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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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들은 서안우에 문방제구들이 갖추어져있고 여기저기 금방 쓴듯 한 종이장들이 널려져있는 방에 마주앉았다.

《그래 누구누구들이 모여왔다고? 제천이라면 분명 하사 안승우가 있는 향교일테지. 의병들은 모두 몇명이나 되나?》

류린석이 처음의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다그쳐물었다.

《옳습니다. 계현(안승우의 자, 하사는 그의 호)이 이번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모여온 사람은 지평에서 리춘영이, 문경에서 리린영이, 안동에서 리범직이, 관동에서 리직신이 그리고 우리 두사람과 그때 떠돌아다니던 총각 김백산이, 쇠부리터의 사석이 등 해서 여라문명이 잘되는데 의병 총수는 도합 2천이 훨씬 넘습니다.》

문관복의 형석이 다시 대답했다. 형석이란 그의 자이고 본 이름은 김복한이다. 그가 류린석의 제자인 까닭에 스스럼없이 그렇게 부른것이다.

린석이 불시에 복한의 손을 덥석 잡았다.

《2천명씩이나? 그참 대단하군. 그속에 떠돌이를 살던 김백산이도 있단 말이지?》

《지금 보아선 그 총각이 그중 인원도 많고 병기도 괜찮습니다. 화승총만 해도 2백자루나 됩니다. 인원도 4백이 넘습니다.》

《원 저런…》

린석은 이름할수 없는 격정에 한마디 내뱉고 복한의 앞에 한걸음 다가앉았다.

《참, 자네도 의병을 모집해왔다지. 진정 군수의 벼슬자리는 버릴 셈인가?》

의혹과 호기심이 어린 이글거리는 눈이 그를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그가 그렇게 묻는것은 복한이 여직껏 관직을 탐내지 않고있다가 최근에야 과거를 보았는데 어느 고을의 군수로 임명될 가능성이 크기때문이였다.

말하자면 충주에 있는 그가 그곳 관찰사의 눈에 들어 어느 고을의 군수로 내정되고있는것이다.

《거야 선생님이 그렇게 하도록 시킨것이 아닙니까. 왜놈과의 싸움에는 책임있는 관리들이 앞장서라, 그렇게 하지 않고 왜놈에게 붙어 나라를 팔거나 의병싸움을 반대하는자가 있으면 기어코 의병을 보내여 그런자부터 처단하겠다, 격문에 이렇게 썼지요?》

《응? 내가 분명 그렇게 썼던가…》

린석이 처음 듣는 소리인듯 눈을 껌벅이다가 소리내여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따라웃었다.

《그런즉 자네 강세도 싸움에 나섰겠다? 저 지평현감 우삼(리춘영의 자)이도 그렇구 현감자리를 내놓고 싸움에 나선다는게 헐치 않을걸?》

린석이 어느덧 심각한 안색을 짓는데 강세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의 본 이름은 주용규요 호가 강세이다. 그도 한때는 린석의 휘하에서 글을 배웠는데 십여년전부터 외세의 침입이 강화되자 단연 군사에 뛰여들어 감영군의 장교노릇을 하다가 지난 갑오년에 전라도농민봉기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죄로 파직되여 고향에 내려가있었다. 하다가 이번에 을미사변이 터지고 린석의 격문이 발표되자 단연 의병에 뛰여든것이다.

《저도 저이지만 여기 복한형님이나 지금 제천에 와있는 춘영형님들이 쉽지 않은 길을 택했지요. 군수나 현감자리를 내놓고 싸움길에 나선다는것이 누구나 할수 있는 일입니까.》

《암, 그렇지. 자네들은 물론이구 집없이 떠돌아다니던 저 김백산이는 또 어떤가. 나라에서는 그에게 준것이 없는데 그는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섰거던. 게다가 싸움준비도 제일 잘했다지?》

《그게 다 선생님께서 격문으로 사람들을 잘 일깨워준 덕분입니다. 선생님께서 이미전부터 조선8도 각 고을에 격문을 날린것만 해도 벌써 세번째가 아닙니까.》

《물론 쓰기야 썼지. 하지만 그것이 어찌 격문의 힘만이겠나. 그게 다 우리 백성들의 애국지심에서 나온것이야. 제 나라, 제 겨레를 사랑하는 이 나라 만백성의 충성된 마음에서이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안해 리씨가 주안상을 차려왔다. 그러자 이야기는 더 활기를 띠였다.

호가 의암이요 이름이 류린석인 그는 평시에 그닥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였으나 오늘만은 많이 했다. 주로는 대국들의 간섭으로 나라안에 위기가 조성된데 대한 한탄과 울분이였다.

일본, 청나라, 미국, 로씨야, 도이췰란드, 프랑스… 어느 나라나 조선을 집어삼키자는 놈들뿐이다. 그가운데서 가장 악착스럽고 교활한 나라는 일본놈들이다. 지어 이놈들은 남의 나라 왕궁에까지 뛰여들어 왕비를 살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것이 지난 8월 20일(양력 10월 8일) 밤이였다.

그 일을 놓고 온 나라가 분개하였다. 그날을 《국치의 날》로 정하고 서울과 지방의 여러곳에서 사람들이 떨쳐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시위투쟁을 벌렸다. 세론도 물끓듯 했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끝나고 그이상은 아무 일도 생겨나지 않았다.

오히려 왜놈들은 그것이 자기네가 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을 했다.

바로 그때에 류린석이 격분을 참지 못하여 온 나라에 보내는 격문을 썼다.

…오호라, 오늘의 참변이 웬일이냐. 원통하고 통분할사. 이 나라의 국모가 원쑤 왜놈에게 살해되다니. 조상전래 동서고금에 이런 참변이 언제 어디에 있었더냐…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국모가 살해되였다는 거기에서만 출발한것이 아니였다. 원쑤 왜놈에 대한 총체적인 증오와 분노에서 시작된것이였다.

지난해에도 격문을 썼었다. 바로 갑오(1894)년 6월 21일이였다.

그때에도 왜놈들은 조선의 왕궁을 습격했었다. 야수적이고 파렴치하기 그지없는 이 섬나라 오랑캐놈들은 새벽야음을 리용하여 수천명의 병력과 대포를 동원하여 왕궁을 포위한 다음 오래동안 나라의 상징으로 신성시되여오던 조선왕궁을 일거에 습격점령하고 그안에 있던 30문의 대포와 8문의 기관포, 2천정의 신식보총을 비롯한 수많은 무기를 략탈하여 인천으로 실어갔다. 왕과 왕비는 완전한 연금상태에 들어갔다. 그렇게 하기를 한달여일, 그사이 왕궁을 샅샅이 뒤지며 력대로 보관되여오던 문화재들을 략탈해간것이 그 얼마였던가.

그리하여 그는 썼다. 《8도 여러 고을에 통고한다》는 첫 격문이였다.

《아, 우리 8도 동포들아.

이 나라를 어찌 저 원쑤들에게 내맡기며 암흑의 생지옥으로 화하게 하겠는가. 조상대대로 애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슬기로운 민족인 우리가 내 나라, 내 집을 위하여 떨쳐나지 않을수 있겠는가…

아, 통분하다. 갑오년 6월 21일을 당하여 3천리 우리 조선이 옛모습을 잃게 되였으니 불구대천의 원쑤 왜적에 대한 복수의 마음이 더욱 사무친다. 환난을 피하기는 죽기보다 어려운것이니 멸망을 기다리기보다 싸우는것이 곱절 더 현명하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어진 법을 본받아 나라가 위급할 때에는 저마다 충의심을 발휘하여 반드시 구제하고야마는 전통을 가지고있다. 임진년(1592년의 임진조국전쟁)에도 그랬고 병자년(1637년의 병자호란)에도 그랬고 의로운 군사가 수많이 일어나 기어코 외적을 이 땅에서 내쫓고야말았다.…

피를 마시며 맹세하노니 성패와 리해는 따질바가 아니며 경중과 대소를 론할바가 아니다. 우로는 정부관리로부터 아래로는 평백성에 이르기까지 각자는 무기를 잡고 의로운 군사가 되여 끓는 물과 단불에도 뛰여드는 용감성을 발휘해서 나라의 중흥을 기약하고 태양이 다시 밝음을 보게 하자.

이 공로는 한 나라에만 한정되는것이 아니고 실로 만고의 청사에 길이 빛날것이다.…》

《선생님의 그 뜨거운 마음은 실로 하늘도 감득할 일이였습니다. 이제도 그 마음이 조금도 변치 않았으니 한시바삐 제천으로 가서 의군을 이끌어주십시오.》

류린석의 격문을 놓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김복한이 상앞에 넙적 엎드리며 청을 드렸다. 주용규도 따라 엎드렸다.

그제서야 생각이 난듯 류린석은 약간 의아한 자세를 취하며 손을 내흔들었다.

《물론 마음이야 지금도 끓고있지. 하지만 그때에도 이렇다 하게 의병을 일으키지 못하지 않았나. 사람들이 얼마간 모여들기는 했지만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한채 헤여져버렸거던. 게다가 이제는 나이도 먹었어.》

《그런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그때에 이어 세번씩이나 격문을 날린것은 선생님의 높은 애국심과 강경과단한 자질을 보여주신것으로써 지금도 만사람의 존경을 받고있습니다. 그런만큼 비록 년로한 몸이지만 이제라도 대장으로 나서신다면 높은 인망과 정력만으로도 사람들이 따를것입니다. 속히 대답을 내려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두사람의 눈에는 뜻밖에도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린석이 황황히 그들을 일으켜 잔을 따랐다.

《내가 대답을 저어하는것은 오직 군사를 모르는때문일세. 이로써 내가 격문을 낸것이 의병장이 되자고 한노릇이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지 않나. 하면서도 그대들의 간절한 부탁과 제천에 모여왔다는 사람들의 정상을 보아서 생각을 좀 해보겠네.》

《실은 그들의 대부분도 싸움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저희들도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대장이라는것이 더욱 중요하지. 내가 겉으로는 하겠다고 쉽게 대답을 해놓고 군사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런 대장을 모신 자네들의 심정이 어떻겠나. 그래서 오늘 밤은 푹 쉬고 래일 다시 의논하세. 먼길에 수고많았네.》

그가 이런 말로 위로해서 각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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