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의병들은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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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전부터 오며말며 내린 눈으로 희끗희끗해진 산은 잎떨어진 나무들의 거무틱틱한 모습마저 드러내며 끊임없이 다가오고있었다.

말들은 뭉툭한 큰 쇠갈구리모양 발굽을 굽히고 쉬임없이 언땅을 그러당기건만 골짜기를 따라 기여올라간 길은 해종일 끝날줄 몰랐다.

어디나 산이였다. 굵고 가는 무성한 가지들이 하늘을 가리운 골짜기를 지나 릉선에 올라서면 또 한모양새의 산이 앞에 나서군 하였다.

그렇게 벌써 2백리길을 달려오고있는 그들이였다.

앞선 말에는 융복차림의 무관이 타고있었다. 시뻘건 주락상모가 달린 전립을 쓰고 역시 붉은색 전복에 허리에는 칠척장검을 찬 몸집이 큰 사나이였다.

그는 닫는 말에 계속 박차를 가하며 가끔 뒤따라오는 사람을 향해 시꺼먼 수염이 움씰움씰하도록 얼굴을 찡긋거렸다.

뒤말에는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량볼이 볼록하면서 몸집이 똥똥한 사람이 타고있었다. 전형적인 문관차림으로서 전이 넓은 까만 통영갓에 흰 도포를 두르고 술띠를 띤데다 흰 옥당목버선에 역시 흰 갖신을 신은것으로 하여 더더욱 선비라는것이 뚜렷이 알렸다. 그만큼 말타기도 힘든듯 두손을 말등에 꼭 붙이고 줄곧 찌프린 얼굴에 때없이 밭은 목을 빼들군 하였다.

그뒤로 서너명의 기수들이 따르고있는데 그들은 앞선 사람들의 구종이거나 호위군사들인듯 흰 무명옷이나 베바지저고리에 목수건을 대충 두르거나 새까만 더그레에 산수털벙거지를 제나름으로 걸친 사람들이였다.

하늘은 오늘도 찌프렸다. 언제 눈을 쏟칠지 알수 없는 시꺼먼 구름장들이 좁은 하늘을 이리저리 헤매며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여기에 누가 있는가, 무엇하러 가는 사람들인가, 몸에는 무엇들을 지니였는가.

그 모습에 위압을 느낀듯 사람들은 가끔 하늘을 쳐다보며 불안스레 눈을 껌벅였다. 구름장들이 왜 저리 성급하게 구는가, 하늘이 또 무슨 재변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세월이였다. 하늘에 구름장 하나가 별스레 떠돌아도, 별찌 하나가 길게 떨어져도 제나름대로의 재변을 생각하며 공포에 사로잡히군 하던 때였다.

《여보게 강세, 하늘에서 뭔가 쏟아질듯 하이. 눈에 길이라도 막힐게 아닌가?》

뒤사람이 숨찬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앞선 사람은 그냥 박차를 가하였다. 나라의 중부산악지대를 남북으로 꿰지르는 꽤 큰길이다.

그러나 내용만 그렇지 실질적으로는 보잘것 없는 길이다. 필요한 때에는 고을의 현감이나 군수 같은 사람은 말할것 없고 도의 관찰사나 저 서울의 당상관나으리들도 때없이 오가는 길이건만 누가 언제한번 닦은적 없고 그렇다고 타발한적도 없다. 산이 생긴대로 이리저리 굽은데다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제멋대로 삐여져나와있고 나무들도 저마다 제멋대로 뻗어있다. 그것들이 달리는 말의 발굽에 채이거나 말탄사람의 갓양테를 쥐여당기는것쯤은 례사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응당 그러려니 했다. 언제한번 수레를 통하여 이 고을의 특산물이 저 고을로 넘어가고 저 고을의 명산이 이 고을에 퍼지여 문물의 변화를 가져온적이 없다. 그것이 천연의 법으로 되여 사람들의 시야를 좁혀주고 생각을 짧게 해주는 요인으로 세세년년을 계속해오건만 누구 하나 그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도 없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더구나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다 왔네. 저기에 춘천고을이 보이는구만.》

마침내 령마루에 올라선 앞선 사람이 말하였다.

뒤따르던 사람이 다가와 앞을 내다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다왔군, 그예…》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도포자락 한끝으로 이마의 땀을 문대겼다. 그동안에도 눈은 줄곧 춘천고을을 놓지 않고있었다.

그것은 산굽이를 에돌아 희뿌연 안개속에 아물아물 바라보이는 산간고을이였다. 역시 무성한 숲속에 키낮은 초가들과 동기와집이 널린 가운데 키가 훌쭉한 기와집들이 드문드문 박혀있었다. 그들은 말에서 내렸다.

《우리가 왔던것이 지난 8월 한여름이였지? 그때만 하여도 나라가 편안했어. 지금처럼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거던.》

갓쟁이가 나무그루터기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무사차림만은 여전히 고을쪽을 주시하고있었다.

《편안했다니, 그때에도 의암선생이야 예고하지 않았나. 나라에 반드시 큰 변이 날것이라고 말이야.》

《하긴 그래, 근년치고 언제한번 나라에 편안한 날이 있었나…》

뒤따르던 사람들도 마저 올라와 주인들의 눈치를 보다가 그대로 앞질러나갔다.

그들도 다시 말에 올랐다. 갓쟁이만은 무사가 엉치를 떠받들어주어서야 올랐다. 그의 몸은 지금 공중에 매달린것처럼 둥둥 떠있는듯 했다. 그만큼 진종일 말우에서 시달렸다. 언제한번 그렇게 말을 타본적이 없는 그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었다. 참아야 했다. 참을뿐아니라 더 빨리 서둘러야 했다. 지금 그의 어깨우에는 《나라》라고 하는 무거운 짐이 실려있다.

분명 자기 어깨우이다. 꼭 그렇게만 생각되였다.

지금 내가 뛰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왜적이 침노하고있다. 저 섬나라 오랑캐들이 내 나라의 서울에까지 기여들어와 궁궐을 점거하고 국모까지 살해하였다. 이제 나라님에게까지 손을 뻗칠지 어찌 알랴.

이렇게 생각하며 먼길을 달려왔다. 저 충청도 제천에서부터 먼 수백리길을 하루길에 잇대여왔다. 이제 저 춘천고을에만 가면 알도리가 있다고 믿는때문이다.…

마침내 춘천읍에 들어섰다. 말들은 고을안의 크고작은 집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가운데로 흐르는 소양강기슭을 따라 한참 오르다가 거리에서 외따로 떨어진 크지 않은 기와집앞에서 멈춰섰다.

서둘러 주인을 찾은 그들은 하인이 나오기 바쁘게 떠들썩이며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하얀 종이를 바른 분합이 드르릉 열리며 주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흰 무명바지저고리에 반백의 수염이 얼굴에 어설핀 체소한 로인이 웬일인가 하고 밖을 내다보다가 와뜰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게 누구들인가. 응? 형석이, 강세… 이 사람들, 어서 올라오게!》

주인이 성급히 마루우로 튀여나오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득의양양해서 들어서던 두사람은 올라서지 않고 그대로 뜰아래에 섰다.

《선생님, 급히 알릴 일이 있어 왔습니다. 저희들은 충청도 제천에서 오는 길인데 지금 그곳에 의병들이 모여있습니다. 여러 의병들과 의병장들이 의암 류린석선생님을 총대장으로 추천하였습니다. 저희들이 그 소식을 알리는것과 함께 선생님을 모셔갈 임무를 받고 달려온 길입니다.》

형석이라고 불리운 문관차림의 똥똥한 사람이 말했다.

집주인 류린석은 그의 긴 설명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선채로 무릎을 털썩 치며 《의병들이란 말이지. 그예 모여들었군!》 하다가 마지막까지 다 듣고나서는 《나를 대장이라고? 에잇, 그건 안되네. 내가 무슨 군사를 안다고 대장이 되겠나.》했다.

옆에 섰던 무관복의 강세가 대답했다.

《선생님, 저희들이 모여온것은 선생님이 이미전부터 의병을 일으킬것을 주장해왔고 이번에 또 전국에 격문을 날리여 나라를 구원할데 대한 호소에 따른것입니다. 다시 변경 못합니다.》

류린석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여직 그들을 뜰아래 세워두었다는것을 알아차리고 급히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가 늘 글쓰고 책을 보는 사랑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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