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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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택근은 다시금 말고삐를 잡아채며 등자로 말배때기를 걷어찼다. 말은 놀란듯 끔칠 뛰여오르더니 언땅에 꾸덕꾸덕 달라붙은 눈을 발통으로 찍어뿌리며 내달아갔다.
마침 지휘관들을 거느리시고 눈이 깔린 잔솔밭을 내리시던
안장우에 거의 몸을 일으켜세운 기수가 쓰러질듯 모재비걸음을 쳐 내닫는 말을 그냥 등자로 사정없이 쳐갈기며 산자드락으로 육박해 들어오고있었다.
꼬리가 빳빳하게 일어선 말이 기세차게 달려나온 행길 저쪽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늘어서서 놀란 목소리로 떠들어대고있었다.
《가만 저 사람이 누구요. 김택근소대장이 아닌가?》
《옳습니다. 김택근소대장동무입니다. 무슨 급한 일이 벌어진것 같습니다.》
훈춘중대 백선일중대장이 얼른 대답하고 산밑으로 뛰여내려갔다.
행길로 곧추 내달아오던 김택근은 산밑의 자드락밭으로 달려오는 백선일을 알아보고 말머리를 꺾었다. 갑작스레 고삐를 채는통에 말은 행길에서 벗어나 작은 웅뎅이에 뒤다리를 빠뜨리고 비칠거리다가 용을 쓰며 후닥닥 뛰여나왔다.
놀란 말은 백선일을 차뭉갤듯이 무찌르며 산자드락밑의 밤나무아래까지 내달아갔다.
《조심하오. 김택근동무, 조심하라구.》
김택근은 안장우에서
《언땅에 무슨 말을 그렇게 때려모오. 그러다 상하면 어쩔라구.》
말머리로 다가오신
《김택근동무가 경황없는 길을 다그쳐온것 같은데 무슨 일이요. 숨을 돌리고 천천히 말하오.》
김택근은 가까스로 숨을 가라앉히고 마른침을 삼키면서 입을 열었다.
《
《뭐라구?》
《
김택근은 다시금 상세한 보고를 드리려고 입을 열었으나
《그게 언제 있었던 일이요?…》
《해가 방금 떠오른 때였습니다. 왕청중대는 작은 산마루를 하나 사이에 두고 놈들의 행군종대와 엇갈리게 되였습니다. 제가 나가촌에 정찰을 나갔을 때는 보병들만 있었는데 한시간 되나마나한사이에 기병중대가 나타나 합세했습니다. 아마 행군중에 만난놈들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왕청중대는 놈들을 왜 통과시켰소?》
《적을 통과시킨 리유에 대해서는 잘 알수 없지만 중대장동지는 적의 대부대를 통과시킨후 왕청중대는 큰길가에 나가 자동차행군대나 작은 마차수송대 같은걸 하나 치겠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것을 보고하기 위해 저는…》
《작은 마차수송대같은걸 하나 친다고?》
《그래 적의 작은 마차수송대를 하나 치려고 대부대를 통과시켰단말이지? 흥미있소…》
김택근은 지휘관들과 무랍없이 섞이기가 어쩐지 옹색하여 그들과 조금 떨어져서
《
김택근은 한흥권중대장을 두둔할셈으로 용기를 내여 말하였다.
《김택근동무, 방금 무슨 말을 했댔소. 공격하기가 수월치 않았다니?…》
김택근은 단단히 움켜쥔 손을 바지혼솔에 꽉 가져다붙이고 대답하였다.
《
김택근이 여기까지 말하자
김택근은 입을 다물었다.
《놈들의 력량이 얼마나 된다고? 김택근동무…》
《보병은 한개 대대 정도이며 기병은 한개 중대 정도입니다.》
《무장상태는 어떻소?》
《세토막으로 나뉘여 행군하는 보병무리에 기관총이 각각 두문씩 있었고 방수포를 씌운 척탄통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병은…》
사위는 바람소리 한점없이 고요하였다. 누런 나무잎들이 드문드문 박히고 꿩들이 배를 쓸며 지나간 눈우에는 밤나무의 진한 그림자들이 판화처럼 새겨져있었다.
그 한폭의 그림같이 드러난 눈우를
《대부대는 통과시키고… 그래 큰 부대는 통과시키고 도로상에 나가 적의 작은 수송대를 들이친다?…》
지휘관들은 긴장으로 하여 자세들이 꼿꼿해졌다.
그 순간
《역시 한흥권동무다운 생각이요. 한흥권동무는 도로상에 나가 적의 수송대를 하나 들이치고 그 소식이 놈들의 귀에 울려가게 한다음 되돌아 달려오는 큰 부대를 맞춤한곳에서 기다렸다가…》
《우리 지휘관동무들이 이제는 말꼭지만 떼여도 알아듣는군.》
김택근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그는 어찌나 긴장되여있었는지 움켜쥔 주먹안에 땀이 즐벅히 고여있었다.
장갑을 벗고 손바닥의 땀을 훔치고있는 김택근을 바라보시던
《김택근동무가 줄땀을 뽑았소. 중대장동무의 결심을 미리 알아맞히기라도 했던들 그렇게는 말을 급하게 때려몰지 않았을건데… 백선일중대장동무, 말발통에 편자가 제대로 붙어있나 들여다보오.》
《그게 제대로 붙어있을게 뭡니까. 한두개쯤은 길바닥에 흘려놓고 왔겠지요.》
지휘관들이 큰소리로 한참동안 웃어댔다. 김택근이도 얼굴을 붉히고 시무룩이 웃고있었는데 그것이 또한 가관이여서
백선일은 말은 그렇게 시큰둥하게 하면서도 말발통을 들고 편차를 살펴보았다.
《다 불어있소?》
《예, 붙어있어도 편자가 아주 생생합니다.》
《다행이요. 유격대의 군마는 하루에 천리라도 달려야 하오. 김택근동무, 동무는 이제 중대장동무에게 달려가 큰길의 수송대를 치고 이 부락으로 오란다고 전하오. 오늘 이 마을에서 성대한 잔치가 있소. 한 반일부대의 병사가 장가를 가오.》
김택근은 너무도 희한한 소식에 놀라 눈을 껌벅거리기만 하였다.
그는 온몸에 힘이 부쩍 솟아 말고삐를 걷어잡았다.
《
《그래 어서 떠나오. 동무의 걸음이 빨라야 중대의 행군길을 단축할수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