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8

(2)

 

그런 녀자에게 과연 의병 같은것이 안중에나 있었겠는가. 분명 왕이 입도 벌리기 전에 옆에서 밀막아버렸을것이다.

이렇게 하여 린석은 애써 마련했던 서울길을 돌려 다시 춘천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집에 오래 있지 못했다.

마침내 농민군에 의해 터졌던 공주대격전의 참상이 그곳까지 전해졌던것이다.

수만명의 농민군이 공주와 그 주변의 산야에 쓰러졌다. 왜놈들은 그 대부분이 곤봉이나 죽창, 농쟁기밖에 든것이 없는 농민군을 향하여 대포와 기관총, 신식보총들로 무자비하게 휘갈겨댔다. 그리하여 서울로 진격하여 왜놈들의 소굴을 헐어버리고 매국역적들을 쳐부시자고 하던 그들의 념원은 초야에 널린 시체로 굳어지고말았다.

소식을 들은 린석은 또다시 집을 떠났다. 제천과 충주에 들려 안승우, 김복한이들과 공주에 가서 조선사람들에 대한 일제의 대참살만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때는 벌써 12월도 중순이 지난 겨울이였다. 같이 떠난 승우와 복한이들은 추위에 떨며 자기네 선생이 공연한 수고를 한다는 투정도 하였다. 그러나 공주를 가까이하면서부터 그런 말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점차 의분과 분노의 소리가 높아갔다.

처음 그들이 맞다들린것은 삶의 터전을 잃고 어디론가 꾸역꾸역 떠나가는 류랑민들이였다. 다음은 포화에 불타고 무너진 집들, 그다음은 여기저기 쓰러진 농군들…

시체들은 일제히 공주성을 향하여, 때로는 한둘씩, 때로는 몇명씩 덧쌓인채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공주대격전의 격렬한 싸움장면을 련상케 하는 광경이였다. 린석의 눈에 그때의 장면이 눈에 보이듯 떠올랐다.…

북소리, 바라소리, 호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가운데 수만의 농군들이 성을 향하여 달려가고있다. 손에는 창칼과 몽둥이밖에 든것이 없다. 그때 돌연 요란한 총성과 폭음이 터져오르며 사람들이 쓰러진다. 그래도 사람들은 악악 소리를 웨치며 달려가고있다. 불과 며칠사이에 40~50차례나 공격을 들이댔다.…

문득 발부리에 불에 타다남은 종이장 하나가 눈에 띄였다. 린석이 그것을 집어들었다.

순간 손이 떨렸다. 전봉준이 격전전야에 정부군에 보낸 격문이였다.

《… 일본과 조선은 비록 린방국이나 력대로 내려오며 적국이였다.

이에 우리 농민군이 군사를 일으켜 왜적을 소멸하고 친일파들을 제어하려 하는데 당신들 병정과 장교들이 의리를 생각지 않고 조선사람끼리 싸우려고 하니 인명이 상하야 어찌 불쌍타 하지 않겠는가.

비록 뜻과 리념이 같지 않다 하더라도 척왜척양의 정신이야 어디로 가겠는가.…

충군우국의 마음이 있거든 우리 편으로 돌아와 같이 척왜척양을 함으로써 조선이 일본의것으로 되지 않게 마음을 합하여 큰일을 이룩하자.…》

격문을 읽고난 그들은 비분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그것은 너무도 응당하고 당연한 요구였다. 조선군대가 왜 일본놈과 한편이 되여 제사람들을 죽여야 한단 말인가.

세월이 흐르면 만약 그때 정부군이 전봉준의 말대로 총부리를 돌려 농민군과 함께 왜놈들을 공격했더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력사가 창조되였으리라는 명백한 결론을 찾게 될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류린석이조차 전봉준의 생각이 옳았다고는 보면서도 당시 시국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것인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김복한이 나서서 한마디 했다.

《선생님, 전봉준대장님을 만나봅시다. 그를 만나면 앞으로 싸움에서 참고로 될 귀중한 조언을 들을수도 있을것입니다.》

뜻밖의 이 한마디가 그들의 행로에 변경을 가져오게 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린석이 지금껏 전봉준을 긍정하면서도 만나볼 생각을 못했는데 복한이 그것을 튕겨준것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행로를 바꾸어 남쪽으로 향했다. 전봉준이 공주대격전이후 전라도방면으로 다시 내려갔다는 소문을 들은때문이였다.

론산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서 왜놈들과 또 한차례 치렬한 격전이 있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러나 전봉준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는수없이 돌아섰다. 이번에는 대전을 거쳐 옥천, 보은으로 하여 청주, 충주로 돌아올 예정이였다. 그런데 예견치 않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오래 계속된 행군으로 지칠대로 지쳐 옥천을 지나 보은으로 향할 때였다. 어느 산골에 이르니 앞에 몇십명은 잘될 장정들이 걸어가고있었다. 이상한것은 그들이 흩어지지 않고 무엇에 매달린듯 뭉쳐있으며 걸음이 몹시 굼뜬것이였다. 앞에는 중까지 한명 있어 행렬을 인도하고있었다. 천천히 걷는 말들도 인차 행렬을 따라잡았다.

그러자 그들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렸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간다

 

소리는 어딘가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것처럼 웅글고 느릿느릿했으며 분명치 않았다. 몇번이나 반복해서야 소리를 가려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전혀 알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지금 그들이 어떤 병자를 들것에 싣고가고있으며 그가 거듭 선창을 떼는데 따라 노래를 반복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따라앞서자니 딱하고 뒤따라가자니 답답했다. 해는 뉘엿뉘엿 산머리로 다가가고있었다. 길은 벌써 속리산속 깊은 골짜기를 향하고있었다.

마침내 복한이 말에서 내려 행렬에 다가갔다.

《무슨 병자요?》

했으나 누구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노래만 반복했다. 병자는 흰 이불에 얼굴만 내놓고 까딱하지 않는데 우묵한 눈만은 정기를 잃지 않고 높은 하늘을 향하고있었다.

그 가없는 푸른 하늘로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눈부신 저녁해빛이 반사되고있다. 해지기 전의 저녁은 꿈속을 보는 환영처럼 한순간 대지를 더 밝게 붉은색으로 장식을 한다.

잠간동안 환자와 함께 거기에 눈길을 돌렸던 복한은 재차 그에게 돌아서다가 그 자리에 굳어졌다. 환자가 낯이 익다는 이상한 생각과 함께 찌르는듯 자기를 바라보는 눈길에 당황했던것이다.

《왜 놀라는것입니까. 제가 이렇게 된것이 그리도 이상합니까?》

문득 환자가 입을 열었다.

린석이 다가왔다. 동시에 행렬이 멈춰섰다.

모든것이 순간에 마치 그렇게 짜고 하는것처럼 진행되였다. 린석을 보자 병자는 해쓱한 얼굴에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비웃음 비슷한 한쪽입귀는 씰그러지고 눈은 감기여지는 그런 웃음이였다. 병자가 건강한 사람을 향해 던지는 웃음자체부터가 놀라움을 자아내게 하는것이였다.

《여길 어떻게 왔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된 깨고소한 모습을 보자구서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가. 나를 언제 보았다고 만나자부터 비양조로 나오는가.) 하는데 안승우가 곁으로 다가왔다.

《여름에 향교에 왔던 총각입니다. 김백산이라고 했던지, 전라도민란을 선동했던…》

생각이 났다. 여름날의 무성한 숲, 뜻밖에 울린 총성, 우물가에 나란히 서서 웃음짓던 처녀와 총각의 모습이다.

한것을 몰랐다. 안승우의 경우는 다를수 있다. 그의 딸 미영을 사이에 두고 티각태각이 있지 않았던가.

《가십시오. 어서 앞서… 거기야 량반님네들이 아닙니까.》

역시 비양조가 어린 소리다.

린석은 허리를 굽혔다.

《총각, 진정하라구. 어쩌다 이렇게 됐나?》

《그건 알아서 무엇합니까. 이 가슴에 또 못을 박자구요?》

《총각이 말하는것 보아라. 아직 버릇을 못 고쳤나?》

옆에서 복한이 한마디했다. 그러자 옆에서 병자를 메고온 사람이 끼여들었다.

《손님, 말 조심하시오. 병자는 안정해야 합니다.》

《가십시오. 어서 가라는데… 쓸데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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