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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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전군에 제천읍으로 진군할데 대한 명령을 내렸다. 그것이 래일이다.

일단 명령을 떨구고나자 린석은 전보다 더 긴장해지는것을 느꼈다.

제천으로 나간다는것은 놓고보면 바라지 않는 싸움을 의미하기때문이다.

앞으로의 큰 싸움을 위해 피할수 없는 싸움이다. 제천군수 리찬익은 의병모집자체를 역적행위로 몰아붙이며 관군을 동원해서 기어코 해산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한다.

린석이 왕의 《애통소》까지 내보이며 말을 건늬였지만 자기네는 그런것을 모른다며 발광을 했다.

싸움은 불가피했다. 왕이 비밀한 지시로나마 《애통소》를 내려보낼 때에야 그 비통한 마음이 어떠했으랴. 리찬익이 비록 임금의 은혜를 입고 군수노릇을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꼬물만큼도 생각지 않고 오히려 왜놈들과 손잡고 제 리속만 챙기는 나라의 역적이다. 마땅히 힘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의병들이 벌써 그렇게 알고 싸움준비를 서둘렀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는 싸움을 한번 해보고싶은 마음에 손들이 근질근질해나는 그들이였다.

린석은 중군 리춘영, 군사장 주용규들과 함께 의병부대들을 한바퀴 돌면서 그것을 확연히 느꼈다. 그것이 린석의 마음을 한결 흡족하게 하였다.

《대장님의 전복을 한벌 마련했습니다. 래일은 입어보셔야지요?》

그들이 마을어귀에 들어섰을 때 주용규가 문득 한마디 했다. 저 임진전쟁때의 의병장들이 그러했던것처럼 의병대를 책임진 사람이면 의례히 전복을 입어야 하는것으로 알고있는 그였다.

그러나 린석은 생각이 달랐다. 전형적인 선비인 자기에게 전복이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그것이야 전문적인 군사―무반들이 입지 않는가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하기에 그는 주용규에게 롱담 절반, 진담 절반으로 어물쩍 대답해버리였다.

《나처럼 체소한 몸에 전복이 어디 어울릴데가 있겠나. 대신 싸움에는 더 용감할테니 제발 그것만은 그만두세.》

주용규도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순간에 내린 그 결심이 어떤 후과를 미치게 되겠는지 그는 미처 몰랐다.

즉 그를 본받은 대부분 의병장들이 전복이 아닌 선비차림으로 싸움을 지휘하였으며 그것은 의병투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였다. 그로 하여 의병투쟁자체가 군사명령이나 지휘체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어떤 약속이나 의무감에 의하여 진행되는듯 한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후세의 사가들이 당시 의병투쟁이 실패하게 된 중요한 원인들중의 하나가 유생의병장들의 이러한 제한성에 기인한것이라고 분석한것이 우연치 않다.

그러나 그때에는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했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래일의 제천진군을 어떻게 하면 무난히 승리에로 이끌어갈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이 몰두해있었다.

이렇게 그들이 부대를 돌고 향교에 들어서는데 누군가가 대문앞에서 달려오더니 린석의 앞에 돌덩이처럼 굴러엎드러졌다.

《아이고 나리님, 춘천에서 왔습니다. 어머님의 병세가 급하여 급히 달려오는중입니다.》

순간 린석은 가슴에 무엇이 찔려드는듯 한 아픔을 느꼈다. 어머님의 병세가 위급해졌구나 하는 자각에서였다.

《음, 자네인가. 일어나서 자상히 말해보라구. 어머님의 병세가 어떻게 되였다구?》

그가 엎드린 사람을 일으키며 말했다. 곁집에 사는 전호다. 하면서도 평시에는 말 한마디 해본적이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달려온것을 보면 어머님의 병이 심상치 않다는것을 말해준다.

《병세가 급합니다. 마나님이 저를 보내시면서 나리님을 꼭 모셔오라고 하였습니다.》

《자네가 어머님을 직접 보았나?》

《보지는 못했지만 마님이 말씀하시기를 만약 인차 못 오시면 로모님을 다시 보지 못할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으흠? 어머니가 그렇게 되였단 말인가. 그런즉 안해가…)

그의 애타하는 모습이 눈에 안겨왔다. 보다는 이제 돌아서지 않으면 어머니를 다시 볼수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허비였다.

어머님을 빨리 찾아뵈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합시다. 사람을 딸려보내겠습니다.》

리춘영과 주용규들이 보챘다. 그것이 린석의 마음을 더 조급하게 했다.

바로 그때 등뒤에 미영이 나타났다.

《큰아버지가 여기 계셨군요. 온 동넬 찾아다녔네.》

그가 말하고 옆에 팔을 끼고 붙어섰다.

《큰아버지, 래일 군사들이 제천으로 들어간다지요. 그때 저도 따라가겠어요. 받아주지요?》

미영이 미처 대답을 못하고 멍청히 서있는 린석을 보자 안으로 잡아끌었다.

《어디가 편찮으세요? 안으로 들어가시자요.》

옆사람들이 당황하여 눈짓을 했으나 그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너의 아버지가 있지 않느냐. 아버지에게 물어서 결심해라. 너야 집살림을 해야지?》

춘영이 대신 대답했다. 그러나 미영은 그쯤한 대답에는 미리 준비가 되여있었다.

《아버진 걱정마세요. 집살림도 맡아할 사람이 있어요.》

그래도 대답이 없는것을 본 미영은 금시 뾰로통해졌다.

《큰아버지, 제가 금방 선봉장님을 만났댔어요. 지금껏 그에 대해서 제게 말을 안해줬지요? 전에는 자주 해주시더니…》

《네가 백산선봉장을 만났단 말이냐?》

린석이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끌리였다. 그로서도 결코 모른다고 할수 없는 생활이 그들과 이어져있었던것이다.

《만났어요. 그이가 뭐랬는지 알아요? 저를 자기 부대에 오라는거예요. 뭐 선봉부대라나?》

《그럼 갈것이지…》

《조건부가 있대요. 대장님의 승인을 받아오라는거예요.》

《대장이 무슨 상관이냐. 너의 아버지이겠지?》

미영은 소리내여 웃었다. 그 말이 신통히 맞았던것이다. 백산이 그를 자기 부대에 받아주되 꼭 아버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것이였다.

미영이 그것이 안될것 같아 먼저 린석에게 찔렀는데 결과는 같다.

역시 아버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것이다.

그러나 미영은 두렵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도 의병이 되겠다는 결심이 확고했던것이다. 머리속에는 방금전 김백산을 만났던 기쁨이 한여름날의 열풍처럼 온몸에 떠돌고있었다.…

먼저 어제 보았던 애어린 상투쟁이가 미영을 찾아왔었다.

《우리 선봉장님이 미영아가씨를 만나겠대. 저 강변으로 나오라는거야!》

그때 미영은 자기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떠오르는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부터 선봉장이 자기를 잊지 않고있었다는 감격으로 설레이던 그였다.

그는 달려갔다. 만나기만 하면 보내준 편지에 대하여, 아버지에게서 빼앗았던 말에 대하여 또 보은의 속리산속에서 류린석일행을 만났던 일들에 대하여 마음껏 묻고 따지며 널어놓을 말마디들이 벌써부터 쏟아져나오고있었다.

그러나 백산을 보는 순간 미영은 그만 멀리에서부터 몸이 굳어지고말았다. 먼저 강변에 나와 기다리고있는 백산이 그가 아닌 전혀 딴 사람이였던것이다.

그는 우죽뿌죽한 바위들이 키높이 솟고 쇠스래, 참나무, 오리나무들이 무성한 사이에 서있었다.

몸에는 진한 밤색곰털외투가 무릎까지 드리워있고 머리에도 역시 같은 색의 운두높은 모자가 씌워져있었다. 발에는 무관들이 신는 새까만 혜자가 발목까지 채워졌는데 어깨에는 지난해 그를 그렇게도 놀래웠던 신식보총이 삐죽 돋아나있었다.

한순간 미영은 자기가 상상했던 전라도총각이 아니라 전혀 딴 사람이라 생각했고 다음은 설사 그라고 해도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우연히 만난 사람처럼 생각되였다. 그리하여 멀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몸을 비틀며 올라간 소나무뒤에 숨어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쿵당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느라 애쓰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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