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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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택근은 다시금 말고삐를 잡아채며 등자로 말배때기를 걷어찼다. 말은 놀란듯 끔칠 뛰여오르더니 언땅에 꾸덕꾸덕 달라붙은 눈을 발통으로 찍어뿌리며 내달아갔다.

마침 지휘관들을 거느리시고 눈이 깔린 잔솔밭을 내리시던 장군님께서 산기슭에 메아리치는 세찬 말발굽소리를 들으시고 행길을 내다보시였다.

안장우에 거의 몸을 일으켜세운 기수가 쓰러질듯 모재비걸음을 쳐 내닫는 말을 그냥 등자로 사정없이 쳐갈기며 산자드락으로 육박해 들어오고있었다.

꼬리가 빳빳하게 일어선 말이 기세차게 달려나온 행길 저쪽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늘어서서 놀란 목소리로 떠들어대고있었다.

《가만 저 사람이 누구요. 김택근소대장이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이마우에 손을 올려 해빛을 가리우시며 달려오는 기수를 놀랍게 바라보시였다.

《옳습니다. 김택근소대장동무입니다. 무슨 급한 일이 벌어진것 같습니다.》

훈춘중대 백선일중대장이 얼른 대답하고 산밑으로 뛰여내려갔다.

행길로 곧추 내달아오던 김택근은 산밑의 자드락밭으로 달려오는 백선일을 알아보고 말머리를 꺾었다. 갑작스레 고삐를 채는통에 말은 행길에서 벗어나 작은 웅뎅이에 뒤다리를 빠뜨리고 비칠거리다가 용을 쓰며 후닥닥 뛰여나왔다.

놀란 말은 백선일을 차뭉갤듯이 무찌르며 산자드락밑의 밤나무아래까지 내달아갔다.

《조심하오. 김택근동무, 조심하라구.》

김택근은 안장우에서 장군님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으며 등자에서 발을 뽑고 말발통에 파헤쳐진 부근부근한 락엽우에 뛰여내렸다.

《언땅에 무슨 말을 그렇게 때려모오. 그러다 상하면 어쩔라구.》

말머리로 다가오신 장군님께서는 땅에 떨어진 고삐를 주어드시고 뜨거운 코김이 쏟아져나오는 말주둥이를 다독이시였다. 열에 들뜬 말은 간단없이 앞발을 바꾸어 디디면서 금시라도 내달아갈듯이 대가리를 빳빳이 쳐들고 코를 불었다. 방금 부락앞의 강물을 차건느고 내달아온 말인지라 가슴패기와 배때기는 물이 튀여올라 번들거렸으며 발통을 덮고있는 북실북실한 긴 발목털에는 고드름이 매달려있었다.

《김택근동무가 경황없는 길을 다그쳐온것 같은데 무슨 일이요. 숨을 돌리고 천천히 말하오.》

장군님께서는 열에 떠서 푸륵거리는 말을 진정시켜줄양으로 고삐를 끌어 발을 옮겨짚게 하면서 김택근을 지켜보시였다.

김택근은 가까스로 숨을 가라앉히고 마른침을 삼키면서 입을 열었다.

사령관동지, 급한 정황이 생겼습니다. 한개 대대가량의 보병들과 한개 중대 정도의 기병중대가 팔도하자 방면으로 방금 들어갔습니다.》

《뭐라구?》

장군님께서는 전혀 뜻밖의 일에 부딪치신듯 놀라와하시였다.

사령관동지, 적의 보병대대와 기병중대가…》

김택근은 다시금 상세한 보고를 드리려고 입을 열었으나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그게 언제 있었던 일이요?…》

장군님께서는 백선일중대장에게 말고삐를 넘겨주시며 김택근의 앞으로 몇발자국 다가서시였다.

《해가 방금 떠오른 때였습니다. 왕청중대는 작은 산마루를 하나 사이에 두고 놈들의 행군종대와 엇갈리게 되였습니다. 제가 나가촌에 정찰을 나갔을 때는 보병들만 있었는데 한시간 되나마나한사이에 기병중대가 나타나 합세했습니다. 아마 행군중에 만난놈들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왕청중대는 놈들을 왜 통과시켰소?》

장군님께서는 사뭇 심중한 눈길로 김택근을 굽어보시였다.

《적을 통과시킨 리유에 대해서는 잘 알수 없지만 중대장동지는 적의 대부대를 통과시킨후 왕청중대는 큰길가에 나가 자동차행군대나 작은 마차수송대 같은걸 하나 치겠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것을 보고하기 위해 저는…》

《작은 마차수송대같은걸 하나 친다고?》

장군님께서는 약간 놀라신듯 눈섭을 움직이시였다. 그러나 그이의 눈가엔 진중한 빛이 어려있고 표정은 침착하고 부드러웠다.

《그래 적의 작은 마차수송대를 하나 치려고 대부대를 통과시켰단말이지? 흥미있소…》

장군님께서는 뒤짐을 지셨던 손을 천천히 앞으로 돌려 가슴아래에 깍지를 껴얹으시며 조용히 걸음을 내짚으시였다. 지휘관들은 소리없이 장군님을 따라갔다. 그들은 어지간히 불안한 기색들을 짓고 낮게 술렁거리면서 김택근을 살펴보고있었다.

김택근은 지휘관들과 무랍없이 섞이기가 어쩐지 옹색하여 그들과 조금 떨어져서 장군님을 따라갔다.

사령관동지, 사실 두개 소대밖에 안되는 력량으로 개활지대나 다름없는 야산에서 적의 대부대를 공격하기가 수월치 않았습니다.》

김택근은 한흥권중대장을 두둔할셈으로 용기를 내여 말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약간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시며 사람들을 살펴보시였다.

《김택근동무, 방금 무슨 말을 했댔소. 공격하기가 수월치 않았다니?…》

김택근은 단단히 움켜쥔 손을 바지혼솔에 꽉 가져다붙이고 대답하였다.

사령관동지, 저는 왕청중대가 적을 통과시키게 된 리유에 대해 말하고있습니다. 사실 두개 소대밖에 안되는 력량으로 거의 개활지대나 다름없는 야산에서…》

김택근이 여기까지 말하자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김택근은 입을 다물었다.

《놈들의 력량이 얼마나 된다고? 김택근동무…》

장군님께서는 몇사람건너로 물러선 김택근을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시였다. 김택근은 지휘관들의 앞으로 두어발자국 나가서 다시 긴장한 몸가짐으로 멎어섰다.

《보병은 한개 대대 정도이며 기병은 한개 중대 정도입니다.》

《무장상태는 어떻소?》

《세토막으로 나뉘여 행군하는 보병무리에 기관총이 각각 두문씩 있었고 방수포를 씌운 척탄통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병은…》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시며 밤나무밑에 두둑이 쌓인 눈을 천천히 밟으시였다. 한낮의 온기에 가장자리가 녹기 시작한 눈들이 밤나무가지우에서 후둑후둑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장군님의 군복저고리는 작은 얼룩반점들을 그려가면서 소리없이 흘러떨어지는 물방울을 받고있었다.

사위는 바람소리 한점없이 고요하였다. 누런 나무잎들이 드문드문 박히고 꿩들이 배를 쓸며 지나간 눈우에는 밤나무의 진한 그림자들이 판화처럼 새겨져있었다.

그 한폭의 그림같이 드러난 눈우를 장군님께서 천천히 거니시였다.

《대부대는 통과시키고… 그래 큰 부대는 통과시키고 도로상에 나가 적의 작은 수송대를 들이친다?…》

장군님께서는 한흥권의 속생각을 짚어보시듯 몇번인가 그 말씀을 외우시였다.

지휘관들은 긴장으로 하여 자세들이 꼿꼿해졌다.

그 순간 장군님의 눈가에는 한줄기 밝은 빛이 어리시였다. 불현듯 달라지신 장군님의 안색을 살피던 김택근은 영문을 알수 없어 어리둥절해졌다.

《역시 한흥권동무다운 생각이요. 한흥권동무는 도로상에 나가 적의 수송대를 하나 들이치고 그 소식이 놈들의 귀에 울려가게 한다음 되돌아 달려오는 큰 부대를 맞춤한곳에서 기다렸다가…》

장군님께서 여기까지 말씀하시자 지휘관들속에서는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장군님께서도 따라웃으시였다.

《우리 지휘관동무들이 이제는 말꼭지만 떼여도 알아듣는군.》

장군님께서는 자애로운 미소를 띠우시고 군모를 벗으시더니 땀에 젖은 이마를 바람에 식히시였다. 지휘관들은 흥겨운 기분속에 잠겨 한동안 술렁거렸다.

김택근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그는 어찌나 긴장되여있었는지 움켜쥔 주먹안에 땀이 즐벅히 고여있었다.

장갑을 벗고 손바닥의 땀을 훔치고있는 김택근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 호탕하게 말씀하시였다.

《김택근동무가 줄땀을 뽑았소. 중대장동무의 결심을 미리 알아맞히기라도 했던들 그렇게는 말을 급하게 때려몰지 않았을건데… 백선일중대장동무, 말발통에 편자가 제대로 붙어있나 들여다보오.》

《그게 제대로 붙어있을게 뭡니까. 한두개쯤은 길바닥에 흘려놓고 왔겠지요.》

지휘관들이 큰소리로 한참동안 웃어댔다. 김택근이도 얼굴을 붉히고 시무룩이 웃고있었는데 그것이 또한 가관이여서 장군님께서는 참아내지 못하고 따라웃으시였다.

백선일은 말은 그렇게 시큰둥하게 하면서도 말발통을 들고 편차를 살펴보았다.

《다 불어있소?》

《예, 붙어있어도 편자가 아주 생생합니다.》

《다행이요. 유격대의 군마는 하루에 천리라도 달려야 하오. 김택근동무, 동무는 이제 중대장동무에게 달려가 큰길의 수송대를 치고 이 부락으로 오란다고 전하오. 오늘 이 마을에서 성대한 잔치가 있소. 한 반일부대의 병사가 장가를 가오.》

김택근은 너무도 희한한 소식에 놀라 눈을 껌벅거리기만 하였다.

그는 온몸에 힘이 부쩍 솟아 말고삐를 걷어잡았다.

사령관동지, 이제 떠나도 좋겠습니까?》

《그래 어서 떠나오. 동무의 걸음이 빨라야 중대의 행군길을 단축할수 있소.》

장군님의 말씀이 떨어지기 바쁘게 김택근은 허궁 몸을 날려 말우에 뛰여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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