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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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이라고 하면 험한 산세와 수려한 풍치에 대하여 먼저 생각하게 된다. 가까이에 고을의 진산이라고 하는 룡두산으로부터 시작하여 대덕산, 박달산, 부곡산, 감압산들이 불과 몇십리안팎에 둘러싸여있고 또 백리안팎으로는 나라의 동남부에서 제일 큰 소백산과 태백산줄기들이 연해 솟아있다.

하기에 이곳을 찾는 사람이면 동서남북 어디로나 우중충한 산세에 눌리워 혀를 차며 먼저 떠나갈 생각부터 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도의 소재지인 충주성이 불과 사오십리밖에 안되는 곳에 위치해있고 나라의 중부산악지대를 남북으로 련결하는 도로가 길게 꿰질러있어 그렇게 궁벽하다고만 볼수 없는 고을이다. 오히려 경치가 수려하고 물과 공기가 좋아 예로부터 지체는 없으나 뜻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안승우가 바로 그런 사람들중의 하나라고 할수 있다. 한때 린석의 휘하에서 유교교리에 깊이 취해있던 그는 최근 십년어간에 급격히 대두한 외래침략세력에 대처하여 척양척왜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위정척사론》을 향교의 교생들과 고을의 유생들에게 심어주는 일에 전심하고있었다. 그런 일로 하여 류린석이 이곳을 자주 다녀갔고 승우와 가까운 친우들도 기꺼이 찾아드는 고장으로 되였다.

바로 이런 곳을 다시 찾게 된 린석의 감회도 깊었다. 애써 정을 들이고 품을 들인 고장에서 옛 제자들이며 동시에 학우들이기도 한 친근한 사람들과 함께 싸움을 벌리게 되는것이다. 바야흐로 그 싸움이 눈앞에 박두하고있다.

다음날 그는 안승우, 리춘영, 주용규들과 함께 향교마을을 돌아보았다.

향교는 제천읍에서 십리가까이 떨어진 의림지를 마주하고 풍치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있다. 하늘을 덮는 느티나무, 락엽송, 소나무, 밤나무, 참나무들이 무성한 아래에 나지막한 담장을 둘러치고 단청이 아롱다롱한 강당과 사당이 있고 교생들이 기숙하는 천계각과 현은사를 비롯한 몇채의 건물이 자리잡고있다.

한여름이면 우거진 나무그늘아래에 각종 새소리, 풀벌레소리들에 귀가 멍멍해질 지경이지만 지금은 앙상한 나무가지들이 사그라지는 해볕에 얼어든듯 바싹 옹크리고있다.

향교를 나온 그들은 대덕산에서 흘러내리는 얼음낀 개울을 건너 인가가 있는 마을로 들어섰다. 대부분이 동기와를 얹거나 새초로 지붕을 씌운 집들인데 그들이 바로 향교의 땅을 얻어부치고 사는 농호들이다. 지금 그 집들사이로 각지에서 모여온 의병들이 어디라없이 싸다니고있다. 그중에서도 분명한것은 산릉선과 골짜기마다에서 들려오는 힘찬 군령소리이다.

《앞으로 갓!》, 《우로 돌앗!》 하는가 하면 《앞으로 찔럿! … 힘을 주면서》 하다가 급격히 어조를 바꾸어 《옆에서 왜놈이 달려든다. 창대로 막앗! 이렇게…》 하는 창격전훈련소리도 들려온다.

리춘영이 먼저 자기 부대가 자리잡은 군영으로 린석을 안내했다.

무성한 나무숲사이로 의병들의 훈련모습이 바라보였다. 전이 좁고 색이 붉은 갓을 쓴 사람 하나가 그들을 배워주고있다. 분명 현에서 병방의 장교노릇쯤 하던 사람인듯 그 동작이 그럴듯하다.

앞에 늘어선 의병들의 대부분은 흰 무명바지저고리 아니면 베잠뱅이를 걸친 사람들이다. 머리에 쓴것은 저마다 달라서 목수건을 질끈 둘러맨 사람, 대가치나 버들가지로 엮은 패랭이를 한쪽옆구리에 삐딱하니 붙인 사람외에 갓쟁이, 망건쟁이, 두건쟁이, 맨머리에 머리태를 뒤등으로 길게 늘어뜨린 총각쟁이,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그들이 가지고있는 병쟁기도 저마다 같지 않아서 긴 대끝에 날창이 번뜩이는 사람, 삼지창을 삐죽이 쳐든 사람, 괭이나 쇠스랑 같은것을 얼추 뚜드려가지고 날을 세운 사람, 대창이나 지어 맨 몽둥이만 가지고 서있는 사람도 있다. 그밖에 칼이나 활을 가진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부대가 달라서 따로 훈련을 하고있다.

《저의 훈령 한마디에 따라선 사람들이다보니 아직 병기준비와 훈련이 보잘것 없습니다.》

리춘영이 좀 무안하기는 하나 그대로의 자부가 없지 않은 소리로 설명했다.

린석은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것은 사람을 세워놓고 칭찬을 하지 않는 그의 굳어진 버릇이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그를 칭찬하고있었다.

얼마나 의로운 사람들인가. 저의 현감이 한마디했다고 하여 저 먼 경기도에서 여기까지 수백명이 따라섰으니 나라를 위한 그 마음이 얼마나 갸륵한것인가…

린석이 이런 생각을 하며 돌아본 다른 부대들의 형편도 어슷비슷하였다. 오히려 어떤 곳은 그보다 인원수도 적고 병쟁기도 부족했다.

그러나 린석은 그쯤만 해도 얼마든지 싸울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모여온 사람만 해도 하루이틀사이에 더 많아져 벌써 삼천명을 넘어섰다. 지난 갑오년에 그가 의병을 처음 일으켰을 때보다 열배가 넘는 인원이다.

《장하네, 그대들이 참으로 수고많았네.》

마침내 린석이 말하였다. 그가 돌아본 의병장들이 모두 따라섰다.

《이제 선생님의 구령 한마디만 떨어지면 전국이 떨쳐나설것입니다. 그때는 과연 싸울만 할것입니다.》

의병장들이 대답하였다. 하지만 린석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격문만 날려놓고는 혼자 집에 배겨있던 자신이 생각나서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게 아닙니다. 선생님의 격문과 함께 시 〈강화도양요〉 하나만으로도 전국의 의병들을 이끌만 합니다. 이제 두고보십시오.》

누군가 또 추어올렸다. 그것이 문득 그를 몇십년전 세월로 이끌어갔다. 병인(1866)년 프랑스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우던 때의 일이다.

그때 프랑스의 함대가 강화도를 거쳐 서울로 쳐들어오면서 《화친》을 주장해나섰다. 조정이 그 일을 놓고 옥신각신 론쟁을 벌리며 결심을 못하고있었는데 바로 《위정척사론》의 창시자의 한사람인 리항로가 서울로 달려올라가 침략자들과 끝까지 싸울것을 주장하였고 제자 량헌수를 강화도에 보내여 놈들을 짓부시게 하였다. 결과 놈들은 쫓겨가고 나라는 위기에서 구원되였다. 그때 한창 젊었던 린석도 서울과 강화도로 오가며 싸움에도 참가하였고 그 체험을 담은 시까지 한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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