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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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국도 끓이고 송편도 빚고 지짐도 부치고 콩고물을 내기도 하던 아낙네들이 장군님께서 뜰안에 들어서시는것을 보자 잔치집을 삭갈린줄 알고 야단을 때리며 달려나왔다.

장군님, 잔치집은 여기가 아니라 저 앞집입니다. 모두들 눈이 까매서들 기다리고있습니다.》

방금 콩고물을 내던 나무박죽을 든채로 뛰여나온 젊은 아낙네가 뜰안을 가로질러 잔치집으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아주머니, 공연히 우리때문에 소동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가뜩이나 복잡한 잔치집에 우리까지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옆에서 슬슬 일손이나 도우렵니다.》

장군님께서 하도 친절히 말씀해주시는통에 아낙네는 귀가 솔깃해서 뜰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러는사이에 한흥권이와 백선일은 부락청년들에게서 떡메를 받아들고 승벽을 다투고있었다.

《한흥권동무, 이왕이면 솜저고리랑 벗어붙이고 정식으로 해보는게 어떻소?》

백선일이가 솜저고리 앞자락을 슬슬 풀어제치면서 기세좋게 공격해나섰다.

《하, 이거 백선일동무가 영 공손칠 못하군. 남보는앞에서 슬근슬근 친선적으로 몰고나가려구 했더니 그렇게는 안되겠는걸.》

한흥권은 떡메자루를 두무릎사이에 끼우고 솜저고리를 벗더니 토방앞에 내던졌다. 마침 토방앞으로 지나가시던 장군님께서 팔을 벌리고 날아오는 한흥권의 솜저고리를 받아 김택근소대장에게 넘겨주시면서 슬쩍 한마디 끼이시였다.

《동무들은 만나기 바쁘게 승벽내기로군. 그런데 어쩐다. 오늘같은 잔치판에서 뿔질을 하게 됐은즉 여느때처럼 무승부로는 끝나지 말아야 할게 아니요.》

장군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여느때도 무승부로 끝난게 아닙니다. 저 한흥권동무가 헛소문을 돌려서 그렇게 된거지. 경기에서 무승부라는게 있을게 뭡니까.》

백선일중대장이 펄쩍 뛰였다.

《누가 할소릴 누가 하는지 모르겠군.》

백선일이보다 비위가 약한 한흥권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가지고 씩씩거리며 장군님께 청을 드렸다.

장군님, 이거 친선경기가 되긴 아예 글렀습니다. 장군님께서 공정하게 심판을 서주십시오.》

《내가 심판관노릇을 하란말이요?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군.》

장군님께서도 물러서지 않고 즐겁게 응수하시였다. 떡메를 들고 나선 경쟁자들은 말할것도 없고 둘러선 지휘관들모두가 기분이 흥성흥성하였다.

유격대중대장들이 승벽내기로 떡을 치고 장군님께서 심판을 서신다는바람에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던 아낙네들이 문간으로 달려나오고 잔치집 울바자모퉁이에서 신랑신부구경을 하던 유격대원들도 우르르 밀려왔다. 그들속에는 강진옥이와 오성숙이, 차일진이도 섞여있었는데 억대우같은 백선일중대장과 마주선 한흥권을 보고난 진옥은 금시에 입술을 파들파들 떨었다.

《이 만장판에서 저이가 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진옥은 손에 땀을 쥐고 서로 히죽히죽 웃어가며 으르렁대는 사나이들을 놀랍게 지켜보고있었다. 그러나 구경군들의 기분은 흥성흥성 높아만갔다.

《이쁜이 엄마, 콩고물내던 나무박죽을 들고 그냥 서있으면 어떻게 해요. 빨리 감을 내다 앵겨드려야지.》

부엌안에서 한 아낙네가 소리쳤다.

《아니, 난 이런 시중을 못해요. 떡메대가리가 오르내릴 땐 발바닥까지 짜릿짜릿해서… 영실이가 나와서 시중을 들어요.》

《어느 영실이말인가? 큰 영실인가 작은 영실인가?》

《영국이 누이 있지 않아요. 큰 영실이말예요. 시집가는 색시하구 까치동갑이예요.》

《그럼 어디 큰 영실이가 나가보라구.》

안에서 처녀를 떠일구는 소리가 한바탕 일어나더니 문간의 아낙네들이 길을 내여주는 사이로 한 처녀가 나무함지에 김이 문문 나는 노란 찰조밥을 펴들고나왔다.

처녀는 성을 쌓고 둘러선 유격대원들과 부락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만 기겁을 하여 달아났다. 집안팎에서 웃음소리가 터지고 떡메군들의 시중을 들 담이 큰 아낙네가 어서 나서라고 야단을 때렸다. 이름을 집히우고 어깨죽지를 잡아들리운 아낙네들이 저마끔 뿌리치고 달아나느라 떡판은 한동안 분주탕을 피웠다.

이때 장군님의 눈짓을 받은 오성숙이가 사뿐 일어나 허리에 조여맨 혁띠를 풀고 침착하게 걸어나왔다.

구경군들이 와르르 무너지게 박수를 쳐댔다. 첫날 신부와 같이 얼굴이 온통 다홍빛으로 물든 오성숙은 웃음절반 긴장절반인 매혹적인 표정을 짓고 찰조밥이 담긴 나무함지를 받아안더니 넓은 떡돌에 보기 좋게 쏟아부었다. 그때 한 아낙네가 작은 나무함박에 물을 떠들고 달려나왔다.

성숙은 함박을 받아 앞에 놓고 처음은 손끝을 조금 잠그었다가 그다음 손등을 적시더니 이어 날랜 솜씨로 떡판우에 흐트러진 찰조밥을 말아올리기 시작하였다.

《시작해보자요.》

성숙은 자신심과 기대가 넘친 눈으로 마주선 두 지휘관을 올려다보며 힘있게 고개를 끄덕하였다.

소대가리같은 떡메를 들고 어깨를 들먹거리며 마주 쳐다보던 두 지휘관은 성숙의 말이 떨어지자 일제히 떡메를 척척 떨어뜨리고 자루를 슬슬 돌리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밥을 능그는 단계이다. 커다란 떡메대가리가 툭툭 부딪치며 누런 찰조밥을 안고 돌아갔다. 떡메대가리가 서로 부딪칠 때마다 두 지휘관은 흥흥 하고 코소리를 내였다.

사람들속에서는 벌써부터 웃음소리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강진옥의 얼굴에는 초조한 빛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강진옥을 살펴보던 김택근소대장이 팔을 걷어붙이며 걸어나왔다.

《중대장동지, 떡메를 이리 주십시오. 백중대장동지하군 제가 한판 겨뤄보렵니다.》

《왜 그러오. 내가 견뎌내지 못할가봐 그러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감을 보다가 물러서는수야 있소?》

한흥권이가 난처하게 웃자 백선일이가 기세를 올렸다.

《선수는 암만 교체해도 좋습니다. 어서 넘기십시오.》

《저것 보라구. 겨뤄보지도 않고 탕탕 큰소리요. 남포군의 솜씨라는게 허풍이 절반이구 알속은 없소. 두고보라니까.》

한흥권이 물러서려 하지 않는데다 훈춘중대쪽에서 김택근소대장이 중대본위주의를 한다고 떠들썩하면서 이건 중대대항이 아니라 개인경기라고 소리소리 웨쳤다. 김택근은 목을 슬슬 쓸어만지면서 물러났다.

어느덧 떡메대가리가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힘센 두 사나이가 골박아내려치는 판인지라 떡메가 한번씩 떨어질 때마다 땅이 흔들거리고 커다란 떡돌이 움씰움씰 쳐들렸다.

백선일이쪽에서 《좋다!》하고 먹이면 한흥권이쪽에서 《좋지!》하고 받아넘겼다.

《좋다!》

《좋지!》

《좋다!》

《좋지!》

그들은 한동안 친선경기를 하듯이 한쪽에서 늘어지게 먹이고 다른쪽에서 늘어지게 받으며 떡돌주위를 돌아가더니 점차 주고받는 말마디가 달라졌다.

백선일이가 《친다!》하고 먹이면 한흥권이가 《쳐라!》하고 응수한다.

《친다!》

《쳐라!》

《친다!》

《쳐라!》

그들은 점점 기세를 돋구고 승벽을 내여 떡메를 내려친다. 넓은 떡돌우의 떡은 번들번들 윤기를 내고 번지르르 기름이 돌기 시작한다.

오성숙은 착실하게 치마를 동그리고앉아 날랜 솜씨로 떡을 척척 번져놓기도 하고 떡메에 달라붙은 떡을 뜯어내기도 하며 물을 묻힌 손으로 뜨끈뜨끈한 떡메대가리에 슬슬 물을 발라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떡메대가리가 한번씩 치솟아오를 때마다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여나고 물을 맞은 사람들은 《이크!》하고 여기저기로 뛰여달아났다.

떡메대가리들은 겨끔내기로 번쩍번쩍 쳐들려 공중에 잠간씩 멎어섰다가는 성숙이의 손이 날렵하게 쓰다듬고 지나간 떡판을 향해 무섭게 내리꼰지군하였다.

때릴수록 점점 풀기가 일어나는 떡은 한번씩 메가 떨어져 움푹움푹 방아확을 만들 때마다 찰거마리처럼 메를 걷어안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한흥권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뒤덮였다. 입귀로 스며드는 쩝쩔한 땀을 흡흡 들여마시며 메를 휘둘렀다. 백선일의 귀밑으로도 굵은 땀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는 그들의 입에서 말소리가 없어진지 오래였다. 그대신에 메를 내리칠 때마다 끙끙 갑자르는 소리가 일어났다.

백선일이쪽에서 힘이 빠지는 기미가 확연히 나타났다. 바싹 졸라맨 바지괴춤이 기다란 허리아래로 처져붙고 긴 다리가 후들후들하였다.

한흥권은 점점 허리를 까부리며 떡메에 달라붙었다. 백선일의 입에서는 갑자르는 소리마저 없어졌는데 한흥권은 아직도 힝힝 코바람을 내였다.

힘을 뽑는건 메질군들만 아니였다.

성숙이의 이마에도 구슬같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겨끔내기로 오르내리는 떡메사이로 손을 넣어 떡을 뒤집는다는것이 쉬운일이 아니였다. 힘도 들거니와 그보다는 신경을 더 써야 하였다.

떡메바람에 처녀의 앞머리카락이 풀풀 날렸다.

《유격대아지미가 잘한다!》

울타리에 조롱박처럼 매달린 사람들사이에서 한 장정이 소리쳤다. 부엌에서는 유격대아지미가 어쩌면 저렇게 날파람있게 잘하느냐고 떠들썩하였다.

《이쁜이 엄마, 콩고물이 타요.》

부엌에서 아낙네들이 소리쳤다. 콩고물을 젓던 나무박죽을 들고 떡치는 광경을 구경하고있던 아낙네가 깜짝 놀라 부엌으로 달려들어갔다.

타는것은 콩고물만이 아니였다. 수수지짐, 농마지짐도 타고 가마에서는 육수물이 넘어났다.

《이젠 그만 하시자요. 떡이 얼마나 잘됐는지 모르겠어요.》

오성숙은 생긋 웃고 두손을 뻗쳐 승벽을 다투던 떡메대가리들을 붙잡았다.

백선일은 떡메를 놓자 그자리에 풍덩 주저앉았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김택근을 찾았다.

《김택근소대장이 어디 갔어. 그 사람이 들어섰더면 혼쭐을 내주는건데.》

승부가 없이 끝나버린 일을 그는 몹시 아쉬워하였다.

《김택근동무야 갈데가 있지. 부엌안을 들여다보오.》

장군님께서 가리키시는대로 백선일은 부엌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낙네들이 가득 들어찬 부엌에서 허벅다리에 싸창을 늘여찬 김택근이가 무엇을 하는지 이리저리 비집고 돌아가더니 육수물이 넘어나는 가마의 불을 낮추려고 타는 장작가치를 들고 밖으로 뛰여나왔다.

연기에 재채기를 해대며 언땅에 불붙는 장작가치를 딱딱 멨다치며 돌아가는 김택근을 보자 백선일은 허리띠를 잡고 웃어댔다.

장군님, 사람은 다 제나름의 장끼를 가지고있구만요. 김택근소대장동무에게 치마를 입혀 부엌에 들여세운다면 누가누군지 찾아내기 어렵겠습니다.》

백선일은 또 한바탕 죽겠다고 웃어댔다. 백선일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이렇게 너스레를 떨고있었지만 한흥권은 두손을 옆구리에 올려짚고 숨을 벌떡거리면서 쓰러진 적수를 유쾌하게 내려다보고있었다.

장군님, 이제는 경기심판을 해주십시오. 무승부라는 경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 무승부라는 경기가 없다. 동무말도 비슷해.》

장군님께서 한흥권의 말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시자 주저앉았던 백선일이가 그만 바쁜 소리를 쳤다.

《아니, 장군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경기야 엄연히 무승부로 끝났지요. 백선일이가 주저앉았다고 패한건 아닙니다.》

《백동무가 오금이 저려 야단을 때리는걸 보니 자신이 없었던가보군. 내 생각에도 확실히 한흥권동무편이 우수했는데…》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한흥권은 왕청중대쪽에 대고 눈을 꿈뻑하였다.

《그런데 한흥권동무, 동무는 무슨 힘으로 이 경기의 우승자가 된것 같소?》

장군님, 그거야 일상적으로 련마한 체력단련때문이지요.》

한흥권은 능글맞게 대답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의미있게 미소를 띠우시고 구경군들을 바라보시더니 한마디 하시였다.

《내 생각에는 강진옥동무가 은근히 힘을 받쳐주었다고 보고싶은데. 진옥동무가 결국 동무를 이기게 만든것이 아닐가?》

《어마나!》

유격대원들속에서 바빠맞은 진옥이의 부르짖음소리가 울리더니 한발이나 껑충 뛰였다 떨어지는 한흥권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리면서 사람들속을 헤치고 달아났다.

집안팎에서 웃음소리, 박수소리가 무너지게 일어났다. 흥에 겨운 사람들의 떠들어대는 소리는 오래오래 멎지 않고 공중높이 떠올라 이 산골부락이 생겨 그야말로 처음인 인촌의 평화로운 음향이 엷은 골짝바닥을 따뜻하게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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