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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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우가 류린석의 어머니병환문제로 춘천에서 보발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것은 저녁무렵이였다. 그가 깜짝 놀라 허겁지겁 달려오니 아닌게아니라 여러 의병장들이 강당에 모여 의논을 벌리고있었다.

《로모의 병이 심한데 이것저것 론할게 있습니까. 당장이라도 떠나야지요.》

그가 문지방에서부터 소리쳤다. 군수장으로서 자기가 해야 할 책임에서였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보다는 그가 곧 류린석의 제자이고 그 어머니와도 남다른 인연속에 있었기때문이라는것이 더 정확할것이다.

그러나 방안의 분위기는 예상외로 쌀쌀하였다. 아무도 그의 말에 반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당자인 류린석이조차 방 한구석에 놓인 화로에 앉아 부저가락만 휘휘 젓고있는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쯤한 론의는 이미 실컷 하고난 뒤였던것이다. 이를테면 린석의 반대로 춘천에 가는 문제는 다시 상정시키지 않기로 못박았던것이다.

그 말을 듣고 승우가 린석의 앞에 넙적 엎드렸다.

《창의대장님, 그럴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가셔야 합니다. 자식으로서는 부모가 하늘인데 지금 하늘이 무너져가고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면 다시 밝은 빛을 볼수 없습니다.

또 옛시에 이런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어버이 살아계신적에 섬기기 다 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섧다 어이하리/ 평생 고쳐 못할 일이 그뿐인가 하노라〉…》

《승우, 머리를 들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린석이 화로에서 물러섰다.

《거듭 말하네만 이미 결심이 섰으니 다시 그 문제는 상정시키지 말게. 내가 창의대장으로서 사사일에 마음쓸수 없다는것이야 알지 않나?》

《그것을 어찌 사사일이라 하겠습니까. 부모에게 효도하는것이 곧 만사의 시작으로서 나라에 충성하는것도 부모에 대한 효도를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습니다. 천벌을 받습니다.》

《군수장, 그만두지 못할가?》

《저는 선생님께서 저희들에게 심어주신 5상(삼강오륜)을 항상 마음의 기둥으로 삼고 그것이 나라를 떠받드는 기초라고 생각하고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건대 왕상의 리어(왕상이란 사람이 모친이 겨울에 생선이 먹고싶다고 하는 말을 듣고 얼음을 까고 그우에 누워있었더니 리어 두마리가 튀여나와 어머니에게 대접했다는 고사.)나 맹종의 죽순(맹종이란 사람이 어머니가 겨울에 죽순이 먹고싶다는 말을 듣고 눈우에 누워있었더니 밑에서 죽순이 돋아나와 대접했다는 고사.) 그리고 로래자의 색동다리(70살난 로래자란 사람이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오색이 현란한 색동다리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는 고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선생님께서 이제 로모를 모르신다 하면 그 모든것을 부정하는것으로 되며 솔선 인륜도의의 기틀을 마스는것으로 될것입니다. 그렇게 하고서야 어떻게 사람들에게 례의범절에 대하여 훈계할수 있으며 싸움인들 바로 하라고 가르칠수 있겠습니까.》

《승우, 래일 딸 미영이도 전장으로 떠나도록 허락하게. 그것두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지극히 간청하는것이니 아버지로서 생각이 있을줄 아네.》

승우는 아연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머리를 들어보니 린석이 부릅뜬 눈으로 그를 쏘아보는데 옆에서 복한이며 린영이들이 눈을 끔쩍이며 그대로 수긍하라는 뜻을 해보인다.

주장을 해본댔자 쓸데 없다는 소리다.

하는데 옆에서 주용규와 리춘영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미영이 전장에 나가면 사내꼽재기 못지 않게 전공을 세울걸?》

《승우, 딸 하나는 잘 두었어. 웬만한 아들보다 낫지.…》

린석은 그러는 그들을 두고 밖으로 나갔다. 백산을 만나 미영에 대한 문제를 확정하고싶어서였다. 그의 요구대로 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의 부대가 있는쪽으로 가는데 마침 백산이 마주오고있었다. 옆에는 그때 보았던 꼬마전령수가 따라섰다.

《마침 대장님을 만나러 가던 길입니다. 의병들이 대장님을 청합니다.》

《의병들이? 무슨 좋은 구경거리라도 마련했나?》

백산을 만나기만 하면 사뭇 기분부터 즐거워지는 린석이다.

《대장님한테 국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왜놈들이 왜 그를 죽였는지, 어떻게 죽였는지, 그때 조선군사들은 무엇을 하고있었는지 알고싶어합니다.》

《국모 민중전의 죽음이라…》

그가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생각도 하기 싫은 이야기다. 분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다. 하물며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도 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나 백산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의병들은 떠도는 소리만 들었을뿐 구체적인 내막은 알지 못한다는것이였다.

거기에 린석은 기꺼이 응했다. 알려주어서 손해볼 일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하고 나란히 걷는데 꼬마상투쟁이의 목에 걸린 호패가 눈에 띄웠다. 호패법이 없어진지가 언제인데 지금까지 차고다니는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물었더니 그가 설명을 했다. 그리고는 제힘껏 도리질을 하며 방금 한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저는 믿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못해 차고다니기는 하지만… 아니요, 차라리 저는 전장에서 죽겠습니다. 국모까지 왜놈에게 살해당하는 판에 저같은 놈 하나가 무엇이겠습니까. 나라부터 지켜야지요.》

린석은 그러는 오째의 어깨를 꼭 그러안았다. 매번 느끼군 하는바이지만 평범한 백성들을 만날 때마다 또 새로운 충격을 받군 한다.

보라, 우리 사람들이 얼마나 현명한가, 오째도 미영이도 그리고 아까 본 아버지를 잃었다는 그 사나이도… 모두가 세상을 똑바로 볼줄 알고 자기 할바도 알고있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칠 각오가 되여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내가 무엇을 주저하며 두려울것이 무엇이랴.

그러는 사이에 백산이 먼저 오째를 부대에 올려보내여 대장을 맞을 준비를 하게 하라고 일렀다. 린석의 의사에는 관계없이 일은 전개되는것이다.

그것이 다시 미영의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린석의 기분을 돌려세웠다.

《군수장의 딸 미영이 날 찾아왔더군. 그전에 자네를 만나보았다며?》

그가 의미심장한 눈길을 백산에게 돌렸다.

백산은 이미 그러리라고 알고있었던듯 태연하고 침착한 자세로 대답했다.

《제가 먼저 만나보자고 했습니다. 그에게 의병이 되라고 권고하고싶었습니다.》

《그밖에 다른 말은 없었나?》

《그게 전부입니다. 왜놈과 싸우자는 외에 더 다른 말을 할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잘했네. 나도 그렇게 말했네. 선봉부대에 들어가라고 말이야. 군수장도 그렇게 알고있네.》

그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골짜기의 밤은 빨리도 찾아온다. 사방은 어둠에 잠기고 여기저기에 화토불이 피여오른다. 그리고는 의병들의 노래소리, 웨침소리들이 엇갈리고 어딘가 먼곳에서는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선봉부대로 향하는 린석의 머리속에는 민비에 대한 생각이 떠날줄 몰랐다. 이미전에 그를 만나보았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알고있기때문이였다.…

그가 민비를 만나본것은 지난해 봄, 바로 그때 서상렬을 만나고난 이후이다. 물론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이듬해가 돼서야 익현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것이 저 해빛도 따사롭던 지난봄이였다. 그날 민비의 부름을 받은 린석은 최익현과 함께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으로 해서 왕의 침전으로 쓰는 곤녕전으로 은밀히 들어갔다. 역시 공식접촉이 아니여서 크게 소리칠것도 없이 두사람만 조용히 골목으로 빠져들어갔던것이다.

그들이 당도하였을 때 민비는 곤녕전 아래층란간에 놓인 교의에 앉아있었다. 그 주위에 수십명 궁녀들이 둘러싸여있는데 그들의 알록달록한 차림과 곤녕전의 높은 선자추녀와 단청들, 란간의 무늬장식들이 한데 어울려 눈이 부실 지경이였다.

《중전마마, 소신 최익현 중전을 뵈옵자고 알현하였소이다.》

익현이 말하며 갓채양이 땅에 닿도록 절을 하자 그들보다 두어길이나 높은 란간우에서 민비가 목을 삐뚜름하니 빼들고 내려다보았다.

《최대감이 왔나. 무슨 일로 만나자고 했더라?》

앞에 앉은 사람과 실오리를 마주잡고 무엇인가 하던 민비는 인차 거기로 시선을 돌렸다.

《나라를 구원할 계책을 상감께 상주해주었으면 해서 찾아왔습니다. 소신과 함께 춘천사람 류린석이 함께 왔습니다.》

《나라를 구원할 일?… 말해보게.》

민비가 린석에게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는 그 어떤 총애의 눈길이나 받은듯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혈기가 솟구치는것을 느꼈다. 그것이 그대로 힘이 되고 용기가 되였다.

《중전마마, 지금 왜인들이 이 땅에 들어와 주인처럼 날뛰며 행패하는것을 보고 국민들이 치를 떨며 분격을 금치 못해하고있습니다. 도처에서 놈들에 대한 원한이 솟구쳐오르고 끝까지 싸울 각오를 다지고있습니다. 그런데 나라에는 자기 군대가 없고 싸울 힘이 없어서 아무대책도 세우지 못하고있습니다. 이러한 때 상감께서 한마디 명령만 떨구시면 온 나라 인민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날것입니다. 저자신도 충청도, 경상도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들을 모조리 내쫓을 결심을 하고있습니다. 중전께서 한마디 말씀만이라도 여쭈어서 상감의 동의를 얻어내신다면 실로 나라의 형국이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을것입니다.》

《의병? 그것으로 나라를 어떻게 구원하겠다는겐가?》

《백번 가능한 일입니다. 상감의 명령 한마디이면 됩니다.》

《흥, 그렇게 해서 자네가 온 나라의 의병총수라도 되여보자는겐가?》

《중전마마, 소인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그렇다 하며는 제가 의병을 조직해서 싸울것이지 왜 나를 찾아왔나?》

《소인이 말씀드리고저 하는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백성들은 싸우자고 하나 지방에 있는 장관들이 싸움을 두려워하거나 반대로 왜놈들에게 붙어서 의병투쟁을 반대하고있습니다. 이것이 실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저 임진년의 왜란때에는 백성들은 물론 고을의 장관들까지 모두 왜적을 반대하여 싸웠기에 승리할수 있었는데 오늘은 오히려 국록을 타먹는자들이 앞장서 나라를 팔고있으니 이것들을 그냥 두고서는…》

《자네가 임진년소리를 하기에 한마디 물읍세. 그때에도 왜인들이 대포나 기관총을 메고왔던가? 아마 그때에도 저 미국이나 도이췰란드, 프랑스, 청국, 로씨야 하는것들이 저마다 조선을 먹으려고 기여들었던가 하는것이야?》

민비가 최익현에게 묻듯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저런 촌무식쟁이를 데리고 왔느냐는듯 얼굴에는 쓴웃음이 어려있었다.

그것이 의기심을 더 분발시켰다.

《소인도 그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몇백, 몇천, 기껏해서 몇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천수백만백성이 있습니다. 상감의 명령이 내리기만 하면 온 나라 8도 수백고을의 사또방백들과 백성들이 일시에 일어나 그까짓 대포나 몇만의 군사쯤은 바위로 닭알누르듯 짓뭉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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