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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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다면 총리란 사람은 무엇을 합니까. 명색이 김홍집내각인데 총리는 왜 자기 내각 하나 제사람으로 고르지 못합니까. 그도 친일분자입니까?》

린석이 여전히 참지 못하고 들이댔다.

최익현이 그를 피끗 바라보고 한숨을 내쉬였다.

《내각에서 하는 모든 일은 물론 정부대신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그놈들을 통하여 공사관으로 들어가는판이요. 총리도 여기서 례외로 되지 않소.》

《그렇다고 왜놈들이 무서워 나라가 할일을 못하겠습니까. 그가 내각의 총리이고 군국기무처의 총재로서 만사람의 우에, 왕 한사람의 아래지위에 있는데 뭐가 두렵단 말입니까?》 하고는 아무 대답도 없는 익현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무릎가까이로 한걸음 다가앉았다.

《대감님, 제가 총재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의병에 대하여 할말이 있습니다. 이건 꼭 해야만 합니다. 총재도 알고있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최익현이 은근히 놀랐다. 린석이 담대하고 완고한 사람이라는것은 이미부터 알고있던바이기는 하지만 총리까지 만나겠다고 당당히 나설줄은 몰랐던것이다. 하면서도 의병투쟁에 대해서는 자기도 관심하는바가 없지 않아서 총리와 대면시켜줄것을 약속하였다. 그것이 의정부청사로서 당시 의정부뿐아니라 군국기무처까지 겸하여 쓰고있던 총리대신의 방에서였다.

류린석이 최익현의 안내로 김홍집총리의 방에 들어섰던것은 벌써 초경(10시)이 지난 밤이였다. 그만큼 그는 바쁜 몸이였고 개별적인 사람들을 만날 시간을 내지 못하고있었다.

그때에도 홍집은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앉아 피곤에 몰린 눈을 잠든듯 감고있었다. 그들이 들어설 때에도 그는 눈을 들지 않고 익현에게만 그것도 여전히 잠든 소리로 물었다.

《최대감이 무슨 일로 왔다구요? 말씀하시오.》

방금전까지도 린석은 총리대신이 몹시 바쁘다는것을 익현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요즘 그는 종전의 6조에서 하던 일을 군국기무처의 8개 아문에서 맡아하는데 그 매 아문에서 해야 할 혁신적인 개혁안들을 제기해오면 그것들을 일일이 검토하고 왕에게 제기하여 인준을 받아야 하며 법령으로 발표해야 한다. 그 하나하나가 나라의 정사를 개혁하는 거대한 사업들로서 책임이 중하다거나 무겁다는 말마디로는 표현하기 힘든 일들이다. 일례로 군국기무처가 조직된 다음날 하루동안에 토의비준된 문제만 보아도 외국과의 조약체결과 특명전권공사 파견, 문벌과 반상의 차별철페와 인재본위등용, 문존무비의 구별페지, 조혼금지, 과부의 재혼허가, 공사노비법의 철페, 인신매매금지 등 십수가지나 된다. 그 하나하나가 대대로 내려오던 구습과 악페를 청산하고 새롭게 혁신하자고 한다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조선은 바야흐로 자체의 근대적발전을 위하여 전진하고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조선사람자체로 하는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청일전쟁에서 우세하게 되자 왕궁까지 타고앉았던 일제는 다음부터 조선의 내정에 제멋대로 간섭해나섰다.

그중의 하나가 저들이 고안해낸 《20개조개혁안》이라는것이다. 놈들은 조선에서 자주 소요가 일어나고 발전하지 못하는것이 정치를 바로하지 못하는데 원인이 있다고 하면서 《내정개혁》을 하라고 마구 간섭해나서고있는것이다.

그런데 그 《20개조개혁안》이란 무엇인가. 그 대부분이 이미 군국기무처에서 토의하고있거나 실시하려고 하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교활한 놈들은 거기에 의정부와 각 아문들에 외국인고문들을 초빙할것과 일본에 류학생들을 파견할것 등을 강박하면서 나중에는 군국기무처의 권한과 조직에 대해서까지 시비해나섰다.

김홍집이 이 모든 직무를 다 맡아안고 누구보다 바쁘고 힘겹게 일을 해나가고있다는것은 말 안해도 짐작이 가는터였다.

《의병조직에 대한 건을 말씀드리자고 합니다. 지금 왜놈들이 저렇듯 살판치면서 조선을 통채로 삼켜버리려 하고있는 조건에서 나라를 구원할 방도는 오직 군사를 일으켜 싸우는것뿐입니다.》

조는듯 팔걸이에 손을 기대고앉았던 김홍집이 얼핏 린석을 바라보고 다시 익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최대감, 이 사람이 누구라고 했더라?》

《강원도 춘천에 사는 벼슬하지 않는 선비로서 저 병인년에 〈강화도양요〉를 썼던 사람입니다.》

린석이 말할수 없는 모욕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데 익현이 대답했다.

홍집이 그 말을 듣는듯 마는듯 하고 계속했다.

《서생이 말하자고 하는것이 무엇인지 알만 하오. 의병을 일으켜… 아니, 조선군사이면 더 좋겠지. 그래서 왜놈들과 싸우자는것이겠지?》

《최선의 방도는 군대밖에 없다고 봅니다.》

《서생, 〈당랑거철〉이란 말을 알고있지? 범아재비가 수레바퀴를 맞받아나간다는 말 말이요. 자그마한 소똥벌레가 쇠바퀴를 향해나가다가 그 운명이 어떻게 된다는것을 생각해보았소?》

김홍집은 여기서 약간 비양조가 섞인 쓴웃음을 지었다. 하다가 자리에서 벌컥 일어서는 린석을 보고 눈을 들었다.

《총리각하, 각하의 눈에는 제 나라, 제 민족이 그따위 소똥벌레로밖에 보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나라의 정사를 펴나가는 근본입니까?》

그때 린석은 한갖 촌선비가 총리라고 하는 나라의 최고신하앞에서 감히 이렇게 행세할수 없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제 나라 국민을 너무도 업수이 본데 있었다. 바로 총리란 사람부터 그런 관점에 섰기에 이 나라의 백성들은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어도 어디 가서 하소할 곳 하나 없지 않는가.

그러나 나라의 군국대사를 한손에 거머쥐고있는 김홍집이 그쯤한 공세에 놀랄 사람은 아니였다. 그는 지금 나라의 형편이 그처럼 어렵고 곤난한 속에서도 근대화를 위한 사업을 꾸준하게 밀고나가고있었다.

즉 일제가 그토록 사납게 날치며 궁성을 타고앉았던 다음날 군국기무처를 조직했고 놈들이 뭐라고 하든 관계없이 2백여건의 각종 법안과 지시문을 작성하여 전국에 내려보냈다. 이것은 김홍집이 일제의 포악과 탐욕성을 견제도 하고 일부는 리용도 할줄 아는 그의 능력을 과시하는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 김홍집의 머리속에는 얼마전에 있은 청일전쟁의 무참한 상황이 얼른거리고있었다.

충청도 아산만의 풍도해상에서 일본군함들의 포화에 얻어맞고 수뢰에 걸려 수천여명의 병력과 수십문의 대포를 실은채 수장된 청군함들, 그에 이어 계속된 성환역싸움과 평양성싸움에서 또다시 수많은 병력과 전쟁물자를 잃어버린채 살구멍을 찾는 쥐신세가 된것이 바로 황제의 나라라고 자칭하던 청국의 《위세》인것이다.

이 사람이 그 모든걸 알기나 하는가.

《서생, 가슴이 아프지만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소. 무슨 말인지 알겠소?》

마침내 김홍집이 입을 열었다. 그로서는 담대하고 다부지기는 하나 형세에는 캄캄한 이 촌선비를 무슨 말로 달래야 빨리 돌려보낼수 있을가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린석이 인차 다시 물었다.

《우리가 그렇게도 보잘것 없다는것입니까?》

《그것은 어쩔수 없소. 그래서 우리도 빨리 개화를 해서 힘을 키우자는거요. 그러자면 어차피 일본을 견제하면서…》

《소인이 듣건대 일본사람들이 우리에게 〈자립〉을 견제하고 〈개화〉도 요구하고있다 하는데 과연 그것을 바래서 하는 말일가요. 세론은 조정이 일본과 손잡고 개화를 다그치려 한다는데 이것이야말로 범에게 아이를 맡기는 격이라고 떠들고있습니다. 세상에 보이지 않는 걱정이 더 급하다는 말이 있는데 조만간 나라가 어떻게 되리라고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이제는 김홍집도 분명히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성은 낼수 없고 근대화에 대한 자기 생각을 터놓지 않을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린석은 벌써 그를 앞질렀다.

《지금 왜놈의 군대가 대궐에 침범해있고 요충지마다 틀고앉아 생사존망자체를 위협하고있는데 자립이란 웬말이며 개화란 어떻게 한다는것입니까. 그렇게 하여 안으로 자꾸 변고가 생기고 온 나라가 가마끓듯 하는데 한갖 관직제도나 고치고 관정이름이나 바꾸며 외국의것을 모방한 법령이나 자꾸 내려보낸다고 개화가 되는것입니까. 급한것은 빨리 우리 군대를 키워 왜놈과 싸우는것뿐입니다.》

《음흠? 이 사람이… 군대를 키우는것이 그리 쉬운 일인지 아오?》

마침내 홍집도 참지 못했다. 사실은 처음부터 하고싶은 말이기도 했다. 지금 조선군대라는것이 겨우 9천명정도, 그것도 왜군에 비하여 장비나 훈련이 보잘것 없는 그것이 전부이다.

《그것도 못할바에야 나라에 3공6경을 비롯한 고명중신들이 무엇하러 느런히 앉아있는것입니까. 그들이 력대로 명문거족이요, 원훈구신이요 하면서 충군충의나 애국충정에 대하여 누구보다 말을 많이 해왔는데 지금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마침내 김홍집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것은 무엇인가.

무식인가, 미련인가. 무식은 아니더라도 올려추어주기에는 촌선비로서 너무 과분하다. 뭐라고 해야 할것인가 하는데 옆에서 최익현이 끼여들었다.

《의암, 총리대신은 누구보다 임금의 신임을 높이 받고있는 신하요. 그만큼 나라를 위해 애도 많이 쓰고있소. 함부로 말하는게 아니요.》

그러나 린석은 이번에도 굽어들지 않았다.

《사람이 날 때부터 타고난 귀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분명 임금이 명분과 지위, 등급을 준 다음에야 귀해지는것입니다. 그런즉 총리각하께서도 임금의 명분으로 그 지위에 오른것이며 그것으로 귀해진것이 분명합니다.

하다면 하는 일도 남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임금의 총애하는 신하로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엇을 하고있었으며 이제도 대책을 취하지 못하는 리유가 무엇입니까?》

그제야 리해가 갔다. 그 날카롭고 무자비한 기상이 결코 촌선비로만 볼 사람이 아니다. 한생 글공부를 많이 한 선비로서 위정척사론의 거두의 한사람이라고 하던 최익현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다음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리며 몇사람이 뛰여들었던것이다.

그들은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까지 누구도 이 방에 그렇게 들어선 사람이 없었던것이다.

잠간 지나서야 앞선자가 새로 부임된 일본공사놈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그뒤에 선자들은 수원과 통역 그리고 호위장교들이였다.

《총리각하, 대일본국 조선주재 신임공사 이노우에 가오루각하께서 당신을 만나고저 친히 왕림하셨습니다.》

이노우에는 앞에 세운 지팽이에 두팔을 얹고 번뜩이는 안경으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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