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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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지생활을 오래 해보지 못한 차일진에게는 구운 노루고기가 실로 별맛이였다.

《맛들을 보니 어떻소?》

장군님, 이건 정말 산해진미에 비할수 없습니다. 구운 노루고기맛이 이렇게도 희한하다는걸 난생처음 알았습니다.》

차일진은 혀를 내둘렀다.

《구운 노루고기라고 다 맛이 이런게 아니요. 고기를 잘못 구우면 탄냄새가 나고 속살이 익지 않아 질긴데다 맛도 제대로 안나오. 고기를 이렇게 속살까지 익히면서 타지 않게 굽자면 이만저만한 공력이 드는게 아니요. 로인님의 정성에 정말 머리가 숙어지오. 동무들, 근거지인민들이 정성껏 꾸려보낸 이 음식들을 보면서 생각되는게 없소?》

장군님께서는 대원들을 둘러보시였다.

강진옥이가 선참 대답하였다.

《근거지에는 식량이 부족합니다. 한창 조가을철에도 우리는 조죽을 쑤어먹었고 콩마당질을 하면서도 콩죽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원정부대를 위해서는 기장찰떡을 치고 팥을 둔 보리밥을 짓고 수수지짐을 부치고 귀밀송편을 빚었습니다. 이 정성을 생각하면 눈물이나 견딜수 없습니다.》

하연성소대에서 채북아바이라고 불리우는 나이든 대원이 입을 열었다.

《저의 배낭에서 나온 열마리의 북어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주인집 아버님이 원정부대가 떠난다는 말을 듣고 오소리 한마리를 잡아가지고 백초구에 나가 북어 열마리를 구해왔습니다. 주인집에는 해산할 며느리가 있는데 북어냄새를 맡고 너무도 북어장이 먹고싶다고 하여 로인이 북어대가리를 하나 잘라 북어장을 지져주었습니다. 그래서 한마리의 북어에는 대가리가 없습니다. 우리 원정대의 승리를 바라는 인민들의 마음은 이렇게 지극합니다.》

대원들은 여기저기서 근거지인민들이 북만원정부대를 얼마나 뜨겁게 지지성원하고있는가에 대하여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하였다.

《바로 그렇소. 우리 원정부대의 승리를 바라는 인민들의 심정은 이토록 뜨거운거요. 인민들은 우리가 북만땅에 진출하여 큰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동만의 유격구들을 노리고 달려드는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혁명의 난국을 바로잡아나갈것을 진심으로 바라고있소. 말하자면 근거지인민들이 우리가 북만땅으로 원정을 가는 목적을 잘 알고 진정으로 원정부대를 지지성원하고있단말이요. 여기 내놓인 음식들에는 근거지인민들의 이러한 심정이 뜨겁게 어려있소.》

장군님께서는 따뜻한 눈길로 대원들을 둘러보시였다. 근거지인민들의 말없는 지지와 후더운 정성을 생각하며 음식을 내려다보는 대원들의 눈은 어느덧 젖어있었다.

장군님의 눈언저리도 붉어지시였다. 생각하면 어떠한 곡절과 수난을 거쳐 유격대가 근거지를 떠나 대륙의 광활한 지대에로 원정을 떠나게 되였는지? 그 하나하나의 사연을 더듬는다는것은 실로 눈물겨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감회깊은 표정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난 동기방어전투때만 해도 근거지인민들이 어떠했었소. 그때만해도 오늘처럼 성장하지는 못했었지. … 우리가 놈들의 근거지〈토벌〉공세에 대처해서 방어만 할것이 아니라 적의 배후를 들이쳐 혼란에 빠뜨리고 전투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근거지밖으로 대담하게 진출하려고 했을 때 유격대가 떠나면 근거지는 어떻게 하느냐고 우리더러 못떠나게 하던 인민들이였소. 여기에 발을 맞추어 혁명정세에 암둔한 사람들이 근거지방어만을 주장하면서 유격구주변에 장성까지 쌓아야 한다고 들고나섰소.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마치 인민들의 지향을 대변하고있기나 한듯이 떠들면서 우리를 향해 유격구를 적들에게 내여맡기려 한다는 험담까지 퍼부었댔소.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저항을 박차고 두만강 연안 량수천자 일대에 진출하여 적의 깊은 후방을 답새겼으며 량수천자전투에 뒤이어 북봉오동과 사동을 치고 그후에는 대두천시가를 들이쳐서 적의 〈토벌〉본거지를 완전히 제압해버렸소. 이리하여 유격근거지를 3개월간이나 겹겹이 포위하고 〈토벌〉에 미쳐날뛰던놈들은 저들의 소굴로 도망쳐가고 90일간에 걸치는 치렬한 동기방어전투는 승리로 결속되였소. 여기서 우리가 얻은 경험은 무엇이요? 그것은 적들이 동만의 유격구들을 압살하려고 그 어느때보다도 미쳐날뛰고있는 조건에서 유격구에 앉아 달려드는 적을 맞받아싸우기만 할것이 아니라 대담하게 적후방으로 진출하여 놈들의 본거지들을 답새기며 점차적으로는 제한된 유격구의 범위를 벗어나 보다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하여 대규모적인 유격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그것이요. 유격구에 앉아 달려드는 적을 치기만 할것이 아니라 유격구밖으로, 적후방으로 진격해들어가야 하며 그래야 혁명력량을 보존하고 혁명운동을 앙양시킬수 있다는것을 이제는 근거지의 평범한 인민들도 알게 되였소. 그러기때문에 우리가 동만유격구를 떠나 북만으로 가고있는것을 인민들이 환영하고있으며 성심성의를 다해 길량식을 준비해주는것이요. 안그렇소? 오성숙동무, 원정부대를 대표해서 어디 한번 자신있는 대답을 해보오.》

오성숙은 자리에서 사뿐 일어나 군복앞자락을 꼭 여며잡고 챙챙하게 맑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장군님, 바로 그렇습니다. 지난 동기방어전투때는 정말이지 근거지인민들이 유격대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놓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유격구들에서는 인민들의 간청을 이기지 못해 유격구에 앉아있다가 가슴아픈 희생을 본 실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와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나없이 유격구를 보위하고 혁명을 보위하기 위해서는 유격구밖으로 나가 적의 본거지를 답새겨야 한다는걸 알고있습니다. 그러니 근거지인민들이 성의를 다해 원정부대를 지지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아주 대답을 잘했소. 아주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잘했거던. 만점이요!》

장군님께서는 손수 두손을 높이 드시고 박수를 쳐주시였다. 그러자 와르르 하고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오성숙은 행복스럽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하여 얼굴을 활짝 붉히며 진옥의 등뒤에 숨어버렸다.

장군님의 눈가에는 친근하고도 자애로운 미소가 피여올랐다.

박수소리가 점차 멎고 사람들의 소요가 가라앉자 장군님께서는 진중하신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으로 끝난게 아니요. 보다 복잡한 문제는 앞에 있소. 지난 90일동안의 피어린 동기방어전투의 교훈을 거쳐 유격구사수가 아니라 제한된 유격구의 범위를 벗어나 보다 광활한 지대에 진출하여 대규모적인 유격전을 전개해야 한다는것이 명백해진 지금 그것을 맡아해낼만한 우리의 력량이 준비되여있는가, 충분히 가능한가를 실지 투쟁에서 검증하는 그것이요. 우리가 이번에 북만원정을 통해서 유격대가 광활한 지대에 진출하여 적을 치는것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다는것이 다시한번 증명되면 우리는 지체없이 동만의 고정된 유격구의 범위를 벗어나 조선과 만주의 넓은 지역으로 진출하게 될것이요. 말하자면 우리가 조국으로 가는 력사적위업을 수행하게 되오. 이러고보면 결국 동무들은 조국으로 가는 진군길을 닦고있는셈이며 우리가 가고있는 이 북만원정길이 곧 조국진군의 길과 잇닿아있다고 당당히 말할수 있소. 어떻소. 력사앞에 지닌 이 장엄한 위업을 동무들이 감당해낼수 있겠소?…》

장군님께서는 믿음과 사랑이 넘친 자애로운 표정으로 대원들을 굽어보시였다. 한순간 무겁고도 장엄한 침묵이 사람들을 에워쌌다.

불무지두리에는 김택근소대와 하연성소대만이 아니라 이웃소대, 이웃중대의 대원들까지 밀려와 성을 쌓고있었다. 수백명 유격대원들이 빽빽이 둘러서있었으나 불무지에서 나무가지들이 타는 소리만이 고요히 울리고있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이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힘든 행군을 이어가고있는 이 북만원정길이 하나의 원정으로 끝나지 않고 혁명의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력사의 전환속에 놓여있다는것을 누구나없이 생각하고있었다.

이 순간의 차일진의 심정은 더할나위없이 착잡하였다.

팔도하자의 고개턱을 치달아오르는데도 힘이 딸려 성숙이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자기가 혁명의 준엄한 의무를 걸머지고 력사의 행정에 자국을 남길수 있단말인가? …

문득 차일진의 그 마음을 헤아려보신듯 장군님께서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너무 어마어마한 질문이여서 대답하기가 어려운게로구만. 그러나 실상 따지고보면 그렇지 않소. 우리는 지금까지 간고하고도 시련에 찬 혁명의 길을 줄곧 걸어왔소. 그리고 이 과정에 우리의 혁명이 오늘같은 성장을 보게 되였는데 그처럼 간고하고 준엄한 시련의 길을 굽힘없이 꿋꿋이 걸어온게 어떤 사람들이였소? 그것은 동무들과 같은 보통사람들, 보통청년들이요. 예로부터 인민의 력사는 어떤 걸출한 영웅들에 의해 창조된것이 아니라 수많은 보통사람들, 력사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를 깊이 자각하고있는 소박한 인민영웅들에 의해 창조된것이요.

우리가 아닌 그 어떤 사람들이 우리앞에 조국으로 가는 진군길을 열어놓을수 있으며 강도 일본제국주의를 때려부시고 해방된 조국으로 손잡아 이끌어줄수 있겠는가? 없소. 결코 그렇게는 될수 없단말이요. 우리는 어떠한 시련과 난관을 박차고라도 조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하며 우리의 손으로 짓밟힌 조국을 광복해야 하오. 원정대의 동무들, 나는 이자리에 있는 모든 동무들이 력사앞에 지닌 자기의 사명을 똑똑히 깨닫고 이번 북만원정을 승리적으로 결속하리라고 믿는데 어떻소. 자신들이 있습니까?》

자신있습니다.》

수림을 진감하는듯한 고함소리가 언 대기를 가르고 산발을 찌렁찌렁 울렸다. 그속에는 자기도 모르게 터져나간 차일진의 목소리도 당당히 섞여있었다.

차일진은 눈굽이 뜨거워졌다. 결국 혁명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위대한 력사적 사변이 이렇게 창조되는구나 하는 격동적인 생각과 더불어 이 거대한 력사의 행정이 다름아닌 자기들과 같은 보통사람들에 의해 이룩되리라는 놀라운 생각이 떠올라 목이 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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