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4
(2)
그것이 바로 《강화도양요》이다. 지금도 그는 그 시를 뜬금으로 외우고있고 많은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있다.
세월이 태평한지 하도 오래서
사람들 안일하게 살아왔더니
오랑캐 검은 연기 바다를 덮으니
강화도초소에는 파발이 급하여라
온 서울 들끓어 정부도 당황한데
조국이 고귀할사 의병들 일떠섰다
싸움으로 대항하자 우리 선생 바른 주장
분분하던 강화론을 통쾌하게 부셨구나
장하구나 량
하늘이 무심하랴 정녕코 위훈 세우리
그랬다. 그때 린석은 사람들을 이끈 화서 리항로나 싸움에서 용맹을 떨친 량헌수
이제 여기에 모여온 사람들을 보면 그 모든것이 후회된다. 싸우자, 싸울수 있다, 싸워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의병장들을 향하여 머리를 들었다.
《다른데를 가보세. 이것이 전부가 아니겠지?》
《있습니다. 녕월에서 온 김백산이와 여기 제천에서 조직된 사석의 부대들인데 그들은 저 골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안승우가 대답했다.
린석은 잠시 의아했다. 그들이라고 왜 기본부대와 떨어져있을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는데 안승우가 앞장서걸었다.
《갑시다. 저들이 거기에 자리를 잡았는데 왜 그랬는지는 가보아야 알수 있습니다.》
린석도 뒤따랐다. 그러자 또다시 의혹이 떠올랐다. 그들이 왜 외딴골짜기에 따로 떨어졌을가. 량반이 아니라고 누가 따돌렸는가. 아니면 저들
따지고들면 린석이 그들을 알게 된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또 남달리 깊은 인연이 맺어진것도 없다. 그럼에도 한시바삐 그들을 만나고싶은것은 무엇때문인가. 실상 그는 어제 승우의 집에 의병장들이 모인 가운데 그들이 없는것을 보고 속으로 섭섭히 생각했다. 같은 의병장들인데 왜 여기에 참석하지 못하는가. 설사 그것은 그렇다치고 왜 부대마저 외따로 떨어져 자리를 잡았는가…
린석이 김백산을 처음 알게 된것은 지난해 여름 의병조직차로 여기 제천에 와있을 때부터였다. 그때 그는 여기에 있는 몇몇 의병장들과 함께 향교의 강당에 모여앉아 의병들을 어떻게 모집할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리고있었다. 그때야말로 일제가 왕궁을 기습점령하고 왕과 왕비를 연금상태에 둔 때여서 형세가 매우 긴박한 때였다.
그래서 린석이 전국에 보내는 격문을 발표하고 제천에까지 와서 의병모집문제를 토의하는데 그것이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았으나 실지 모여든 의병들은 이삼백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골머리를 앓고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땅》 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대부분 사람들이 처음 듣는 소리여서 놀란것은 물론 영문을 알수 없어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얼마간 지나서야 밖으로 나갔다. 하다가 문앞에서 모두가 굳어지고말았다. 한것은 향교담장너머 바로 안승우의 집과 잇닿은 우물가에 미영과 함께 웬 낯선 총각 하나가 서있는것이였다. 더우기 알수 없는것은 둘이가 다같이 방금 재미난 일이라도 있었던것처럼 소리내여 웃고있는것이였다.
《이놈, 너는 누구냐. 어디서 온 놈이야?》
안승우가 먼저 참지 못하고 그리로 달려갔다.
거기서 그는 더한층 놀랐다. 바로 그 총각이 손에 신식보총을 쥐고있는데 아직도 총아구리에서 하얀 연기가 문문 나오고있었던것이다.
승우를 본 총각이 그제서야 웃음을 거두고 자세를 바로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실수? 흥, 이것 보아라. 남의 연약한 녀자앞에서 탕탕 총을 놓구서두 실수야? 당장 물러가지 못할가?》 하는데 갈 생각은 하지 않고 다시 무슨 말을 하려고 하였다. 그때 미영이 나섰다.
《아버지, 이분은 전라도에서 오신 손님이예요. 전봉준대장님이 아버지앞으로 보내는 격문을 가지고왔대요.》
그 말에는 승우도 대답을 못하고 잠시 총각을 지켜보았다.
수수한 무명바지저고리에 긴 타래를 한쪽으로 툭 꺾어묶은 머리우에 질끈 동여맨 목수건, 큰 키에 우뚝한 코, 우멍진 눈확속에 이글거리는 눈만 아니라면 이렇다 하게 표나는데라고는 없는 보통 사나이였다. 그럼에도 몸에서 돋기라도 한듯 한쪽어깨에 삐죽 솟은 신식보총과 아울러 전봉준에게서 왔다는 남다른 징표가 함부로 대할수 없다는 기분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렇다 한들 그가 자기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승우로 말하면 전봉준이 아니라 그 할애비가 왔다 해도 반가울데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오히려 전라도의 전봉준이라면 전국을 소란케 한 민란의 두목이요, 그 민란으로 말하면 동학무리가 일으킨것으로서 자기들의 유교성리학과 대치되는 이단분자들이라고 할수 있다. 바로 그들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여러 고을을 점거하고 관청들을 들부시다못해 이제는 감히 나라님이 계시는 서울까지 넘보려 하고있다. 그런 곳에서 왔다니 이자가 누구인가. 이제는 우리까지 죽이자고 하지 않는가.
승우가 이런 생각으로 당황망조해있는데 린석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 격문이란 어떤겐가. 나도 좀 봅세.》
그 말에 총각이 얼른 품속에서 먹으로 갈려쓴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린석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선채로 대충 훑어보아도 거기에는 심각한 뜻이 담겨져있었다. 즉 전라도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후 정부에서 나와 《전주화의》를 맺었던바
이로써 봉기군은 자기들의 요구가 실현되는것으로 알고
격문의 내용인즉은 이러하였다.
린석은 그전까지만 하여도 전라도농민폭동에 대하여 안승우네들과 별다른 인식을 가지고있지 못했다. 우선 그들이 동학도들이라는데로부터 자기네와 다른 이단자들로서 배척했고 관청을 부시고 사람들을 죽이는 란동분자라고 단죄했다. 최근에는 그들이 외세를 물리치고 특히는 왜놈들과 싸우겠다고 하는데 감동하는바가 있었다. 방금 총각이 가지고온 격문에도 그런 구절이 강조되여있었다.
여기에 자못 심중한 문제가 있다는것을 예감한 그는 총각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일행을 이끌고 다시 강당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