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2 장

5

 

마차는 원채에 토방이 달리고 사랑채가 《ㄱ》자로 꺾어져붙은 집앞에서 멎어섰다. 부락에서는 비교적 큰 집중의 하나였다. 이 집의 사랑채에는 녀대원들과 김택근소대에서 몸이 약한 동무들이 들어있었다.

하연성은 마차에 탄 사람들더러 방안에 들어가 좀 기다리라고 이르고 사랑채에 들어가 그때까지 선전문을 쓰느라고 졸음과 싸우고있는 차일진에게 마당에 나와 마차를 지켜보라고 하였다.

사랑채아궁에다 불을 지피려고 밖에 나가 나무를 안고 들어오던 강진옥이가 오성숙의 귀에 대고 살그머니 차일진이가 마당을 돌아가고있다고 알려주었다.

《이 밤중에 마당은 왜 돌아간다는거예요?》

오성숙은 부엌봉당을 쓸고있던 비자루를 삼태기에 기대놓고 강진옥의 손을 꼭 잡았다. 무슨 영문인지 좀 자상히 알아두어야겠다고 생각한것이다.

강진옥은 불이 사그라져가는 아궁에다 장작가지를 지피면서 한마디씩 일러주었다.

《아까 주인집 외양간모통이에 풍에 씌운 어떤 호화마차 한대가 서있는걸 우리 보지 않았어요. 그 마차가 글쎄 밤중에 부락을 가만히 빠져나가다가 소대장동무에게 단속이 되였다나봐요. 마차에는 이 집의 친척되는 웬 로인과 딸이 타고있는데 소대장동무가 그들의 신분을 확인해야겠다고 하면서 이리로 데리고 들어왔다구 하지 않아요. 소대장동지가 사령부에 소식을 알리러 가면서 차일진동무에게 마차를 살펴보라고 과업을 주었다나봐요.》

《그러니 마차가 마당에 와있어요?》

《바로 외양간모퉁이에 와있어요.》

성숙은 다시 비자루를 들고 봉당을 마저 쓸어 삼태기에 담아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차거운 달빛이 환하게 비치고있는 외양간모퉁이에 말을 메운채로 마차가 서있고 처마밑으로 한사람이 어슬렁거리며 돌아가고있었다.

밤새 선전문을 쓰느라고 남 다 자는 방안에 혼자 앉아 졸음과 씨름을 하던 차일진이가 마차를 지키고있다고 생각하자 성숙은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 저려났다.

성숙은 삼태기에 담은 허접쓰레기를 재간에 던져버리고나서 빈 삼태기를 든채 한참동안이나 재간안 어둠속에서 차일진의 거동을 지켜보았다. 귀덮개모자를 턱밑에 드리우고 어깨를 웅크린 차일진이가 마차주위를 돌아가면서 이따금 풍천을 툭툭 건드려보기도 하고 발길로 마차바퀴를 퉁퉁 울려보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마차의 부목에 매여놓은 말이 놀라서 발을 구르며 투레질을 하였다.

왜 공손히 서있지 못하고 마차바퀴를 건드리면서 말을 놀래울가. 혹시 꺼벅꺼벅 졸리는 잠을 쫓느라고 저러는것이 아닐가? 분명 그런것 같다.

차일진은 마차앞에 궁상스럽게 쭈그리고 앉았다. 담배를 피우려는 모양인가?

말이 차일진의 잔등에 주둥이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고있었다. 성숙은 간혹 행군에 지친 군마들이 불무지곁으로 다가와 유격대원들의 담배연기냄새를 맡고있는것을 본 생각이 들었다.

한참동안이나 차일진의 머리우에 주둥이를 드리우고있던 말이 갑자기 후닥닥 앞발을 구르며 옆으로 물러났다. 몰려드는 잠을 참지 못하여 졸고있던 차일진이가 뒤로 넘어가려는 순간 팔을 넌떡 쳐들었다가 말의 벌름거리는 코구멍을 갈겨놓은것이다.

말은 불안하게 투레질을 하고 차일진은 후닥닥 자리에서 뛰여일어났다.

그리고 사방을 두릿두릿 살폈다. 마당안에는 푸른 달빛만이 가득히 차있고 사위는 쥐죽은듯 고요하였다.

차일진은 다시금 마차바퀴에 기대여앉더니 총을 두무릎사이에 끼고 건들건들 졸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좋담.)

성숙은 안타까와 안절부절 못하였다.

성숙은 삼태기를 터는체하면서 언땅에 탕탕 멨다치며 소란을 떨었다. 차일진은 깊은 잠이 들지 않았던지 깜짝 놀라 마차바퀴를 짚고 뛰여일어났다.

성숙은 마차옆을 지나갔다. 차일진은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성숙을 쳐다보는 기미였다.

사랑채 부엌으로 들어온 성숙은 오래도록 아궁앞에 앉아있었다. 녀대원들은 어느새 잠에 빠져있었다. 오성숙을 기다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있던 강진옥이가 약간 갈린듯한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성숙동무, 그만 좀 쉬자요.》

《예, 먼저 쉬여요. 나 좀 앉아있다가 잘래요 》

뒤이어 약간 코가 멘듯한 강진옥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가마전을 스치며 울려왔다.

동무들이 달콤하게 잠자는 소리를 들으니 마차바퀴에 기대여앉아 졸고있던 차일진의 모습이 눈앞에 또렷이 떠오르며 잠을 쫓느라고 마차주위를 서성대고있을 그의 모양이 새록새록 밟혔다.

성숙은 불이 거의 사위여가는 아궁앞을 삼태기로 막아놓고 소리없이 일어났다. 차라리 재간모퉁이에 나가 서서 함께 추위에 떨며 실수가 없도록 망을 보는것이 한결 마음이 편할것 같았다. 이대로는 속이 조마조마하여 견뎌배길수 없었다.

오성숙은 부엌문을 소리없이 밀고 밖으로 나갔다. 달은 좀전보다 서켠으로 어지간히 기울어져 원채처마의 그림자가 마당 한복판에까지 우중충하게 드리워있었다.

마차의 한쪽 모서리는 그림자속에 파묻히고 다른 한쪽편만이 달빛에 환히 드러나있었는데 바람이 부는데 따라 풍막의 옆구리에 붙여놓은 유리가 펀득거렸다.

한참동안 성숙이는 마차주위를 긴장해서 지켜보았다. 어쩐 일인지 차일진이가 보이지 않는다. 저편 그늘밑에 서있는것일가?… 성숙은 그렇게 생각하고 초조히 기다렸으나 차일진의 모양은 어디에도 얼씬하지 않았다.

성숙은 조용조용 발을 옮겨 마차옆으로 다가갔다.

문득 어디선지 코고는 소리가 울려왔다. 성숙은 깜짝 놀라 멎어 섰다. 차일진동무가 어디서 자고있는게 아닐가?… 그러나 다음순간 그 코고는 소리는 사랑채 웃방에서 들리는 소리라는것을 알았다. 성숙은 모두었던 숨을 후- 내쉬였다. 차일진의 허둥거리는 모양을 보는것이 처녀에게는 더없는 안타까움이였다.

그런데 차일진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성숙은 재간모퉁이쪽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살피다가 석마간모퉁이를 돌아갔다. 거기도 차일진은 없다. 처녀는 소리를 쳐서 그를 찾아보고싶었으나 그럴수도 없었다. 석마간모퉁이를 돌고 외양간문앞으로 다가가는데 짚검불속에서 부시럭거리며 차일진이 일어섰다.

《아이참, 여기서 졸고있는게 아니예요?》

성숙은 안타깝고도 얄궂은 생각이 들었다.

차일진은 깜짝 놀란듯한 모양으로 우두머니 서있더니 성숙에게로 다가왔다. 차일진에게서 등사잉크냄새가 확 하고 풍겼다. 그 순간 성숙은 차일진이가 밤새 선전문을 써서 등사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졸릴수밖에 없는 일이다. 행군대렬에도 겨우 묻어선 사람이 밤을 밝히며 등사까지 하려니 얼마나 곤할것인가?

《등사를 하셨댔어요?》

성숙은 별로 측은한 목소리로 물었다.

차일진은 말이 없었다.

《등사를 하시면서 왜 저를 찾지 않았어요.》

《그런 말 마오. 행군때 짐이 된것만도 큰일인데. 어서 들어가 쉬기나 하오.》

차일진은 차일진이대로 성숙이를 위해주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일없어요. 제가 동무해드려요. 졸릴 때는 옆에 동무가 있으면 나아요.》

《그럼 좀 서있소. 졸음이 쏟아져 못견디겠군.》

차일진은 마당둘레를 한바퀴 돌았다. 졸음은 물러가는게 아니라 점점 망돌같이 둔덕에 매달린다. 그는 걸으면서도 무릎이 꺾이여 몇번이나 엎어질번하였다. 그러다가 외양간 짚검불속에 저도모르게 주저앉고말았다. 그러자 금시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성숙이는 달려가 깨우려다 조금이라도 피곤을 풀게 하고싶었다.

차일진의 코고는 소리는 참으로 평화롭게 뜰안에 울리고있었다. 바람이 불면 차일진의 머리밑에서는 짚검불이 우시시 떨린다. 처마밑에서도 짚갈비 날리는 소리가 들리고 토방아래에서는 쥐가 바스락거리고있었다.

밤은 얼마나 깊었을가? …

성숙은 문득 추위를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눈뜨고 서있는 사람이 이렇게 추위에 떨릴 때 맥을 놓고 자는 사람의 몸은 얼마나 얼어들었을가?

성숙은 바삐 총을 내려놓고 솜저고리를 벗어 차일진의 몸을 덮어주었다.

군복바람으로 서자 온몸으로 칼날같은 추위가 찌르고들었다. 성숙은 선자리에서 발을 옮겨디디며 저도 모르게 이발을 딱딱 마주쪼았다. 밤기온은 점점 내려갔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몇번이나 부엌문을 열고 밖의 동정을 살폈다.

오성숙은 문득 사립문을 열고 뜰안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았다. 뜰안이 넓지 않았으므로 성숙은 곧 다가오는 사람들과 가까이 마주서게 되였다.

《성숙동무가 웬일이요? 이 추운데 밖엔 무엇하러 나와있소?》

한흥권중대장이 저윽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성숙은 깜짝 놀라 몸을 꼿꼿이 가누었다. 한흥권의 옆에 서계신분은 장군님이 아니신가?… 장군님께서는 약간 고개를 기웃하시고 성숙을 바라보실뿐 말씀이 없으시였다.

외양간문앞에서는 아직도 차일진이가 드렁드렁 코를 골고있었다. 성숙은 쥐구멍에라도 기여들고싶었다.

《군복바람으로 몸이 꽁꽁 얼었군.》

장군님께서는 성숙의 어깨를 만져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성숙은 자기들의 실수를 장군님앞에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입술만 깨물었다.

한흥권의 손에서 잠을 깬 차일진이 벌떡 뛰여일어나 장군님앞으로 뛰여왔다.

사령관동지…

차일진은 고개를 숙이고 뒤말을 잇지 못하였다.

《됐소. 하연성소대장동무가 마차를 살펴볼 과업을 주었다면서?… 수고했소. 그만들 돌아가 쉬오. 차일진동무가 넘어지지 않고 힘든 행군을 이어온것만도 대단한 일인데 밤새 자지 않고 등사를 밀기까지 했다니 얼마나 피곤하겠소?》

하연성소대장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신 모양이다. 그러나 성숙은 그런것을 생각할사이가 없었다. 성숙은 외양간문앞에 떨어져있는 솜저고리를 주울 생각조차 못하고 사랑채로 뛰여들었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부엌문을 여시고 봉당에 들어서시였다.

백송로와 현경이가 부엌아궁앞에 쭈그리고앉았다가 일어났다. 그들은 방에 올라갈 생각조차 못하고 부엌에 들어선채로 백송로는 도끼모태를 깔고 현경은 몽당비를 깔고앉아 가슴을 조이고있었던것이다.

《저희들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밤중에 유격대를 피하여 부락을 빠져나가다가 보초에게 잡혔으니 의심을 받게 된줄로 압니다. 그렇지만 이 늙은것과 딸애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백송로는 머리에서 털벙거지를 벗어 가슴에 품어안으며 허리를 굽혔다.

《로인님, 이러시지 마십시오. 우리 동무들의 말을 들어보면 로인님의 마차가 보초소를 피해가기에 단속했다고 하는데 량해해주셔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겸허하게 모자를 벗어쥐고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시였다. 백송로는 갑작스레 돌변해진 사태앞에서 처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마음을 다잡지 못하였다.

현경이와 안주인은 아직도 두손을 마주잡고 가슴을 후들후들 떨며 서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한 음성으로 한마디 더 건네시였다.

《제가 로인님께서 신상이 편치 않다고 하시기에 유격대군의를 이리로 보내라고 했는데 혹시 군의의 도움이 소용되면 허물 말고 받도록 하십시오.》

《아, 아닙니다. 우리 딸애가 말말끝에 실수를 해서 그렇게 된것이지 실은 그저 바쁜 길을 떠나는 사람이였을뿐입니다.》

《그렀댔군요. 참말 다행입니다. 이 추운 동삼에 길을 떠나가지고 몸이 편찮기라도 하면 어찌겠습니까.》

백송로는 유격대군의에게 맥을 짚이면 모든게 들장이 나서 망신을 당할 생각에 할수없이 진상을 밝히였으나 장군님께서는 로인의 말을 진정으로 반갑게만 받아들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롱말조차 건네시였다.

《그러고보면 로인님께도 실수는 분명 있었던가봅니다. 공연히 의원소리를 안하셨더면 우리 동무들이 가던 길을 아주 돌아서게야 만들었겠습니까.》

장군님께서 웃으시자 백송로도 약간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웃음이 아니라 상대의 기분을 맞추느라 애쓰는 노력일뿐이였다.

《그런데 로인님께 부디 이 밤중에 떠나지 않으면 안될 급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니라면 아무 걱정 마시구 이밤을 푹 쉬고서 천천히 가십시오.》

《아닙니다. 시각을 다투는 바쁜 일이 있습지요.》

백송로는 한시바삐 떠나기를 희망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로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시였다. 못내 서운하시였다. 로인이 유격대를 믿지 못해 황황히 떠나려 한다는것을 어찌 눈치채지 못하랴. 그렇게도 안심을 시키고 마음을 눅잦혀도 이 로인에게는 소용이 없다. 도대체 이 로인은 무슨 연고로 유격대를 이다지도 두려워하게 되였는가? 보매 로인은 범박히 농사짓는 농군도 아니고 누구의 돈주머니를 노리고 달려드는 장사군도 아니였다. 학식있고 지체있고 세상물정도 가늠해보는듯한 조용한 눈매에는 한때의 풍운을 겪으며 늙고 시들어진 세파의 흔적도 남아있는것 같았다. 아직 채 사그러지지 않은 명상의 불꽃이 내심에 너울거리고있는듯한 이 로인이 험한 세상에 천진스럽고 귀여운 딸을 데리고 바삐 떠나려는 길은 어디란말인가?… 혹시 이 북만땅의 독립운동자들속에 명망있는 로인이 아닐가? …

《로인님께서 우리의 도움도 사양하시고 부디 이 밤길을 떠나시겠다면 막지는 않겠습니다. 아무쪼록 험한 길을 잘 살펴가십시오.》

장군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백송로는 떠날 차비를 서둘렀다. 차비라고 해야 별것이 없었다. 손에 벗어쥔 털벙거지를 머리에 눌러쓰고 헤쳐놓았던 외투자락을 여미고 부뚜막에 올려놓은 곰털토시를 찾아 팔목에 끼면 그만인것이였다.

백송로는 차비가 끝나자 딸을 앞세우고 밖으로 나갔다.

한흥권은 로인에게 사과의 말이라도 한마디 하려고 마차곁에 다가갔다. 그러나 언제 그렇게 할 사이가 없었다. 잡혔던손에서 놓여난 새처럼 일단 자유를 얻자 마차는 쏜살같이 행길로 미끄러져나갔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