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제 5 장

2

 

원정부대는 정황의 급작스런 변동으로 밤중에 노루목촌을 떠나 행군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진옥이에게 다시없는 큰 타격으로 되지 않을수 없었다. 심한 출혈을 하고난 뒤의 진옥은 사실상 자기몸을 가누고 일어설 힘도 없었다. 그렇지만 진옥은 배낭도 총도 남들처럼 똑같이 걸머지고 행군대오에 들어섰다. 어둠속에서 바라보는 진옥은 자세도 행동거지도 다 똑똑한것 같았다.

한흥권중대장은 진옥이더러 부상병마차에 오르라고 명령하고 적의 기마대가 달려들고있는 행군종대의 뒤로 달려왔다.

그는 진옥의 부상을 찬찬히 돌봐줄 시간적여유가 없었다.

진옥은 부상병마차에 오르라는 중대장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군종대를 따라갔다.

성숙은 어떻게 하나 진옥의 총이나 배낭 하나만이라도 거들어주려고 몇번씩이나 손을 내밀었으나 그때마다 거절당하였다.

《너무 남의 눈에 띄게 그러지 말아요. 어떻게 좀 견뎌보겠어요.》

남에게 자기의 부상을 알리지 않고 행군대오에 끼여든 진옥이였으므로 그만한 정도의 각오와 결심은 이미 품고있었다.

중대는 속보로 눈덮인 등판을 횡단하고 골짜기를 내리달렸다. 가까운 좌익에서 총소리가 울리고 모닥불무지같은것이 벙끗거렸다. 총성은 점점 세차게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중대의 뒤에서 돌아치던 적의 기마대가 옆으로 가로질러 행군종대의 앞을 차단하려고 시도하므로 행군속도를 더욱 높이라는 중대장의 명령이 날아왔다.

원정대원들은 숨이 차게 내달렸다.

이런 일이 있을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진옥은 자기가 이제 더 얼마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지리라는것을 분명히 의식하였다.

그새 부상병마차는 훈춘중대쪽으로 가버리고 적들이 밀려들고있었으므로 마차를 리용할수도 없었다.

행군대오의 뒤에 있으리라고 짐작했던 한흥권중대장은 갑자기 앞으로부터 나타나 진옥을 찾았다.

진옥은 행군대오의 옆으로 뛰여나갔다.

《부상처는 어떻소. 왜 부상병마차를 타지 않았소?》

《중대장동지, 어떻게든 견뎌내겠습니다. 마차에는 부상자들외에 요긴한 물건들이 실려있어서 자리를 내기가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말이 눈속에서 쓰러질것처럼 허우적거리고…》

진옥은 미처 말을 끝낼사이가 없었다. 적의 기마대가 등성이로 밀려내리고있었다.

한흥권은 중대를 산개시키고 적에게 집중사격을 들이대는 한편 앞길을 끊기우지 않기 위해 기마대가 붙기 힘든 산경사면을 따라 행군종대를 전진시켰다.

이때 전령병이 달려와 장군님의 명령을 전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적의 자동차행군대오가 남호두 동남방계선의 도로들을 차지하고 유격대의 진군로를 막아서기전에 도로와 면한 구릉지대를 재빨리 벗어나 깊은 수림속에 종적을 감추라고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많지 않은 력량을 거느리시고 적과 부단히 전투를 벌리시면서 원정부대의 기본력량을 뽑아내기 위해 만난을 겪고계시였다. 한흥권에게는 모든 힘을 다하여 원정부대의 기본력량을 남호두 동남방향의 수림속으로 재빨리 진출시켜야 할 긴급하고도 중대한 과업이 나서게 되였다. 이것은 그대로 진옥이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간고한 시련으로 되지 않을수 없었다.

진옥은 자기가 더는 행군대오를 따라갈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다는것을 너무도 똑똑히 알고있었다.

중대장이 자기를 이끌고 자기의 시중을 들어가면서 원정부대의 행군속도를 보장할수 없다는것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였다.

조금만 어름어름하다가는 적들에게 앞길을 끊기우고 앞뒤에서 공격을 받을수 있으며 때아닌곳에서 적의 포위에도 빠질수 있었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였다. 진옥은 원정부대와 떨어져 살수 있다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어떻게 그런 모질고 처참한 생각을 순간이나마 머리에 그릴수 있단말인가? 그리하여 진옥은 자기의 가슴속에서 때없이 불쑥 떠오른 이 생각을 자신의것으로 받아들일수 없었으며 악몽과도 같은 부산한 상념이 문득 일으키고 가버린 흔적같이 얼떠름히 뒤를 돌아보게 되는것이였다.

진옥은 성숙이에게 배낭을 벗기우고 총만 멘채 헐떡거리며 달렸다. 행군속도를 높이라고 다그쳐대는 한흥권의 목소리는 대렬의 앞뒤에서 간단없이 울려왔다. 그럴 때마다 진옥은 입술을 감쳐물고 앞으로 내달렸다. 전에없이 그 목소리가 두렵고 무시무시하였으며 어디서 또다시 그 목소리가 울리지 않나 하여 신경을 도사리게 되였다.

행군종대의 뒤로부터 다그쳐온 한흥권은 진옥이옆에서 한동안 발을 맞추어 걸었다.

《진옥이, 정 힘들면 담가에 오르오. 동무들이 담가를 만들자는 의견을 한두번만 제기하지 않았소.》

《중대장동지, 저는 견뎌내겠습니다. 저는 동무들의 담가에 들려갈수는 없습니다. 모두들 맥을 빼울대로 빼운 동무들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동무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행군속도를 보장해야 하오. 그러지 않으면 장군님의 전술적의도를 관철해내지 못하오. 이보다 더 무섭고 위험한 사태는 우리에게 없소. 정 힘들면 어려워말고 요구하오.》

남이 듣지 않게 숨가쁜 말로 속삭이는 한흥권의 목소리를 듣자 진옥은 흠칫하였다. 자기로 하여 심뇌하는 한흥권의 심경이 얼마나 무겁고 복잡한것인지 그 낮게 떨리는 목소리에 력력히 배여있었다.

진옥은 말로 표현 못할 쓰라린 감정이 울컥 솟아올라 고개를 돌리고말았다. 부랴부랴 걸음을 내짚었다. 이제 다시한번 그 컴컴한 얼굴에서 불안에 떨며 갈팡거리는 눈을 쳐다본다면 필경 가슴을 헤치고 쏟아져흐르는 눈물을 막을수 없을것이였다.

전투는 련이어 벌어졌다. 적을 격퇴하고 행군종대가 수습되자 진옥이 없어진 사실이 알려졌다.

그새 중대는 몇개 집단으로 나뉘여 전투를 벌렸으므로 한흥권이나 성숙이조차도 진옥이에 대해 깐깐히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중대는 얼마동안 전투장소를 돌아가며 진옥이를 찾았다. 그러나 진옥이는 어디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투중에 의식을 잃고 눈속에 쓰러진 진옥이를 쉽사리 찾아낼수 없었던것이다.

한흥권은 진옥이를 두고 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수 없어 쩔쩔매였다. 중대가 건너온 큰길에는 적들의 자동차행군중대가 밀려내리기 시작하였으며 원정부대의 앞길을 차단하려고 선견대로 파견된 적기마대들이 얇게 얼어붙은 습지의 갈밭속에 말발통을 빠뜨려가면서 악에 받친 고함소리를 질러대고있었다.

그렇다고 진옥이를 그대로 떨구어두고야 어떻게 부대를 움직여간단말인가.

한흥권은 몇동무를 보내여 기어이 진옥이를 찾아오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있었으나 결심은 좀처럼 내리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생명을 내대는 위험한 일이였다.

대원들은 앞을 다투어 중대장에게로 뛰여와서 자기를 보내달라고 청원해나섰다. 그들중에는 차일진이도 있고 오성숙이도 있었다.

한흥권은 자기앞에 성쌓고 둘러선 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주의깊이 바라보았다. 어느 한사람 소홀히 대할수 없고 어느 누구에게도 힘에 부치는 과업을 함부로 들씌울수 없는 사랑스러운 대원들이였다.

이들은 떠나가기만 하면 자기들의 생명을 내대고 진옥이를 찾으려 할것이며 진옥이를 찾기전에는 쉽사리 돌아서지도 않을것이다. 그러면 숱한 동지들이 원정부대와 점점 멀리 떨어져서 세상없는 고생을 하게 될것이며 종당에 그들의 귀중한 생명까지 바치게 될는지 모른다. 십중팔구 바로 그렇게 되리라고 한흥권은 생각하였다.

마음같아서는 자기 혼자 대오에서 떨어져 진옥이를 찾아가고싶었다. 정말 그렇게 할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허용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그렇게는 할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할것인가? 정말 어떻게 하면 좋단말인가? …

그는 진옥의 운명을 두고 그리고 진옥이와 관련된 여러 사람의 운명을 두고 다시 또다시 생각을 거듭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그는 진옥이를 위해 숱한 동지들을 사지판에 떠밀어보낼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진옥이는 다름아닌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가? 사랑하는 녀성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동지들을 위험속에 보낸다는것은 량심과 리성을 지닌 사람으로서는 차마 할수 없는 일이였다. 일단 그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자 한흥권은 이제는 진옥이를 두고 무엇인가 더 생각하는것조차 무서운 일로 여겨졌다. 한흥권은 깊이 눈을 감고 입술을 씹으면서 가슴속에서 터져오르는 비분을 삼키려고 모지름을 썼다.

한흥권의 이 심정을 여느 사람들은 속속들이 알길이 없었다. 그래서 오성숙은 진옥이를 찾아오도록 자기를 보내달라고 거듭거듭 졸라댔다. 그때마다 말 말고 행군서렬에 들어서라는 중대장의 엄한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하여 이것은 어쩔수없이 한흥권에 대한 말할수 없는 서러운 감정을 터뜨려놓게 하였다. 오성숙은 대오에서 떨어진 진옥이를 생각하고 한흥권중대장을 원망하면서 오래도록 행군대렬에서 흐느껴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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