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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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단강지구《토벌대》본부에 자리를 틀고앉은 핫또리대좌는 침착하고 기민한 솜씨로 《토벌》무력을 움직이고있었다.

경박호와 목단강 연안의 도로와 눈덮인 산들에는 돈화, 액목 방향에서 출동명령을 받은 부대들의 행군종대가 새까맣게 깔리고 군용자동차와 마차들이 눈바람을 일으키며 줄달음쳐 달렸다. 그보다 앞서 경박호 동남지대의 《토벌대》들은 이미 이도하자일대에 진출하여 동만에서 들어온 원정부대의 뒤를 따르고있었으며 목릉현쪽에서 비상출동을 시킨 경찰대들은 유격대가 《토벌대》의 포위환에서 벗어나 동만경계로 빠질수 있는 천교령지대를 차단하고있었다.

그리하여 10월하순에 기동을 시작한 《토벌》무력들은 11월초순에 들어와서는 이미 자기의 병영들에서 수십수백마장 떨어진 팔도하자와 이도하자사이의 좁은 계곡에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목단강 동북쪽의 군용비행장에서는 두대의 쌍엽비행기가 겨끔내기로 날아올라 유격대의 행적을 집요히 추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산마루와 골짜기, 도로주변과 채벌지들에 《토벌대》의 천막들이 하얗게 깔리고 수백수천개의 화토불무지에서 타오르는 연기들이 짙은 안개마냥 빙설의 산지를 뒤덮고있었다.

핫또리는 하마카강일대의 협착한 계곡을 완전봉쇄하고 초토화작전을 벌리라고 각 《토벌대》들에 연방 명령을 내렸다.

지금 그가 조급히 기대하고 성사시킬수 있는 유일한 작전수단은 오직 그것이 전부였다. 여기서 유격대를 놓치고나면 북만의 넓은 지대에서 참으로 간고한 싸움을 벌리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핫또리는 한다하는 장교들을 《토벌》부대들에 내려보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원정부대는 적의 포위속을 빠져나와 남호두방향으로 유유히 행군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적의 《토벌》무력이 여러곳으로부터 밀려드는것과 관련하여 연길중대와 훈춘중대를 친솔하시고 륙도촌을 거쳐 남호두 방향으로 먼저 나가시고 그뒤로 왕청중대가 오도촌을 지나 기본부대와 두마장정도의 사이를 두고 행군하도록 하시였다.

밀영을 떠난 때로부터 원정부대의 행군은 엿새째 계속되고있었다.

왕청중대의 앞에서 대원 두명을 데리고 척후조의 임무를 수행하고있던 김택근소대장은 나가촌에서 뒤따라올 중대를 기다리고있던중에 지붕우에 밀짚고깔을 쓰고 올라가 행길을 감시하던 대원으로부터 한무리의 《토벌대》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김택근은 사닥다리를 타고 재빨리 지붕우에 기여올라가 앞을 내다보았다. 휘우듬히 구부러든 산자드락길로 누런 개털외투에 개털모자를 쓴놈들이 길이 미여지게 밀려오고있었다.

김택근은 재빨리 지붕우에서 뛰여내려 한창 마초를 씹고있는 말을 풀어타고 허리를 낮추 구부린채 부락 뒤길을 빠져나갔다.

김택근의 보고를 받은 한흥권은 대원들을 골짜기의 숲속에 매복시키고 산등으로 올라갔다. 잠시후에 적의 행군종대가 나타났다. 적들은 달구지길을 따라 행군해오다가 방금 왕청중대가 빠져나온 옆골짜기로 들어섰다. 그리로는 륙도촌 일경으로 들어가는 넓은 산판길이 나있었는데 륙도촌을 지나면 곧장 팔도하자와 이도하자 방면으로 들어가는 외통길에 맞다들게 된다.

적들이 녕안읍으로 올라가는 자동차길을 타지 않고 달구지길로 삐여져오다가 륙도촌 일경으로 나가는 산판길을 밟는것을 보면 주보중의 밀영이 자리잡고있는 팔도하자로 들어가는것이 틀림없었다.

김택근은 이제 적들을 때리는 무서운 싸움이 한바탕 벌어질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제나저제나 한흥권의 전투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골짝바닥으로 흘러지나고있는 적들을 내려다보았다.

다리에 각반을 치고 무릎아래까지 드리우는 개털외투를 입은놈들은 세줄로 종대를 짓고 군화바닥으로 언땅을 굴러차면서 지나가고있었다.

방금 해가 떠오른 아침이여서 날은 차고 골짝바닥은 산그림자로 덮여있었다.

밤새 행군을 다그쳐온 놈들의 철갑모에는 하얗게 서리가 덮여있었는데 이따금 해발이 비칠 때면 수백의 둥근 철갑모가 일제히 찌르는듯한 흰 광선을 내뿜고 밤송이가시처럼 빳빳하게 일어선 총창끝에서도 서리발이 번쩍거렸다.

세토막으로 갈라진 보병의 무리가 지나가자 그뒤로 두줄로 늘어 선 기마종대가 따라섰다. 나가촌에서는 보병들만 보이는것 같더니 기병도 꽤 긴 행군서렬을 이루고 나타났다.

말들이 발통으로 언땅을 구르는 소리며 자갈을 씹는 소리, 등자가 부딪치는 소리들이 소란하게 들려왔다. 기병들은 일제히 기다란 군도를 늘여차고 짧은 기병총을 엇갈라 메였으며 철갑모끈을 턱밑에 조여매고있었다.

임의의 시각에 전투구령이 떨어지면 박차로 말배때기를 들이박아 내달릴 만단의 준비가 되여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싸창갑을 움켜잡고 적들을 내려다보고있는 김택근의 손바닥에는 땀이 척척히 배여있었다. 헐치 않은 싸움이 벌어지게 되리라는것을 그는 똑똑히 의식하였다.

김택근은 가둑나무숲에 몸을 감추고 골짝바닥을 뚫어지게 살피고있는 한흥권중대장을 눈여겨 살폈다. 전투를 벌리기에는 이 골짜기가 별로 유리한곳이 못된다. 중대를 재빨리 기동시켜 적의 앞을 가로질러나가 유리한 계선에 매복해있다가 적을 때릴것인가? 아니면 대담하게 적의 후위를 물고 들어가 기병들부터 족치고 말들이 달아나면서 혼란시켜놓은 보병대렬에 수류탄을 뿌리고 보총의 일제사격과 육박전을 들이대여 소멸할것인가? 이것도 저것도 싸움은 격렬할것이다. 저만한 적을 때려눕히자면 아군의 손실이 적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김택근의 가슴을 무겁게 압박하였다.

적의 보병대렬은 어느덧 후미진 골짜기의 아래로 떨어져 이깔나무숲사이로 거지반 사라졌다. 기병들만 우중충한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운 골짝바닥으로 지나가고있었는데 기병종대의 후위에 따라선 짐마차 두대가 김택근의 눈앞에서 굴러가고있었다. 짐마차까지 지나면 적들의 행군종대는 끝이 나는것이다.

김택근은 은근히 조바심을 쳤다. 가둑나무아래에 몸을 숨기고 적정을 굽어살피고있는 한흥권은 아직 아무 소리가 없었다.

(중대장동지의 결심은 무엇인가? 적의 행군중대가 거지반 사라져가는데 전투명령을 떨구어야 할것이 아닌가?)

《김택근동무.》

드디여 한흥권중대장이 그를 불렀다. 김택근은 가슴이 후두둑 뛰여오르는듯한 충격을 느끼면서 한흥권의 앞으로 뛰여왔다.

《김택근소대장동무는 이제 급히 말을 달려 사령관동지께 다녀와야겠소. 방금 한개 대대가량의 적 보병과 기마중대가 팔도하자 방향으로 들어갔다는것과 적을 그대로 통과시킨 왕청중대는 큰길가에 나가 적의 군용자동차나 작은 마차수송대를 하나 들이치고 다음행동으로 넘어갈 결심이라고 보고드리오.》

김택근은 얼른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며 서있었다. 적의 큰 부대를 팔도하자 방면으로 고스란히 들여보낸다는것이 김택근으로서는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김택근은 서뿔리 자기의 견해를 말할수 없었다. 문득 그에게는 왕청중대가 여기서 적을 치기는 매우 힘들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것이였다. 왕청중대에는 지금 두개 소대밖에 없었다. 전투력이 가장 강한 하연성소대는 경위소대의 임무를 맡고있었으므로 장군님을 따라갔다. 적아의 력량이 대비가 안되는데다 주변은 낮은 야산들뿐이고 게다가 밝은 낮이여서 부대의 기동이 극히 불리하였다.

이런 정황에서 한시바삐 적들의 움직임을 사령관동지께 보고하는것만이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고 김택근은 생각하였다.

그는 중대장앞에 거수경례를 붙이고 골짝바닥으로 뛰여내려가 웅뎅이속에 솔가지로 위장해 들여세운 말을 끌어내였다.

그는 한 삼십리가량의 거리를 단숨에 달려 원정부대가 머무르고있는 귀틀막동네앞에 이르렀다. 너렁청한 골짝바닥에 꽤 큰 부락이 자리잡고있었는데 부락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강에는 통나무다리가 가로놓여있었다.

김택근은 통나무다리로 뛰여오를 사이도 없이 기슭에 살얼음이 앉기 시작한 강으로 말을 차몰았다. 말은 네굽을 안고 달려오던 속도로 강물에 뛰여들었다. 다행히 물은 깊지 않아 말은 발통으로 물을 차날리면서 눈이 하얗게 깔린 맞은편 기슭으르 뛰여올랐다.

강둔덕으로부터 부락까지는 얼마 멀지 않았는데 이삭을 잘라낸 조짚낟가리가 드문드문 서있는 밭사이로 넓은 발구길이 틔여있었다.

김택근은 길과 밭사이의 경계가 별로 알리지 않은 평평한 발구길에 들어서자 안장우에서 거의 몸을 떠일구고 급속도로 말을 내몰았다.

말은 자갈을 문 주둥이를 한껏 벌리고 약간 모재비걸음으로 투닥투닥 땅을 내차면서 길과 밭의 구분이 없이 곧추 내달려 부락으로 뛰여들어갔다.

행길가에 주런이 늘어서서 눈을 치고있던 유격대원들이 서둘러 길섶으로 물러서면서 김택근소대장에게 경례를 하였다.

《동무들, 사령관동지께서 어디 계시오?》

김택근은 말을 멈춰세우지 않은채 안장우에서 소리쳐 물었다.

《사령부는 부락 저쪽의 마지막 끝집입니다. 이 길로 내처 나가십시오.》

유격대원들이 말을 따라오면서 소리쳤다.

김택근은 부락의 한복판을 누비고 달려지나갔다. 길좌우에 빽빽이 다가앉은 귀틀막들과 장작가리며 나무단으로 엮어세운 울바자들이 등자에 걸채일듯이 가까이 스치며 휙휙 지나갔다. 삽짝문이 젖혀져 있는 한 귀틀막에서 소년나팔수 김청해가 뛰여나왔다. 나팔수를 보자 김택근은 급급히 말고삐를 잡아챘다.

《나팔수동무, 사령관동지께서 방에 계시오?》

《방금 지휘관동지들을 데리고 지형료해를 나가셨는데요.》

나팔수는 더운 코김을 씩씩 내불며 좁은 골목에서 고패미를 쳐대는 말의 주둥이에 날파람있게 매달려 고삐를 휘여잡았다.

《나가신 장소가 어디요? 급하게 보고할 일이 생겼소.》

《이 뒤길로 그냥 다그쳐 나가십시오. 아까 보니까 저쪽 산자드락으로 오르고계시더군요.》

소년나팔수는 대답하고 잡았던 말고삐를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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