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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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병자가 귀찮다는듯 용을 썼다.

《왜놈장교가 나를 쐈습니다. 와다나베라고 하는 대위놈이… 그놈의 옆에 조선량반 하나가 서서… 글공부나 한놈이겠죠. 나를 손가락질하며 왜말로 지껄이더니… 왜놈의 턱주가리밑에 붙어사는 더러운 놈… 어서 가라는데…》

《갑시다. 이거야 어디…》

복한이 참지 못하고 린석을 잡아당겼다. 그는 병자에게서 물러서면서 헤쳐진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앞서가는 중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인지 사유를 알아보았다.

일인즉 농민군의 마지막싸움인 론산격전에서 생긴 일이였다. 그때 김백산의 부대는 전봉준을 비롯한 지휘부성원들을 빼돌리기 위한 유인전투를 한바탕 벌리고 다시 산기슭에 붙어서 매복전에 들어갔다. 백산이 화승총으로 와다나베를 겨누었다. 공주싸움때부터 자기를 지꿎게 뒤쫓는 와다나베였다. 그놈을 족치기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신식보총이면 더 좋겠지만 그때에는 이미 탄알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와다나베가 자기앞으로 바투바투 다가왔다. 화승총이라고 얕잡아본것이 분명하였다. 놈은 이미 조성조문안에 들었다. 그런데 심지가 타는 쑥냄새만 진하게 풍길뿐 화약이 튕기지 않는다. 바로 그 순간 와다나베가 자기를 향하여 권총사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하나, 둘, 셋, 넷… 련속 땅땅거리는 소리와 함께 탄알이 주위에서 떨어지는 소리를 그는 분명 들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듣지 못했다.

무엇인가 둔탁한것이 어깨를 세차게 때리더니 갑자기 눈앞이 새까매지며 맥이 빠졌던것이다.…

마침내 일행이 절에 도착하였다. 사전에 련계가 되여있었던듯 주지가 달려나와 그들을 판도방으로 안내하고 후한 손님접대를 하였다.

반대로 뒤따라간 린석이네들은 뒤구석의 쓰지도 않던 찬방으로 안내했다.

《리해해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왜놈과 싸우다 부상당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록두장군을 구원해냈지요. 나라가 아끼고 돌봐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린석은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불교는 유교와 같지 않고 동학과도 다르다. 그럼에도 왜놈과 싸운다는 의미에서 그들을 하나의 뉴대로 이어주고있는것이다. 하다면 유교성리학자들인 자기네는 어떻게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저녁이 끝나자 린석이네들은 다시 백산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그들을 차겁게 대했다.

《왜 또 따라왔습니까, 무엇이 모자라서.…》

《총각, 용서하게. 아까는 의식도 없는 사람에게 욕까지 해서 안됐네.》

《무엇이 없다구요? 내가 당신들을 몰라보았습니까. 나같은 사람은 아무리 멀쩡해도 다 제정신이 없어보이는가요?》

《잘못되였네. 그래서 다시 찾아오지 않았나.》

《필요없습니다. 이제는 모든것이 끝났습니다. 다시는 량반님네들과 마주서지 않겠습니다. 량반집 따님네와도… 그러니 걱정마시고 돌아가십시오.》

승우가 흠칫 몸을 떨었다. 하다가 린석이 손을 꼭 잡는 바람에 그자리에 눌러앉았다.

《우린 전봉준대장을 만나자고 하네. 그이가 왜놈과 싸운 이야기를 듣자고 말이야. 어디에 가면 만날수 있겠나?》

《왜놈과 싸운다구요? 당신네 량반님네들이?》

그는 무슨 격한 일이라도 있는듯 흥 코방귀를 끼고는 안깐힘을 쓰며 자리에 일어나앉았다.

《이렇게도 모질게 못질을 하겠습니까. 함께 싸우자고 할 때는 서둘러 쫓아내더니 이제 다 망하게 되니 같이 싸우자구요? 바로 그렇게 하는것이 량반님네들이 하는 일입니까?》

《갑시다. 여기 있댔자 모욕밖에 당할게 있습니까.》

김복한과 안승우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김백산이 더욱 격했다.

《가십시오. 누가 오라고 해서 왔습니까. 어서 가서 길지 않은 일생을 도덕이나 체면을 지키며 편안히 지내십시오. 그렇게 하는것이 만세불멸의 나라에는 죄로 될지언정 저 하나를 위해서는 상책으로 될것입니다. 지금 서울에서 제노라고 하는 고관대작으로부터 하향의 하관말직에 이르는 많은 량반님네들이 왜적에게 붙어 나라를 팔며 제 살궁리를 하고있는데 이러한 대세의 추이를 따르지 못하는것도 지나가고나면 후회가 됩니다.》

《총각, 거듭 말하지만 우리도 왜놈과 싸우자고 하는 사람들이요. 곡해하지 마오.》

《싸운다구요? 당신들이 왜놈들과… 좋습니다. 한번 싸워보십시오.

그렇게 하다가 왜놈들이란 어떤 놈들인지 알게 될 때… 그때는 그만두어도 됩니다. 공적은 없고 형식만 취해도 그자체가 공적으로 될테니까요. 거기야 량반님들이 아닙니까.》

《총각이 량반들을 그냥 모욕할텐가?》

복한이 불시에 소리쳤다. 그러나 총각은 아무 감각도 없는 사람처럼 제 말만 계속했다.

《그렇습니다. 같은 싸움을 해도 우리한테는 죄가 되고 량반님들한테는 공적으로 될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놈들에게 쫓기고 나라에서도 쫓기고… 왜 백성들은 이래도저래도 죽어야만 합니까. 아, 록두장군, 창의대장님, 다시 일어나십시오. 기어이 다시 일어납시다.…》

그는 이렇게 웨치며 방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그리고는 의식을 잃은채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린석이 그를 다시 찾아갔을 때 그는 병이 심하다며 누구도 만나주지 않았다. 린석은 그것이 좀 괘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가지고다니던 려비와 쌀, 음식감사리 얼마만 남겨놓고는 전부 절에 맡겨놓았다. 총각의 병치료에 보태라는것이였다.

그렇게 하고 떠나오는 동안 복한이와 승우네들은 노상 그를 욕했다.

역시 도덕이 없고 례의도 모르는 놈이라는것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안 가서 사그라들고말았다. 어쨌든 다시 그를 만나지 않게 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린석의 머리속에는 그 총각에 대한 인상이 떠나지 않았다.

감때가 사납고 막 자란 사람같아도 겁을 모르고 담차며 결패가 있는 그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얼핏얼핏 마구 던지는것 같은 말속에도 그대로의 뜻과 주장이 있는것을 보면 아는것도 많은듯 하다. 저런 사람이 자기에게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몇십리 산속을 걷는 동안 시꺼먼 먹장구름이 밀려오며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곳 태백산줄기들은 산세가 험하고 골이 깊어 눈이 많이 내리고 내리는족족 쌓여서 길이 자주 메이군 한다. 이제 또 얼마나 내릴것인지…

갑자기 말이 멈춰섰다. 솜뭉치같은 눈들이 쏟아붓듯 앞을 가리웠는데 시꺼먼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길을 막고있었다.

《찍소리 말엇, 반항하면 쏴갈길테다!》

몇사람이 말고삐부터 빼앗아쥐고 소리쳤다. 또 몇사람은 뒤말에 싣고오던 부담짝들을 뒤지고있었다. 그 부담짝이래야 벌써 시일이 오래 지난데다 보은사에 다 떨군 뒤여서 보잘것이 없었다. 그런데 강도배들은 그것마저 다 빼앗아가지고는 어서 가라고 길을 비켜주었다.

자연 싸움이 일게 되였다. 이제 청주까지만 가자고 해도 이삼일은 걸리겠는데 푼전 한잎 없이 그것도 말 다섯마리를 다 떼워바치고 어떻게 간단 말인가. 아무리 못사는 량반이라 해도 말 한마리에 구종 하나는 달고다녀야 량반의 체면을 세우던 세월이다.

《어서 그냥 지나가. 우린 왜놈과 싸우는 군대란 말이야. 잘사는 량반들같은데 그만한것도 선사 못하겠다는겐가?》

《못하겠다. 너희들이 왜놈과 싸울것 같으면 큰길에 나와서 정정당당하게 싸울것이지 왜 이런 산속에서 강도질이냐?》

그들의 말에 복한이 맞섰다. 그러자 옆에서 갑자기 땅 하는 총소리가 들리고 복한은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것이 더욱 악을 받치게 해서 복한이 달려와 악악 고아대는데 급한 말발굽소리가 들리더니 쏟아지는 눈발속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웬 총성이요? 대장님이 알아보라고 해서 왔소.》

저들사이에 몇마디 말들이 오고가더니 그 사람이 산굽이로 사라졌다. 그러나 잠시후 다시 나타나서는 그들전원을 대장님이 있다는 곳으로 데리고갔다. 그런데 산굽이를 채 돌아서기도 전에 누군가 급히 마주 달려왔다. 둥글모자를 쓰고 누런색구리단추가 달린 군용외투를 입은 장교차림의…

《의암선생이 아닙니까. 그럴줄 짐작했습니다.》

그가 소리치듯 말했다.

린석은 영문을 알수 없었다. 이런 산속에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절 모르겠습니까. 서상렬입니다. 그때 서울에서 만났던 훈련대중대장…》

순간 린석은 두팔을 힘껏 벌리고 그를 그러안았다.

《으응? 그렇군. 자네가 맞아, 자네가…》

《이렇게 다시 만났군요. 어서 가십시다.》 하면서 앞장서는데 얼마 안 가서 꽤 큰 마을을 끼고앉은 골짜기가 나타났다. 상렬이 그들을 어느 한 집으로 안내했다.

《그때 선생님과 한 약속대로 우리는 반변을 했습니다. 저의 군사 백수십명전원이 성을 뛰쳐나와 농민군과 함께 싸웠는데 때는 늦었습니다. 대부분이 전사하고 지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설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의병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의병을? 그게 확실한 소린가?》

린석이 깜짝 놀랐다. 자기가 지금까지 애쓰다가 하지 못한 일을 그가 하겠다고 하기때문이였다. 그의 애국지심에 공감이 갔다. 그러나 그 마음을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밤새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그 과정에 린석은 자기가 의병을 조직했던 이야기와 함께 왕이 내려보낸 어지에 대해서도 터놓았다. 지금 형편에서는 의병투쟁이 불가능하다는것이였다.

그러나 그때에도 서상렬은 립장이 단호했다.

《아닙니다. 그 어지라는것은 왕이 아니라 민중전의 말입니다. 바로 그 암닭이 울어댔을것입니다. 이제 더는 그 말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기어코 의병을 일으켜 왜놈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상렬이 더더욱 격하여 주먹을 흔들다가 갑자기 어조를 바꾸었다.

《선생님, 이번 공주격전때 왜군대장이 누구였는지 압니까. 그때 호위대장이였던 이다찌중좌놈이였습니다. 나는 그놈이 우리 백성들을 향하여 대포를 쏘라고 명령하는것을 똑바로 보았습니다. 그런 놈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우리 겨레가 망하고맙니다.》

《음흠, 이다찌중좌 그놈이…》

린석이 주먹을 불끈 그러쥐였다. 그때 자기를 향해 권총을 빼들던 장면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바로 그놈이 저 공주대격전의 참상을 빚어냈다니 그놈에 대한 격분이 더욱 솟구쳤다. 그럼에도 이제 다시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수 없게 하였다.

그러는데 상렬이 불의에 그의 손을 잡고 계속하였다.

《선생님, 이제 다시 임금의 어지를 청하려면 민중전을 만나보십시오. 그렇게 하는것이 총리대신을 만나는것보다 더 힘있을것입니다.》

린석은 의아했다. 방금전까지 《암닭》이라고 욕하며 그 말을 따라서는 안된다고 하던 그가 아닌가.

하다가 그의 숙어진 눈빛을 보고 인차 수긍했다. 의병을 일으키자면 자기도 어차피 그 길을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세였던것이다.

그것이 은연중 린석을 또 한번 분발시켰다. 지어 그때 서울에서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하는 후회까지 따랐다. 그때 했더라면 공주격전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싸움의 국면도 다르게 되였을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것은 너무도 급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여서 옳은지 그른지 또 가능하겠는지 불가능하겠는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민비를 만나 기어이 자기 요구를 관철해보겠다는 욕망을 금할수 없었다.

민비자신도 조선사람인데야 왜 일본놈을 증오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다시 서울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하여 민비를 만나보게 된것이 린석에게는 일생의 한이 될만큼 후회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상렬을 탓할것은 못된다. 반대로 그로 하여 나라의 실정을 더 잘 알게 되였고 자기가 할바가 무엇이겠는지를 심사숙고하게 되였다.

바로 그렇게 알게 된 서상렬이 자기를 찾아왔으니 이 아니 반가우랴. 그는 다시한번 그를 뜨겁게 포옹하고 제장들과 함께 손을 잡고 힘껏 싸울것을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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