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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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놈《토벌대》가 전멸당한 이날밤에 노루목촌에서는 큰 경사가 벌어졌다. 부락주민들은 물론이고 아래웃동리사람들과 수십리밖의 산판에서 수백명사람들이 모여들어 유격대원들을 얼싸안고 흥성거리며 돌아갔다. 그런데 이날밤 새신랑이 간다온다 말 한마디없이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버렸다.

새색시만이 홀로 남은 신방에는 신랑이 입었던 바지저고리와 두루마기, 발회목에 매였던 대님까지 벗어져있고 그대신 산판을 돌아갈 때 입었던 낡은 군복이 없어졌다.

신부집에서는 새신랑이 잔치를 하자마자 안해를 버리고 왕이산부대를 찾아갔다고 야단을 쳤다. 하필 갈바에야 유격대를 따라가지 왕이산은 왜 찾아가느냐고 부락사람들까지 끼여들어 욕을 퍼부었다.

그런데 이튿날 한낮때가 되여서 새신랑이 오륙명의 장정들을 데리고 부락에 나타났다. 그는 처가집에도 소식을 알리지 않고 곧장 하연성을 찾아가 장군님을 만나뵙게 해달라고 졸랐다.

신부집에서 소리없이 사라져버린 신랑이 자기 동료들을 데리고 문밖에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방금 한흥권이와 마주앉아 원정부대의 행군로정을 토의하시던 일을 미루시고 그들을 방에 청해들이시였다.

사람들은 될수록 방안의 면적을 적게 차지하려는듯 벽밑에 바싹 다가앉아 어깨들을 다가붙이고있었다.

《흙두구리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앉으십시오. 웃목은 찹니다.》

장군님께서는 흙두구리우에 걸쳐져있는 어렁태를 치우고 친히 사람들의 손을 잡아 아래로 이끄시였다.

잉걸불이 이글거리는 흙두구리옆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눈을 슴벅슴벅하였다.

장군님, 저희들은 유격대에서 받아주실수 없겠는가 해서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장군님께서 손수 잔치를 치러주신 이 새신랑하구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왜놈의 낡은 군복을 입고 칼집고리가 달린 넓은 가죽혁띠를 띤 사람이 잦아드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당신들은 어디서 무엇하는 사람들입니까. 신랑을 따라왔으니 신랑의 가까운 동료들일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희들은 산판에서 떠돌아다니는 반일부대 병사들입니다. 총도 없고 군복이라는게 죄다 이꼴이니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류벌판 인부들처럼 굵은 아마실로 짠 마대천으로 덧저고리를 해입은 젊은이가 우물쭈물하면서도 장군님의 기색을 살폈다.

동료들에게 어서 속을 툭 터놓고 자초지종 이야기해올리라고 눈짓을 하던 신랑이 그만 안타까와 입을 열었다.

장군님, 이 사람들은 왕이산부대의 병사들입니다. 여기 앉은 다섯사람은 왕이산부대장하구 의형제를 무은 로장패들이구요.》

《그런데 왜 진작부터 그런 말을 못합니까?》

《혹시 왕이산부대 병사들이라고 하면 장군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 망설이는겁니다. 제가 산에서 내려오면서 장군님앞에서는 아무거나 감추면 안된다고 몇번이나 당부했는데도 씨원씨원하게 말을 못합니다.》

장군님의 얼굴에는 무어라 표현 못할 쓸쓸한 기색이 비끼시였다.

《왕이산의 이름을 부른다고 잘못 생각할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전부터 북만의 반일부대중에 왕이산부대도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때 북만반일부대중에서 왕이산부대가 싸움을 괜찮게 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내가 알고있는 왕이산은 라자구에서 싸우다 희생된 왕이동의 동생입니다. 그런데 몇달후에 왕이동이 무장습격을 나갔다가 잘못됐다는 소식을 받지 않았겠소.》

장군님, 방금 말씀을 하신 그 왕이동이 우리 부대장의 형님되는 사람이 옳습니다. 왕이산부대장은 이따금 돌아가신 형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반일을 해도 형님처럼 똑똑히 하련다. 나의 형님은 김일성장군님의 지도를 받아 눈을 뜬 혁명가였다. 그러니 너희들도 비장한 결심을 다지고 반일을 하자고 호소하군했습니다.》

왕이산부대의 로장패라고 하는 사람들중에서 왜놈의 낡은 군복을 입고 칼집고리가 달린 가죽혁띠를 띤 그 사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장군님께서는 숙연히 고개를 숙이시고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알겠소. 나는 이번에 북만원정을 떠나오면서 왕이산의 부대도 찾고 북만의 여러 반일부대들과도 손을 잡자고 생각했더랬소. 그런데 동만땅에까지 소문을 내놓은 왕이산부대가 여기 와보니 무장두 없이 떼거리로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있었소.》

《주보중부대가 야밤중에 갑자기 우리 병영으로 들어와 무장을 벗겨갔습니다. 일본놈과는 싸우지 않고 인민의 재산만 털어가는 비적이라구 하면서 동기용으로 저장해놓은 식량까지 실어갔습니다. 철없는 애들 몇이 부대장이 세워놓은 군률을 어기고 부락에 들어가 못된짓을 했던 일인데…》

장군님께서는 잠시 아무 말씀이 없다가 조용히 고개를 드시였다.

《그가 누구이건간에 인민의 재산에 손을 댔다면 처벌을 받아 마땅하지. 주보중동지는 어떻게 하나 당신들과 손잡고 혁명을 하자고 그랬을거요. 그래 그새 총도 없이 부대는 어디서 어떻게 살았소?》

《처음은 녕안땅에서 이름있는 독립운동자들을 찾아갔더랬습니다. 다문 총 몇자루라도 얻고 겨울나이량식을 좀 얻으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가보니 로인들에게는 우리를 도울만한 재정이 없고 기력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떼거리로 부락을 돌아가며 식객질을 하다가 할수없이 왕이산부대장 아버님이 사시는 귀틀막동네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만 엄청난 화단이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겨울나이식량공작을 나갔던 우리 부대안의 어떤 병사가 공교롭게도 부대장 아버님에게서 식량마대를 뺏어왔는데 그 사람을 로인님이 알아보았던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아들의 부대가 비적질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몹시 언짢아있던 로인은 이제보니 세상돌아가는 소문이 헛소문은 아니였다고 하면서 부대장님의 뺨을 쳐갈기고 발구에 잡아묶기 시작했습니다. 비적대장이 없어지면 비적무리도 흩어질것이니 아들을 산판으로 끌고가 나무찍는 일을 시키겠다는것이였습니다. 저희들이 로인에게 매달려 아무리 빌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발구에 묶여가는 부대장님을 따라가면서 울고불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자 부대장님은 차마 우리를 떨어질수가 없었던지 발구에서 몸을 빼고 도망쳐버렸습니다. 그리구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동냥을 했습니다.》

낡은 군복입은 사람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

장군님께서는 알릴락말락 입술을 떠시며 한숨을 내쉬시였다. 세상에 이렇게도 기막힌 일이 어디 있단말인가?

《부대는 몇명이나 되오?》

장군님께서는 격한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본시는 한 백여명 되던것이 가을잡아들어 몇차례 싸움에서 절반이 없어지구 쉬나문명 되였더랬습니다. 그러던게 지금 서른명 되나마나합니다. 참모장이 한 스무명 데리구 다른곳에 갔습니다. 모여있다가는 다 굶어죽을것 같애서.》

《왕이산부대장은 어찌 되였소?》

《몇번 자결을 시도하는걸 병사들이 울면서 말렸습니다. 지금은 왕이산이 아니라 왕청수라고 이름을 고쳤습니다.》

《그건 무슨 까닭에서 그랬소?》

《왕이산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비적대장이라구 하기에 그 이름을 가지고는 쌀동냥도 못하겠다구 하면서 고쳤습니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고치는것이 자식의 도리는 아니지만 세상에 숨어살바엔 깨끗이 숨어살자 이러면서 우리더러 왕이산은 이 세상에서 죽었다구 선포했습니다. 그리구는 밖에 뛰여나가 왕이산은 없다. 비적대장은 없다 하면서 막 갈갬을 치구 돌아가는것을 겨우 팔다리를 들어 방에 뉘였습니다.》

잠시 아무 말씀도 없이 사람들을 묵묵히 둘러보시는 그이의 눈길에는 한없는 구슬픔이 어려있었다.

《부대장은 어디 있소?》

장군님께서는 갈리신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여기서 한 이십리 떨어진 산전부락에 있습니다. 장군님께서 우리 부대병사의 잔치를 치러주시구 왜놈〈토벌대〉까지 전멸시켰다는 소식을 듣구 부대장이 저희들을 부르더니 〈우리는 유격대에 탄원하자, 그래야 살길이 열린다. 장군님을 따라가자, 누가 우리의 진정을 장군님께 말씀드리겠는가 참모, 당신이 가라, 내가 갔으면 좋겠지만 혁명군들에게 무기를 빼앗긴 부대장이고 인민이 비적대장으로 부르는 사람인데 내가 용서를 받겠는가. 만약 내가 용서를 받지 못하더라도 당신들은 장군님을 따라 가라! 이게 내 마지막 부탁이다.〉 이러면서 눈물을 화르르 떨구지 않겠습니까! 장군님, 저희들을 받아주십시오. 저희 부대장을 용서해주십시오. 죄는 우리가 지었지 부대장이 짓지 않았습니다. 제가 바로 왕이산부대의 아니, 왕청수부대의 참모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두손으로 넙적 방바닥을 짚고 엎드리는 참모의 손을 친히 잡아일으키시였다.

《알겠소. 다 잘 알겠소. 당신들의 마음도 알겠고 왕이산부대장의 심정도 알겠소. 이왕이면 함께 올것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부대장은 혼자 떨어져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겠는가? 그가 자기 이름을 왕청수라고 고쳤다고?… 이런 절통한 일이 있는가. 부대장이 아무리 자기 이름을 고쳤다 해도 당신들은 그를 왕이산으로 불러야 하오. 앞으로도 그를 왕이산으로 부를것을 약속합시다.》

장군님!》

병사들은 와르르 방바닥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장군님의 눈언저리도 붉어지시였다.

《하연성동무, 말을 타고 급히 달려가 왕이산부대장과 병사들을 데려오오. 한순간이라도 그들의 마음고생을 덜어주자면 동무의 걸음이 빨라야 하오.》

하연성이 떠나가자 장군님께서는 한흥권에게 이제 곧 30벌의 군복과 30자루의 총을 준비하라고 이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왕이산을 기다리는 몇시간동안 완전히 마음의 안정을 잃고계시였다. 하연성을 따라 두사람이 떠나고 나머지 세사람이 남았는데 그들 세사람을 향해 왕이산부대의 이야기를 몇번이나 묻고 다시 묻고 하시였다.

세상에 이런 가슴아픈 이야기는 어떤 전설에도 없을것이다. 말을 듣는데도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데 그것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의 가슴은 어떠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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