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2

(1)

 

린석은 온밤을 잠들지 못한채 뜬눈으로 새웠다. 그도 그럴것이 평생 붓대를 손에 쥐고 붓대와 함께 살아온 그였기때문이였다.

춘천이 고향인 그는 향교의 교사였던 아버지 류중곤의 지도로 글을 배웠고 유교성리학에 깊이 몸을 잠그었다. 그에게 두 형이 있었지만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고 혈육이라고는 그 하나만 남아있었다. 그만큼 그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은 높았다.

그러나 아버지마저 그가 한창 성장하던 때 중병으로 세상을 뜨고말았다.

한창나이의 혈육들을 다 잃고난 그는 그들이 못다한 학문의 뜻을 받들어 극성스레 공부를 하였다.

유교성리학이 비록 타국에서 들어온것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심원한 뜻과 깊은 의미가 담겨져있는가. 임금과 신하간에는 의리가 있어야 하고 부자간엔 정이 있어야 하며 남녀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3강과 어른과 아이, 웃사람과 아래사람사이에는 순서가, 벗들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륜리도덕을 합쳐 삼강오륜이라고 하는 이 진리야말로 이 세상을 받드는 주추돌이요, 나라를 나라로서 유지하게 하는 기둥이다.

사람은 다 자기 분수에 맞는 지위가 있다. 임금이 있어 신하가 있고 부모가 있어 자식이 있으며 웃사람이 있어 아래사람이 있는것은 다 하늘이 정한 리치로서 이것은 누구도 변경을 못한다. 따라서 사람은 이 정한 리치에 따라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웃사람이 현명하고 아래사람이 우둔한것도 다 이 정해진 리치에 따른것이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땅에도 높고낮은데가 있듯이 사람도 그렇다. 세상이 소란하고 복잡한것도 바로 이 정해진 리치에 어긋나게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데서 오는것이다.

임금은 곧 하늘이다. 임금은 하늘의 뜻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천자이다. 따라서 임금께 충성하는것은 하늘의 뜻을 받드는 도의로서 누구도 거기에서 제외될수 없다. 바로 이것을 대의명분이라고 하며 세상을 받드는 또 하나의 기둥이고 주추돌이다.…

린석은 자기가 배우며 평생 굳혀온 유교성리학의 의미를 다시한번 음미해보았다. 할수록 그 뜻이 깊고 의미가 심원했다.

그런데 최근에 그렇게 굳게 다져온 진리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안으로는 상하귀천의 기틀이 헝클어져 그 차이가 줄어들고 밖으로는 양놈, 왜놈들이 쓸어들어 나라의 기반을 흔들어놓고있다.

특히는 력대로 조선을 상국으로 섬기며 뢰물까지 바쳐오던 왜나라가 갑자기 《대국》으로 둔갑하여 왕궁을 침범하는가 하면 8도 각지를 싸다니며 재물을 략탈하고 사람들까지 죽인다. 분수에 어긋나도 류만부동이지 쪽발이 왜놈들이 어떻게 감히 이럴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린석이 뛰여든것이 위정척사운동이다. 즉 유교교리를 더욱 튼튼히 다지여 왕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체계를 굳건히 고수해나가는것이다.그러자면 유교를 제외한 모든 이교도 특히 카톨릭교를 철저히 물리쳐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

비록 맹목적인 충군사상에 기초한것이기는 하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커다란 사회적운동으로까지 번져갔다. 척양척왜의 구호가 하나의 풍조로 되고 도처에 《척화비》가 세워지게 된것만 봐도 그들의 영향력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여론이나 환기시키고 이런저런 운동이나 벌리는것으로 끝났지 직접 총칼을 들고 침략자들과 싸움을 벌려보지는 못했다. 물론 린석이 의병대를 조직해보자고 여기저기 뛰여다니기는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지금 제천에 의병대들이 모인것은 잘한 일이지만 자기가 그 대장이 되는것은 다른 문제이다. 역시 군사를 모르고 어떻게 그들을 이끌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여차하다가는 싸움에서 패하고 뭇사람들에게 실망만 안겨줄수 있다. 그때의 책임을 어떻게 맡아안을수 있겠는가.

그가 지금껏 의병투쟁을 호소한것은 싸움에 일어나라는것이였지 자기가 그 대장이 되자고 한것은 아니였다.

그가 지금 제천으로 가는 문제를 놓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림종을 눈앞에 둔 어머니가 있는것이다.

고령 심씨인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두 아들을 앞세운 어머니이고보면 그럴만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였다. 그는 린석이 아직 배속에 있을 때 자기 배꼽에 벌떼가 한뭉치 매달린 꿈을 꾸고나서 이제 태여날 아이가 반드시 큰 인물이 되리라는 예언을 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린석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머리가 영민했다. 열살이전에 벌써 천자를 통달하고 훈몽자회(어린이들을 위한 한자교재)를 뜬금으로 외웠으며 남들이 한생을 바쳐도 터득하기 힘들다는 사서(유교교리를 설교한 고전들. 곧 론어, 맹자, 중용, 대학의 4가지)와 륙경(역시 유교교리를 적은 고전들로서 주역, 상서, 시경, 춘추, 례와 악의 6가지 경서)을 젊은시절에 다 뗐다.

성격도 남달리 강직하고 대가 발랐으며 정의앞에서는 굽힘을 몰랐다.

그가 일곱살때 한번은 뒤산 동굴속에 도적들이 웅거해있다는 말이 돌아가면서 사람들이 거기에 오르기를 주저하였다. 그때 린석이 동굴로 혼자 올라갔다. 마침 굴앞에서 훔쳐온 물건을 나누고있던 도적들은 종주먹을 쥐고 부릅뜬 눈으로 숲속에서 나오는 그를 보고는 기급하여 달아났다. 이런 린석을 두고 사람들은 호랑이처럼 사납고 나는 룡처럼 두려움을 모르는 기상이라고 하였다.

열살이 넘어서부터는 서울에 올라가 공부를 하였는데 추운 겨울에 거지아이들이 길거리에 누워자는것을 보고는 자기가 덮던 이불을 내다주고 자기는 허리를 꼬부리고 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아마 지금도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잊지 못해하며 따르는것이 깊은 학식과 함께 그와 같은 깊은 인정미에 끌려서일것이다.

류린석의 이와 같은 굳세고 곧바른 성격을 말할 때 어머니 심씨의 노력을 론하지 않을수 없다. 그는 아들에게 눈먼 사랑만 쏟아붓지 않았다.

린석이 아직 어렸을 때 한번은 음식을 잘못 먹어 온몸에 요충이 퍼졌던적이 있었다. 콩알처럼 뭉친 요충들이 온몸의 여기저기에 돋아났다.

아들의 운명이 생사기로에 놓여있던 그 시각 어머니는 아들을 알몸뚱이로 꽁꽁 묶어 모기장안에 집어넣고 그안에 벌통 하나를 터쳐놓았다. 성난 벌들이 린석에게 무자비하게 달려들었다. 린석은 수백수천마리가 쏘아대는 벌독에 취해 순식간에 의식을 잃었다.

그것이 우연이였던지 아니면 벌독의 효과에서였던지 린석은 사흘만에 의식을 차렸고 요충들은 간 곳없이 사라졌다. 아들을 위해 바친 어머니의 모질고도 굳센 의지의 발현이였다.

바로 그런 손길아래 자란 린석이기에 지금 그는 어머니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차마 자기가 떠나야 한다는 말을 입밖에 내기가 힘든것이다. 린석이 하루만 보이지 않아도 진종일 그 이름을 찾는 어머니였다. 하다가도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문득 웃음을 지으며 언제 그랬느냐싶게 반기군 했다. 바로 그런 어머니이기에 내가 없다면 얼마를 더 견디여내며 내가 없는 사이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일을 어찌랴 하는 생각이 밤새도록 그를 잠 못들게 하였다. 아침상을 마주할 때까지도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떠나자고는 하면서도 어머니의 정상때문에 입을 열수가 없었던것이다.

그가 식사를 끝내고 마루우를 서성거리고있는데 안방에서 그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여성아, 애아버지야… 이리 들어오너라.》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린석이 장가를 든 이후부터 노상 이름대신 자로 여성이라고 부르는 어머니였다.

《어디 갈 일이 있니? 왜 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채기고있었냐?》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앉았던 린석은 한순간 몸을 흠칫했다. 딴방에서 잠을 잔 자기를 어머니가 어떻게 알았을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는데 어머니가 마른 나무가지같은 손을 들어 린석의 팔목을 잡았다.

《갈데가 있으면 가려무나, 내 걱정은 말구… 네가 분명 나라일때문에 그러는것 같은데 사내는 그래야 한다. 어서 가거라…》

순간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고 팔다리가 떨렸다. 이것이 어머니의 마지막작별의 말씀이 아니겠는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평시에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린석이 어디로 떠나지 못하게 어디가 아프다, 오래 살것 같지 못하다 하면서 옴짝을 못하게 붙들어놓기만 하였다.

《저 사람들이 널 데리러 왔지?》

어머니가 재차 물었다. 그때에도 린석은 대답을 못하고 머리를 수굿하고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계속하였다.

《어서 떠나라는데? 나라때문에라면야 가야지…》

또다시 가슴이 뭉클했다. 오, 어머니. 이것이 나의 어머니 아니였던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어려운 때마다 매양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어머니는 그를 떠밀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라는것이다.

《어머니, 세밑으로는 꼭 돌아오겠습니다.》

마침내 그가 대답을 했다. 그러나 인차 후회를 했다. 아니, 나는 그때까지 돌아오지 못한다. 올수 없다. 왜놈들과 싸우는 일이 그렇게 쉽게 끝날수는 없는것이다.

그러는데 어머니가 계속했다.

《이런 때 끌끌한 손자녀석들이라도 있었으면, 그것들이 너를 대신할수 있겠는데…》

아들이 없는 린석을 탓해서 하는 말이였다.

어머니는 늘 그것을 한탄했다. 그때마다 린석은 가슴이 찔리군 했다. 자식의 불효중에도 제일 큰 불효가 대를 이을 자식을 남기지 못하는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에게 후취를 해서라도 꼭 아들을 보라고 했다.

한것을 린석이 하지 않았다. 안해 리씨를 생각해서였다. 마음씨 무던하고 살림살이에 극성인 안해는 평생 그에게 말대답 한마디 안하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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