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5

 

밖에는 다시 두사람만 남았다. 그러자 미영이 황황히 얼굴을 붉히며 사죄를 하였다.

《미안해요, 사실 총은 제가 놓구선…》

그러나 총각은 그에 개의치 않고 방금 그들이 들어간 향교만 주시하고있었다. 이제 어떻게 되겠는지…

총각이 거기에 신경을 모으게 된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였다. 사실 그가 격문을 가지고 제천에 도착한것은 벌써 며칠전이였다. 같이 온 동료들과 함께 읍거리에 주재하면서 격문과 방을 붙이고 연설도 하면서 사람들을 싸움에로 불러일으켰던것이다. 바야흐로 서울공격을 앞두고 공주격전을 준비하고있던 때였다.

하루이틀사이에 벌써 수백명이 모여들었다. 론산과 삼례방면에는 이미 십여만명의 봉기군이 집합해있을 당시였다.

그때 지금 향교에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왜놈칠 의논들을 하고있는데 그곳에 가보면 알 도리가 있을것이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하여 총각은 같이 왔던 사람을 모여온 봉기군들과 함께 먼저 떠나보내고 단신으로 말을 달려 예까지 왔던것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보니 예상외로 조용하였다. 사방 우거진 숲속에서 새소리, 매미소리만 요란하고 사람의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말에서 내려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향교옆 자그마한 기와집담장안에서 동이를 들고나오는 처녀 하나가 보였다. 그는 거기서 조금 떨어진 오른쪽옆에 큰 향나무 한그루가 서있고 몇길이나 되게 우뚝 높은 바위밑에 있는 박우물에 다가가 물을 긷기 시작하였다. 마침 목이 말랐던 총각이 그에게 다가가 물을 한바가지 청하였다.

그가 물을 마시는 동안 처녀는 총각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놀라운것은 그의 어깨에 메워져있는 신식보총이였다. 그것이 처녀의 호기심을 끌게 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무슨 일로…》

《여기에 안승우란 선생님이 계시오? 난 그분을 만나자고 왔소…》

그가 설명을 했다. 이름은 김백산이며 전봉준대장의 부하라는것과 함께 전라도민란에 대하여 그가 묻는대로 대답을 했다.

처녀는 그 말을 듣고도 리해가 안되는듯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그러고도 총각이 메고있는 총에 대해서만은 호기심을 금할수 없는듯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그 총은 어디서 난거예요. 얼마나 무거워요?》

그가 눈을 깜박이며 다시 물었다.

그것이 총각의 장한 용기를 북돋아주었는지 모른다.

《왜놈에게서 빼앗은거요. 이 주먹으로 한놈 까눕히고 빼앗았소.… 얼마 무겁진 않소.》

《얼마나 멀리 나가요? 한번 놓아보세요.》

《화승총에 비할바 없소. 이것으로 벌써 왜놈을 몇놈이나 잡았소.》

《어떻게 놓아요. 저도 한번 잡아보자요.》

이번에도 장한 기분이 총을 처녀에게 잡아보게 하였다. 그리고는 총의 제원과 구조작용에 대하여 하나하나 설명을 했다.

《이것이 방아쇠라구요? 당기면 나간다니 어떻게…》

총소리는 바로 그때에 난것이였다. 멋도 모르고 무작정 방아쇠를 잡아당겼던 처녀는 놀라서 총을 집어던지고 눈귀를 가리우며 땅에 주저앉았다. 우짖던 새소리, 매미소리도 순간에 뚝 그쳤다.

안승우와 류린석이네들이 달려나온것도 그때였다.…

《미안할게 없소. 같이한 일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녀자들이 책임지는 법이 없소.》

이윽고 백산이 강당에서 시선을 떼며 말하였다.

그 소리에 미영은 붉혔던 얼굴을 들었다.

《그렇지도 않아요. 집안에선 모든 잘못을 녀자들이 뒤집어쓰거던요. 그저 잘못했다고만 해야 해요.》

《그 역시 남자들이 집안정사를 잘못하는때문이요. 잘한것과 잘못한것을 분명히 하는것도 남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소.》

처녀는 더한층 놀라운 눈으로 백산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어딘가 남다른데가 있어 흉금을 터놓고 론쟁을 해볼 여지가 있다는것을 감촉한 때문이였다. 그러나 아직은 초면인 그에게 아무 말이나 터놓을수 없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자기를 경계하게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류린석일행이 다시 나오고 남자들끼리만 통하는 대화가 시작되자 미영은 동이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고말았다.

그때까지 린석은 둘사이에 있은 일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총각이 가지고온 격문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였다.

《총각이 수고를 했소. 우리가 의논을 했는데 동학도들이 왜놈들과 싸우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나라의 임금이 있는 서울을 공격하자는데는 찬성할수 없소. 우리는 우리대로 싸우겠소.》

그 말에 백산은 예기치 않았던 왕청같은 소리로 대답을 했다.

《말씀을 좀 진중히 해주십시오. 봉기자들속에 동학군들이 많기는 하지만 전부가 동학을 믿는 사람이 아니며 더구나 그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우리가 아닙니다.》

《동학이든 아니든 임금이 계시는 서울을 치자는것이 아닌가. 그래 우리까지 란민이 되라는겐가?》

안승우가 참지 못하고 발끈했다.

그때에도 총각은 침착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치자는것은 임금이 아니라 왜놈들과 양놈들이며 그놈들에게 나라를 파는 간신역적들과 나라와 백성은 아랑곳없이 저들의 배만 불리우는 탐관오리들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임금이 계시지 않는가. 이것은 임금을 반대하는것이 아닌가?》

그 소리에 백산은 더 말을 않고 돌아섰다. 더이상 론쟁을 해야 필요없다는것을 깨달은 모양이였다.

《잘했습니다. 저런 불학무도한놈이 전봉준의 부하라고 하니 그도 알만한 사람입니다.》

그 소리에 말에 오르려고 편자를 손질하던 백산이 돌아섰다.

《선생님, 뜻있는분들은 지체를 낮춘다고 말하던데 선생님은 반대이시군요. 우리 대장님을 욕한다고 선생님의 지체가 올라갈것 같습니까?》

한순간 당황했던 안승우가 계속했다.

《그 욕은 네가 번것이다. 비록 너의 대장이 명령하지는 않았더라도 너의 행동이 그것을 보여주고있지 않느냐?》

《우리 대장님을 욕하지 마십시오. 지금 수만백성이 대장님을 따르고있습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고 하였는데 근본을 이끌고나선 우리 대장님이 무엇이 어쨌다는것입니까?》

《근본이고 무엇이고 나라가 이렇듯 소란한것이나 외세가 이 땅에 미쳐온것이나 다 너희들이 소란을 피운때문이 아니냐. 너희 대장이란 사람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생기지조차 않았을게다.》

《여러분의 뜻을 알만합니다. 글하는 선비님네들이라고 높이 보고 찾아왔더니 그런것이 아니였군요. 지금 나라는 백성을 잊은지 오래고 백성은 백성대로 나라에 등을 돌려댄지 오랩니다. 이제는 그대로 나가는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서울을 점거하고 나라를 평정하게 될 때 서로 원쑤가 되여 만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분명 승우보다는 웃사람으로 되여보이는 린석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바로 그때에 미영이 다시 나타나 말에 오르려는 그의 앞을 막았다.

《잠간만…》하고는 안승우에게 돌아섰다.

《아버지, 끼때가 되였는데 식사를 시켜 보내야 하지 않아요?》

《보고도 모르겠니. 례의도 지켜야 할 사람이 따로 있는게다.》

《하지만 아버지를 만나러 우리 집엘 오셨던 손님이 아니예요.》

《마음대로 하라만 집안에는 못 들여놓는다.》하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사라지자 미영이 량해를 구하고는 다시 안으로 뛰여들어갔다가 보자기에 싼 크지 않은 도시락 하나를 들고나왔다.

《힘들게 왔던 길에 안됐어요. 가시다 잠간 요기나 하세요.》

백산은 잠간 주저하다가 그대로 받았다.

《고맙소. 성의를 잊지 않겠소.》

《욕 많이 하세요. 아버진 성미에 맞지 않으면 저렇게 참지를 못하신답니다.》

《나는 떠돌이생활 십년에 겪을만한것은 다 겪은 사람이요. 그만큼 눈치에 밝고 세상리치에 훤하오. 아버지도 본시는 분명 착한 사람인데 오래동안 학문에 구애되고 번페스러운 례의에 치여서 재는것이 많아진듯 하오. 아가씨가 그속을 용케 헤쳐나갈것이라고 생각되는구만. 량반의 벗은 아첨으로 사귀고 장사군의 벗은 리속으로 사귄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질 못하오. 만약 아버지도 그런 지지한 말마디나 낡은 례의범절에 구애되여 헤여나지 못하면 한생 진정한 벗을 사귀지 못할거요.》

《뭐라구요? 이자 한 말씀을 다시…》

《아가씨, 자기의 옳은것을 누가 알아주지 못할가 속타하지 마시오. 그것이 진정 옳을 때에는 반드시 알아주는 사람이 있고 끝까지 옳은것으로 남게 될것이요.》

마침내 그는 말에 뛰여올랐다. 미영이 고삐를 잡았다. 말없이 백산을 올려다보는 눈에는 가느다란 미소와 함께 눈에는 아롱다롱 눈물이 고였다.

《글을 아세요? 아시면 편지를 하세요.》

《내가 겪을것을 다 겪어보았다고 이미 말하지 않았소. 서당에서 심부름만 삼년석달을 했소.

그러나 편지는 쓰지 않겠소. 왜냐하면 우리가 다시 만날 필요가 없기때문이요. 줄을 잇지 못할 거문고는 애초에 없는것만 못하오.》

미영은 다시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말이 발굽을 걷어차며 앞으로 내달렸다. 미구하여 그 모습은 무성한 숲속으로 사라지고말았다.…

이것이 린석이 백산을 처음 만나던 때의 일이다. 그후에는 다시 보지 못했는데 승우를 통하여 소식을 알게 되였다. 그가 공주대격전이 있은 다음 산속에 들어가 의병을 모집하고있다는것이였다.

하면서도 승우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필경은 산속에 숨어 남의 물건이나 털어내는 도적으로 되였다는것이였다. 그는 그것을 자기말을 빼앗은 사실로써 명백한 증거로 삼았다.

그러나 린석의 생각은 여기서 끊어지고말았다. 백산의 진지에 다 도착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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