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13
(1)
골짜기는 이른아침부터 설레였다. 드디여 오늘 전 부대가 제천읍으로 들어가는것이다.
벌써 묘초(5―6시)에 잠을 깬 대부분 의병들이 출동준비에 바빴다.
한켠에서는 밥을 짓고 다른 한켠에서는 행장을 거두고 하느라 누구라없이 바삐 돌아갔다.
류린석은 누구보다 일찍 식사를 마치고 향교 앞마당에 나가 기다렸다. 부대들이 거기로 모이게 된것이다.
군사장 주용규가 오늘도 여전히 융복을 떨쳐입고 삼문앞 층계에 올라 부대들의 움직임을 통솔하였다. 안승우와 리춘영이들은 안뜰에서 제천에 들어가 부대들에 보장할 후방사업에 대하여 의논하고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사정(오전 10시)이 다되여올 때까지 선봉장 김백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부대는 완전준비를 갖추고 남먼저 향교에 와있었다. 알아보니 전령수 오째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도 그들이 간 곳을 몰랐다. 다만 새벽에 마을로 심부름갔던 오째가 오지 않아서 백산이 직접 찾아갔는데 보이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그것이 저으기 린석을 긴장하게 하였다. 오늘 진군에서 제일 앞장서야 할 선봉장이 어디에 가서 오지 않느냐 하는것이였다.
전 부대가 지금 그를 기다리고있다. 향교앞을 지나간 길로부터 마당 저끝은 물론 키높은 참나무, 느티나무, 쇠스래나무들이 늘어선 나무숲과 그아래 하얀 모래불 그리고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련해 깔린 개울녘까지 의병들로 꽉 들어찼다.
지금 그들이 추켜든 무수한 기발과 기치창검들이 아침해빛에 번쩍이고있다. 지루한 시간을 기다려 때없이 둥둥거리는 북소리, 징징거리는 징소리, 뿌웅뿌웅 하는 천아성소리들이 조급하게 출발을 재촉하고있다. 알아본데 의하면 군수 리찬익이가 고을안의 청장년들을 모두 그러모아다 의병들과 맞설 준비를 하고있다는것이다. 그런데 선봉장은 어디에 갔는가.…
어제 린석은 그의 부대에 가서 밤늦도록 명성황후살해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것이 예상외의 반응을 일으켰다. 의병들이 자리를 차고일어나 왜놈들을 모조리 쳐죽이자는 구호를 격조높이 불렀고 당장 서울로 쳐들어가 미우라놈인지 이노우에놈인지를 쳐죽이자고 했다.
그 소문이 순식간에 전 부대에 퍼져 저렇듯 출발을 보채고있는것이다. 그런데 백산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린석이 조급한 마음으로 부대앞을 거닐고있을 때 갑자기 한 의병이 달려와 보고하였다.
《창의대장님, 저기에 싸움이 났습니다. 선봉대장님하고 서울패나리들하고… 지금 막 죽일듯이 싸우고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선봉장과 서울패라니…)
피뜩 의심을 하면서 동시에 판단을 했다. 서울패라고 하면 홍정식이네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들이 왜 김백산이와 싸운단 말인가.…
의심을 하면서 그리로 달려갔다. 영문을 알아야 했다. 하면서 불안을 느꼈다. 홍정식에 대하여 그동안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는것이였다.
정식은 처음 그를 찾아와 만난 후 드문히 들리군 했다. 주로 저들의 생활조건보장과 의병장이나 의병들이 자기들을 대하는 태도문제 그리고 의병투쟁의 전도문제 등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는것이였다. 그때마다 린석은 그들이 서울에서 살다가 왔으니 불편이 많으리라는것, 출신이 보통의병들과는 다른 서울량반이라는것, 거기에 자기가 특별히 보아주어야 할 대상이라는것 등을 고려하여 언제나 그들을 편들어주었다. 생활도 그들의 요구대로 따로 마련한 집에서 저들끼리 살게했다.
그러던 어느날은 저들이 서울에 가서 신식보총을 구하겠다고 해서 보내주었더니 과연 세정이나 되는 총을 가지고왔다. 다음부터는 그들을 푹 믿고 하는대로 내버려두었었다. 그런데 싸움이 났다.…
마을을 꿰질러 산비탈 외딴집까지 달려가던 린석은 한순간 멈춰섰다. 그 의병이 말하던 싸움이 거기서 나고있었던것이다.
몇명의 서울 젊은이들이 백산을 둘러싸고있었다. 그중 홍정식이 긴칼을 빼들고 백산에게 다가들었다.
《이 상놈의 새끼, 나지도 못한 놈이 량반자를 때려? 대신 죽어봐라.》
시퍼런 칼이 하늘로 번뜩이며 솟아올랐다. 그런데 백산이 어느새 몸을 피하여 자기를 둘러싼 다른 사람의 등뒤에 섰다. 손에는 쥔것이 없지만 어째서인지 도망갈 생각을 안했다. 도리여 홍정식에게 따지듯 들이댔다.
《다시 말한다. 닭을 주인한테 돌려주고 사죄하라. 우리 오째한테두!》
《뭐가 어째? 너까짓 상놈이 누굴 보구…》
정식이 다시 달려들었다. 동시에 너덧명이 또 백산을 둘러싸고 한점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일은 이번에도 다르게 번져졌다. 백산이 한옆으로 비켜서면서 정식을 걷어찼다. 칼이 땅에 떨어지고 정식은 곤두박질을 했다. 이어서 다른 두명도 절을 하듯 백산의 앞에 꼬꾸라졌다. 정식이 칼을 잡으려고 벌름벌름 기여가자 백산이 이번에는 그의 팔을 발로 밟았다.
린석이 다가간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를 본 정식이 사람을 때린다고 소리를 지르고 백산은 무춤 놀라 자세를 바로했다. 그통에 정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봉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정식이는?》
백산은 말이 없었다. 대신 정식이 고아대며 사설을 늘어놓았다.
《이놈이 우리 사람을 때렸소. 코피가 터지게 말이요. 이 상놈의 새끼가 어따 대고…》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오째가 끼여들었다.
《창의대장님, 그런게 아닙니다. 실은 저 서울사람들이 민가의 닭을 잡아가기에 제가 말렸더니 먼저 저를 때렸습니다.…》
그가 설명을 하였다. 그들이 남의 닭을 활로 쏴서 잡아가는것을 보고 못하게 하였더니 쬐꼬만게 참견을 한다고 모두매를 들었다는것이였다.
그때 오지 않는 오째를 찾아떠났던 백산이 달려와 그들을 두들겨패주었다. 했더니 이번에는 홍정식이가 칼까지 가지고 달려와 싸움이 벌어졌다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