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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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는 류씨집안에 아들을 낳아주지 못한것을 최대의 죄악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그것이 리씨로 하여금 집안의 모든것에 순종하게 하였는지 모른다. 반대로 린석은 그런 리씨의 정상을 가긍히 여겨 후취를 하지 않았다.

생각을 하니 이제 그것이 가슴이 짜릿하도록 후회된다. 이런 때 길떠나는 아들이 어머니에게 가장 큰 위안거리로 될 손자녀석들을 안겨주지 못하는것이 가슴이 아팠다.

《사람들이 기다린다, 어서 떠나거라.》

어머니가 다시 보챘다. 그것이 린석으로 하여금 모든것을 잊고 용기를 내게 하였다.

《어머니, 되도록 빨리 돌아오겠으니 그사이 부디 앓지 마시고… 건강하십시오.》

하직인사로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 밖으로 나온 린석은 새롭게 갈마드는 죄의식에 온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인차 올수도 없을뿐아니라 어느 전장에서 목숨을 바칠지도 모르는 자기이기때문이다. 그것을 안다면 어머니가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어머니는 그를 떠나보냈다. 결코 무사하리라고만 볼수 없는 길임을 어머니가 어찌 모르랴.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을것이다.

세밑으로 오겠다는 말에도, 빨리 오겠다는 말에도 어머니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손자에 대해서만 말했을뿐이다. 이것은 벌써 어머니가 이것저것 다 타산을 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닌가.

아, 어머니…

그것이 린석의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의지를 가다듬고 분연히 일떠서게 하였다. 내 기어코 가리라. 의병들의 기대와 믿음에 어긋나지 않게 한몸 다 바쳐 싸우리라…

사랑방에서 기다리고있던 김복한과 주용규가 긴장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가세, 결심을 굳혔네.》

《정말입니까. 어머님이 승낙하셨습니까?》

《바로 어머님이 나를 떠밀어주었네. 하늘의 별이라도 따오고싶은 심정이야!》

두사람의 얼굴도 금시 밝아졌다. 당장 떠날 차비를 서두르며 밖으로 나왔다. 린석도 나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안해 리씨가 부엌문을 열어제끼며 곧장 린석의 앞으로 달려나와 길을 가로막고 섰다.

《어디로 가신다는것입니까. 가셔선 안됩니다.》

두손을 마주잡고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머리우로 하얀 가리마가 동그랗게 굽어졌다.

린석은 무춤 놀랐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지금까지 그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있었다. 아니, 잊었던것이 아니라 뒤일은 그가 다 맡아주리라 굳게 믿고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렇게 돌발적으로 앞을 막아서기는 이것이 처음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당신이 내앞을 막다니?》

《안됩니다. 어머님의 병환이 중하신 이때에 떠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당신이 있지 않나?》

《저하고 나리하고는 같지 않습니다. 나리가 없으면 그때부터 아드님을 찾습니다.》

어머님이 먼저 응낙하셨는데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시다가도 일단 떠나시면 그때부터… 그러시다가 혹시…》

《음흠? 당신이 언제부터 사나이의 한마디한마디에 대답질을 하는 버릇이 생겼나?》

《이것은 대답이 아닙니다. 어머님의 병세가…》 하는데 분합이 열리며 심씨의 목소리가 튀여나왔다.

《저런 말버릇 보아라. 어미가 이미 말을 했구 서방이 그만큼 타일렀으면 그런게다 하구 물러설것이지 무슨 대답질이야, 방정맞게시리…》

리씨는 그 말에 더 대답을 못하고 희끗한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며 도로 안으로 들어갔다. 나이 쉰이 넘도록 시어머니에게서 노상 아이취급을 당해오는 리씨다. 그러면서도 언제한번 말대답을 몰랐다.

녀자는 응당 그래야 한다. 유순은 녀자의 첫째가는 미덕이다. 그래서 집안의 말 한마디도 밖으로 새여나가는 일이 없이 조용히 지내왔을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안해가 불쌍하기도 했다. 그는 방금 자기가 떠난후 어머니의 병세가 더하거나 혹은 잘못될 경우까지를 타산해서 감히 남편앞에 나섰을것이다. 한것을 그는 무작정 욱박질렀다. 돌이키면 한생을 그렇게 살았다.

부부유별이라는 3강의 륜리가 그에게 녀자는 언제든 남자와 나란히 할수 없다는 인식을 깊이 심어주었다. 하여 열여섯 그 나이에 결혼한 다음부터 언제한번 애틋한 정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나마 한창때에는 집과 떨어져 산 때가 많았다. 어려서 글공부를 할 때에는 서울로, 산속으로 떠다녔고 젊어서는 학우들과 제자들을 찾아 전국을 편답하였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척양척왜운동과 이단배척투쟁으로 지방과 서울을 부단히 오고갔다.

그때마다 리씨는 그의 려행길을 말없이 도와주었고 집안살림을 빈틈없이 꾸려나가는것으로 뒤받침을 든든히 해주었다. 그때마다 린석은 부부는 인륜의 으뜸이요, 이성지합이 만복의 근원이라고 한 말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하면서도 리씨앞에서는 때없이, 어떤 때는 처음부터 큰소리를 질러 그를 놀래우거나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이제 막상 집을 떠나자고 하니 새삼스럽게 그것이 후회된다. 왜 그에게 실없이 큰소리를 쳤던가. 내가 떠나가면 어머니의 지청구를 또 얼마나 들어야 할것인가. 혹은 어머니가 잘못되는 경우 그에게 지워질 부담이 얼마나 클것인가.

안해는 분명 이 모든 경우를 생각했었을수 있다.

그러나 그런 후회도 오랜 세월 굳어진 그의 습벽을 버리지 못했다. 안해가 방에 들어갔다가 보짐을 싸들고 또 부엌에서 음식그릇들을 들고 나와 짐군들에게 나누어줄 때에 그는 또 저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질렀다.

《뭘 그렇게 꾸물꾸물거려. 빨리 하지 못하구?》하다가 그는 리씨가 하녀에게서 놋잔에 술을 받아 앞에 내미는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먼길에 몸성히 돌아오십시오. 집일은 소첩이 있는 힘껏 맡아하겠습니다.》

그는 얼결에 잔을 받았다. 술기운이상 가슴이 짜릿했다. 매 사람에게 잔이 돌아가고 리씨에 대한 찬사가 터져나올 그때에야 속에 든 진정이 울렸다.

《여보, 나는 아니떠날수 없소. 왜놈, 양놈들이 쓸어들어와 지금 나라형편이 어지럽기 그지없소. 국모가 왜놈들에게 살해된것을 당신도 알지?》

《다시는 앞길을 막지 않겠습니다.》

《고생이 많을줄 아오. 하면서도 떠나지 않을수 없는것은 오로지 나라근심때문이요. 대신 당신이 집일을 잘 돌봐주오. 황소가 끌어도 못하는 일을 녀자가 한다고 했소. 당신이 내내 그렇게 했지. 그걸 내가 모르는바 아니요. 이제 내가 돌아와서는 그만큼 당신을 도와주겠소.》

그때 린석은 안해의 얼굴에 상긋이 피여나는 웃음을 보았다. 눈물이 아직 마르지 않은 그 얼굴의 웃음은 장마구름사이로 난 해살처럼 린석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어머니를 부탁하오.》

말하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물큰 새여나왔다. 그것을 보이지 않으려고 몸을 돌리며 말우로 훌쩍 뛰여올랐다. 미구하여 높지 않은 솟을대문과 납작한 담장에 둘러싸인 그의 집은 아늑한 산기슭의 풍경화마냥 아물거리다가 사라져버렸다. 그날이 을미(1895)년도 다 저물어가던 12월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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