었던것이다.

기병중대의 종말은 눈깜박할 사이에 일어났다. 중위는 누군가 뒤따라 다그쳐와 몽둥이같은 그 무엇으로 등어리를 힘껏 내리치는 둔탁한 타격을 느끼면서 의식을 잃었다.

중위의 몸은 일순간 안장우로 젖혀졌다. 말은 등자에서 뽑혀지지 않은 중위의 한쪽발을 끌고 한흥권중대장에게 고삐를 잡히울동안 그냥 달려갔다.

한흥권중대장은 왜군중위의 입에서 받아내야 할 정보가 귀중하였으므로 그의 몸을 받들어세웠다. 이리하여 왜군중위는 몇순간 숨을 붙이고 한흥권중대장이 묻는데 따라 대답해나가다가 나중에는 경박호너머에 있는 북호두의 수비대가 호수를 건너 원정부대의 앞길을 막아나서리라는 중요한 정보까지 제공하고말았다.

이것은 애숭이중위가 가라시마의 《토벌대》에서 그중 날파람있는 기병중대를 한순간에 말아먹은것에 비할수 없는 더 큰 위기를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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