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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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김홍집은 아무 예고도 없이 자기 방에 뛰여든 불청객들을 못마땅한 자세로 지켜보고있었다. 그것은 외교관례로는 말할것도 없고 초보적인 례의도덕에도 어긋나는 무례한 행동이였다.

잠시후 이노우에가 그것을 느꼈는지 처음의 자세를 늦추고 얄팍한 입술에 살웃음을 지었다.

《총리각하, 미안하게 됐소이다. 불원간 마주앉게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일로 하여 밤중에 찾게 되였습니다.》

《용건이 무어요?》

김홍집이 여전히 못마땅한 자세로 물었다.

이노우에는 옆에 앉은 최익현과 류린석은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하였다.

《좀 불쾌한 말씀이오만 최근 우리의 소식통에 의하면 충청도 제천지방에서 무슨 의병같은것이 조직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가뜩이나 전라도민란으로 소란스러운 귀국측으로 보나, 동양의 평화를 위해 싸우는 대일본제국의 립장에서 보나 확실히 시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충주성과 그 일대의 달천, 수안, 가흥지구에 군사를 배치하고 수비대를 두어서 의병의 발생을 그 요람기에 소멸하자고 합니다. 총리각하께서 충분히 응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놈들의 행동을 아니꼽게 지켜보던 김홍집이 머리를 들었다.

《의병이라구? 당신네가 그걸 어떻게 아오?》

그가 놀라는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방금까지 류린석과 의병조직에 대한 문제를 론하던것인데 이자들은 어떻게 하여 벌써 그 내막까지 알고있는가.

《총리쯤 되시면 그런 문제를 누구보다 먼저 알고있어야지 우리에게 물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노우에가 흡족한듯 핀잔의 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이 홍집의 분노를 더 촉발시켰다. 그런 때일수록 침착해지기를 잘하는 홍집이다.

《몰랐던만큼 이제 알아보겠소. 군부아문에 과업을 주겠으니 후에 협판을 만나보시오.》

순간 이노우에의 량볼이 울룩불룩 끓고 코수염이 나래를 쳤다. 그도 그럴것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국에서 내무대신을 했고 잠간이기는 하지만 총리대신까지 지냈던 인물인것이다. 그것을 홍집이 군부아문의 협판(부상급)이나 만나보라는 정도이니 분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총리각하, 이것이 어찌 군부아문에서 토의될 문제입니까. 설사 토의된다 하여도 여기에서 다시 론의해야 할것이 분명한데 우리에게는 시간이 급합니다. 각하께서는 내가 이 문제를 전하께 상정시키기를 바라는것입니까?》

이번에는 김홍집도 당황하였다. 이 오만하기 그지없는 난쟁이외교관놈이 기어코 임금을 만나자고 할것이다. 그때에는 홍집이 자기가 일을 제대로 못한것으로 될것이다.

보다 더 우려되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왕의 우유부단성이다. 결패가 없고 강경한 자질이 부족한 그는 그 누구에게든 맺고끊고 하기보다 좋은 말로 얼버무리기를 잘한다. 나라의 운명과 관련한 전후사도 그렇게 대할 때가 많다.

문득 홍집의 머리속에 왕궁을 습격당한 다음날 당시 일본공사였던 오또리놈과 왕이 만났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왕과 오또리 게이스께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오또리: 놀란 일이 있은 후에 이렇게 감히 찾아왔습니다. 어디 상한데는 없습니까?

왕: 피해까지는 입지 않았소.

오또리: 이제부터 개화를 하면 두 나라의 우호관계는 더 두터워질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것은 이것뿐입니다.

왕: 두 나라가 진실로 우호관계를 닦아나간다면 실로 서로 돕고 의지하는 방도로 될것이요.

오또리: 일전에 제기한 다섯가지 조목에 마땅히 류의하고 그대로 시행하는것이 매우 좋을것입니다.

왕: 우리 나라에도 원래 옛법과 제도가 있지만 론의한 다섯가지 조목도 나쁘지 않을것 같소.

일종의 정치만화를 그대로 련상케 하는 왕과 일개 외교관과의 대화이다.

얼핏 들으면 우호관계를 위해 좋은 의견이라도 교환된듯 한 인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새겨보아도 여기에는 만사람의 치를 떨게 하는 모순과 불평등관계가 얽혀있음을 알수 있다.

우선 오또리놈이 왕궁을 습격점령하고 왕을 연금상태에 놓은 다음날 만났다는것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대화로 될수 없다는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다음으로 둘사이 주고받은 대화를 두고보자. 그때 오또리놈은 《우호관계》에 대하여 말을 많이 했는데 그 《우호》란 언제부터인가. 궁성을 타고앉은 다음부터이다. 그런즉 놈이 지껄인 《이제부터의 개화》란 저들이 하라는대로 하라는것이며 모든것을 쥐고 흔들겠다는 소리이다. 또 놈은 5개 조목에 마땅히 류의하라고 했는데 그자체가 모두 저들이 필요에 의해 조선정부에 강박하는 요구들인것이다.

문제는 놈들의 이러한 요구에 대하는 왕의 자세였다. 총체적으로 보면 오또리는 훈시하고 강박하는 자세였고 왕은 굴복하고 순종하는 자세였다.

따지고들면 바로 이때부터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로 굴러떨어질 급전직하의 낭떠러지에 서있었다고 할수 있다. 청세력을 수세에 몰아넣은 일제가 왕궁을 타고앉은 다음 왕까지 저런 자세로 나왔으니 이제야 조선이 왜놈의것이 아닌가. 아무런 타산도 주견도 없이 나라의 운명에 대한 깊은 우려도 없이 쪽발이난쟁이가 주어던진 말마디에 끌려다니며 해버린 대답이 어떤 후과를 미치게 되리라는것을 과연 왕이 몰랐단 말인가.

바로 그런 왕이기에 김홍집은 잠시도 마음을 놓을수 없었고 자기가 대신 곱절로 애써야 한다는 근심에 싸여있는것이다.

그때 지금까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최익현이 대화에 끼여들었다.

《이보시오 이노우에, 당신이 무엇이길래 총리각하의 앞에 와서 무엄하게 노는거요. 하라는대로 하시오.》

이노우에의 눈길이 불시에 그에게로 돌아섰다.

《무엇이?… 당신은 누구요?》

《공부판서요. 당신은 례의도덕도 모르오?》

《례의도덕… 판서라는게 저렇소. 당신은 내가 대일본제국을 대표하고있다는것을 모르오? 우리는 제국의 리익을 위하여 그 누구와도 만날수 있고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할것이요.》

《당신을 누가 이 방에 들어오라고 했소. 당장 나가시오!》

최익현이 책상을 탕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노우에가 흠칫 놀라 물러서는 반면에 뒤에 섰던 호위장교가 손을 권총집에 가져갔다.

이다찌라는 중좌인데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권총집뚜껑을 만지작거리고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류린석이 앞에 나섰다.

《여보시오 공사, 지금 제천에는 의병이 없소. 그 일로 누구를 만날 필요도 없고 더구나 군사주둔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마시오.》

《의병이 없다구? 우리의 가장 믿음직한 소식통에 의하면 바로 엊그제 제천에서 조직되였소.》

《그 소식통이라는게 어떤 놈들인지 알만 하오. 그러나 지금은 거기에 한명의 의병도 없으니 필요하면 그 졸개놈한테 다시 물어보시오.》

제노라하던 놈들이 여기서 잠시 무춤했다. 저들로서는 알만큼 다 알아보고 들이댔는데 예상외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것이다.

이노우에가 린석에게 돌아섰다.

《당신은 누구요? 어디서 그런 소식을 들었소?》

《소식? 이 쪽발이놈아, 내가 바로 네놈을 쳐죽이자고 의병을 조직했던 류린석이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당장 물러가라!》

《오 류린석,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였는가. 그런즉 한갖 이런 장삼리사들이 우리 대일본과 맞서보겠다고 나섰다는겐가. 한번 본때를 보여줄가?》 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이다찌중좌가 권총을 빼들고 격발기를 잡아당겼다.

그때에도 린석은 까딱하지 않고 이다찌를 향해 날카로운 눈초리를 던지고있었다.

《쏴봐라. 내뒤에는 일천수백만의 조선동포가 있다. 네놈들이 지금은 겨우 몇만명의 군대와 대포를 끌고와 흰소리를 치지만 조만간에 우리 동포들이 하나로 뭉치여 네놈들을 바위로 닭알누르듯 깔아뭉갤것이다.》

권총을 든 이다찌의 손이 서서히 들리며 목표를 겨냥했다. 이노우에가 책상을 치며 어서 쏘라고 악을 쓰는 순간 등뒤에서 문이 벌컥 열리며 조선군사들이 뛰여들었다.

《꼼짝 말앗! 움직이면 쏜다!》

어느새 억센 손아귀가 집게마냥 이다찌의 손목을 들이조여 권총을 땅에 떨구었다.

신식보총으로 무장한 조선군사들이 방을 반원경으로 포위하고 놈들과 마주섰다. 그중 둥글모자를 쓴 장교 한사람이 떨어진 권총을 구멍찾는 생쥐마냥 두리번거리는 이다찌의 눈앞에 내댔다.

《여기는 나라의 정사를 펴는 중앙관청이요. 우리는 이를 보위할 임무를 수행하고있소. 나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사격하겠소!》

이다찌가 쓴웃음을 지으며 권총을 받아 집안에 집어넣었다. 하면서도 눈만은 여전히 린석을 쏘아보며 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굳건히 한자리에 서서 자기를 주시하는 린석의 시선에 쫓기워 그대로 물러가고말았다.

이윽하여 방에는 다시 세사람만 남았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짧은 순간에 너무도 격동적인 사실을 체험한 뒤여서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던것이다. 왜놈의 본색이 어떻다 하는것을 누구나 똑같이 체험하였다. 그러나 그앞에서 취한 태도와 감정은 엄연히 다른것이다.

(류린석이란 사람을 결코 허줄히 볼것이 아니다. 적들앞에서 모두 그처럼만 당당할수 있다면 왜놈 몇만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김홍집의 생각이다. 그는 지금 궁중의 어느 누구도 그처럼 행동한 사람이 없고 또 할만 한 사람이 없다는것을 놀라움속에 자인하고있었다.

《총리각하, 지금형편에서 중앙군을 조직하여 왜놈과 맞설수 없다는것은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만큼 의병조직문제는 더 절실한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조건이 필요없습니다. 오직 임금의 이름으로 명령 한마디만 떨어지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온 나라 백성들이 벌떼처럼 일어날것입니다. 지금은 저 충주관찰사 김규태란 사람과 같은 지방관들때문에 더 반대를 하여 싸우자고 해도 싸울수가 없습니다.》

류린석이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아까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일순 긴장했던 홍집의 맥이 풀렸다. 왕에 대한 말이 다시 나온때문이였다. 과연 그가 왜놈들의 압력을 물리치고 의병을 일으키라고 온 나라에 호령할수 있겠는가.

《만약 그것이 힘들면 밀지로라도 지방에 내려보내주십시오. 지금은 의병을 일으키기보다 지방관리들과 싸우기가 더 힘듭니다.》

린석이 또다시 그를 앞질렀다.

홍집은 끝내 손을 들었다. 그는 린석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며 고개를 흔들었다.

《노력해보겠소. 아니, 꼭 성사시키도록 힘쓰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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