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7

(1)

 

제천반일의병대가 조직되였다는 소식은 고을과 고을지경을 넘어 여기저기로 퍼져갔다.

즉시적인 군사행동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당장은 그렇게 할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군사들의 훈련이 적은데다 합법적인 권리를 가지지 못한때문이였다.

그리하여 우선 군수 리찬익에게 사실을 알리는 한편 서울에 사람을 보내여 최익현대감으로 하여금 김홍집총리에게 인준을 받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 임무를 김복한이 맡아나섰다. 그는 작년에도 린석과 함께 서울에 갔던 일이 있어 최익현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테니 기다리시우!》

그가 량볼이 불거진 둥그런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안고 말했다. 성격이 좋고 붙임성이 있어서 무슨 일이나 시키면 잘했다. 그만큼 나서기도 잘하는 그였다.

이렇게 그는 떠나갔다. 그런데 군에 들어갔던 사람만은 그대로 돌아왔다. 군수가 의병조직을 한사코 반대한다는것이였다. 그뿐아니라 충주감영에는 벌써 왜군토벌대가 주둔해서 의병부대들에 대한 토벌까지도 준비하고있다는것이였다. 조만간 싸움이 터지게 되리라는것이 기정사실로 되고있었다.

준비를 더 빨리 다그쳐야 했다. 중요한것은 의병장들부터 지휘통솔능력을 키우는것이였다. 전장에서의 지휘체계는 싸움의 승패를 결정하는 근본문제라고 할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리하여 린석이하 모든 의병장들은 《동국병감》이나 《병학지남》과 같은 옛 병서들을 뒤지며 밤새 눈에 익히고 낮에는 의병들과 함께 몸에 익히기 위해 애썼다.

군사지휘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기발이다. 기발은 그 가지수만 해도 대단히 많아서 그중 주작기, 청룡기, 백호기, 현무기, 홍신기, 람신기들은 각 부대를 표시하는것이며 누런기는 중앙을, 붉은기는 전방을, 파란기는 좌우를, 검은기는 후방을 표시하는 기이다. 청도기와 표미기는 대오의 앞뒤에 있고 당보기는 항상 높은데 올라 적정을 알리는 기이다. 또 령기(혹은 령표)가 있어서 명령을 전달하는데 쓴다. 일단 싸움이 일면 모든 장관들과 병졸들은 기발의 자세와 빛갈만 보고 움직이며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기발이 앞을 가리키면 죽어도 전진해야 하고 기발이 누워있으면 적의 머리와 황금보석이 눈앞에 있어도 부동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

당기가 좌우로 흔들리면 적이 왔다는 신호요, 령기가 없으면 설사 그 누가 왔다고 해도 출입을 허락하지 말며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그러나 기발신호는 단순한것 같으면서도 복잡하고 특히 일단 싸움이 난 다음에는 군사들이 알아보기 힘들며 반면에 적들은 알아보기 쉽다. 더구나 밤에는 쓸수가 없다. 따라서 여기에는 반드시 악기가 동반되여야 한다.

악기란 호적, 북, 징, 바라, 소라, 나팔, 솔발, 취라 등 여러가지를 말하는데 북은 전진하라는것이다. 북을 치는데도 여러가지가 있어서 단고(한번 치는것)는 20보 전진하라는것이고 긴고(천천히 치는것)는 멀리 가라는것이다. 뢰고(매우 급히 치는것)는 접전하라는것이다.

징은 정지하라는것인데 거기에도 또한 여러가지가 있다.

기타 호적, 솔발, 바라들에도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린석은 유교교리에만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병학에도 심원한 진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 하나하나를 몸에 익혀 필승을 보장한다는것은 유교에 비할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훈련을 강화하는것이 필요했다.

이렇게 향교주변이 밤낮으로 치고 때리고 불며 웨치는 소리로 끓던 어느날 서울에 갔던 김복한이 돌아왔다.

갈 때는 혼자였는데 올 때는 혼자가 아니였다. 지난해 의병조직때에도 왔던 선전관 리강년과 벽사 홍재우의 아들인 홍정식 그리고 또 몇명이 함께 왔다.

그들의 뜻밖의 출현에 린석은 한바탕 웃고떠들었다. 모두가 반가운 사람들이였던것이다.

《최익현대감님이 함께 동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의거가 역시 과단성있는 행동이였다고 하시며 이분들을 잘 이끌어주라고 하였습니다.》

김복한이 같이온 사람들을 소개하였다.

리강년은 지난해에도 내려왔던 사람으로 린석이 잘 알고있는 사람이다. 이번에 그는 답답한 궁중생활을 그만두고 의병싸움에 나서겠다며 제잡담 따라나섰다는것이다.

그밖의 한사람인 홍정식은 새파란 젊은이로서 린석이 이름이나 알고 보기는 처음인 사람이다. 대신 아버지 홍재우는 일찍부터 잘 아는 사이이다. 역시 위정척사론자의 한사람으로서 《강화도조약》을 반대하는 최익현의 상소문에 린석과 나란히 수표를 했던 사람인것이다. 그때 같이 수표를 한 쉰명의 사람을 다 알수는 없으나 맨 웃머리에 남먼저 수표를 했다는 그것만으로도 뜻이 통하는데가 있는 사람이였다.

《자네가 벽사 홍재우의 아들이란 말이지. 아버지가 너를 보내더냐?》

린석이 묻자 정식이 눈을 껌벅이며 대답했다.

아버님은 이미 별세하셨습니다. 오랜 신병으로 고생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아버님은 일생 척양척왜를 목적하고 살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신다며 최익현대감이나 의암 류린석선생을 꼭 찾아가라고 하시였습니다.》

《너의 부친이 평시에도 몸이 건강치 못하시더니 그예 먼저 가시였구나.…》

린석이 그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 다음 다시 정식에게로 향했다.

《선친의 뜻이 그러하시였으니 잊지 말고 명심하여라. 그런데 네가 전에는 군사에 몸을 잠그었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린석이 새삼스럽게 그의 차림새를 살피며 물었다. 지금 그는 새까만 구두에 장딴지를 조이는 승마바지를 입고 우에는 고름이 짧은 두루마기에 한창 류행되는 신식모자를 썼다. 이를테면 양복과 조선복차림을 겸한셈인데 그나마 조선식이라고는 두루마기 하나뿐이다. 그를 기어코 군대에 집어넣겠다고 하던 아버지의 말과는 딴판이였다.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얼마전에는 집안에 학문을 이을 사람이 있어야겠다며 저더러 글공부를 하라고 하시였습니다.》

그쯤하면 리해가 되였다. 또 글공부를 하다가 의병에 나섰다는것도 찬양할만 한 일이였다. 그것만으로도 남다른 기대와 관심을 가질수 있었다. 그와 함께 다른 두 젊은이도 왔는데 그들도 과히 장하다고 할만 한 사람들이였다.

《최익현대감께선 뭐라고 하시던가. 따로 한 말이 없으시였나?》

린석이 묻는데 복한이 도포자락을 훨훨 날리며 향교안으로 이끌었다.

《따로 전하다뿐인가요, 창의대장님이 깜짝 놀랄만 한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어서 들어가십시다.》

강당안에는 리춘영과 주용규, 안승우를 비롯한 여러 의병장들이 모여있었는데 복한이 그들모두가 들으라는듯 두팔을 높이 추켜들었다.

《최익현대감께서 이번에 상감을 만나보셨습니다. 하여 상감으로 하여금 전국에 의병을 일으킬데 대한 어지를 내리셨는데 그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면서 그는 팔소매에서 백로지 한장을 꺼냈다.

《그게 정말이요? 우리 상감께서…》

《됐구나. 왜놈들과 마음놓고 싸우게 됐어.》

《참으로 강경과단한 결심을 내리셨네.…》

누구누구해도 제일 반가운 사람은 류린석이였다. 그는 누가 빼앗기라도 할듯 그것을 덮쳐잡았다. 얼마나 기다리던 소식이였던가. 헤덤비며 종이장을 더듬는데 글자들이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없어 해를 넘기며 왜놈들만 더 득세하게 하지 않았던가.

《애통소》

첫머리에 이렇게 씌여있었다.

《국왕은 이렇게 말한다. 아, 애통하구나. 나는 죄가 차고넘쳐서 하느님도 도와주지 않는구나.

나라의 형세는 크게 기울어지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이로 말미암아 강한 이웃나라는 틈을 엿보고 반역자들은 롱간질을 하고있다.

반만년의 례의지국이 나의 대에 이르러 개나 양무리가 사는 지역으로 되고말았다. 불쌍한 우리 백성들이 그의 화에 걸려들게 되였으니 무슨 낯으로 선대의 여러 왕들의 령혼을 뵙겠는가.

지금의 형세가 이 지경이 되였으니 죄인인 나의 한가닥 명줄은 죽어도 아까울것이 없으나 종묘사직과 백성들을 생각하여 혹시 만의 하나라도 나라를 보존할가 하여 너희 충의로운 지사들을 격려하며 애통한 이 조서를 내려보낸다.

령의정 김병시(김홍집대신 잠간 대리하였음.)를 도제찰사로 하여 중앙과 지방에 진무하며 전 진사 김국량을 감군지휘사로 하여 7로에 근왕병을 두되 명칭은 호서를 충의군, 관동을 용의군, 령남을 장의군, 해서는 호의군, 호남은 분의군, 관서는 강의군, 관북은 감의군으로 한다. 의병을 일으킨 선비들에게는 겸하여 초토사로 임명하고 비밀명부도 마땅히 내줄것이며 매 군의 도장도 자체로 새겨쓰고 종사관에 대해서는 관찰사가, 군수이하는 그대들이 선발하여 세력있는 집안의 용사나 량반집의 인재들도 모두 초모할것이며 상벌관계를 정확히 집행할것이다.

흉년이 크게 든 고을은 조세를 절반으로 삭감하고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을 줄이며 고을장관으로 복종하지 않는자에 대해서는 우선 가려내여 처벌하도록 할것이다.

나는 나라앞에 죽기로써 맹세하였으니 중앙과 지방의 의로운 선비들은 나의 뜻을 알고 하나같은 마음으로 사직을 생각하라.

이 글을 포고하여 알려주는바이다.》

마지막글줄은 그가 읽었다고 생각했을뿐 미처 다 읽지를 못했다. 너무도 슬픔이 솟구쳐 소리도 제대로 낼수 없었던것이다.

왕비의 살해이후 줄곧 그에 대한 생각은 하고있었으나 이렇게까지 슬픔에 잠겨있을줄은 몰랐다.

그것은 비록 왕 일개인의 슬픔과 복수심에서 나온것이기는 하였으나 나라의 최고군주로서 자기 주권의 대변자였던 민비를 살해한 일제에 대한 증오심이 충분히 반영되여있었다.

하기에 《애통소》에는 의병들의 활동지역과 그 명칭, 관청장관들의 관계가 명백히 규정되여있으며 필요하다면 그곳에 보관되여있는 무기나 군량을 동원할 권리까지도 의병들에게 주어졌다는것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린석이 그것을 다 읽고 용기를 내여 머리를 들었을 때 모든 의병장들도 강개한 마음으로 그를 향하였다.

《최대감께서는 이번에 상감을 만나보시고 의암선생과 함께 민중전(민비)을 만나보던 때를 회억하시였습니다. 하시고는 그때 만약 중전께서 의병을 일으키자고 하시던 제의를 받아들이였다면 죽지 않았을것이라고 비분을 표하였습니다.》

《최대감께서 끝내 상감마마를 만나시여 목적을 성취하시였구나.》

린석은 이렇게 말하며 의병장들과 함께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던 지나간 일을 추억하였다.

그것이 지난해 왕의 《어지》로 의병이 해산된 후 최익현을 만나러 서울에 올라갔을 때 일이다. 그때 최익현은 새로 조직된 군국기무처의 공부판서직무를 수행하며 밤낮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그럼에도 자기를 찾아온 린석에 대해서만은 반가움을 금할수 없어 집으로 데리고갔다.

그만큼 린석도 제천에서 있었던 의병조직과 그 해산에 대한 이야기를 허물없이 꺼내놓았다. 그에 대하여 익현은 제천의병대의 조직에 대해서는 임금이 알지도 못했고 그런만큼 어지도 내린적이 없다고 알려주었다.

그것이 린석을 발끈하게 하였다. 그렇다면 충주감사란 사람이 어지를 감히 날조하였단 말인가. 그런자들이 어떻게 뻐젓이 관찰사노릇을 하고있는가.

그러자 최익현은 허허 웃으며 조정에 그런 간신역적들이 한둘인줄 아는가, 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것이 바로 그 역적무리들이다, 그것들이 한무리로 되여 커다란 력량을 이루기때문이다, 김규태로 말하면 친일분자로서 내각의 내부대신 박영효나 군부대신 조희연이들과 한짝인데 바로 그들이야말로 일제가 조선의 내정에 박아넣은 앞잡이들로서 감히 건드릴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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