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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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혜정은 가슴가득히 매달리는 소중한 추억을 안고 이제 무수평으로 간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혜정이는 이곳, 장군님을 모시고있는 이 근거지땅을 생각할것이다.

혜정은 박현숙이 꾸려준 자그마한 보퉁이를 들고 문밖에 나섰다. 리호검로인이 부엌문 열리는 소리를 듣자 한번 고개를 돌려보고나서 슬적슬적 걸음을 옮겨놓으며 앞서 걸어나갔다.

혜정이와 박현숙은 유격대 중대지휘부 병실앞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갔다. 현당과 현정부에는 어제 들려 인사를 하였으니 이제 최춘국이만 만나보면 곧장 무수평으로 나갈판이다.

혜정은 리호검로인이 쌍하진까지 바래워주겠다고 나섰으나 늙으신 몸에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쌍하진까지는 로인이 아니래도 리유천이 동행한다. 리유천은 어제 최춘국이로부터 천교령(삼차구)일대에 나가 소부대활동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니 쌍하진까지는 그이와 함께 가고 거기서 리유천은 삼차구방향으로, 혜정은 대두천쪽으로 갈라지면 되는것이다.

유격대병실앞에는 혜옥이가 한발먼저 와있었다. 병실출입문옆에는 행군준비를 갖춘 배낭이 하나 놓여있었다. 혜옥은 배낭옆에 앉아 멜끈을 풀어 다시 고쳐매면서 작대기를 받쳐놓은 출입문안을 조심조심 들여다보고있었다. 병실안에 리유천이 와있는 모양이였다. 혜옥은 아침부터 아저씨 배낭준비를 하느라고 야단치며 돌아갔다. 방안에서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들이 뒤범벅이 되여 문밖으로 흘러나왔다. 혜옥은 방안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고앉아 혜정이가 다가오는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이따금 혜옥은 옷고름을 들어 눈물을 씻었다.

《혜옥이, 너 왜 그러니?》

혜정은 까닭모를 불안이 엄습하면서 후두둑 가슴이 높뛰였다.

《아저씨가…》

혜옥은 말끝을 채 마무리지 못하고 두손에 얼굴을 묻더니 어깨를 떨며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순간 혜정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숙반사람들이 기어이 리유천을 묶어가려고 소동을 일으킨 모양이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숙반에서는 리유천이와 혜정이를 검속하려고 최춘국에게 은근히 압력을 가하고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혜옥아, 아저씨 배낭을 내게 맡기구 너는 집에 가있거라. 사람들이 나다니는 출입문에서 이러고있으면 어쩌니?》

혜정은 용기를 내여 리유천의 배낭을 가슴에 품어안았다. 식량수송문제라면 전적으로 자기가 몸을 내대고 리유천을 막을 자신이 있었다.

혜정은 박현숙이 꾸려준 배낭을 등에 지고 리유천의 배낭을 가슴에 안은채 중대병실로 대담히 들어섰다. 박현숙이도 혜정의 뒤로 바삐 따라들어갔다.

맨처음 혜정의 눈에 띠운 사람은 백하일이였다. 그는 번쩍거리는 장화를 높직이 들었다놓으면서 방안의 이쪽끝에서 저쪽끝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엄한 목소리로 기염을 토하고있었다.

현정부회장인 강시중이가 백하일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기분을 맞춰주고있었다.

최춘국은 언제보나 사람들의 눈에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자기의 조용한 존재를 지금도 그렇게 조용히 보존할 심산인지 저쪽 구석진 벽밑에 붙여놓은 조그마한 통나무책상을 마주하고 소리없이 앉아있었다. 그의 옆으로 두어발자국 떨어져 고개를 가슴언저리까지 푹 떨구어버린 리유천이가 간신히 어깨숨을 톺아올리며 서있고 그의 앞뒤에 세사람의 숙반대원들이 적당히 자리잡고 서있었다. 그들중의 한 사람은 총을 꼬나들고 다른 한사람은 포승줄을 풀어들었으며 세번째 사람은 커다란 지하족을 들고있었다. 그 마지막 사람은 현의 숙반대원들을 인솔하는 장지연이였다. 그의 옆에는 유격구에서 정치리론수준이 높고 똑똑하기로 소문이 난 유격대원 윤병도가 만약의 경우에 대처할 타산으로 보병총을 세워잡고있었다.

이들 말고 방안에는 또 한사람이 류달리 눈에 두드러지게 의자를 당겨놓고 손을 불에 쪼이면서 앉아있었는데 그는 현당서기 허건이였다.

백하일이가 리유천을 구속해야 할 근거를 장시간 렬거하고나면 현당서기가 한마디씩 응원하듯 끼워받쳤다. 그들은 하던 말을 곱씹고 다시금 되풀이하였다. 최춘국은 입을 다물고 기척없이 앉아있다가는 그들이 몇고패 그렇게 되풀이하고난 다음에야 한마디씩 응수하였다.

한마디로 백하일은 리유천의 죄행이 명백하므로 잡아가겠다는것이고 최춘국은 숙반에서 묶어갈만한 근거가 아직 똑똑치 않으므로 보내줄수 없다는것이였다.

론쟁은 시간을 따라 치렬해졌다.

백하일은 최춘국을 향해 손가락을 꼿꼿이 펴들고 위혁적으로 흔들어대면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동무는 원칙이 없소. 계급성이 결여되여있고 혁명성도 종이장처럼 얇아졌소. 그래가지고야 어떻게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며 부르죠아지들과 격투하며 대렬내의 반동파들과 싸우며 숨은 밀정들을 적발하며 평화주의에 타격을 가하며 우경투항주의를 식별하며 통털어 혁명의 성새를 보위할수 있겠소? 말해보오. 혁명의 량심으로 말해보오!》

최춘국은 그만 지쳐버린듯 이따금 한숨만 내쉬며 앉아있었다.

현당서기도 이제는 백하일의 주장을 한모양으로 두둔하기가 멋적은듯 부석부석해진 눈두덩을 손으로 조용히 마싸지하면서 이 불꽃튀는 론쟁이 어떻게 끝을 맺으려나 하는 한가지 불안과 의혹에만 잠겨있었다.

《현당서기동무는 왜 그러고있소. 혁명의 원칙을 놓고 생사를 가르고있는판인데 당신이 왜 그러구 앉아있는가말이요. 나는 이 동무를 직권으로 누르려는게 아니고 적당한 론리로 설득시키려 하는데 당서기가 벌써 맥이 빠져하면 되는가?》

《그런데 이래가지고야 뭘 어떻게 끝장을 보겠소. 나는 리유천의 구속문제를 놓고 군중토의를 해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하오. 인민의 지도자들은 언제나 다수의 의견을 존중히 여기지 않을수 없었소. 다수-이것은 곧 힘이므로 혁명지도자들은 군중의 의사와 감정을 귀중시했던거요. 레닌의 당사업원리나 군중지도원칙에는 언제나 이것이 중시되여있었소.》

지금까지 말이 없던 강시중이가 끼여들며 날카롭게 손바닥을 모로 세워 허공을 내리쳤다.

《아무리 다수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레닌은 언제나 다수의 포로가 된것은 아니였소. 로동계급의 혁명력사에는 다수의 의견 또는 당의 일시적리익이 프로레타리아트의 근본적리익에 저촉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었소. 그런 경우에 레닌은 서슴지 않고 단호히 당내 다수를 반대해서 원칙적립장에 섰던거요. 레닌에게는 오직 하나의 립장만이 기준으로 되여있었소.

〈원칙적인 정책이 유일하게 옳은 정책이다〉 레닌은 바로 이러한 일념에서 문자그대로 거의 혼자서 전체를 반대해나서는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소.

다수의 의견을 참작해보자고?

다수란 도대체 뭐요? 레닌은 제2국제당이 자본앞에 자기의 기발을 내리우고 쁠레하노브, 카우츠끼, 게드와 같은 사람들이 평화주의 혹은 기회주의에 기울어지고있을 때에도 소수의 지도자로 싸웠으며 당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임이 초래되던 1909년, 1911년 시기에도 거의 혼자서 지하운동청산파들과 싸웠던거요.

〈원칙적인 정책이 유일하게 옳은 정책이다〉 바로 이 정식화에 의하여 레닌은 프로레타리아트의 우수한 분자들을 혁명적 맑스주의의 편으로 쟁취하면서 난공불락의 부르죠아진지를 돌격하여 전취하였고 혁명의 새 계급진지를 철저히 고수해나갔소. 우리 역시 이럴것이요. 다수가 다 뭔가. 오늘은 비록 우리가 소수일지는 몰라도 래일은 우리가 다수의 지지를 받고 나서게 될거요. 백하일동지, 저는 주저 말고 리유천이를 체포하는게 옳다고 봅니다.》

백하일은 감격에 눈을 슴벅슴벅하면서 흥분한 얼굴을 들고 고래고래 웨쳤다.

《뭣들 하고있소. 회장동무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즉시 체포하오.》

숙반대원들이 리유천의 앞으로 다가갔다. 리유천은 한층 더 고개를 깊이 숙이고 묵묵히 두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최춘국이 주먹으로 책상을 탕! 치며 뛰여일어났다.

《리유천동무, 동무는 도대체 어디다 함부로 손을 내미는거요. 동무는 소부대를 이끌고 적구에 나가 싸워야 할 사람이요. 이건 사령관동지께서 동무에게 주신 명령이요. 그런데 원쑤를 쳐야 할 그 손에 포승줄을 걸고 어떻게 하자는건가? 사령관동지께서 근거지에 돌아오시여 소부대활동정형을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올리겠소. 손목에 포승줄을 걸고 숙반창고에 앉아있었다고 하겠는가? 장군님의 혁명전사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이께서 주신 임무를 목숨 걸고 수행했소.

어쩌면 동무가 이럴수 있소. 누가 뭐라든 동무의 심장이 뛰고있고 두팔다리가 성해있는이상에야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임무를 관철할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하루이틀 살아온 사람도 아닌 동무가 이렇게 신념이 없고 투지가 얇아질줄은 몰랐소. 리유천동무, 이래서는 안되오. 어째서 내가 동무를 숙반에 쉽게 내주지 못하는가? 그것은 내가 사령관동지앞에서 동무를 책임진 지휘관이기때문이요. 사령관동지께서 동무에게 주신 전투임무를 관철시켜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기때문이요. 그래서 내가 동무를 내주지 못한단말이요. 사령관동지께서…

최춘국은 스스로 격정이 북받치고 목이 메여 잠간 말을 멈추었다. 리유천은 사시나무처럼 어깨를 떨며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혜정이며 박현숙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숙반대원들도 고개를 숙이고 현당서기조차 눈을 꾹 감고 앉아있었다.

백하일이만이 흥흥 코소리를 내면서 방안을 뚜벅뚜벅 거닐었다.

최춘국은 말을 이었다.

사령관동지께서 돌아오시여 말씀이 계시기전에는 내가 동무를 누구에게도 내여줄 권한이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고 소부대를 인솔하고 적구로 떠나오. 이에 대한 책임은 사령관동지앞에서 동무의 정치지도원인 내가 지게 되오.

우리에게는 신념이라는것이 있지 않소? 우리는 남들이 맑스주의고전을 탐독하며 리론의 상상봉을 점령하고있을 때에 장군님을 모시고 일찍 혁명전에 나섰소. 글을 아는 사람도 글을 모르는 사람도 리론이 있는 사람도 리론이 없는 사람도 혁명경력이 오랜 사람도 혁명경력이 적은 사람도 모두 함께 떨쳐나 장군님을 옹위하고 싸우면서 한가지 확고한 신념을 배웠던거요.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장군님을 모시고 싸우는 이 길이 조국을 광복하는 길이고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가는 길이며 장군님을 모시고 싸우느라면 세상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진짜혁명가가 된다는것이요. 이것이 우리가 체득한 우리 식의 혁명원리요. 이 강력하고 굳센 신념을 우리에게서 뽑아낼 힘이 이 세상에 있는가? 없소! 절대로 없단말이요. 그런데 동무가 도대체 어디에 손을 내밀었소. 혁명가가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일은 열번도 할수 있는 일이지만 한번 받아안은 신념은 버리지 못하는 법이요. 동무가 이러고있다는걸 장군님께서 아신다면…》

최춘국은 목메여 더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정치지도원동지!》

리유천은 앞에 막아선 숙반대원을 활 밀어젖히며 최춘국의 앞으로 뛰여가 풍덩 엎어졌다.

혜정은 두손으로 얼굴을 싸안고 밖으로 뛰여나왔다. 뒤따라 달려나온 박현숙이 혜정의 어깨를 와락 그러안았다.

《혜정동무.》

《현숙동무.》

그들은 한순간 팔을 뻗쳐 서로의 목을 그러안고 어린애마냥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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