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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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호두의 남쪽등판에 나서서 하루종일 행군을 다그쳐간 원정부대는 큰길을 건너 목단강기슭의 귀틀막촌에서 하루밤 묵었다. 대원들과 지휘관들이
모두 힘들어하는 표정들인데다
중대들은 부락의 집들에 나뉘여들자 곧 깊은 잠에 떨어졌다. 밤중에 돌발적인 정황이 발생하기전에는 아무런 군사행동도 없을것이니 충분히
휴식하라는
연길중대와 훈춘중대를 차례로 돌아보신
《쉬―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하오.》
《중대장동무는 어디 가고 동무들만 누워있소?》
《중대장동지는 보초소에 있습니다.》
《보초소에?》
《예, 보초는 바로 제가 설 차례인데 중대장동지가 대신 서겠다고 하면서 자꾸 등을 떠밀기에…》
대원은 공연히 잘못을 저지른것 같아 주눅이 든 눈길로
《걱정마오. 중대장이 등을 떠미는판에 어찌겠소. 동무야 용빼는 수가 없었겠지. 다른 생각 말구 쉬라구.》
어린 대원은 서두르며
《
《뭐요. 무슨 이야긴데?》
《다름이 아니라 중대장동지는 초저녁부터 보초를 서고있습니다. 벌써 세동무씩이나 등을 밀리워 들어왔습니다. 이러다간 아침까지도 내처 보초소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초저녁부터 보초를 서고있다고?!… 초저녁부터…》
대원은 떨어지고
부락이 끝나고 수림이 끝나버린 강안의 두두룩한 공지는 채 어둡지 않은 밤처럼 희끄무레한 눈빛속에 싸여있었다.
한흥권중대의 보초소는 그 두두룩한 흰 공지의 한쪽가녁에 도로와 목단강의 좌안을 굽어살필수 있는 커다란 화강암바위우에 자리잡고있었다.
보초소로 다가가시는
(한흥권동무가 초저녁부터 보초소에 나가있다니. 그렇게 힘든 행군을 이어온 한흥권동무가?…)
눈덮인 둔덕길은 미끄러웠다.
언덕우에 서있는 한흥권의 털모자와 솜저고리우에는 함박눈이 하얗게 뒤덮여있었다. 한번도 몸을 흔들어 털어본것 같지 않게 쌓인 눈은 마치 숨이 없는 장작가리나 건초더미우에 내려쌓인것 같이 두텁게 앉아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온몸을 빽빽이 감싸고있는 슬픔과 고달픔의 너울같아보였다.
한흥권의 주변에는 발을 옮겨디딘 자리도 없었다. 한자리에 깊숙이 두발을 묻고 서있었다. 어쩌면 초저녁에 이 보초소의 땅을 밟으며 내리짚은
그 발로 그대로 서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번에도 쉽사리 소리를 내여 그를 부르실수 없었다. 한흥권의 슬픔, 한흥권의 번민, 그것은 그대로
목단강 물소리는 소란하였다. 모든것이 숨을 죽이고 머리우에 함박눈을 들쓰고있는 이 적막한 고요속에서는 흐르는 물소리밖에 들리는것이 없었다.
끝없는 소음으로 밤공기를 헤치고있는 물소리는 그러지 않아도 숨가쁘게 고요한 이밤의 정적을 갈수록 보태주면서 무엇인가를 주절주절 외우고
푸념하고 호소하는것 같이
밤중에
그때까지도 쏟아져내리는 눈을 맞아가시며 처마밑에서 서성거리시던
《그런데
《적정같은게 무슨 문제요. 그보다 더 난처한 일이 생겨 불렀소.》
《그게 무슨 일입니까.》
백선일은 사뭇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한흥권동무가 초저녁부터 지금까지 보초를 서고있소.》
《…》
백선일의 입에서는 아무 응대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만하겠소?》
《예.》
백선일의 목소리는 측은한 동정에 싸여 떨리였다.
《눈앞에 얼찐거리기만 해도 기쁨을 자아내던 사람을 사지에 떨구어놓고 왔으니 오죽하겠소. 게다가 그 일로 내게서 비판까지 받았지. 참말 경황이 없을거요. 오죽하면 보초소에 나가 밤을 새우겠는가?》
《그거 정말 안됐습니다. 어떻게 위로하면 좋겠습니까?》
백선일은
《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한흥권동무를 데려다 잠을 재워야겠소. 정말 지친 사람이요. 내가 찾는다고 하면서 데리고 내려와 잠을 재우오. 이런 일이야 백선일동무밖에 할 사람이 없지.》
《장군님, 알겠습니다.》
《보초소에 올라가거든 공연히 진옥동무의 이야기를 꺼내가지구 그의 마음을 부산하게 하진 마오. 우리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 안해될 사람을 떼여놓고온 한흥권동무의 심정처럼 아프겠소.》
《예,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다.》
백선일은 거수경례를 올리고 돌아섰다.
《중대장동무, 그 쾅쾅거리는 걸음걸이랑 좀 조심히 내디디라구. 깊은 잠에 떨어진 동무들이 잠을 깨겠소.》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발이란게 한쪽이 다섯근은 잘되니까 살랑살랑 내려짚게 되지 않습니다.》
백선일은 지나가는 우스개말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