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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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곳은 다른 의병대들과는 딴판 다른 광경이였다. 수백명의 의병대원들이 공지의 넓은 마당에서 한창 놀음놀이를 벌리고있었던것이다.

이곳 사람들이 일명 닭싸움이라고 하는 무릎싸움이 진행되고있었는데 수십명 장정들이 한쪽다리를 무릎우까지 꺾어들고 다른 한쪽다리로 겅둥겅둥 뛰면서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경기였다.

모두가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이여서 공격자도 방어자도 간단치 않았다. 와와 떠들며 놀음에 참가한 사람, 밖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들떠있어서 린석이네들이 도착하는것을 알지 못했다. 마침내 한쪽켠은 다 넘어지고 기골이 특별히 큰 한사람만 남았다.

이쪽켠은 두사람, 여차하면 그들도 한순간에 나가넘어질 위험에 처해있었다. 그때 키가 작달막하고 나이도 애돼보이는 총각이 어느 사이에 뒤로 돌아가더니 키큰 사람의 허리를 지끈 들이받았다. 그 장대한 사나이가 앞사람만 상대로 기회를 노리다가 뒤로부터 불시에 들이닥친 타격에 그만 코를 밀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순간 와 하는 함성과 함께 같은편 사람들이 달려나와 그의 손을 높이 떠받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린석은 저으기 놀랐다. 어쩌면 싸움의 리치를 련상케 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다른 한켠으로는 총각이라고 보았던 그가 머리를 얹은 장가간 사람이라는 놀라움도 없지 않았다.

사람들의 손에서 풀려나온 키작은 사나이는 멋적게 뒤통수를 긁적거리다가 한순간 린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는 제잡담 사람들속을 뚫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러자 잠시후 《의병대 모엿!》하는 구령소리가 들리고 그와 함께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뛰여가고 뛰여왔다. 이윽하여 놀음판이 벌어졌던 마당에 수백명의 의병들이 일제히 렬을 지어 섰다. 그속에서 다시 《의병대 우로 나릇!》하는 힘찬 구령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급히 달려와 린석의 앞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대장님께 문안드리오. 강원도 녕월의병대는 지금 휴식중에 있습니다.》

순간 린석의 눈빛은 반가움속에 한결 부드러워졌다. 보고를 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김백산이였던것이다. 여전히 두레머리에 한쪽어깨에 삐죽 나온 신식보총도 전과 다름없었다.

《이 사람, 수고했네. 왔다는 말을 들었네.》

린석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일으켜세웠다.

그러나 그는 일어서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리춘영과 안승우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였다.

(변하지 않았다. 조금도.내가 그때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어.)

린석은 이런 생각으로 소리까지 지를번 하였다. 그러나 그런 티는 내지 않고 반겨 묻기만 했다.

《사람이 얼마나 되나?》

《사백이 좀 넘습니다.》

《내 들은바가 있네. 병쟁기는?》

《화승총이 이백정에 신식보총이 다섯정 그리고 창과 칼이 각각 백자루, 활이 이백자루입니다.》

《음흠, 괜찮군. 당장 싸울만 한가?》

《대장님의 명령만 기다리고있습니다.》

린석이 미리 듣기는 했었지만 막상 그를 만나고보니 진실로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량반도 관리도 아닌 한갖 평민에 불과한, 그것도 떠돌이총각의 몸으로 이만한 싸움준비를 했다는것이 자못 놀라왔다.

부지중 지난해 여름 그를 처음 만났던 일이 떠올려졌다. 그때에도 그는 자기의 상상을 뛰여넘어 수백명의 사람들을 휘동해가지고 공주로 가지 않았던가.

《그사이 어디 가있었나?》

《여러곳을 편답하며 역시 떠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녕월땅에 웅거하여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는 그때처럼 자기에 대하여 말할줄 몰랐다. 말없는 그속에 옹근 한해동안이나 깊은 산속을 헤매며 봉기후 여기저기로 흩어져갔던 사람들과 산포수들을 그러모아 이만한 싸움부대를 만들어낸 그의 수고가 우렷이 안겨왔다.

그것이 불시에 또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의병부대들을 이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것이였다. 좀전까지만 하여도 그는 병쟁기나 훈련은 고사하고 이만한 인원수가 모집된것만 해도 상당한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지금 김백산의 부대를 보고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싸움을 하자면 이만큼은 모든 부대들이 준비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이러한 생각은 다음으로 사석의 부대를 찾았을 때 더한층 굳어졌다.

그의 부대는 백산의 부대보다 좀더 안으로 들어간 깊은 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대로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있었다. 첫눈에 안겨오는것은 골짜기에 자욱한 연기와 요란한 쇠망치소리, 쟁강, 쟁강하는 칼부림소리였다. 류린석이네들이 도착하기도전에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찾고 부르며 대렬부터 정렬하더니 대장 사석이 나섰다.

《대장님, 원로에 수고많으셨겠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선채로 읍만 하면서 하는 말이였다.

린석은 그것을 자기에 대한 남다른 존경의 표시로 알고있다.

《철덕군이 솜씨를 보이는 모양이구만. 대장노릇하기가 힘들잖은가?》

역시 며칠전에 만났던 친구들사이처럼 스스럼없는 인사가 오고갔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둘사이에 남다른 연고가 있다는것을 짐작케 하는것이였다.

그랬다. 역시 지난해 여름 린석이 의병조직차로 이곳에 와있을 때다. 의병조직이 뜻대로 되지 않는데다 군수 리찬익이란 사람이 애초에 하지를 못하게 해서 고심은 곱절로 커졌다. 어차피 군수를 찾아가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군수가 용무중이라면서 그를 동헌밖에서부터 들여놓지 않았다. 그 용무란 바로 사석을 동헌대뜰아래 꿇어앉혀놓고 심문을 하는것이였다.

그때 제천의 목미고개에 있는 쇠부리터의 주인이였던 사석은 자기네에 대한 수탈이 너무 심하여 련명으로 된 상소문을 고을에 낸것이 있었다. 그런데 군수가 그것을 란동을 선동했다는 죄명으로 사석과 함께 몇명을 붙들어다 심문을 하고있는것이였다.

《련명으로 수결을 한 목적이 뭐냐? 뭐라고 선동질을 했느냐? 뒤에는 누가 있느냐?》

사석은 절대 그런것이 아니라고 설명을 했다.

그때 목미고개 쇠부리터에서는 보습과 호미를 비롯한 농쟁기들과 가마와 남비, 화로와 인두, 다리미를 비롯한 여러가지 철물들을 만들고있었다.

하루생산량이 천근정도에 해당한것으로 수량도 많고 그 질도 아주 괜찮아 린근고을에 크게 소문이 났다. 문제는 그 소문이였다. 소문이 날수록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군에서는 군대로, 도는 도대로, 서울에서는 서울대로 저마다 진상, 공물, 상납, 인사치레하면서 하루에 보통 2천근, 어떤 때는 3천근어치에 해당하는 물품들을 내라고 하였다. 이 철덕에서 일하는 로동자가 호주(책임자), 앞쟁이(조역), 돌패쟁이, 숯쟁이 등을 모두 합하여 서른명이 맞교대로 일을 하는데 그 많은 상납을 하고는 밤낮으로 쇠물을 부어내는 일군들이 삼시 밥도 빌어먹기 힘든 형편이였다. 그에 대하여 몇번이나 제기를 했으나 해당한 대책은 없고 그저 내라는 지시만 거듭 내려왔다.

《그런 사정이야 너희들이 일을 더 많이 해서 대책할것이구 우리가 묻는것은 왜 련명으로 상소를 했느냐 하는것이다. 여기에 반드시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한짓이지 아무 생각도 없이 제 이름자들을 박아넣었단 말이냐.》

리찬익이 온몸이 꽁꽁 묶이운 사석이네들을 향하여 따지고들었다.

그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대답을 할 때까지 매우 치랍신다-》

급창의 긴 소리가 뜰아래로 굽이치자 긴 몽둥이를 든 사령들이 《예잇-》하는 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하늘중천에 긴 반원을 그리며 돌아갔다. 이어서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몽둥이가 그대로 사석의 잔등에 떨어졌다.

한번 또 한번

밖에서 그 광경을 눈여겨보던 린석의 일행이 막아서는 파수들을 밀어제끼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또께서는 이게 무슨짓이요? 죄없는 사람을 그렇게 다루어서야 되겠소?》

린석이 뜰우로 뛰여오르며 대뜸 들이댔다.

그때까지 그들을 못 본척 하고있던 리찬익이 짐짓 놀라는체하며 고개를 돌렸다.

《무엄하다. 누구들이 감히 남의 공무를 방해하는것이냐?》

《고을의 사또라고 하면 하정을 잘 살피여 그들의 편의를 돌봐주어야 하는것이지 무턱대고 죄인취급을 하며 매부터 들어야 되겠소?》

《보면 모르겠소. 저것들이 무리를 지어 쑥덕공론을 하고있는데 이것을 애초에 박멸하지 않으면 안된단말이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나라가 소란하고 전국이 들끓고있는데 그 씨앗부터 없애버리지 않으면 이 란동을 막을수가 없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가 보기에는 그들이 나라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것이 없소. 법이란 만인의 공유물로서 사또 한사람이 마음대로 쥐고 흔들라는것이 아니요. 나라에서는 법으로써 백성들을 편하게 하라고 한것이지 억지로 죄를 만들어 괴롭히라고 쥐여준것이 아니요. 당장 중지하시오.》

했으나 리찬익은 더욱더 사납게 악을 쓰며 형을 끌고나가려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리강년이 나섰다.

그는 궁중에서 선전관(궁중에서 왕을 시위하는 하급무관)을 지내는 무사인데 이번에 의병을 조직하라는 최익현대감의 지시를 가지고 린석을 찾아왔던 사람이다. 허우대가 크고 성격이 좀 우직한 편인데 그때 공무아문의 대신으로 있던 최익현의 반일반침략사상에 감동하여 그와 가깝게 지내오는터였다.

《군수, 기어이 우리의 요구를 외면할텐가. 군국기무처(당시 혁신관료들에 의하여 조직되였던 부르죠아개혁기구)에서 모든 세납은 물품으로가 아니라 현금으로 하라는 지시를 내려보낸지가 언제인데 여기서는 왜 아직도 저런 물건타령인가?》

벼슬등급으로 말하면 군수가 그보다 몇등급이나 높지만 강년이 서울에서 내려왔고 더구나 임금까지 근시하는 인물이라 찬익이 혼자 제노라고 할수 없게 되였다. 하는수없이 사석이네들을 놓아보내고 사람들도 흩어지게 한 다음 그들과 마주앉았다. 그러나 의병조직에 대해서만은 우에서 지시가 있을 때까지 응할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전라도민란이 심한 요즘 며칠전에는 그곳에서 왔다는 어떤 총각놈이 수백명의 사람들을 휘동해가지고 간 일때문에 도에 있는 관찰사에게서 된추궁을 받았다는것이였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끝내 군수의 동의를 받아내지 못한채 향교로 되돌아오고말았다. 군수가 관찰사의 승인을 받으면 자기도 그에 응하겠다는데 더 할말이 없었던것이다.

그때 린석은 전라도에서 왔다는 그 총각이 김백산이였음을 대뜸 짐작하였다. 결국 그에게 선손을 떼운셈인데 생각을 하면 괘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였다. 하면서도 한켠으로는 그의 담대하고 리지적인 행동에 감동되는바도 컸다.

이러나저러나 의병조직에 대한 문제는 뜬 구름장을 쳐다보는 격이 되고말았다. 군수가 반대하는 일을 관찰사인들 하라고 하겠는가.

이렇듯 난감한 처지에 빠져있을 때 자기를 의병대에 받아달라고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다름아닌 사석이였다.

쇠부리터에서 늘 숯과 쇠돌만 만지다나니 온몸이 거무스름하고 쇠내가 나는듯 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자기앞에 엎디여 선생님이 아니였더라면 자기는 매를 맞아죽거나 병신이 되였을것이라고 하면서 꼭 의병대에 받아달라고 하던 모습을 잊을수가 없다. 이왕 쇠부리일을 못할바에는 의병대에 들어와 왜놈과 싸우겠다는것이였다.

린석은 물론 그에 응했다. 더구나 그는 혼자가 아니라 쇠부리터의 서른명전원을 다 데리고왔다. 그 인원만 해도 어디인가.

이렇게 되여 첫 의병대는 이삼백명정도의 규모로 고고성을 울리게 되였다. 그만하면 싸울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그 조직을 선포했던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지금까지 아무말도 없던 감영에서 사람이 내려와 그 해산을 선포했다. 관찰사 김규태가 보내서 왔다고 하면서 왕의 어지까지 읽어주는것이였다.

《나라안의 많은 선비들과 백성들은 이 말을 극히 명심하여 들으라. 내가 덕이 없어 정사가 뜻대로 되지 않아 나라가 문란해지고 백성들은 시달리고있으며 나라의 도처에는 이웃나라의 군사보루가 널리게 되였다. 생각컨대 너희들은 선대의 어진 후손들로서 훌륭한 문화와 례법으로 교육받고 대대로 아름다운 풍속을 지켜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에 와서 곳곳에서 무리를 지어 나라를 소란하게 하고 임금에게 근심을 끼치는것인가. 아, 너희들은 임금의 백성이 아닌가. 지금 내가 이렇듯 간곡히 가르치는데도 듣지 않으면 그것은 아비를 아비로 알지 않는것이다. 나의 이 말이 내려가면 즉시 모임을 해산하고 생업에 안착함으로써 밤낮으로 근심해 마지않는 나의 불안을 덜어줄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에 법을 맡은 관청이 있는만큼 결코 용서치 않을것이다.

어지를 받은 린석은 갑자기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무겁게 지지눌리는것을 느꼈다. 임금께서 오죽하면 저런 어지까지 내려보냈으랴 하는 생각에서였다. 과연 내가 임금의 신하가 아니며 임금의 백성이 아니란말인가. 그런데 어떻게 감히 나라님께 저런 근심을 끼쳐드릴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기꺼이 시작했던 의병대조직을 포기하고 그 해산을 선포해버렸다.

소식을 듣고 사석이 다시 찾아왔다.

《선생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지금까지 해야 한다고 하던 주장은 어디에 가고 이제와서는 아니라고 하니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것입니까.》

《죽더라도 임금의 명령은 피할수 없소. 평시에는 그것이 옳고 해야 한다고 했더라도 임금이 아니라고 하면 그것은 그만두어야 하는거요.》

《선생님의 말씀은 옳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오유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것을 꼭 밝혀내야 합니다. 그사이 저는 산에 들어가 의병들과 함께 때가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 되여 그들은 헤여졌다. 사석은 부대를 이끌고 산으로 들어가고 린석은 최익현을 만나러 서울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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