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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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다단했던 갑오년이 지나고 을미년에 들어서면서 잠시 조용해지는가싶던 형세는 일제의 민비살해책동으로 또다시 복잡한 양상을 띠면서 세론을 물끓듯 소란하게 했다.

돌이키면 갑오년 그해에 세상을 놀래운 사변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전봉준지휘하의 전라도농민폭동과 그의 전국적파급, 전주성점령, 그에 당황망조한 봉건정부의 《전주화의》의 체결과 그 막뒤에서 청나라군대를 끌어들인 민비일당의 책동, 그것을 구실로 뒤따라 자기 군대를 끌어들인 일제, 자기들의 요구를 기어이 관철할 의지로 농민군이 삼남지방의 수십개 고을에 설치한 집강소들과 그들의 활동으로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진 봉건통치체계, 청일전쟁의 도발과 조선에 대한 독자적인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한 일제의 책동, 조선내정에 대한 일제의 란폭한 간섭과 왕궁점령, 외세를 밀어내고 자체의 힘으로 근대적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혁신관료들의 군국기무처의 설치와 부르죠아개혁, 일제에 의한 그의 파탄과 친일내각조작, 그에 격분한 전봉준농민군의 재궐기와 서울공격작전, 공주대격전, 그에 대한 일제의 야수적탄압과 농민폭동의 실패…

우리의 적은 왜놈이다. 저 쪽발이왜놈들이 기어코 조선을 집어삼키려 하고있다. 갑오년에 이어 계속된 일제의 부단한 간섭책동, 특히는 을미사변과 같은 경악스러운 사건들은 왜놈들이 우리의 주되는 적이며 그놈들을 기어코 밀어내야 한다는 인식을 새롭게 하여주었다. 바로 이 사건으로 하여 평시부터 반일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말할것도 없고 혹시 우리를 도와주지나 않을가 하고 미련을 가졌던 사람들도 일제를 반대하는데로 생각들을 모아갔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타고 한곬으로 모여온 사람들의 하나가 제천에 집결한 각지 의병부대들이였다.

바로 그날 류린석이 김복한, 주용규들과 함께 춘천을 떠날 때 제천에 있는 향교마을은 각처에서 모여온 사람들로 붐비고있었다.

마을이라고 해야 향교와 불과 몇십채밖에 안되는 농가가 전부이지만 요즘은 전에 없던 인총으로 붐비고있었다. 향교가 들어선 골짜기의 무성한 숲속마다는 떠들썩한 훈령소리, 노래소리, 거치른 롱담과 욕질소리로 벅적 들끓었다. 어뜩새벽부터 밤이 깊을 때까지 사방에서 피워올리는 연기로 골짜기는 진종일 젖빛안개속에 묻혀있었다.

바로 그런 속에 제천고을의 유지의 거두이며 향교의 교사인 유생 안승우는 요즘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인가에 들지 못한 태반의 의병들이 개울가나 산비탈에 천막이 아니면 반토굴집을 짓고 거기에 들었다. 하거늘 어찌 잠시인들 방심을 할수 있으랴. 교생들은 물론 향교의 땅을 부치며 사는 농호들까지 전부 동원하여 그들을 돕게 하였고 자신이 직접 뛰여다니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그렇게 하루이틀 지나며 일정하게 자리가 잡히게 되자 비로소 친구들을 자기 집에 청하였다. 여러 고을에서 의병들을 달고 온 의병장들이였다. 밖에 나서면 의병장이지만 이렇듯 한방에 모여앉으면 소꿉동무이며 동문수학생들이다. 너렁청한 방에 술상을 차려놓고 오래간만에 취흥을 즐겼다.

《암, 총대장이야 의암선생이 되여야지. 그이만이 이 싸움을 참답게 이끌수 있어.…》

안승우가 술상을 탕탕 두드리며 떠들었다. 벌써 몇번째나 반복해서 하는 말이였다.

그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을 했고 또 한결같이 대장으로 추천도 한바이다. 그래서 저 김복한이나 주용규들이 그를 모시러 가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안승우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것은 빨리 류린석이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고을에 와있기는 하지만 제힘으로는 그들을 이끌수 없다는 두려움에서이다.

《헌데 의암선생이 와주기나 할가. 혹시…》

누군가 한마디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반발하는 말들이 튀여나왔다.

《혹시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의암선생이 바로 우리 스승이고 왜놈이라면 치를 떠는분인데 응하지 않을수 있나?》

그러자 말한 사람이 급히 손을 쳐들었다.

《아니, 난 그런걸 념두에 둔 말이 아닐세. 물론 그 말이 옳기는 하지만 의암선생으로 말하면 그대로 어려움이 있네. 집에 로모가 계시구 또 자신도 년로하시지 않나, 게다가 군사도 배운것이 없구… 이에 대해선 언제인가 선생자신이 말씀하신적도 있네.》

잠시 술상이 조용해졌다. 그 말이 옳거니 긇거니하는 시선들이 오고갔던것이다. 그때 안승우가 손을 들어 상우를 가로세로 휘저었다.

《그럴것 같으면 선생이 왜 격문을 몇차례나 전국에 띄웠을텐가. 그쯤한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어. 뭐 우리는 애초부터 무관이였던가. 우리가 언제 손에 창칼을 쥐여보았고 전장에는 나가보아서 이 자리에 모여왔나. 이게 다 애국지심에서 나온것이야. 아예 그런말 말라구.》

그를 두둔하는 소리가 일제히 터져나왔다. 상이 흔들리고 잔들이 부딪치고 노래가락이 울리였다. 그러자 승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시한수를 읊기 시작하였다.

 

나에게도 벗이 있어 먼곳에서 찾아주니

이 아니 반가울소냐

아이야 거문고 가져다 청쳐라

어쩌다 만난 날에 마음껏 취코싶다

래일 전장에서 헤여지면

우리 다시 만나지 못할수도 있으려니

 

안승우는 보통 말이 적고 조용하며 성격도 그닥 트인 사람이라고는 볼수 없다. 그러나 일단 취하고보면 앞뒤를 가리지 않으며 고집도 옹고집을 부린다.

또다시 그에 호응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평시에는 머리에 쓴 갓망건 하나 벗기를 저어하며 바재이기를 그지없어하던 사람들이 오늘만은 맨 상투바람에 창옷고름마저 다 풀어헤쳤다. 그까짓 의관갖춤새가 무엇이랴. 지우들사이의 의리와 친분이 이렇듯 두터우니 가리울것인들 있으랴 하는 심산들에서였다.

그때 살며시 문이 열리며 녀자의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틈사이로 흘러들어왔다.

《아버지 취하셨어요. 남의 시도, 자작시도 아닌 시를 마구 읊으시면 어떻게 해요.》

안승우가 흔들거리는 몸을 바로세웠다. 문가에 딸 미영이 서있었다.

집에 하나밖에 없는 녀종과 함께 술심부름을 하던 그다. 딸이 지금 자기를 탓하기는 하지만 생긋이 웃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제 손으로 만들어입은 초록치마에 분홍저고리는 또 얼마나 고운가.

하면서도 입으로는 딴소리를 했다. 역시 속에는 품은 소리다.

《너 또 어른들 일에 참견질이냐, 그러지 말라고 했지?》

《하지만 글하는 아버님이 남의 글을 망탕 외우면 욕해요. 그건 잘못이 아니람?》

안승우가 뭐라고 하려고 하는데 옆에 앉았던 리춘영이 끼여들었다.

《미영이 말이 맞는다. 아무렴, 남의 글을 함부로 외곡하면 안되지. 여보게 하사, 딸의 말을 듣구 그만 앉으라구.》

리춘영이란 지평에서 현감벼슬을 하다가 과감하게 의병에 뛰여든 사람이다. 류린석의 같은 반 제자들가운데서 유일하게 벼슬을 하던 사람인데 이번에 5백명이 넘는 의병들을 데리고온것으로 하여 누구보다 인망이 높다.

《내가 보기엔 미영이 네가 아버지보다 낫다. 네가 비록 자습을 했다 하지만 글공부를 그렇게 잘한다지? 차라리 네가 한수 읊어보아라.》

이번에는 문경에서 온 리린영이 나섰다. 그도 문경에서 향교를 운영하고있는데 승우의 딸이 글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소문으로 듣고있어서 한번 시험쳐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러나 미영은 대답을 안하고 방에 들어와 빈그릇들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린영의 흥취를 더 돋구었다.

《이런 산속에 어떻게 저런 인물 잘나고 글 잘하는 녀자가 생겨났을가. 게다가 집안살림살이까지 잘한다지. 여기 제천의 물이 좋은가?》

《물뿐인가요, 산좋고 나무좋고 바위좋고 사람들은 또 얼마나 좋다구요?》

미영이 한마디 대답하자 린영은 더 성수가 났다.

《이 애 말 말어라. 제천하며는 예로부터 산이 깊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먼 옛날 이곳에 왔던 정승 한사람이 저 륙미정 현판에 이런 시를 걸어놨겠니.

 

가고갈수록 맑은 물과 버드나무숲

산은 또한 우중충 높구나

드문드문 사람사는 집

마치 그림속을 들여다보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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