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2 장

9

 

해가 떨어지기 바쁘게 행군대오는 밀영을 떠나기 시작하였다. 두개 중대의 유격대원들과 적의 《토벌》을 맞고 밀영에 들어와있던 십여명의 사람들이 행군종대를 이루고있었다. 그들은 모두 세 집식솔밖에 안되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였지만 밀영의 첫 주민이였으므로 주보중은 류벌목재판부락에 떨궈두지 않았다.

갑작스레 비상동원을 하여 떠난 사람들인지라 행군중대는 어지간히 소란스러웠다. 사람만이 옮겨가고있는것이 아니였으므로 부상자와 아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어깨에는 모두 무거운 짐짝들이 짊어져있었다. 게다가 주보중은 새 밀영에 뿌리를 내리고 근거지부락을 꾸리기로 결심하였으므로 일체 생활도구들을 발구에 실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류벌목재판부락에서 빌려쓰던 멍석, 솥, 대망, 농쟁기들까지 값을 치르고 발구에 날라오고있었다.

해가 금방 떨어진 밀영의 하늘에는 쟁반같은 달이 떠올랐다. 사방이 모두 흰눈인데다 밝은 달까지 비쳐 흡사 대낮같이 사위가 밝아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밀영에서 마지막 발구가 떠난 다음에야 주보중과 함께 말을 타고 행군대오의 뒤를 따르시였다. 밤은 잠풍하고 푸근하였다. 말발통에 밟히는 눈소리와 이따금 드덜기에 걸채이는 소리가 도간도간 들려왔다.

장군님께서는 아라비야산 말을 타고 가라말을 탄 주보중은 털모자의 귀덮개를 내리운 차림으로 보조를 맞추었다. 이렇게 잠풍한 날씨에도 병고에 시달리는 그의 몸은 한기를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따금 고개를 돌리시고 조금 낮은 둔덕을 따라 습보로 말을 몰고있는 주보중을 돌아보시였다. 승냥이털등거리를 입고 그우에 산양의 털이 너펄거리는 덧저고리를 입었으며 곰털토시까지 낀 주보중이였지만 말머리를 넘어오는 바람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있는것을 보면 그만한 추위에도 견뎌내기 힘든 모양이였다.

《주보중동지, 이밤으로 몇마장 잘 달려야 할텐데 꽤 견딜만합니까?》

《념려 마십시오. 김일성동지는 로야령을 넘어오지 않았는가요. 령이 꽤 험하지요?》

《예, 아주 볼만합니다.》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나는 김일성동지께 북만을 도와달라고 사람도 띄우고 편지도 보내군하였지만 국경연안으로 나가시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군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제나 조선혁명에 대해 말씀하시군하였으니까요.》

주보중은 말고삐를 가볍게 나꾸어채며 장군님의 옆으로 가까이 몰아갔다. 말들은 옆구리를 부딪칠 지경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허리를 굽히시고 주둥이를 내두르는 가라말의 이마빡을 두드려주시였다.

《주보중동지의 생각이 아주 빗나간건 아닙니다. 나는 조선사람이고 조선혁명을 남먼저 생각하는 조선혁명가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북만에 와있습니다. 나는 이 북만땅에서 큰 유격전선이 형성되여 관동군의 배후를 힘있게 타격하게 된다면 압록강지구로, 조국으로 나가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조선혁명은 언제나 세계혁명의 한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런데 북만땅의 혁명가들이 언제 구실을 하여 김일성동지께서 조국으로 진출하실 전략적인 공간을 열어놓을수 있을가요.》

《물론 손쉽게는 이루어지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만지구에서 방대한 유격전선을 결성하지 않는다면 조선과 중국혁명을 말살하고 쏘련과 몽골을 침략하려는 관동군의 등허리를 꺾어놓을수 없습니다. 조중 두 나라 혁명가들은 어떤 시련과 역경을 헤치고라도 일본제국주의를 타승하기 위한 반일공동전선을 강력히 형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말이 가볍게 코를 불고 앞발을 저겨디디는바람에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멈추시였다. 그 순간에 주보중이 난처하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의 웅뎅이를 꽤 건너뛸수 있을가요?》

주보중이 가라말의 등어리를 한손으로 내리짚고 고개를 돌려 장군님을 향해 물었다. 그리 넓지 않은 웅뎅이가 가로질러있었다. 바람을 싫어하는 주보중이 낮은 둔덕을 따라가는대로 가다나니 등성이의 중간을 자르고 지나간 홈타기에 맞다든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말고삐를 슬쩍 당겨 얼마만큼 뒤로 물러서시였다가 박차로 말배때기를 힘껏 내차며 안장우에서 몸을 일으키시였다. 아라비야산 말의 큰 몸뚱이는 순식간에 흰눈을 찍어뿌리며 내달리더니 웅뎅이를 훌쩍 건너뛰였다.

《아, 참 대단합니다. 기마에서도 역시 고무적인데요.》

주보중은 가볍게 롱을 건네더니 뒤이어 결단성있게 가라말을 때려몰았다.

《주보중동지, 멋진 동작이군요. 북만혁명가들이 기마에서는 능수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주보중이 웅뎅이를 뛰여넘어 옆에 다가오자 즐겁게 응대하시였다.

《예, 이곳 동무들이 말도 잘 달리고 스키도 잘 탑니다. 나는 반일부대공작을 하면서 말타는 솜씨를 좀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반일부대공작에서 얻은 소득이란 이것밖에 없지요. 북만땅에 숱한 반일부대들이 웅거하고있지만 주보중유격부대와 통일전선을 맺으려는 부대는 얼마 안됩니다.》

《하긴 그것이 중요한 문제지요. 난관은 있을것이지만 북만땅의 반일부대들을 우리의 유격전선에 결속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떤 부대들은 유격대에 받아들이기도 하고 어떤 부대들과는 통일전선을 하면서 반일세력들을 하나로 묶어세워야 하는것이지요.》

《그런데 어찌겠습니까. 형세는 쉽사리 그렇게 되여지지 않는구만요. 내가 몇해 반일부대공작을 해서 북만지대의 반일부대두령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유격대와 손을 잡으려는 사람은 얼마 안됩니다. 게다가 그들은 반은〈토비〉가 돼서 장사군들의 짐달구지를 빼앗고 인민들의 식량과 가산을 털어가는 일들을 매일같이 저지르고있는데 이때문에 북만땅사람들은 총가진 사람들은 모두 〈토비〉로 생각하고 유격대가 산판이나 부락에 들려 하루밤 잠자리를 얻으려해도 곁을 주지 않고 문을 닫아거는 형편입니다.》

《형편이 아주 어렵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낮게 허리를 굽히고 클럭클럭 기침을 하는 주보중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시였다. 역시 그의 고충이란 한두가지가 아닌것이다.

《내 그래서…》

주보중은 가까스로 기침을 멈추고 장군님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숨소리를 내면서 말을 이었다.

《반일부대와 손을 잡지 못할바에는 그들이 〈토비〉가 되여 유격대의 활동에 지장을 주는 현상이라도 막아야 하겠기에 인민들의 재산을 터는 반일부대 무장은 빼앗는다고 공포하고 왕이산반일부대의 무장부터 빼앗았습니다. 나한테 그렇게 무장을 빼앗긴 반일부대장이 이 북만땅에 서너사람은 됩니다.》

《왕이산이라니요. 어디서 듣던 이름같군요.》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말고삐를 당기시며 주보중을 돌아보시였다.

《이제야 생각납니다. 왕이산이라면 〈반일부대련합판사처〉에서 우리와 함께 공작하던 왕이동동무의 동생입니다. 친동생인지 사촌동생인지 알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의 동생되는 사람이 무장대를 조직해가지고 이도하자일대에서 돌아가고있다는 소식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바싹 당겨 잡으셨던 말고삐를 늦추시고 한동안 말 가는대로 몸을 맡기시였다. 말은 밭이랑길이 작은 기복을 누비고 펼쳐진 등판으로 한참 달려가다가 밋밋한 경사면을 이룬 개울바닥으로 내려섰다. 말발굽에 자갈이 밟히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김일성동지, 왕이동동무하구는 라자구에서 상면하셨다지요?》

《예, 라자구에서 우리가 〈반일부대련합판사처〉를 내올 때 녕안사람으로서 왕이동동무가 참가했더랬습니다. 지난 여름에 그가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때 왕이동동무의 동생이 오륙십명되는 무장대를 조직해가지고 싸움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이동의 동생이 싸움도 크게 해보지 못하고 무장을 빼앗기고말다니요?》

장군님의 목소리는 쓸쓸하게 울렸다.

《나는 그 사람이 무장을 빼앗기면 우리한테 찾아올줄 알았습니다.나야 제 형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전우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이 북만땅의 반일부대들중에서 과연 그 누구를 믿을수 있겠습니까?》

금시 울적해진 주보중의 기분을 펴주실셈으로 장군님께서는 아픈 가슴을 누르시고 쾌활하게 말씀하시였다.

《앞으로는 형세가 달라질겁니다.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에 의해 북만지구의 혁명정세는 곧 달라지게 될것이라고 나는 믿고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지요. 원정부대가 북만땅에 들어왔으니까요. 반일부대는 형세가 좋으면 우리에게 접근했다가 불리하면 물러서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번에야 우리한테 기울어졌다가 다시 돌아서지 못하게 해야지요. 주보중동지, 행군대오가 꽤 멀리 간것 같은데 좀 달려보지 않겠습니까?》

《예, 좀 달립시다.》

말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한동안 달려갔다. 이깔나무등판을 지나 골짜기에 내려서서 좁은 골막치기를 빠지자 눈우에 기다랗게 늘어선 행군대오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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