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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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간다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린석은 걸음을 멈췄다. 반토굴로 된 의병들의 병실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였다. 그것은 지심깊이에서 울려나오듯 은은하고 우렁찼다. 어디선가 들은듯 귀에 익었다. 가락은 비록 단조롭고 짧으나 어디론가 힘껏 달려가는듯 한 힘있는 저 소리를 어디서 들었던가.

생각이 났다. 저 보은의 속리산속에서 병자가 부르던 노래, 그에 따라 끊임없이 합창을 하던 행인들, 그 병자인즉은 바로 지금 옆에서 걷고있는 김백산이다. 하다면 저 짧은 가요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져있는가.

《…다른것이 아닙니다. 가보세라는 말은 갑오년(1894)의 뜻이고 을미적이라는 말은 을미년(1895)의 뜻이고 병신되면이란 말은 병신년(1896)이란 뜻입니다. 다시말하여 갑오년에 들고일어났던 농민봉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을미년까지 가서 어물거리다가 병신년이 되면 망한다는것입니다. 여기에는 갑오년에 기어이 목적을 성취하고야말리라던 우리 농민군들의 굳은 의지가 담겨져있었습니다.》

린석이 묻는 말에 백산이 대답하였다.

그것이 린석의 가슴을 다시금 뜨끔하게 했다. 그러니 저 사람들은 아직도 갑오농민전쟁때의 그 기분으로 싸우고있지 않는가. 온 나라에 파급되였던 저 전봉준농민봉기때의 정신과 기백으로… 생각을 하니 이제 그 책임을 자기가 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숭엄하게 안겨왔다.

반토굴집앞에서 오째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산기슭을 깎아지은 넓은 병사안에는 수백명 의병들로 꽉 차있었다.

린석이 그들앞에 나섰다. 나라를 위해 총칼을 잡은 이들, 그들중 누가 억지로 오라고 하거나 쫓아서 온 사람은 없다. 오직 나라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저마다 달려왔다.

옳다, 말해주어야 한다, 왜놈들이 우리 국모를 어떻게 살해했는지. 비록 그가 이 사람들을 위해 한 일이 없고 나라에는 해도 많이 끼쳤으며 린석 일개인으로는 원망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조선사람이였고 한 나라의 국모였다. 그 모든 죄과가 조선사람이, 그것도 국모가 왜적에게 살해되였다는 민족적분노를 대신할수 있는가. 그가 아무리 잘못을 많이 저질렀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족내부문제이며 조선사람끼리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의병 여러분!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용약 일떠선 의군용사들!

분하고 원통하다. 수천년력사와 문화를 자랑하던 우리 민족이 졸지에 왜놈의 침입을 당하여 국가존망이 눈앞에 박두했다. 국모가 왜놈에게 살해당하고 국왕이 또한 놈들에게 연금당한 상태가 되였으니 실로 천지개벽이후 일대 괴변이다. 국왕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몸을 앓아야 하고 왕이 몸을 앓으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했는데 실로 국왕이 오늘처럼 심하게 곤욕을 당한적이 어느때 있었던가.…》

그는 처음부터 격문을 발표할 때처럼 그리고 만사람앞에 나서 시를 읊조릴 때처럼 강렬하게 격조높이 시작하였다. 그만큼 자기가 알고있는 모든것을 의병들에게 알려주고싶은 욕망이 컸다.

…린석은 만사를 제쳐놓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집안에 묻혀있으면서 글이나 쓰자는것이였다.

그러나 떠도는 소문은 잠시도 그를 안정치 못하게 하였다.

하루는 서울 북악산의 백년 묵은 여우가 산에서 내려와 대낮에 광화문앞 종로거리로 해서 한강 물속으로 헤염쳐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다음날은 서울교외의 어느 한 고목이 마른벼락을 맞았는데 그 구새먹은 나무에서 큰 구렝이 한마리가 나와 유유히 경복궁담장을 타고넘어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세상은 떠도는 소문들로 가득찬 곳이다. 하물며 나라가 망조에 든 을미년 그해임에랴.

세상이 소란하면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한몫 본다. 전에는 이름도 없고 소문도 없던 소경점쟁이, 과부무당들이 비단보료가 깔리고 요강망태기에 타구, 재털이가 실린 금빛은빛의 교군을 타고 이집저집, 이 고을, 저 고을로 불려다니는 판이 되였다. 그 여파를 타고 동네방네에서는 저마다 점을 친다, 굿판을 벌린다, 신수를 본다, 제사를 지낸다, 묘지를 옮긴다 복닥소동이 일었다.

그런 속에서도 린석은 집안에 배겨 글만 썼다. 이루지 못한 뜻을 《의암집》에 남겨 후세에라도 알게 하자는 목적에서였다.

그런데 하루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왕비가 왜놈의 손에 죽었다는것이였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역시 떠도는 소문이려니 했던것이다.

왕비가 왜 죽는단 말인가. 그에게 먹을것이 없는가, 호위군사가 없는가, 의원이 없는가, 시비가 없는가.

그러나 거듭거듭 들려오는 소문을 더는 뿌리칠수 없어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자기 눈으로 확인을 하고싶어서였다. 마침내 거기에서 최익현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서 민비의 죽음이 사실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청세력을 조선에서 완전히 밀어내고 군사적으로 얼마든지 제압할수 있다고 생각한 왜나라족속들은 다음부터 법적으로 집어삼킬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것이 중요하였다. 그러자면 왕을 그러쥐여야 하는데 그뒤에는 언제나 쥐여도 잡히지 않고 씹어도 씹히지 않는 민비라는 녀자가 군림해있었다. 그를 없애지 않으면 조선이라는 큰 고기덩이를 먹을수 없다고 생각한 왜나라의 야수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궁리를 해왔다.

국제적인 법규나 도의의 원칙은 애초부터 제쳐놓고 모든것이 저들의 필요와 요구에 의하여 작성되고 꾸며졌다.

원래 놈들은 김홍집을 총리로 하는 내각을 조직할 때부터 박영효란자를 내부대신으로 박아넣고 그를 통하여 내각전체를 친일화하려고 하였다. 박영효란 김옥균의 갑신정변때 우연히 거기에 끼여들었다가 일본으로 망명한 후 완전히 친일분자가 되여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왜놈식으로 단장하고 스스로 자기를 일본사람이라고 자랑하던자였다.

그런자를 조정에 끌어들여놓고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친일사상을 부식시키게 했고 저들의 정책을 내려먹이려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한편에서는 로씨야공사 웨베르의 맹렬한 활동으로 왕과 왕비, 그 측근들이 많이 로씨야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였다. 바로 그것을 느낀 왜놈들은 민비를 없애치워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것이다.

그의 첫 시도가 박영효를 시켜 한강에 나가 배놀이를 하는 동안에 민비를 감쪽같이 없애치우는것이였다. 그러나 그 계획은 사전에 비밀이 드러나서 실행할수 없게 되고 박영효는 국왕의 명령으로 엄격히 처벌할데 대한 지시가 하달되여 일본으로 도망가고말았다.

일이 그쯤 되였으면 왜놈들도 낯짝을 붉히고 사죄를 하거나 물러갔어야 할것이였다. 그러나 애초에 인간이기를 그만둔 왜놈들은 보다 더 음흉하고 야만적인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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