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2 장

8

 

하마카강우안에서 적의 주력을 견제하고 로령산맥의 동남지대를 따라 유유히 이동하시던 장군님께서는 연길중대를 중도에서 떨구어 하마카강상류로 진출하는 적의 기본집단을 계속 타격하게 하시고 왕청, 훈춘중대들만 데리고 로령산의 험지로 들어가시였다.

이도하자에서 주보중의 행방을 알고 그의 밀영을 다녀온 한흥권은 원정부대의 행군로정이 주보중의 밀영과 떨어져 하마카강의 좌안으로 점점 멀어져감에 따라 사못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애써 찾으시던 주보중의 밀영위치를 알게 되고 그들이 적의 포위에 빠질수 있다는것을 아시는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지금 주보중의 밀영으로 곧바로 들어가시지 않고 로령줄기를 따라 계속 행군해나가시는지 그 까닭을 바이 알수 없었던것이다.

이때 장군님께서는 한흥권을 통해 왕청중대의 군의를 찾으시더니 곧 이 지대의 물이 어떤가를 알아보라고 이르시였다.

한흥권이와 유격대군의는 영문을 알수 없어 한순간 의아한 눈길로 장군님을 쳐다보기만 하였다.

원정부대가 당분간 이 어방에 자리를 잡고 눌러앉게 되는것이 아닌가?

유격대군의는 겨울에도 얼지 않고 솟아오르는 샘물웅뎅이를 찾아내였는데 병자들의 치료에 효과가 좋은 량수질이였다.

유격대군의의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친히 물맛을 보시고 한흥권에게도 물맛을 보라고 이르시더니 훈춘중대장 백선일을 가까이 부르시였다.

《동무는 여기다 래일아침까지 귀틀집을 서너채 지어놓아야겠소. 생나무를 찍지 말고 강대를 찍어다 탐탐하게 짓도록 하오. 두어채는 크게 짓고 한채정도는 지휘처로 쓸수 있게 자그마하게 지어놓으면 되겠소. 집안구조는 후방병원 귀틀막처럼 꾸리시오. 군의동무는 여기에 남아서 부상병들의 치료에 적합하게 방안구조를 만들도록 엄격히 요구하오. 얼마동안은 동무가 여기서 후방병원 원장노릇을 해야 할는지도 모르겠소.》

장군님께서는 마침내 한흥권중대에서 한개 소대만 데리고 주보중의 밀영으로 향하시였다. 김택근소대장이 길안내를 하고 한흥권중대장이 장군님을 호위하였다.

장군님께서 주보중의 밀영에 도착하신것은 해질녘이였다. 언제 밀영에 들어가신다는 통지가 없이 갑자기 강줄기를 타고 내려가시다가 등판에 오르신 장군님이시였지만 그 순간에 골안쪽에서는 쇠쪼각을 두드려대는 소리가 챙챙하게 울리고 여러 사람이 떠들썩 고아대는 소리가 일어나더니 뒤이어 등판 저쪽에서 말탄 두사람이 나는듯이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누런 군복을 입고 검정색 가라말을 탄 사람과 커다란 털조끼를 껴입고 아라비야산 붉은 말을 탄 사람이였다. 그들은 주보중이와 그의 참모장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옆구리에 가볍게 두손을 올리시고 등판을 바라보시였다.

밖에서는 여기에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할만큼 깊은 산중인데 하마카강기슭으로 스무가호 남짓할 귀틀막들이 서있고 눈덮인 등판우에 불타다 남은 등걸들이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봄이 되면 여기에 감자나 귀밀 같은것을 심으려고 근거지 사람들이 새로 화전을 일군 모양이였다.

하마카강기슭의 허름한 집들은 류벌목재판 인부들의 가옥같고 그옆으로 등판에 치우쳐 너렁청하게 지은 세채의 새 귀틀막안으로는 총멘 사람들이 들락날락하였다. 그것은 분명 유격대병실일것이였다. 병실앞으로 휘우듬히 구부러져 강으로 내려가는 길섶에 연자방아간이 있는데 거기서는 아낙네들과 유격대원들이 떠들썩 고아대고있었다.

사람들은 연자방아간모퉁이를 가로질러 등판의 눈을 찍어날리며 달려오는 두필의 말을 바라보며 저마끔 큰소리로 야단법석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발걸음을 늦추시고 쏜살같이 질주해오는 두필의 말에 눈길을 주시였다.

말과 사람들의 사이는 일순간 아득히 멀어지더니 말들은 벌써 요란하게 자갈을 씹어대면서 각일각 눈앞으로 다가왔다. 털가죽등거리앞자락을 헤쳐놓고 두발로 말배때기를 세차게 박아모는 얼굴이 시커먼 사람은 주보중이였다. 그의 허벅다리아래로 드리운 싸창은 쉼없이 공중뜀을 하고 불편한 한쪽다리를 받쳐주려고 왼손에 움켜잡은 회나무지팽이는 군도처럼 안장밑으로 드리워있었다.

어느덧 장군님앞에 이른 주보중은 성급히 말고삐를 나꿔채고 등자에서 발을 뽑으며 눈우에 뛰여내렸다.

《주보중동지… 그동안 불편한 몸으로 얼마나 수고가 많았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주보중의 몸을 받들어세우시고 그의 어깨를 힘껏 안아 포옹하시면서 격정에 넘치는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기어이 기어이 오셨구려. 이게 도대체 얼마만입니까?》

주보중은 숨가삐 더운 숨을 몰아쉬면서 너펄거리는 털모자의 귀덮개를 장군님의 군모에 비볐다.

《열한달만이지요. 지난 정초에 우리한테 얼핏 들리지 않았습니까?》

《옳습니다. 그때 내가 녕안유격대의 골간으로 될 동무들을 데리고 김일성동지께 들렸지요. 김일성동지는 우리를 굉장한 귀빈으로 환영해주셨더랬는데 우리는 아무 갖춤새도 없는 빈손으로 장군님을 맞이하게 되는군요. 이런 례의범절이 세상에 있을가요?》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나는 주보중동지를 이렇게 눈앞에 바라보는것만으로도 더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장군님께서는 주보중의 어깨를 잡고 가볍게 흔들어 억제할수 없는 기쁨을 나타내시였다. 주보중은 갑자기 큰소리를 내여 껄껄 웃었다.

김일성동지의 심정이야 내가 잘 알지요. 그러나 벗들간의 우정도 일방적이 되여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도 뭔가 좀 하려고 했지요. 저앞의 근거지초입에서 군대와 인민이 김일성동지를 맞이하려고 새벽부터 기다리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환영군중이 기다리는 앞길로 들어오시지 않고 왕청같이 뒤쪽에서 나타나셨는가요.

혹시 길안내를 나선 동무들이 방향을 삭갈린게 아닙니까?》

《아니지요. 산세에 얼마나 밝은 동무들이라고 방향을 혼돈하겠습니까. 원정부대는 하마카강의 하류에 있지 않고 상류에 있습니다.》

《상류에요?》

주보중은 놀라와하였다.

《그럴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거기 대해선 차차 설명해드리지요.》

장군님께서는 주보중에게 긴 설명을 하실 사이가 없었다. 뒤따라온 유격대원들과 근거지인민들이 장군님을 에워싸고 술렁대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군모를 벗으시고 유격대와 근거지인민들앞에 목례를 해보이시면서 짤막하게나마 상봉의 인사말씀을 감동깊게 하시였다.

인민들과 유격대원들은 장군님께서 주보중이와 함께 걸으시는 좌우에 가득 늘어서서 류벌목재판 인부들의 집앞까지 따라갔다.

주보중은 지휘부병실에 장군님을 모시였다. 비록 통나무귀틀집이긴 하였으나 껍질을 벗긴 통나무로 벽을 쌓고 창문에는 하얀 창호지를 발랐으며 채광이 잘 드는 벽가에는 몇층으로 덕대를 매고 각종 서적들을 비치하였다. 한절반은 정치서적들이고 나머지는 력사, 지리, 문예서적들인데 그중에는 한방치료에 관한 의학서적도 있었다.

주보중은 전이나 다름없이 책읽기를 즐기고 다방면적인 지식을 쌓기에 열중하고있는 사람이 틀림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숯불이 이글거리는 화독앞에 주보중과 마주앉으시였다. 녕안읍에서 주보중을 따라왔다는 중년의 의사와 귀인성스레 생긴 간호원이 장군님앞에 인사를 드리고 상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주보중의 참모장이 방안을 들락날락하면서 일처리를 하였다. 간호원이 상을 받쳐들고 올라오자 참모장이 정중히 다가와 장군님과 주보중앞에 배갈을 한잔씩 부어드렸다.

주보중은 추위에 얼어든 몸도 녹일겸 상봉의 뜻으로 배갈(소주)을 한잔 드시자고 하였다. 그리고 잔을 들어 장군님앞에 권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잔을 드시였다. 주보중의 권유가 하도 지극하여 사양않고 한잔 드시였는데 금시 가슴속이 화끈화끈해지시였다.

《내가 중국동지들과 혁명을 같이하면서 가끔 배갈맛을 보았는데 주보중동지와 한자리에 마주앉아 배갈을 들어보기는 재작년 라자구에서 열렀던 〈반일병사위원회〉회의 뒤끝이였던가봅니다.》

《라자구!…》

주보중은 금시 들려던 잔을 상우에 내려놓고 깊은 생각에 싸여있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참으로 잊지 못할 땅이지요. 반일부대와의 통일전선을 위해 공산주의자들이 흘린 피와 땀이 그 땅에 눈물겹게 찍혀있지요. 나는 그때 회의성과를 위해 국제공산당의 임무를 받고 그곳에 와있었지만 실은 김일성동지의 활약이 컸지요. 내가 김일성동지에 대해 깊은 리해를 가지기 시작한것은 아마 그때부터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것입니다. 김일성장군의 명성은 이미부터 알고있었으나 혁명동지로 깊이 사귀기 시작한것은 분명 그무렵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김일성동지의 주동적인 역할에 의해 지난해 봄에 라자구에는 〈반일부대련합판사처〉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건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공동의 투쟁에 의해 이루어진 산물입니다. 우리는 그때 많은 혁명가들을 구국군들과의 통일전선을 위해 파견했지요.》

《예, 참 감회가 깊습니다. 오늘은 할 이야기도 많고 려로의 피로도 푸셔야겠으니 마음놓고 드십시오.》

주보중은 안주도 집지 않고 독한 배갈을 들이켰다. 장군님께서는 주보중을 만류하시였다.

《그러지 마십시오. 오늘은 할일이 많습니다. 주보중동지의 밀영은 이미 적들에게 로출된 지점이니 사면으로 포위를 당할수 있습니다. 적이 우리를 포위하기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보중은 약간 놀란듯한 기색을 하고 장군님을 지켜보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침착하게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우리 원정부대가 횡도하자부근마을에서 적의 큰 부대를 때려눕힌지 열흘가까이 되였습니다. 아마 지금쯤 관동군사령부에는 동만유격대가 북만에 나타나 사방에서 〈토벌대〉를 때리고있다는 보고가 뻔질나게 올라가고있을겁니다. 횡도하자전투에 이어서 이도하자부근에서도 적을 달고다니며 답새겼고 동만유격근거지를 〈토벌〉하러 로야령을 넘어가던 마창〈토벌대〉놈들이 돌따서서 횡도하자쪽으로 달려오는것을 매복습격으로 몽땅 녹여냈습니다.

이러고보면 관동군사령부에서는 비상조치가 취해지지 않을수 없습니다. 요즘 우리를 따라다닌놈들이 그 비상조치의 선견대들이라고 보아집니다. 좀더 큰 부대들이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를 타승하겠다고 맘먹고 나선 부대들이 뒤에 잇달아있을지도 모릅니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사태의 흐름은 그렇게밖에 될수 없는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당장 어디로 떠난단말입니까?》

주보중은 어지간히 난감해하였다.

《우리가 주보중동지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밀영을 하나 꾸리고있습니다. 성급한 손질로 귀틀집 몇채를 짓고있지요. 수질도 괜찮은 곳입니다. 우선 가급적으로 속히 그곳에 옮겨앉아 장차 우리의 방략을 토의하는게 어떻습니까?》

《아니, 밀영을 꾸리고있다니요?》

주보중은 크게 놀라 어안이 벙벙해지는 가운데서도 밀영을 옮기는 경우에 수고를 끼쳐드리게 될 일까지 머리에 그려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장군님께서는 벗어놓으셨던 솜저고리를 입으시고 간호원이 말리워놓은 신을 신으시였다.

김일성동지, 아무리 그렇기로 이렇게 급작스레 서두르는 법이 있습니까?》

주보중은 상머리에서 일어설념을 못하고 장군님을 지켜보았다.

《내가 나가서 지휘원들의 회의를 소집할동안만이라도 여기서 쉬십시오. 이렇게야 허술히 우리의 상봉을 지나보낼수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너무 서둔다고 섭섭히 생각지 마십시오. 시간은 의리를 존중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주보중동지, 지금은 서둘러야 합니다. 몇시간후에는 행군대오가 밀영을 벗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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