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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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두의 남쪽등판에 나서서 하루종일 행군을 다그쳐간 원정부대는 큰길을 건너 목단강기슭의 귀틀막촌에서 하루밤 묵었다. 대원들과 지휘관들이 모두 힘들어하는 표정들인데다 장군님께서도 어지간히 지치시였다.

중대들은 부락의 집들에 나뉘여들자 곧 깊은 잠에 떨어졌다. 밤중에 돌발적인 정황이 발생하기전에는 아무런 군사행동도 없을것이니 충분히 휴식하라는 장군님의 지시가 있었으므로 지휘관들도 이날밤만은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장군님께서는 잠에 든 중대들을 돌아보시려고 한밤중에 사령부귀틀막을 나서시였다. 하늘에서는 소리없이 함박눈이 쏟아지고있었다.

연길중대와 훈춘중대를 차례로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나중에 왕청중대에 들리시였다. 중대장의 귀틀막방안에서 총을 안고 졸고있던 한 대원이 삐거덕하고 열리는 지게문소리를 듣고 벌떡 뛰여일어났다.

《쉬―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하오.》

장군님께서는 방안에서 잠자고있는 대원들이 깨여날세라 가만히 손을 흔드시였다.

《중대장동무는 어디 가고 동무들만 누워있소?》

《중대장동지는 보초소에 있습니다.》

《보초소에?》

《예, 보초는 바로 제가 설 차례인데 중대장동지가 대신 서겠다고 하면서 자꾸 등을 떠밀기에…》

대원은 공연히 잘못을 저지른것 같아 주눅이 든 눈길로 장군님의 표정을 살폈다.

《걱정마오. 중대장이 등을 떠미는판에 어찌겠소. 동무야 용빼는 수가 없었겠지. 다른 생각 말구 쉬라구.》

장군님께서는 대원을 안심시키고 방을 나오시였다.

어린 대원은 서두르며 장군님을 따라나왔다.

장군님, 한가지 더 알릴게 있습니다.》

《뭐요. 무슨 이야긴데?》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내짚던 자세로 멈춰서시였다.

《다름이 아니라 중대장동지는 초저녁부터 보초를 서고있습니다. 벌써 세동무씩이나 등을 밀리워 들어왔습니다. 이러다간 아침까지도 내처 보초소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대원의 이야기를 들으시며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때없이 구슬프고 언짢은 생각이 가슴 한구석에서 안개처럼 일어났다.

《초저녁부터 보초를 서고있다고?!… 초저녁부터…》

대원은 떨어지고 장군님께서 홀로 귀틀집 굴뚝모퉁이를 돌아 목단강으로 내려가는 좁은 외통길에 들어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벌써 함박눈에 가리여 검은 땅빛이라고는 한점 볼수 없는 좁은 길에서 가끔 생눈속에 발을 빠뜨려가시면서 강기슭의 평퍼짐한 공지로 나가시였다.

부락이 끝나고 수림이 끝나버린 강안의 두두룩한 공지는 채 어둡지 않은 밤처럼 희끄무레한 눈빛속에 싸여있었다.

한흥권중대의 보초소는 그 두두룩한 흰 공지의 한쪽가녁에 도로와 목단강의 좌안을 굽어살필수 있는 커다란 화강암바위우에 자리잡고있었다.

보초소로 다가가시는 장군님께서는 전에없이 가슴이 답답하시였다.

(한흥권동무가 초저녁부터 보초소에 나가있다니. 그렇게 힘든 행군을 이어온 한흥권동무가?…)

눈덮인 둔덕길은 미끄러웠다. 장군님께서는 조심히 발을 옮겨 보초소가까이에 이르시였다.

언덕우에 서있는 한흥권의 털모자와 솜저고리우에는 함박눈이 하얗게 뒤덮여있었다. 한번도 몸을 흔들어 털어본것 같지 않게 쌓인 눈은 마치 숨이 없는 장작가리나 건초더미우에 내려쌓인것 같이 두텁게 앉아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온몸을 빽빽이 감싸고있는 슬픔과 고달픔의 너울같아보였다.

장군님께서는 금시 다가가 그의 온몸을 뒤덮고있는 눈을 말끔히 털어주고싶으시였다. 그러기만 해도 한흥권의 온 마음을 짓누르고있는 고달픔과 번민이 산산이 깨여져 후르르 날아날것 같았다. 그러나 한흥권을 향해 쉽사리 걸음을 옮기실수 없었다.

한흥권의 주변에는 발을 옮겨디딘 자리도 없었다. 한자리에 깊숙이 두발을 묻고 서있었다. 어쩌면 초저녁에 이 보초소의 땅을 밟으며 내리짚은 그 발로 그대로 서있는지도 몰랐다. 장군님께서는 한번 그를 소리쳐불러 선자리에서나마 발을 옮겨짚게 하고싶으시였다. 그러기만 해도 넋없이 빠져있는 그 지겨운 사념으로부터 풀어놓을수 있을것 같으시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쉽사리 소리를 내여 그를 부르실수 없었다. 한흥권의 슬픔, 한흥권의 번민, 그것은 그대로 장군님의 슬픔과 장군님의 번민이였다. 숨이 없는 돌미륵같이 쏟아지는 눈을 뒤집어쓰고 서있는 한흥권의 그 가엾은 모습은 그대로 장군님의 가슴에 말 못할 괴로움을 휘저어놓았으며 어떻게나 그대로 조금 잠을 재우고 이 힘겨운 원정행군을 이겨나가려고 애쓰시는 장군님의 마음속에 다시 없는 생생한 아픔을 불러왔다.

목단강 물소리는 소란하였다. 모든것이 숨을 죽이고 머리우에 함박눈을 들쓰고있는 이 적막한 고요속에서는 흐르는 물소리밖에 들리는것이 없었다.

끝없는 소음으로 밤공기를 헤치고있는 물소리는 그러지 않아도 숨가쁘게 고요한 이밤의 정적을 갈수록 보태주면서 무엇인가를 주절주절 외우고 푸념하고 호소하는것 같이 장군님의 가슴을 얼얼하게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힘들게 톺아오르신 길을 소리없이 돌아서시여 부락으로 내려오시였다. 한흥권의 귀틀막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보초대기로 잠들지 못하고있는 대원을 시켜 훈춘중대 백선일중대장을 불러오라고 이르시였다.

밤중에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선일은 갑자기 적정이 발생한줄 알고 숨이 턱에 닿아 달려왔다.

그때까지도 쏟아져내리는 눈을 맞아가시며 처마밑에서 서성거리시던 장군님께서 땅을 굴러치며 다가온 백선일이를 보자 무슨 걸음을 그렇게 벼락치듯 내딛느냐고 나무람하시였다.

《그런데 사령관동지, 무슨 적정이 나타났습니까.》

《적정같은게 무슨 문제요. 그보다 더 난처한 일이 생겨 불렀소.》

《그게 무슨 일입니까.》

백선일은 사뭇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한흥권동무가 초저녁부터 지금까지 보초를 서고있소.》

《…》

백선일의 입에서는 아무 응대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만하겠소?》

《예.》

백선일의 목소리는 측은한 동정에 싸여 떨리였다.

《눈앞에 얼찐거리기만 해도 기쁨을 자아내던 사람을 사지에 떨구어놓고 왔으니 오죽하겠소. 게다가 그 일로 내게서 비판까지 받았지. 참말 경황이 없을거요. 오죽하면 보초소에 나가 밤을 새우겠는가?》

《그거 정말 안됐습니다. 어떻게 위로하면 좋겠습니까?》

백선일은 장군님의 괴로운 심정을 어떻게 위로해드리면 좋을지 몰라 바재이고있었다.

장군님, 제가 보초소에 나가 한흥권동무와 두루 이야기를 하면서 이밤을 보내면 어떨가요.》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한흥권동무를 데려다 잠을 재워야겠소. 정말 지친 사람이요. 내가 찾는다고 하면서 데리고 내려와 잠을 재우오. 이런 일이야 백선일동무밖에 할 사람이 없지.》

《장군님, 알겠습니다.》

《보초소에 올라가거든 공연히 진옥동무의 이야기를 꺼내가지구 그의 마음을 부산하게 하진 마오. 우리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 안해될 사람을 떼여놓고온 한흥권동무의 심정처럼 아프겠소.》

장군님께서는 은근한 기대를 품고 말씀하시였다.

《예,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다.》

백선일은 거수경례를 올리고 돌아섰다.

《중대장동무, 그 쾅쾅거리는 걸음걸이랑 좀 조심히 내디디라구. 깊은 잠에 떨어진 동무들이 잠을 깨겠소.》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발이란게 한쪽이 다섯근은 잘되니까 살랑살랑 내려짚게 되지 않습니다.》

백선일은 지나가는 우스개말로라도 장군님을 위로해드리고싶어 한마디 씩뚝거리고 물러났다. 그러느라니 마음속에는 오히려 슬픔이 방울방울 떨어져 고이는것 같았다. 사실 자기가 그런다고 마음이 가벼워지실 장군님이 아니시다. 그는 장군님께서 방금 다녀오신 눈길을 더듬으며 보초소로 올라갔다. 사뭇 가슴이 쓸쓸하고 기분이 언짢아졌다. 몇곳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자리를 발견하고 백선일은 혀를 찼다. 장군님께서 얼마나 경황없는 걸음을 옮기셨으면 이런 평평한 길에서조차 넘어지셨을가싶은 생각이 가슴을 아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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