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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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군님께서는 유격대지휘관들과 흥겹게 담소를 하시며 천천히 마을길을 걸어가시였다. 유격대원들이 길바닥의 눈을 얼마나 말끔히 밀어냈는지 백선일중대장의 말대로 찰떡을 굴려도 묻어날것이 있을상싶지 않았다. 너렁청한 골짝바닥에 들어앉은 마을의 수십채 귀틀막 굴뚝에서는 아침부터 솟아나는 연기가 지금도 멎지 않고 솟구쳐오르고있었다. 잔치를 하는 집은 부락에 한채밖에 없었으나 오늘은 온 동네가 잔치집같이 들끓었다. 우선 유격대원들이 거의 모든 집들에 들어있어 경사인데다 온 부락이 떨쳐나 잔치를 치러주는터여서 집집마다 아궁에 장작을 들이밀고 재간껏 음식을 만들었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오늘은 도토리묵이라도 만들고 강냉이기지떡 하나라도 찌고야말았다. 농량이 조금 장만된 집들에서는 기장찰떡을 치고 수수지짐, 녹두지짐도 부쳤으며 색갈고운 경단도 만들었다.

김이 문문 나는 팥설기떡을 기다란 목판에 담아 이고 홀개바람을 일으키며 잔치집으로 반달음쳐가던 아낙네가 길가에서 장군님을 띠여보고 입이 함지박만해서 멎어섰다.

《온 부락이 경사를 치르누만요. 얼마나 기쁘십니까?》

장군님, 더 할 말이 없어요. 정말이지…》

아낙네는 가슴을 들먹거리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아낙네의 등뒤로 김이 솟아오르는 국동이를 이고오던 처녀가 장군님을 보자 얼굴을 활딱 붉히고 서버렸다.

《이 체넨 시집가는 색시하구 까치동갑이예요. 네 죽는 날 나 죽자 하구 친해 돌아가더니 버섯국을 끓였어요. 장군님, 어서 잔치집으로 가십시다.》

《예, 먼저 앞서십시오. 뒤따라가겠습니다. 팥설기떡이 다 식는구만요.》

아낙네와 처녀는 서로 마주보고 소리없이 웃더니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내달아갔다.

장군님께서 지나가시는 저쪽 골목에서는 한 늙은이가 달려나와 길바닥에서 썰매타는 애들을 쫓으며 야단을 쳤다.

《이 철없는것들, 죄다 물러가지 못할가. 신영행차가 지나갈 길바닥에서 얼음지치기를 하다니…》

늙은이는 자기 집 뒤뜰안 물도랑에서 넘쳐난 물이 울바자를 뚫고 슴새여나와 길을 번번히 얼구어붙인 얼음강판을 까느라고 도끼질을 해댔다. 두루마기를 입고 백립까지 쓴걸 보니 방금 잔치집에 가려고 나선 걸음이 분명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백선일중대장더러 로인의 도끼를 받아 얼음을 까라고 말씀하시였다.

유격대원에게 도끼를 내맡긴 로인은 두루마기앞자락을 털고 옆으로 기울어진 백립을 바로잡더니 뒤로 넘어갈듯 몸을 제치고 팔을 휘저어대면서 잔치집뜰안으로 들어갔다.

잔치집마당에는 갓을 쓴 로인들이 여러명이였다. 량반, 중인, 아전, 평민이 다 쓰던 흔해빠진 갓이건만 부락의 로인들은 이런 경사가 아니면 쓸일이 없었다. 로인들은 갓을 쓰고 설대가 긴 장죽을 들고 잔치집뜰안에 펴놓은 멍석우에 앉아있었다. 로인들은 상을 받고도 좀체로 물러갈 차비가 아니였으며 고간속에 갇혀있는 지주패거리들을 조롱하면서 흐아흐아 웃어대고있었다.

부락의 젊은 농군들은 대개 맨머리바람에 설대가 짧은 곰방대를 물고 로인들이 둘러앉은 가생이에 붙어앉아 상을 받고있었다.

지휘관들이 잔치집 삽짝밖에 이르자 한흥권은 슬며시 김택근에게 눈짓을 하여 옆으로 불러냈다.

《동무가 큰상앞에 나가서 하연성을 좀 도와주어야겠소. 저 사람이 대반에 뽑혔다는게 영 미타하거든. 하연성이가 실수하면 왕청중대 망신이야.》

《예, 압니다. 저 입이 드센 백선일중대장의 지청구는 어떻게 받겠습니까.》

《그러게 동무가 수완껏 뭘좀 해보라구.》

한흥권은 때를 놓치지 말고 어서 나가 도와주라고 김택근의 등을 떠밀었다.

《그런데 술한 사람들이 보는앞에서 어떻게 이래라 저래라 합니까.》

《뭘 이래라 저래라 할게 있소. 그저 눈짓만 슬슬하면서 요긴한 대목에서는 손짓을 해보이란말이요.》

《그렇게나 해서 알아먹을가요. 잔치문서라는건 웬만한 신호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 소리 마오. 하연성이 눈치가 얼마나 빠르다구. 벙어리하구 마주앉아 이야기하래두 해낼 사람이야.》

《그럼 어디 좀 해보지요.》

그러지 않아도 대반상에 않아있는 하연성을 보고싶어 못견딜지경이던 김택근은 마침 일이 잘되였다고 쾌재를 부르며 사람들속을 비집고 큰상앞으로 돌아나가 자리를 잡고있었다. 구경군들이 하도 많아 례식을 방안에서 할수가 없어 토방아래에 멍석을 펴고 상을 차렸는데 그러다나니 구석구석에서 난감한 일들이 일어났다.

큰상주위에 빽빽이 둘러선 사람들이 자꾸 상을 다쳐 음식가리들이 허물어지고 먼지가 일어나 사단을 일으켰다. 신랑신부의 뒤에 세워놓은 병풍도 금시 넘어갈듯 실그럭거렸다. 뒤에서 병풍을 잡고있는 사람들이 손을 맞추지 못해 병풍을 자꾸 흔들어놓는데다 손과 머리가 병풍밖으로 솟아나와 그것을 감추라고 떠드는 목소리가 일어났다.

그러나 김택근은 그런것에 마음을 쓸 경황이 없었다. 대단상에 앉게 되는 하연성이가 어떤 모양을 하고있는지 그것이 긍금할뿐이였다.

하연성은 지금 노란 초립을 쓰고 팔이 보이지 않는 긴 도포를 입고 서있는 신랑의 옆에 한자리를 얻고 서있었다.

신랑은 얼굴이 철색이고 수염자리까지 푸릿푸릿한 나이든 사람인데 그옆의 하연성은 미끌하고 이목구비가 준수한 젊은이였다. 그래서 사람들속에서는 대반이 신랑보다 더 잘 생겼다는 말소리가 수군수군 일어났다.

(허 이게 사달이로군.)

김택근은 일이 첫순간부터 찌부러지고있다고 생각하였다. 장군님께서 김택근이 이런 일에 제격이라고 평하신것이 공연한 일이 아니였다.

김택근은 저런 나이든 신랑의 대반에는 백선일중대장같이 텁텁하게 생긴 사람이 제격인데 공연히 하연성이 뽑혀서 신랑의 낯을 깎는다고 생각하였다.

김택근이 불만스레 생각하건말건 하연성은 큰상앞으로 다가와 굽석굽석 허리를 굽히는 부락사람들의 인사를 받느라고 경황이 없었다. 부락사람들은 의례 큰상앞에 다가서면 신랑신부를 쳐다보기전에 새 군복을 산뜻하게 차려입고 허벅다리에 번쩍거리는 싸창까지 늘여찬 유격대지휘관을 희한하게 쳐다보았으며 오늘의 잔치를 마련해주신 장군님에 대한 고마움으로 하연성에게 허리를 굽히는것이였다.

그러다나니 하연성은 자기도 모르게 큰상앞에서 주인노릇을 하고있었다.

(신랑신부를 제쳐놓고 제가 주인노릇을 해서는 안될터인데…)

김택근은 하연성에게 눈짓이라도 해주려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면서 그의 시선을 붙잡으려고 애썼으나 하연성은 알아보지 못하였다.

김택근은 불만스레 고개를 저으며 큰상앞에서 물러났다. 삽짝모퉁이에서 김택근을 기다리고계시던 장군님께서 즐거운 미소를 띠우시고 한흥권을 앞질러 한마디 물으시였다.

《어떻소. 하연성동무가 일을 제대로 해낼상싶소?》

《글쎄요. 대반이란건 신랑보다 좀 못한 사람이 나서야 하는건데.》

《그게 무슨 소리요? 신랑보다 하연성이가 돋우보이더란말이요?》

《예, 신랑은 얼굴이 컴컴한 나이든 사람인데 하연성동무는 오늘 보니까 그게 보통사람이 아니고 미남형이더란말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자못 난처한 기색을 지으시였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군. 그러게 내가 뭐랬소. 백선일중대장이 나서라고 하니까 공연히 하연성동무를 내세우면서…》

《아니, 우리가 내세운게 아니라 제가 스스로 자진해나섰지요. 온성바닥에서도 제가 두루 이런 일에 치여보았다고 하면서 군침을 삼키는데 그걸 뭐 물러서라고 하겠습니까. 더구나 어제까지는 하연성이가 그렇게 미남형인줄 몰랐지요.》

유격대지휘관들이 손으로 입을 싸쥐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어댔다.

장군님께서도 새여나오는 웃음을 금하실수 없었다.

《그런대로 하연성동무가 대반노릇이라도 잘해주어야 할텐데…》

장군님께서는 눈가에 피여오른 웃음을 지우지 못하신채 말씀하시였다.

《그런데 장군님, 지금 하연성동무의 인기가 너무 올라가고있습니다.》

김택근이 다른 한가지 불만을 또 토설하였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잔치날에는 의례히 신랑신부가 중심이 되여야 할텐데 찾아오는 부락사람들이 큰상앞에 다가가서는 하연성동무에게 굽석굽석 인사를 합니다. 유격대대표이니 그럴수밖에 없겠지요. 그렇다고 그걸 다 제가 받아들이면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신랑신부에게 초점이 가도록 힘을 써야지요.》

《그래… 하연성동무가 신랑의 시중군노릇을 해야 한다는걸 깜박 잊었군.》

장군님께서는 김택근의 분석에 자못 감탄하시면서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백선일중대장이 장군님께서 주의를 주실 사이도 없이 큰상앞으로 헤치고나갔다. 그는 하연성을 눈짓으로 불러내여 굴뚝모퉁이로 데리고 갔다.

《하연성동무, 대반이란건 신랑의 시중군이야.》

《그런데요?》

하연성은 영문을 알수 없어 얼떠름해졌다.

《대반이 독판친다는 반영이 있단말야.》

《아니 내가 독판을 친다구요. 내 잔치도 아닌데 독판을 칠게 뭡니까?》

《그러게 하는 소리야. 제 잔치면야 독판을 치건 깨죽을 쑤건 상관도 안하지. 그런데 이건 왕이산부대 병사의 잔치란말야. 오늘 잔치의 주인은 신랑이야. 그러니까 초점이 신랑신부에게 가있어야 할게 아닌가. 부락사람들이 아무리 유격대대표에게 시선을 모은다 해도 그걸 신랑신부에게 돌리도록 묘술을 쓰란말야. 멋도 모르고 떠있거든.》

하연성은 접수하는티가 없이 불만스러워만 하였다.

《이건 뭐 우에서 자꾸 내려먹이니까 손발이 얼어들어 하겠나요. 일이라는거야 다 순서가 있는게 아닙니까?》

하연성은 자기에게도 무슨 방안이 있다는 투다.

《방안이 있으면 좋은거구. 아무튼 장군님께서 마음을 놓지 못하시고계신다는것만 알아두라구. 공연히 기분이 들떠있단말야.》

백선일중대장이 삽짝밖으로 나가자 한흥권중대장이 여간만 바빠하지 않았다. 장군님께서 백선일에게 슬쩍 물으시였다.

《너무 대반을 욱박질러놓은게 아니요?》

《몇마디 하긴 했지요. 그런데 제게두 무슨 방안이 있다고 하는게 아닙니까. 헛참, 기가 막혀서.》

백선일은 어깨를 흔들어대며 웃어댔다.

《하연성이라구 왜 방안이 없겠소. 마음들을 놓소. 그 사람이 어떤 수완군인줄 아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문제가 있소. 우린 잔치집에 나타나지 말아야겠소. 우리까지 들어갔다간 아예 유격대판이 되고말겠소. 저쪽 떡치는 집에 건너가 일손이나 거들어줍시다. 그게 좋을거요.》

장군님께서는 지휘관들을 데리시고 길건너집으로 들어가시였다. 거기서는 부락청년들이 커다란 떡돌을 둘러싸고 기장찰떡을 쳐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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