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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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나 그것도 잠간, 미영은 거의나 경악에 가까운 앗 소리를 지르며 두손을 입으로 모아갔다. 전신을 곰털로 장식한 그 총각이 나래를 치듯 외투자락을 날리며 자기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있었던것이다.
순간 미영은 자기가 갑자기 작아지고 전신이 오무라들며 입고있는 진한 꽃무늬비단초록치마도, 반들거리는 주홍빛릉라저고리도 일시에 빛을 잃는것 같았다. 장옷이라도 쓰고나왔으면 이렇게까지 무색하지는 않았을것이였지만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경황조차 없었다.
《실례되지 않았소? 바쁠터인데 한번 만나보고싶어 나오라고 했소.》
그가 먼저 말하였다.
별안간 가슴에 품었던 말마디들은 다 달아나고 아무것도 남은것이 없었다. 겨우 떠오른것이 꼬마상투쟁이라는 전혀 동에 닿지 않는 왕청같은 말이 저도 모르게 나왔다.
《예, 만났댔어요. 키가 작은 저 뭐라고 했더라…》
《우리 전령수요. 이름을 오째라고 하는데 집안의 5대째 외아들이요.》
《한데 오째라는건… 다섯째아들이란 말인가요?》
《다섯째라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실은 열번째아들이요. 그사이에 누이들 다섯이 더 있었거던. 그런데 그들모두가 죽었소. 어머니가 고역에 죽은 아이들을 낳지 않으면 기르다가 굶어죽고 병들어죽고… 열번째만에 혼자 살아남긴 했는데 이번에는 부모들이 다 병으로 돌아갔소.…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안의 대가 끊어진다며 그를 일찍 장가들였는데 그는 그것이 싫다고 집에서 도망쳐나와 세해째나 나와 같이 전장을 떠돌고있소.》
미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싸쥐였다. 이제야 이상스럽던 꼬마상투쟁이가 리해되면서 불쌍한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를 잘 도와주세요.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해요.》
《그는 죽지 않소. 몸에 부작이 있거던. 그걸 몸에 차고다니면 절대 죽지 않는다는거요.》
《부작이라니, 그건 어떤거예요?》
《그저 나무패쪽이지. 대추나무로 만든건데 거기에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를 적고 관가의 날인을 한 옛날 호패요. 그의 아홉대째 할아버지가 착용했던것인데 그때 자식이 번성했다오. 그래서 지금 할아버지가 그의 몸에 채워주고 절대 떼질 못하게 한다는구만.》
말이 끝나자 두사람은 동시에 소리내여 웃었다. 그것은 이야기자체가 우스워서가 아니라 이제는 웃어도 될만큼 마음이 안정되고 웃어야 할 필요도 느꼈기때문이였다.
사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전혀 생각지 않았고 긴요하지도 않은 외딴 소리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고 알았다 해도 돌려세우려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것으로 하여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보다 재미스럽게 이어지리라는것을 다같이 예감하였기때문이였다. 아닌게아니라 그렇게 되였다.
《우리 오째가 비록 키가 작고 나이는 어리지만 령리하고 동작도 빠르며 힘도 세오. 일전에 우리 부대에서 무릎싸움을 했는데 우리 오째가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적수를 단번에 메쳤소. 그때 부대를 돌아보던 창의대장님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왜놈들과도 그렇게 지혜로 싸워야 한다고 칭찬을 했소.》
백산이 그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린석의 말이 나오자 미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창의대장님이요? 대장님은 늘 선봉장님에게만 관심이 있는것 같아요. 말도 자주 하고 또 언제나 보면 그쪽편에만 서거던요. 언제인가 보은에서 만났을 때에도, 정선에서 말을 빼앗았던 때에도 이야기만 나오면 거기를 두둔해요. 그렇게 하는것이 옳다, 뜻이 있고 대가 세다 하면서. 하여튼 뭔가 잘 보인건 사실이예요.》
《모르겠소. 난 아버지나 창의대장님에게 욕보인 일밖에 한것이 없는데…》
백산이 눈을 껌벅이며 빙긋이 웃었다.
《왜서인지 매번 그렇게 되였소. 그런 때에 만나군 했거던. 그런데 그것이 이번에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주었는지 모르겠소.》
《말씀해주세요. 전라도민란때 몹시 상하셨다 하더니 후에 어떻게 다시 싸움에 나서게 되였어요. 그사이 어떻게 지내셨어요. 집은 아직도 없어요?》
거퍼 들이대는 질문에 백산은 미영을 가까이 마주섰다. 그가 왜 그런것을 묻는지, 대답을 주어야 할것인지 말아야 할것인지 한동안 무표정한 자세로 서있었다. 거기에 무안을 당한 미영이 로송에 기대고 몸을 돌린채 그를 마주보았다.
그것이 백산이 정신을 가다듬고 현실로 돌아오게 하였다. 그는 지금 미영에 대한 고마움과 따뜻한 정으로 가슴을 끓이고있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그에게 그런것을 묻지 않았고 물으려고 한 사람도 없었던것이다.
《보은에서 말이요? 그랬소. 그때 나는 몹시 부상을 당했댔소. 전봉준록두
《그러나 난 죽지 않고 다시 싸움에 나섰소. 왜놈이라면 기어코 결산을 해야 할 몸이기에 싸우지 않을수 없는거요. 바로 그 왜놈들이 나의 아버지도 죽였소, 저 임오년 군란때…》
백산이 눈을 번뜩이며 어딘가 먼 남쪽하늘을 바라보았다. 뼈도 굳기 전에 여기저기를 헤매이며 떠돌이로 산 생활을 말로 다 어떻게 표현하랴. 그는 아무 설명도 없이 단 몇마디로 대신했다. 모든것이 왜놈을 비롯한 외세가 판을 치게 만든탓이라고 했다. 그것이 미영에게는 다 리해되지 않고 아름차기는 하였지만 대신 백산을 더 진중하게 대하게 하였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작정이예요. 계속 떠돌으실터인가요?》
그것이 또 한번 백산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었다.
《말하지 않았소, 왜놈들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그다음은요. 어쨌든 끝나는 날이 있겠지요?》
《그건 나도 모르겠소, 농사를 짓든 군대에 있든. 실은 군대에 그냥 있고싶으나 한생을 병졸로만 살수 없기에 그렇게는 못할것 같소.》
《그건 왜요. 장수가 되면 되잖아요. 지금처럼 선봉장을 하다가 관군에 들어가 파총, 천총… 그러다가 나라의 이름있는 장수가 될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