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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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후의 사실들은 그때 사석의 말이 옳았다는것을 확증하여주었다. 즉 그때 왕이 내린 어지란 전국적으로 일어난 농민폭동을 말하는것이였지 제천에서 일어난 반일의병투쟁을 념두에 둔것이 아니였다. 한것을 충주관찰사 김규태란 사람이 어지라고 말을 만들어 그들에게 억지로 내려먹였던것이다.
《자네가 부대를 해산하지 않은것이 지극히 정당하였네. 이제 그 빛이 나게 힘을 써보게.》
이윽고 류린석이 입을 열었다. 거기에는 사석에 대한 믿음과 아울러 관찰사 김규태에게 속았던 분함이 함께 어려있었다.
《저희들은 도창부대로 특기를 살려보려고 합니다. 총과 대포가 없는 대신 창과 칼만이라도 잘 써서 왜놈들과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사석이 다시한번 결심을 굳히며 대답했다.
그의 말이 옳다. 지금 골안은 여기저기 피여오르는 숯불연기와 요란한 메질소리로 가득찼다. 역시 철덕에서 생겨난 부대의 근본을 살리고있는것이다.
김백산의 부대에 이어 사석의 부대까지 돌아보고난 린석의 심중에 류다르게 고패치는것이 있었다. 무장장비나 훈련에서 부대마다 자기 특기를 살린다면 의병대의 전투력이 더 강해질수 있다는 생각이였다.
그런데 저녁무렵 예기치 않았던 한가지 근심이 떠올랐다. 무기를 잡는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할수 있겠느냐 하는것이였다.
그것은 예로부터 그랬다. 여차하다가는 반역행위로 몰리울수도 있는것이다.
몇몇 의병장들에게 생각을 비쳐보았더니 역시 견해가 같았다. 듣고보니 그 생각이 맞는다는것이였다. 잘못하면 임금에게 근심만 더 끼쳐드릴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데까지 생각들이 이어졌다.
그날저녁 린석은 의병장들을 전부 향교의 강당에 모이게 하였다.
여느때에는 교생들이 무릎을 꿇고앉아 유교경전이나 소리내여 외우던 곳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칼을 차고 총을 멘 의병장들이 모여앉았다. 그들모두가 긴장하고 각성된 눈빛으로 린석을 쳐다보고있었다.
린석은 그들을 마주하고 한층 높은 교단에 앉았다. 낮동안과는 다른 긴장한 자세였다.
《여러 의병장들이 이렇게 와주어서 참으로 고맙네. 그에 대해서는 따로 말할 기회가 있는바이지만 먼저 한가지 의논하고싶은것은 의병대의 조직에 대한 문제때문일세. 요점부터 말하면 나라에서 의병을 일으키라는 지시가 없는만큼 여차하다가는 죄되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것일세.…》
그가 이렇게 서두를 떼면서 아까 하던 생각을 터놓았다.
모두가 긴장한 속에 아무도 말이 없었다. 듣고보니 과연 그렇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였다. 아닌게아니라 그중 앞에 앉았던 리춘영이가 먼저 입을 떼였다.
《대장님의 말씀이 옳은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옳은 일을 하자고 하여도 나라의 승인없이 시작을 한다면 앞으로 문제가 설수 있습니다.》
나라의 정사에 대하여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할수 있는 그가 이렇게 말해서 생각들은 더욱더 그쪽으로 쏠리였다. 안승우가 그랬고 김복한이 그랬다. 의병대를 조직하기전에 먼저 사람을 보내여 우의 승인을 받자는것이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나라에서 알게 하여 지난해와 같은 쓴맛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것이였다.
그렇게 거의 락착이 되여갈 때 뒤구석에 앉아서 지금껏 말이 없던 김백산이 불쑥 일어섰다.
《대장님,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이 다 모이고 싸움을 눈앞에 둔 이때 우의 지시만 기다린다는것은 스스로 발목을 붙잡아매는것과 같습니다.》
린석으로서는 전혀 뜻밖이였다. 비록 그가 싸움준비는 그중 잘했고 사람도 똑똑하다고 보았지만 의병장들중에서는 나이가 제일 어리고 또 태반이 유생량반들인 이 좌석에서 그가 저렇게 불쑥 튀여나올줄은 몰랐던것이다.
《총각, 자네의 말에도 일리가 있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던것이 사실일세.》
린석이 잠시 주저하다가 그에 대한 애착만은 잊지 못해서 총각이라고 부르며 설명을 했다.
《그러나 정사라는것은 그렇지 않네. 다른 일도 그러하지만 특히 무기라는것은 절대적으로 조심해야 하는것일세. 우리가 어쩌다 조총 하나를 잘못 놓거나 사람 하나라도 상하게 된다면 그게 정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모르네. 더구나 그것이 임금께 알려져 근심을 끼쳐드리게 된다면 얼마나 큰 죄악이 되겠는지 생각해보았나?》
《그렇지만 우리는 바로 임금님의 원쑤를 갚자고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 돕자고 하는것이 해가 되는 일일지 우리가 알수 있나. 지금 중전을 잃고 누구보다 근심이 많은분이 바로 우리 임금님일세. 하면서도 아직 이렇다하게 민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것은 바로 그때문이 아닌가고 나는 생각하네. 그렇잖은가?》하고는 잠시 말이 없는 백산을 보고 다시 계속하였다. 지난해에도 바로 그런 일때문에 도의 관찰사가 어지라는것까지 들고나와 소란을 피웠던 사실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백산의 곁에 앉았던 사석이까지 일어섰다.
《대장님, 그때 관찰사란 사람이 내려보냈던 어지라는것이 가짜가 아니였습니까. 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대장님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그만 린석이 아연해지고말았다. 그가 내심 우려하던 문제를 정통으로 찔렀던것이다.
생각을 하면 지금도 그때 관찰사의 소행을 놓고 분함을 금할수 없었다. 그럼에도 한켠으로는 이번에도 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가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관찰사뿐만아니라 그보다 더한 사람이 나올수도 있다. 그들이 어떤 수로 무슨 오그랑수를 쓸지 알수 있겠는가. 린석은 지금 그
모든것이 임금의 명예를 걸고 임금을 욕되게 하는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자체가 임금앞에 죄를 짓고 충군충의에 어긋나는 행
하여 무엇인가 더 설명을 하자고 하는데 백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장님, 우리는 빨리 의병대를 무어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의 승인을 받고 안받고 하는것은 싸움을 하면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것은 애초에 대장님께서 격문을 날린 취지에도 맞는것입니다. 하지 않다가는 또 지난번의 실책을 범할수 있습니다.》
갑자기 방안이 정숙해졌다. 모두 그의 말을 음미해보느라 생각에 잠긴것이다. 그러다가 방 한가운데서 누군가 큰소리로 웨쳤다.
《옳수다. 저 총각대장이 바로 말한것 같수다.》
뒤따라 몇사람이 한꺼번에 들고나왔다.
《의병대부터 빨리 조직하고 봅시다.》
《우리가 싸움만 잘하면 나라에서도 알 도리가 있겠지요.》
그 소리와 함께 방안에 화기가 돌았다. 후- 하고 큰숨을 몰아쉬는 사람, 허허 소리내여 웃는 사람에 대통에 담배를 채워넣고 부시깃을 탁탁 치는 사람들로 붐비였다. 그통에 린석도 미소를 머금고 백산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만은 담배도 피우지 않고 육초가락 불그림자밑에서 고개를 숙인채 사석이와 무슨 말인가 조용히 주고받고있다.
다시한번 그의 모습이 새롭게 안겨왔다. 백산의 말이 옳았던것이다.
따지고보면 백산이 별로 새롭다거나 기발한 안을 내놓았다고는 볼수 없다. 린석이 애초에 계획하고 추진하던대로 하자고 했을뿐이다.
문제는 린석이
한것을 백산이 바로잡아주었다. 사석이도 큰일을 했다. 이중에서는 량반도 선비도 아닌 단 몇명밖에 안되는 량민(신분적으로 보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그 문제는 백산의 주장대로 의병대를 먼저 조직해놓고 우의 승인을 받자는데로 락착이 지어졌다.
그것이 끝나자 린석은 다시 상단에 자리잡고 앉았다. 그앞 좌우에는 서안우에 한대씩 세워놓은 육초가락이 극성스레 타고있다. 그 불빛에 자기를 향해 일제히 머리를 쳐든 의병장들의 모습이 환히 안겨왔다. 근엄하고 진중한 눈빛들이다.
그들을 향해 린석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과 이렇게 한자리에 마주앉고보니 참으로 감회가 깊다.
여기에는 누가 오라고 해서 마지못해 온 사람이 없을것이다. 모두 나라가 위급한것을 알고 스스로 달려왔다. 이것은 만세불멸의 국가를 위하여 자기 한몸을 돌보지 않으려는 애국의 마음과 충성된 마음에서라는것을 나는 잘 안다. 여러분들과 같이 온 의병들모두의 마음도 그와 같을것이다.
지금 임금께서는 중전을 잃으신 다음 밤낮으로 전전긍긍하시며 수라도 제대로 들지 못한다고 하신다. 이러한 때에 임금의 신하이며 백성인 우리가 자기 집에 있는것만 생각하고 나라에 있는것을 생각하지 못하며 자기 자식은 생각하면서 임금의 자식이라는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의 신민이 아니다.…
평시에 우리가 글을 외을 때 문교는 원대한 장래를 위한것이고 무기는 위급한 때에 조심히 쓰는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다. 옛말에도 사물의 변화에 따르지 못하면 일에 성공할수 없고 시기에 적절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이 알고있어도 쓸데가 없다고 하였다.
이제 우리는 나라를 위한 성업에 자기를 바칠 때가 되였다. 바로 그것을 위하여 여러분들도 달려왔거니 나도 그런 마음에서 대장으로 추천한 그 신의를 기꺼이 받아들일것이다.
나는 천성이 미천하고 아는것도 없으며 몸이 체소한만큼 마음도 용렬하다. 그러나 이왕 대장으로 받들린 이상에는 나의 모든 힘과 지혜를 다 바쳐 여러분들과 생사운명을 같이할것이다. 아울러 대장의 명령은 곧 법이며 법을 어길 때에는 누구도 용서치 않을것이라는것을 엄숙히 선언하는바이다.
《대장님의 명령을 기꺼이 받들겠소이다.》
《받들겠소이다.》
말이 끝나자 여러 의병장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여 화답을 했다.
이어 그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병대조직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밤새도록 의논을 벌렸다. 다음날에도 의논은 쉬지 않고 계속되였다.
마침내 그것이 락착되자 전부대가 향교앞마당에 정렬하였다.
각 지방에서 모여온 부대들이 단위별로 모여서자 향교는 전례없이 들끓었다. 수천의 의병들이 골짜기를 메우며 늘어섰는데 어디서나 기치창검이 번뜩이고 북과 꽹과리를 비롯한 악기들이 천지를 진동하며 굉음을 터쳤다. 각 부대들이 저마다 지지 않으려고 특기를 살리며 기세를 올렸던것이다.
류린석이 그앞에 나가 먼저 일장연설을 한 다음 의병대를 조직한다는 선포를 하고 부대의 명칭과 구성체계 그리고 각 지방의병대장들을 발표하였다.
즉 부대의 명칭은 제천반일의병대라 하고 총대장은 창의대장으로서 류린석으로 하며 중군(부대장)은 리춘영, 군사장(참모)은 주용규, 군수장(후방부대장)은 안승우, 선봉장은 김백산으로 한다. 기타는 각 지방에서 온 부대의 명칭에 따라 그 이름을 그대로 부르며 대장 역시 그대로 한다.
이렇게 하여 충주와 원주, 단양, 녕월, 문경 등 관동과 관서, 령남각지에서 모여온 부대들로 제천반일의병대가 조직되였다.
부대조직이 선포되자 의병들은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북과 징을 두드리고 기발을 휘날렸다. 수천군중의 힘찬 웨침과 마음껏 치고 두드리며 불어대는 악기들의 굉음이 향교앞 넓은 골짜기를 휘두르며 멀리로 퍼져나갔다.
모임이 끝난 다음 린석은 의병장들만 따로 이끌고 향교앞에 우뚝 솟은 뾰족한 산봉우리로 올라갔다. 의병장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그가 가는대로 따라갔다.
그곳은 밑에서 보기보다 더 높고 아찔한 곳이였다. 우로는 구름이 손에 닿을듯 가까이에 걸리고 아래로는 울룩불룩한 산발들과 굽이굽이 골짜기들, 밭뙈기들, 농가들이 발밑으로 흐르고있었다. 뛰여내리면 발끝에 닿을듯 제천읍거리도 가까이에 보였다.
옛적 어느 한때에는 여기에 봉대가 있었다고 했다. 외적이 쳐들어오면 그 위급함을 알리는 봉대, 거기에 오늘은 의병대들이 섰다. 역시 외적의 침입을 당하여 그 소식을 나라에 알리자는 뜻에서일것이다. 왜놈들이 이 땅에 들어왔다. 력대로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로 세상에 이름을 떨쳐온 이 나라가 바야흐로 승냥이의 이발에 뜯기을 위험에 처했다. 겨레여, 백성이여, 일어나라. 손에 무장을 들고 왜적을 쳐물리치자.…
넓다란 바위를 가운데 두고 린석이 의병장들과 둘러섰다. 모두가 말없는 가운데 비장한 눈빛들이 오고갔다.
《싸움은 이미 시작되였다. 칼잡고 나선 사나이의 앞길에 별의별 일이 다 있을수 있다.
누구도 우리에게 이 일을 시킨 사람이 없다. 그만큼 알아줄 사람도 없을것이다. 그렇다고 곤난이 나선다면 뒤로 물러설것인가.
맹세를 다지자. 지금 우리가 의지할곳은 하늘밖에 없다. 모두가 저하늘을 향하여…》
린석이 준비해놓은 잔에 술을 따랐다. 매 의병장들에게도 술을 따르고 일제히 손을 쳐들었다.
《왜놈들과 죽음을 불사하고 싸울것이다!》
린석이 선창을 떼자 의병장들이 모두 따라했다.
《싸울것이다!》
《국사를 위하여 사사를 돌보지 않는다!》
《돌보지 않는다!》
《죽어도 배반하지 않는다!》
《배반하지 않는다!》
목청을 가다듬고 힘껏 웨쳐대는 사나이들의 함성은 산발을 타고 멀리 멀리로 메아리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