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2 장

10

 

사람들은 다가오는 말들을 보고 좌우로 비켜섰다. 그들은 주보중 유격부대 사람들이였다.

주보중은 잠시 말고삐를 늦추고 장군님을 쳐다보았다.

김일성동지, 저 발구를 내려다보십시오. 머리통에 구멍이 뚫린 저 기다란 통나무가 뭔지 형태가 알립니까?》

장군님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발구에 실려가는 기다란 통나무를 내려다보시였다.

《글쎄요. 아직 형태가 똑똑히 잡히지 않았는데… 조그마한 물레방아머리채같기도 하고…》

《비슷하기는 한데 정확치는 못합니다. 그게 국수분틀이라는겁니다.》

주보중이 능글맞게 웃어넘기는바람에 장군님께서도 껄껄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주보중은 김일성장군님께 별식을 만들어 대접하자고 대원들에게 국수분틀을 만들라고 지시하였지만 그 말은 입밖에 내지 않고 발구를 몰고가는 키큰 대원에게 넌지시 물었다.

《라동무, 여기서 언제면 국수오리가 내리는걸 볼수 있을가요. 래일 점심상에는 국수그릇이 올라야 할텐데요.》

《걱정 마십시오. 김일성장군님을 위하는 일인데 어련할라구요. 그런데 한가지 물어도 좋습니까?》

라동무라고 불리운 키큰 대원이 주보중의 말곁으로 다가섰다.

《어서 물어보시오.》

주보중은 키큰 대원이 안장옆으로 바싹 다가와 소곤거리는바람에 허리를 낮추고 털모자의 한쪽 귀덮개를 들어올렸다. 한동안 그의 말을 듣고있던 주보중은 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장군님을 향해 웃음부터 짓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 이 동무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장군님께서 북만에 오신 기회에 동만의 요영구같은 근거지를 꾸려주신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고 묻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시고 대원들을 굽어보시였다.

《아주 흥미있는 질문입니다. 근거지를 멋지게 꾸릴 필요성이 나선다면 꾸려야지요. 그러나 이건 밀영에 도착하고 보아야 할일입니다. 지금 급선무로 나서고있는 중대한 임무는 무엇인가? 동무들, 그걸 생각나는대로 대답해줄수 없겠습니까?》

장군님, 그건 행군을 다그쳐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것입니다.》

한 대원이 챙챙한 목소리로 여무지게 대답하였다.

《옳습니다. 아주 대답을 잘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행군을 다그쳐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것입니다. 방금 떠나온 밀영은 로출된 곳인데 아마 얼마후에는 적들이 유격대를 놓쳤다고 아우성을 지를것입니다. 우리는 비밀밀영으로 들어가앉아서 그놈들을 녹여낼 차후작전이나 벌려봅시다.》

장군님의 말씀이 떨어지기 바쁘게 대원들은 사기가 올라 걸음을 다그쳤다.

장군님께서는 주보중과 함께 말고삐를 채여 앞으로 달려나가시였다.

행군대오는 해가 뜰 림시에 새 밀영에 도착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주보중과 함께 밤새 꾸린 귀틀막들을 돌아보시고 부상자들과 인민들을 우선 귀틀막들에 들게 하였다.

《밤새 이렇게 훌륭한 귀틀막들을 꾸려놓다니. 솜씨들이 정말 번개같습니다. 이제 이런 귀틀집을 대여섯채 더 지어놓으면 원정부대와 우리 동무들이 다 들고도 남겠습니다.》

주보중은 지휘처 병실로 꾸려놓은 귀틀막에 들어오자 기분이 흡족하여 자기 부대의 중대장들을 부르더니 곧 귀틀막들을 지을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자신은 한시름 크게 놓은듯 통나무를 쪼개 만든 침상에 부상당한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밤새 말을 타고오기는 했지만 그의 병약한 몸은 녹초가 되도록 지쳐있었다.

《주보중동지, 귀틀막을 더 짓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원정부대는 밀영을 떠나려고 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원 이럴수 있습니까?》

주보중은 침상우에서 아픈 다리를 바삐 들어내리고 지팽이를 뚝뚝 짚으며 성급하게 방안을 한바퀴 돌더니 락심천만한 기색을 짓고 다시 침상에 주저앉았다.

김일성동지, 우리는 김일성동지께 기대하고있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그중의 하나가 이곳에 동만과 같은 유격근거지를 꾸려놓는것입니다. 밤중에 행군대오에서 만난 그 대원도 장군님께서 요영구같은 근거지를 꾸려주신다는게 사실인가고 묻지 않았습니까? 우리 동무들의 희망이 그렇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눈웃음을 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주보중동지는 욕심이 너무 많군요. 남이 몇해동안 공력을 들여 꾸려놓은걸 한꺼번에 다 가지고싶다고 하시니, 하지만 나는 지금 이 밀영을 어떻게 지켜나갈것인가 하는 생각을 줄곧 하게 됩니다. 근거지를 꾸리는 일보다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 더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주보중은 침착하게 장군님의 말씀을 긍정하고 심각한 생각에 잠겨드시는 장군님을 지켜보고있었다.

《우리가 어제도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제 수백수천의 〈토벌대〉들이 집결하여 우리를 공격해오게 될겁니다. 미구에 이 새 비밀밀영도 적의 눈에 드러나지 않을수 없게 됩니다.》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창문가로 다가가시여 새로 꾸린 밀영을 둘러보시였다.

《그러면 이 밀영도 불바다가 됩니다.》

장군님의 단호한 말씀에 주보중은 저으기 놀랐다. 장군님께서는 곁에 있는 주보중의 존재마저 잠간 잊으신듯 깊은 생각에 잠겨드시였다.

《어떤 성곽이나 보루에 의지해 싸운다 하더라도 이 좁은 골짜기를 우리의 지탱점으로 하는 한에는 견디지 못합니다.》

주보중은 알릴락말락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님께서는 창곁에서 물러나 잠간 방안을 거니시더니 다시금 다가오시여 주보중의 손을 다정히 잡으시고 병색이 어린 주보중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문득 가슴이 찌르르해지시였다. 주보중을 만난 뒤로 이렇게 얼굴빛이 좋지 않은것을 보시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방금 하시려던 말씀을 못하시고 방안을 좀더 거니신 뒤에야 주보중에게로 다가오시였다.

《우리 혁명가들은 손에 총을 들고 싸움에 나선 때로부터 언제나 강한 적과 싸워왔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봄, 여름에는 동만의 유격근거지들이 여느때없이 악랄해지는 적의 대〈토벌〉공세에 직면했었습니다. 관동군사령부는 지구〈토벌대〉와 경찰대, 자위단 무력은 말할것도 없고 관동군의 정예사단들까지 풀어 소위 〈보보점령의 보루전술〉에 기초한 〈위공〉작전이라는것을 벌렸던겁니다. 사태가 자못 험악했지요. 유격근거지주변에는 우리보다 수십수백배에 달하는 적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밤낮으로 공격해왔으니까요.》

장군님께서는 두팔을 크게 벌리시고 준엄했던 그날의 광경들을 정력적으로 그려보이시였다.

주보중은 아까보다는 좀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지난 여름에 요영구에서 들어온 연예대원들로부터 동만소식을 자세히 들었습니다.》

《그러니 주보중동지는 몹시 걱정했겠군요. 그때 우리는 근거지에 앉아 달려드는 적을 때리기만 할것이 아니라 맞받아나아가 적의 내부를 치고 후면을 답새겨서 근거지에 몰려든 적의 력량을 분산약화시켜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근거지를 두고 나가면 어찌하느냐고 우리의 발목을 붙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단호히 근거지를 벗어나 적의 중요 〈토벌〉거점들을 치고 유격구에 대한 일제의 포위환에 파혈구를 뚫었습니다.

경험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유격구에 의거하여 적의 공격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맞받아나아가 선제타격으로 적을 공격해야 한다는것을 실증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많지 않은 력량을 가지고도 개별적인 전투에서 력량상의 우세를 차지할수 있었습니다.》

장군님의 말씀은 결국 이 좁은 근거지에 앉아 적의 공격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이 골짜기를 벗어나 주동적으로 적을 쳐야 한다는것을 암시해주고있는것이다.

오랜 혁명가이고 혁명군의 지휘원이기도 한 주보중이 그 말씀의 의미를 리해하지 못할수가 없었다.

김일성동지!》

주보중은 드디여 굳센 결심을 품고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말씀의 뜻을 리해하고도 남겠습니다. 그런데 나의 지휘처는 왜 여기에다 지어놓았습니까? 나도 부대를 데리구 김일성동지와 함께 나가겠습니다.》

《주보중동지의 그 몸으로는 원정행군을 못합니다. 몇달동안 이 밀영에서 병치료를 하십시오. 혁명을 하자면 건강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제 이 밀영을 벗어나 적을 달고 빠져나가면 이 밀영지대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에 들어가게 될것입니다.》

《그러니 이 밀영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김일성동지께서는 려로의 피로도 푸시지 않고 떠나시려 하시는군요. 아, 어쩌면 이럴수 있습니까? 바로 이 주보중의 안전을 위해서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나누어야 할 그 시간도 아끼고 밤새 행군도 다그쳐오시며 마음을 쓰셨군요.》

《주보중동지.》

장군님께서는 무슨 말씀으로 위로해주어야 할지 생각이 막막하시였다.

주보중은 한숨을 쉬면서 장군님의 얼굴만 지켜보고있었다. 가슴은 천천히 오르내렸다. 장군님께서는 어느덧 눈언저리가 붉어진 주보중의 얼굴을 가슴아프게 바라보시였다.

《주보중동지, 원정부대는 여기서 하루쯤 더 묵고 떠날 작정입니다. 그 시간이면 원정부대의 휴식도 충분히 보장되고 우리들사이에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도 충분히 나누게 될것입니다. 안그렇습니까?》

주보중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장군님께서 이런 말씀으로 자기를 위안하면 자기 마음속에는 그이에 대한 사무치는 정밖에 남을것이 없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앞으로 얼마동안 기다리면 김일성동지와 상봉할수 있을가요?》

《기껏해서 두어달이면 되겠지요.》

장군님께서는 그 말씀을 너무도 경쾌하게 하시였다. 그리하여 주보중은 자못 의심이 들 지경이였다.

《두달이면 녕안땅을 혁명지대로 만들고 주보중의 이 밀영에서 상봉하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어째서 부디 이 산골막바지에서 상봉하겠습니까? 그때는 녕안땅의 한복판에서 당당히 만나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녕안땅의 한복판에서?!…》

주보중은 마음속으로 외우려 하였으나 어느덧 흥분된 목소리가 입밖으로 새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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