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8

(1)

 

《창의대장님, 새 부대가 도착했습니다. 보고를 드리겠답니다.》

문득 들리는 소리에 린석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그의 이야기에 팔렸던 여러 의병장들이 고개를 들었다. 향교밖 어디선가 장정들이 부르는 병정가와 함께 힘찬 군령소리가 들려왔다.

《새 부대? 어디서… 누가 대장이라고 하던가?》

《그건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삼문앞에 있습니다.》

린석은 제잡담하고 밖으로 나갔다. 활짝 열려진 삼문밖으로 몇백명의 장정들이 렬을 맞춰 서있는것이 보였다. 놀라운것은 그들이 선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노래를 부르고있는것이였다. 그앞에 둥글모자를 쓰고 번쩍이는 구리단추가 달린 새까만 군인외투를 입은 사람이 서있다가 대렬에 차렷자세를 취하게 한 다음 곧바로 린석에게 달려왔다.

《창의대장님, 령남의병대는 대장님의 부대에 합류하기 위하여 도착하였습니다. 령남의병장 서상렬!》

(무엇이, 서상렬?…)

린석은 거수경례를 하는 그에게 같이 손을 들어야 할지 말지 망설이다가 그대로 달려가 상렬을 힘껏 그러안았다.

《서대장, 이 사람이 그예 찾아왔군. 예까지…》

서상렬이 키가 크고 몸집도 좋은 얼굴에 한껏 웃음을 지었다.

《선생님과 한 약속을 지켰을뿐입니다. 이런 날이 있으리라 믿고 기다렸습니다.》

《부대는?…》

《군사가 삼백여명에 신식보총이 서른정, 탄알이 몇천발 됩니다. 기타는 화승총과 활, 창칼들입니다.》

《신식보총! 과연 자네답군. 장하네.…》

그는 부대를 휴식시키라 하고 그를 여러 의병장들에게 소개시켰다.

서상렬이로 말하면 지난해 김홍집의 방에서 이다찌놈이 권총을 빼들었을 때 놈들을 제압한 조선군대의 그 장교였다. 물론 린석이 그때에는 그가 누군지 몰랐고 다만 조선군사들이 자기 임무를 괜찮게 수행한다는 인식만을 가지고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린석이 최익현의 집에서 김홍집과 한 약속을 기다리며 묵고있는데 그가 찾아왔다.

《선생님께 문안드립니다. 저를 선생님의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상렬을 알아본 그는 와락 달려가 두손을 꽉 그러잡았다.

서상렬은 이미전에 린석이 쓴 《강화도양요》를 비롯한 몇편의 시를 알고있었는데 최근에 련이어 발표되는 격문들을 보고 그의 강한 애국심과 반일정신에 늘 공감해오고있었다. 하다가 왜놈의 총구앞에 단호히 맞서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그에 반해버렸다. 그가 군사를 동원하여 총리의 방으로 달려들어 갔던것도 그때문이였다.

서상렬도 원래는 평안도의 어느 한 고을에서 쟁인바치질을 하던 천민의 자식이였다. 한것이 시위대에 뽑혀 서울에 올라가게 되였는데 총을 잘 쏘아서 점차 승급의 길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저는 한때 왜놈장교밑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때 왜놈의 구두발과 채찍밑에서 받은 민족적멸시와 구박을 잊을수 없습니다.

왜놈들과 수차 사격경기를 하였는데 이기면 이겼다고 차고 치더니 그래서 져주면 또 졌다고 온갖 모욕을 다하며 괴롭히지 않겠습니까.

나를 외딴데로 끌고가서 사격목표로 세워놓고 여러놈이 동시에 사격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서상렬의 남다른 반일감정은 이렇게 생겨났다. 그때부터 그는 왜놈이라면 치를 떨었고 결사의 각오로 맞서싸울 결심을 품게 되였다. 그러는 가운데 린석이 쓴 글을 보고 소문도 듣게 되였으며 뜻밖에도 의정부청사에서 직접 보게까지 되였다.…

린석으로서는 전혀 우연인듯 하였으나 왜놈을 증오하는 한길에서 만났다는 그것으로 하여 참으로 뜻깊은 상봉이였다. 품을 놓고 찾아다닌다면 이만한 사람을 또 어디서 만날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날 그들의 상봉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그때 상렬은 말했다.

《선생님, 저의 부대는 지금 전라도민란을 진압하러 공주로 갑니다.

그곳에서 왜놈들과 함께 제 나라 백성들을 향해 총을 쏘아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기회를 보아 총부리를 돌리고 반변을 하려고 합니다. 그 다음일은 알수 없습니다. 다만 선생님이 의병을 일으킨다면 기어코 찾아가겠다는것만 말씀드립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짧은 상봉에 석별의 정만 길게 남긴 아쉬운 순간이였다.

무엇인가 많은 말을 하고싶었고 할수 있었던 사람을 놓쳐버렸다는 서운함이 고무줄처럼 한쪽가슴을 옭매고있었다.

뜻밖의 일로 그에 대한 생각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왕에게 청했던 의병조직에 대한 어지가 부결로 내려왔던것이다.

…지금은 왜인들과 싸울 때가 아니며 백성들이 저저마다 일어나 소란을 피울 때가 아니다. 지극히 자중하고 심각하며 조심하라.…

왕이 김홍집의 청을 부결하여 내려보낸 어지였다. 린석이 기대했던 바하고는 전혀 다른 대답이였다. 그는 최익현에게 들이댔다.

《국가의 운명이 생사기로에 놓인 이때에 왕의 대답이 왜 그리도 미미합니까. 꾹 눌리워 참고만 있으라 하니 어떻게 참는단 말입니까.》

그 말에는 익현도 대답을 못하고 음침해졌다. 평시에 격하기 잘하고 참을성이 적은 그였지만 이번만은 어째서인지 모진 고통을 참느라고 때없이 이마를 찡그렸다.

《여성이, 참으라구. 지금은 우리같이 글하는 선비들이 나설 때가 아닌가보네.》

《나는 지금 선비로 말하는것이 아니라 창칼을 들고 왜놈과 싸우자는 무사로서 하는 말입니다.》

《누가 말을 했든 듣는이 짐작이지. 비록 상감께서 하자고 해도 마음대로 할수 없게 되여있거던. 상감께서 보고 듣는 눈이 따로 있네.》

《중전마마(민비)를 두고 하는 말씀입니까?》

《그게 어디 민중전 한사람뿐이겠나. 지금은 민씨일파가 온 나라에 살판치는 세상일세.》

익현이 불만기어린 소리로 내뱉았다.

그로 말하면 대원군의 서원철페를 반대하여 상소운동을 벌린것으로 하여 민비의 남다른 신임을 받은 사람의 하나이다. 일설에는 그가 민비의 추동을 받아 상소를 하였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민비의 경망하고 요사스러운 행동에 공감하였다고는 볼수 없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우심해지는 민씨일파의 세도정치와 역적행위에 격분을 금치 못해하고있다.

이제 돌이키면 대원군이 어디서 고르고골라 저런 녀자를 며느리로 맞아들였는지 그것부터가 원망스럽다. 그 녀자가 궁중에 들어앉자부터 나라가 소란하고 백성들은 궁핍해졌으며 외세가 쓸어드는 란무장으로 되고말았다. 저 병자년(1876년)의 《강화도조약》의 체결로부터 왜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공사관이 설치되기 시작하고 임오군란, 갑신정변때에는 청나라군대를 끌어들여 그를 무력으로 짓뭉개버리게 한것도 저 민비로부터 시작되였다고 할수 있다.

그런 민비가 한때 덕천군수를 지내다가 장악원(궁중의 음악과 무용을 맡은 관청)의 첨정이 된 민치록의 외동딸로서 일찌기 량친을 잃고 의지가지할데없이 고생스럽게 자란 녀자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대원군에게 그런 녀자의 어디가 마음에 들어 굳이 며느리로 삼았는지 알수가 없다.

그것은 그렇다치고 그가 일신의 안일과 향락을 위하여 나라에 끼친 해독과 피해가 얼마였던가. 자기 아들의 명복을 빈다며 금강산 1만 2천봉과 명산대천들에 쌀 한섬과 비단 한필씩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는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하고도 자기자신은 에짚트의 융단과 프랑스의 샴팡, 미국의 사탕과 커피, 이딸리아의 유리잔, 일본의 사기화로로 장식하고 먹고 마시며 하루밤 궁중연락을 차리는데 드는 초불값만 80만냥, 궁녀들이 춤추고 노래부르는데 드는 비단포목이 수천수백필이다. 그러고도 밤에는 명주필 찢는 소리가 좋다며 온밤 생비단필을 쫙쫙 찢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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