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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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의 의지와 담력으로는 도저히 헤쳐낼수 없는 중중첩첩한 난관을 헤치며 로야령을 넘고 횡도하자와 팔도하자, 이도하자를 거쳐 남호두일경을
지나오는 수천리 원정길에 언제 한번 얼굴에 그늘을 지어보신적이 없는
다만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았던것은
아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과 같이 때없이 불어치는 혁명의 온갖 시련은
지금
생각하면 실로 헤아릴길 없는 많은 문제들이
다만 그 모든것은
그리하여
보통사람들의 슬픔과 고민을 나누자고 해도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고 대부분을
지금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굴러가면서 간단없이 삐걱거리고 덜커덩소리를 울리기도 하는 마차의 산만한 소음과 장구류들이 서로 부딪치고 때로
양초에 미끄러져 몇사람이 한데 딩굴면서 소란을 떨기도 하는 행군종대와 함께 가시면서도
과연 지금과 같이 경황이 없고 여유가 없이 모두가 쫓김을 당하고있는 이 불안한 공기를 가시지 못하고 원정부대앞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중중첩첩한 난관을 어떻게 헤치며 가겠는가?
사람들은 이전보다 말이 적어지고 웃음도 적어졌다. 그대신에 비장하고 준엄해졌다고 할가? 아무튼 그렇게 달라져가고있는것이 사실이였다. 이것은 그 누가 바랐건 바라지 않았던간에 행군이 길어지고 시련이 겹칠수록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되여가는것이였다.
연길중대와 함께 행군하시던
한흥권은 행군종대의 앞에서 혈떡거리며 달려왔다.
《한흥권동무가 지쳤군. 땀은 왜 그렇게 비오듯 흘리고있소. 배낭을 벗어놓고 땀을 씻소.》
한흥권은 배낭을 벗지 않았으나 어깨우의 총만은 내려놓고 수건으로 땀을 씻었다.
《모자안도 깨끗이 훔치오. 머리에 뜬김이 도니까 모자둘레에 그렇게 성에가 불리는거요.》
《행군서렬에서 따로 떨어져오는 동무들은 없소?》
《없습니다.》
《로야령을 넘을 때는 적지 않은 동무들이 떨어졌더랬는데.》
《그때 비하면 사람들의 각오가 이만저만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차일진이같은 몇동무들이 맥을 추지 못하고있을뿐입니다.》
행군대렬에서는 총가목들이 부딪치는 소리며 군용밥통이 맞쓸리는 소리들이 산만하게 일어났다.
《차일진동무는 어느 정도요. 앵목땅은 아직도 몇백리길이 잘되는데 거기까지 자기 힘으로 가닿을수 있을가?》
《그래주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 주저앉고만단말이요?》
《지금은 그럭저럭 견디여내고있습니다. 부상병마차를 타고 한숨 돌리라고 하는데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거야 좋은 일이지. 차일진동무는 출판소일군으로서 왕청중대의 선전사업을 맡은 사람인데 일을 제대로 하고있는지 모르겠소.》
한흥권은 난처하여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 자기 한몸도 겨우 지탱하는판에 선전활동까지 한다는것은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다.
《자, 그럼 어디 좀 가봅시다. 차일진동무가 어떤 모양을 하고있나.》
마차에는 부상병들과 비상군용물자들이 실려있었다. 사람들은 말을 도와주려고 눈속에서 소리없이 눈가루를 휘감고 돌아가는 마차바퀴살에 달라붙어 잡아굴리기도 하고 뒤에서 밀기도 하였다.
차일진이도 마차를 미는듯이 마차의 버주기를 잡고 몸을 앞으로 구부린채 가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차를 미는것이 아니라 버주기를 움켜잡고 끌려가고있었다.
《차일진동무로군. 용케도 행군을 이겨내고있구만, 응 일진동무?》
《
《무슨 소리요. 내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아. 당장 지쳐 쓰러질 사람이면 남과 같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행군하고있겠는가. 로야령을 넘을 때는 오성숙동무에게 총과 배낭을 다 벗어주고도 녀대원들속에 묻혀 헐떡이며 걸었지. 그때 비하면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전변이요.》
차일진은 대답이 없고 옆에서 대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아무튼 나는 차일진동무가 도중에서 쓰러지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데 유감스러운 일은 한가지가 있거든.》
《제게말입니까?》
깜짝 놀란 차일진은 영문을 알수 없어
《차일진동무는 언제나 근심과 우울이라는것을 알지 못하는 유쾌한 성미인데다 타고난 이야기명수로서 사람들의 대단한 환영을 받아왔소. 로야령을 넘을 때 총과 배낭을 다 벗어주고도 그 청산류수같은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았고 팔도하자 부근마을에서 보초를 서다가 졸고난 때에도 유쾌한 롱담은 없어지지 않았단말이요.
그런데 요즘은 차일진동무의 입에서 그 화려하던 이야기도 없어지고 웃음도 없어졌거든.》
《뭐 실없는 사람처럼 밤낮 중얼중얼하고있겠습니까.》
차일진은 게면쩍게 대답하였다.
《아니지. 그런게 아니요.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지치고 힘들어할 때 이야기판을 벌려보오. 그게 얼마나 커다란 힘으로 되겠는가.
이미 해온 경험도 있겠다, 행군이 아주 어려운 이런 때에 어디 한번 포재를 보이오. 동무들의 생각은 어떻소?》
차일진은 고개를 들고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마차둘레의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자기를 향해 돌려져 웃고 떠들고 야단이였다.
차일진은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동안 말없이 걸어갔다.
《
《그래, 과업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좋소. 차일진동무는 왕청중대의 선전원이요. 선전원의 임무는 이렇게 행군이 간고하고 힘겨울 때 대원들의 사기를 돋구어 원정부대의 목적을 이룩하도록 힘을 받쳐주는것이요.
지난해와 금년초에 걸쳐 근거지에서 동기방어전투를 할 때 출판일군들이 크게 한몫 했었소. 나는 차일진동무가 한번 결심을 다지고 그렇게 해주리라고 믿고있는거요!》
한동안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있던 차일진이 입을 열었다.
《
《어서 말하오.》
《
《그건 무슨 말이요. 후회를 하다니?… 나는 조금도 후회 안하오.》
《정말입니까?》
차일진은
마차둘레의 사람들은 차일진이와 같이 모두 숨을 죽이고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게로구만.》
잠시 말씀이 없으시던
《차일진동무, 우리는 보통의 환경과 구별되는 비상히 준엄한 환경에 처해있는 사람들이기에 보통인간의 그것과는 구별되는 용맹과 투지를 발휘하지 않을수 없소. 사람이란 워낙 자기가 내세운 목적이 위대하고 숭고할 때 그렇게 강하고 슬기로워지는 법이요. 목적이 크지 못한 인간이 강해질수 있겠는가? 그럴수 없소. 지향이 숭고하지 못한 인간이 성스러워질수 있겠는가? 절대로 그렇게는 안되오.
나는 우리가 수행하는 목적이 위대하고 숭고하다는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들을 보는것 같소.
우리의 투쟁이야말로 얼마나 고상하고 아름다운것인가? 우리는 개인의 안락이나 리익이 아니라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고 2천만 조선인민에게 광명한 앞날을 열어주기 위해 손에 총을 잡고 나선 조선의 진정한 혁명가들이요.
여기 한흥권동무가 그렇고 김택근동무가 그렇고 차일진동무가 그러하며 오성숙동무나 강진옥동무나 지금 행군종대에 들어선 동무들 누구나 할것없이
다 그러하오. 조국과 민족앞에 이러한 사명감을 지닌 사람들은 한순간도
그러기에 이러한 혁명가들은 어떤 어려운 난관도 자기 힘으로 헤치고 중중첩첩한 역경도 자기 의지로 헤쳐나가게마련이요. 내가 차일진동무더러 중도에서 쓰러지지 않고 기어이 목적지까지 가닿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것은 이때문이며 바로 이러한 굳센 신념을 가지고있기에 북만원정대오에 많은 신입대원들을 참가시키고도 승리를 확신있게 내다보고있는거요. 어떻소. 차일진동무, 내 말이 리해되오?》
과연 이것이 무엇인가? 차일진은 정신이 어리둥절해졌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아니던 자기 몸에서 어떤 빛이 느껴지며 힘이 꿈틀거리고 아직은 무엇인지 똑똑히 가늠할수 없으나 분명 기쁨이고 행복인 인생의 환희가 솟구치고있는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장군님!》
차일진은 한껏 높이 힘을 가다듬어 입을 열었으나 말소리는 겨우 몇사람건너에서 끊어지고말았다. 그대신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