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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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수? 우리같은 상놈이 언제 장수가 된다고 그러오. 그런 사람들은 따로 정해져있는거요.》

급기야 미영의 입이 굳어졌다. 그토록 우려하던 말이 터져나오고야말았던것이다. 량반과 상놈이라는 아무리 넘을래야 넘을수 없는 신분적격차, 그래도 이 선봉장이라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초월하는 방법이나 수단이 있지 않을가.… 미영은 바로 그 속내를 들여다보고싶었다.

《그렇다면 왜 구태여 싸움길을 택하세요. 설사 왜놈들이 쫓겨난다 해도 선봉장님께 차례질것이 무엇이 있어요. 지금껏 나라에서 먹을것을 줬어요, 입을것을 줬어요? 가는 곳마다 멸시와 천대뿐 전에도 말했듯이 가난과 무권리밖에…》

《미영아가씨!》

불시에 백산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입을 지그시 다물고 엄하게 바라보는 눈이 깊이를 알수 없는 밤바다의 설레임처럼 미영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그는 아까처럼 다시 나무에 몸을 기댔다.

《아가씨, 나라라는것을 그 어떤 재물이나 권력을 쥐여주는 은인이나 높은데로 뛰여오르기 위한 발판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라는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생의 전부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그가 누구든 나라에 고맙다고 절을 하고 복종해야만 합니다. 나에게 젖을 먹여준 어머니, 함께 뛰놀던 아이적 동무, 동냥바가지에 죽물을 떠넣어준 산골집녀인, 설한풍 휩쓰는 동지달밤에 쪽문을 열고 잠자리를 마련해준 비부 그리고 이 젊은 놈을 저들의 대장이라고 곰털옷을 만들어준 부대 의병들모두가 나라라고 하는 큰집속에 있습니다.

나라를 말할 때 절대 저 왕이나 궁중부중의 권문세가들을 먼저 생각지 마십시오. 나라를 이루는 근본은 백성이며 나라는 백성에 의하여 유지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성은 나라라고 하는 거대한 바다의 물이며 량반관리들은 그우에 떠다니는 배라고 할수 있습니다. 배는 물우를 떠다니며 제노라 할수 있지만 물은 반대로 배를 능히 뒤집어 수장할수 있습니다. 하기에 배는 물없이 살지 못하면서도 항상 물을 무서워하는것입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서로가 평등하게 저마다 제힘으로 살아갈 그런 화목하고 행복한 큰집을 바라고있지요.

미영아가씨도 저 월궁속의 옥토끼를 본적이 있겠지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아름다움이란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실천으로 이룩한 미거에 대한 후세의 칭송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상아라는 처녀가 궁중의 불사약을 훔쳐가지고 달나라에 올라가 계수나무밑에서 약절구를 찧다가 옥토끼로 변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그건, 무슨 뜻인가요? 절더러 옥토끼가 되라는거예요?》

미영이 부지중 중얼거렸다. 그는 이미 자기 정신이 아니였다. 그로서는 난생처음 듣는 말로서 잘 리해되지 않았고 더구나는 백산의 경지에 올라설수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내가 무엇이 되라고?…

만나는 그때부터 위축된 감정은 어느덧 순이 솟고 아지를 뻗쳐 이제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을 아니 인정할수 없게 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대하면 대할수록 미영은 자신의 존재를 두고 그를 마주하기가 어렵게 생각되였다.

《후세는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저 남성들과 함께 용약 전장에 뛰여들어 이름을 남긴 수많은 녀성들을 언제나 기억하고있습니다. 달속의 옥토끼처럼 아름다운 신선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월색에 취한듯 한 백산의 부드러운 눈빛, 하지만 그속에서 쏟아지는 환희와 열정은 이미 미영을 보다 새로운 세계에로 이끌고도 남음이 있었다.

《저를 선봉부대에 받아주시겠어요? 저도 총을 쏠수 있어요. 받아주지요?》

미영이 높뛰는 가슴과 들끓는 마음을 진정치 못하며 들이대였다. 그는 백산의 말마디들을 음미하기 전에 벌써 그와 함께 의병싸움에 앞장서 달리는 자신을 그려보고있었다.

백산도 그것을 리해하였다. 하기는 지금까지의 열변이 바로 그것을 위해서가 아니였던가.

설사 그가 량반집딸이고 자기와는 하등의 인연도 없는 일이지만 그는 필요한 말을 했다. 그가 누구든 왜놈과의 싸움에 한사람이라도 더 나선다면 그것은 잘하는 일인것이다.

《미영아가씨의 의향에는 무조건 찬성이요. 그러나 우리 부대가 되겠는지 하는것은 나의 권한에 속하지 않소. 우선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야 할것이구 창의대장님도 몰라선 안될것이요.》

《알아요. 저도 다 알아요.》

미영은 앞질러 대답하고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무작정 달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눈이 내리고있었다. 주먹만 한 눈송이들이 하늘에서 신비한 소식이라도 날라오는듯 눈앞으로 자꾸만 다가왔다. 그것이 방금 백산이 말하던 저 하늘의 옥토끼나 신선이 아닌지. 무형무체의 수많은 옥토끼, 신선들이 끊임없이 눈앞에서 얼른거린다.…

그렇게 하고 린석의 앞에 나타났을 때 그의 모습은 너무도 천연하고 엄격하기까지 하였다.

《큰아버지, 아버지에게 명령하세요. 큰아버진 총대장이 아니나요. 난 꼭 선봉부대로 가요.》

미영이 다시 보챘다.

린석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할새가 없었다. 그들앞으로 한무리의 의병들이 다가오고있었던것이다. 이상한것은 그중 한사람이 여럿의 부축을 받으며 끌리듯 비칠거리고있는것이였다.

《웬일이냐, 어디가 상했느냐?》

린석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래도 본인은 대답을 안하고 괴롭게 입술만 깨물고있었다. 대신 옆사람이 대답했다.

《대장님, 이 사람이 방금전에 아버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별을 받았습니다.》

아버님이라구? 그럼 빨리 집엘 가야지?》

《가질 않겠답니다, 우리가 막 떠미는데도…》

《뭐라고? 아버님이 세상을 뜨셨는데두?》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것을 느꼈는지 그제야 본인이 입을 열었다.

《대장님, 갈수 없습니다. 가선 안됩니다. 방금 싸움을 앞두고… 제천으로 쳐들어갈터인데 저마다 제갈데로 가면 싸움을 누가 합니까.…

집에는 동생도 있고 삼촌도 있습니다. 후에 가겠습니다.…》 하고는 다시 걸었다.

행렬이 지나갔다. 린석은 그 자리에 서서 오래동안 그들의 뒤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자기와 꼭같이 아니, 자기보다 더한 상가소식을 듣고도 가지 않는가. 그가 평민이래서, 자기보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모자래서라고 할수 있을가.

《큰아버지, 명령을 주세요. 꼭 그렇게 하시죠?》

그들이 보이지 않자 미영이 다시 보챘다. 앞뒤의 영문을 모르는 그는 자기 생각에만 옴해있다.

《그래, 하겠다. 그렇게 하자.》

그는 대답했다. 그리고는 우쩍 몸에 힘을 돋구며 큰길로 나섰다.

《가자, 나도 가겠다. 가야만 한다, 제천으로…》

자기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튀여나왔다. 미영이 그제야 이상한 기미를 느끼고 그를 쳐다보았다.

린석이 마주보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는것이 자기가 대장으로서 해야 할바요, 지켜야 할 도리라는것을 똑똑히 깨달았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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