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5 장
3
(1)
강진옥이가 부상당한 몸으로 행군대오에서 떨어졌다는 가슴아픈 소식을 들으시고 경황없이 말을 달려오신
경박호연안의 습한 기류가 흐르고있는 강기슭은 추웠으나
가슴속에서는 서서히 번열이 일어나고있었다. 이 눈덮인 북만등판에 홀로 떨어진 진옥이를 생각하면 애처로운 마음을 금할길이 없으시였다.
봇나무숲변두리에서는 왕청중대가 정렬하고있었다. 방금 강을 건느느라 찬물에 다리를 얼군 사람들은 몸을 덥히느라고 강기슭에서 봇나무숲변두리까지 내달리고 거기서 뒤따라올 동무들을 기다리며 발을 굴러치고있었다. 그래서 숲변두리로부터는 간단없이 웅성대는 소음이 들려왔다.
강에서는 뿌연 물김이 끝없이 피여올라 숲쪽으로 흔들리며 움직이고있었다. 지금도 강안에서는 물을 건느느라고 떠드는 소리가 울리고있었다. 그들은 좁은 강폭을 찾아 마른 발로 뛰여넘겠다고 기슭을 오락가락하다가 나중에야 발을 벗은 사람들이였다.
물김이 뽀얀 강안에서 한사람 혹은 두세사람이 작은 무리를 지어 불쑥불쑥 나타나서는 봇나무숲변두리를 향해 달려가고있었다.
한흥권중대장은 행군서렬이 집결하고있는 숲변두리의 약간 불룩한 둔덕에 올라서서 달려오는 사람들을 눈여겨 살피고있었다. 그는 이따금 무엇인가 짤막짤막하게 지적해주고있었다. 한사람은 오던 길을 돌아서서 강쪽으로 달려갔다.
행군서렬에서는 키가 큰 차일진이가 녀대원들속에 불쑥 솟아있는 모양이 별로 두드러져보였다. 그리고 그옆에는 항상 차일진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성숙이가 서있었다.
(얼마나 친근하고 정이 가는 동무들인가.)
로야령에서부터 팔도하자와 이도하자를 거쳐 륙도촌과 남호두 일경을 지나오는 먼먼 행군길에 그들은 내내 짝을 지어다니면서 고생도 함께 하고 시련도 같이 헤치며 원정대오를 따라오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이 간고하고 준엄한 생활의 진리를 언제나 똑똑히 깨닫고 이것을 혁명의 요구로, 혁명가의 의무로 내세우는 사람은 그리 많지 못하다.
두줄로 길게 늘어선 행군종대는 중대의 구분이 없이 서로 대렬을 이어붙이고 봇나무숲이 성글게 들어선 공지를 대각으로 가르며 행진해가고있었다.
중대들이 떠나간 숲가에는 강물소리가 요란하였다. 숲가로부터 강둔덕까지 수십가닥의 작은 줄기를 이루고 눈속 길들이 뻗어있었다.
반드시 와야 할 녀대원이 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대는 떠나갔고 강을 건는 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며 깐깐히 인원점검을 하던 한흥권이조차도 중대와 함께 떠나갔다. 이로써 진옥이는 아주 오지 못할 대원으로 사람들의 머리에 새겨진것인가?
《
언제보나 면도도 말끔히 하고 모자며 군복이며 행전갖춤새도 그쯘하였으며 비록 과묵하고 말이 없으나 눈망울에는 여유와 부드러움이 비끼고 말소리며 행동거지며가 다 힘차보이던 한흥권중대장이 지금은 예전의 허울조차 없이 어깨를 떨어뜨리고 서있었다.
말이 낮게 투르르 투레질을 하며 눈속에 묻힌 고삐를 끌고
한흥권은 그자리에 뿌리박힌듯 서있었다. 가슴앞으로 떨어뜨린 머리는 점점 깊이 숙어졌다.
《거기서 혼자 뭘하고 섰는거요?》
앞에서
한흥권은
《
《뭐
내처 긴 말씀을 하실것 같던
한흥권은 발이 어디에 놓이는지도 모르고 허둥지둥 걸었다. 등성이길은 미끄러웠다. 그는 몇번이나 무릎을 박고 넘어졌다.
《길을 걷기가 힘든가?》
《예, 어쩐지…》
한흥권은 어떻게 똑바른 말로 대답을 드릴수 없었다.
《나도 힘이 드오. 전에없이 맥이 빠진단말이요.》
《진옥동무가 대렬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에 나는 풍덩 무릎이 꺾이는것을 느꼈소. 나는 로야령을 넘어서서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한번도 이런적이 없었소. 나는 동무의 얼굴에서도 지금 나처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있소. 동무네 중대 대원들의 얼굴에서도 그렇게 힘들고 불안해하는 표정들이 나타나고있단말이요. 전에는 힘들어도 중대에 웃음이 있었지.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는 말이 없어지고 불안한 눈길과 울적한 표정으로 조심히 지휘관을 살피고있소. 더구나 원정부대에는 북만땅에서 새로 입대한 동무들이 수십명이나 되오. 이 어린 대원들이 혁명의 시련앞에서 겁을 먹지 않겠는지 그 일이 근심스럽소.》
길가에는 늙은 봇나무가 껍질이 툭툭 터갈라진 작은 가지들을 사방에 늘어뜨리고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