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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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정대에 휴식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려퍼졌다.

한흥권중대장은 소대단위로 불무지들을 피우고 저녁식사들을 지으라고 명령하였다. 대원들은 나무숲속으로 흩어졌다. 이어 여기저기서 나무가지를 잡아꺾는 소리가 요란하게 일어났다.

김택근은 대원들이 벗어놓고 간 배낭들을 깐깐히 살피면서 배낭끈도 손질하고 흐트러진 짐을 고쳐 꾸리기도 하였다.

김택근소대의 바로 옆에서는 하연성소대가 불을 피우고있었다. 김택근의 소대에서는 한창 나무를 끌어오느라 야단인데 하연성소대는 벌써 큰 불무지를 피워올리고있었다. 언제보나 재빠르고 규률있고 절도있는 소대였다.

《저 온성사람이 또 선수를 짚는군.》

김택근은 혀를 끌끌 차면서 불무지주위를 돌아가고있는 하연성소대장을 치떠보았다. 온성사람이란 바로 그 하연성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온성에서 태여나 온성일판에서 혁명바람에 나돌아가다가 근거지에 들어왔다고 해서 김택근은 하연성을 온성사람이라고 부르는것이다. 그들은 나이도 동갑이고 혁명경력이며 지식수준이며가 다 어슷비슷하였다. 그래서 어떤 정치문제를 두고 두사람사이에 론쟁이 벌어지면 며칠을 두고 계속되는데 이럴 때면 그들은 아는 지식이란 지식은 다 동원하고 나중에는 근간의 어느 신문귀퉁이에서 본 기사까지 끄집어내여 상대방을 누르려고 애를 썼다. 그렇지만 나중에 판을 깨고보면 이기는쪽도 지는쪽도 없이 무승부로 끝나군 하였다. 이를테면 맥이 진해서 주저앉고마는것이다.

그 하연성이가 김택근소대를 앞질러 불무지를 피워올렸다.

김택근이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였지만 못본척하고 버려둘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하연성이가 어떻게 김택근의 약한 고리를 눈치채고 이쪽으로 슬근슬근 걸어왔다. 그러더니 불무지에서 국을 끓이고있는 녀대원들을 향해 슬쩍 말을 비치는것이였다.

《진옥동무, 공연히 여기서 고역을 치르지 말구 우리 소대에 넘어오라구요. 우리 동무들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호강을 하게 해드리겠다구 야단들이라니까.》

녀대원들이 깔깔거리며 웃어대기 시작하였다. 김택근은 의미있게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거 말을 듣고보니 군침이 도는군. 하연성소대장이 상당히 계교가 늘었단말야. 정치수준만 는줄 알았더니 계교두 늘었거든.》

《계교라니, 그런 소리 말라구. 나는 진심을 말하고있는거라니까.》

《저것 보지. 얼굴표정조차 얼마나 진실한가? 그 껌벅거리는 눈짓만 아니라면 진옥동무네가 영낙없이 속았지. 여, 동무들, 하연성소대장이 불무지를 먼저 피워놓구 녀동무들을 꼬여가자구 소란을 떠는데 빨리 나무들을 끌어와야겠소.》

나무숲속에서 웃음소리가 터져올랐다. 대원들은 나무들을 끌고 떠들며 소란을 피우며 달음박질쳐오기 시작하였다.

차일진은 아까부터 흔들거리는 나무가지를 움켜잡고 안깐힘을 쓰고있었다. 눈속에 박힌 뿌리목이 금시 뽑혀나올듯이 건둥건둥하는데 쉽사리 뽑혀지지 않았다. 차일진은 두발을 벋디디고 다시한번 힘을 주었다. 나무가지들은 흔들흔들 춤을 추면서 뿌적뿌적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작은 썩정가지들을 우수수 떨어뜨리기도 하였다.

그때 등뒤에서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차일진은 눈우에 거지반 쓰러뜨린 나무를 한발로 내리누르고 고개를 돌렸다.

장군님께서 등뒤에 와계시였다. 깜짝 놀란 차일진은 얼결에 힘껏 밟았던 나무등어리를 놓고 몸을 꼿꼿이 가누었다.

장군님께서 자작나무를 끌고오시는 광경을 띠여본 대원들이 앞을 다투어 달려왔다.

장군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게 된 김택근소대는 명절처럼 흥성거렸다. 김택근소대의 옆구리에서 불무지를 돋구고있는 하연성소대는 자연히 사기가 떨어져서 이쪽의 광경만 지켜보고있었다.

하연성은 대원들에게 슬며시 고개짓을 하였다. 한사람, 두사람 소문없이 김택근소대에 끼우라는것이였다. 잠간사이에 하연성소대에는 불무지와 밥을 끓이는 대원만 남고 소대장까지 모두 김택근소대에 옮겨갔다.

김택근은 소리없이 장군님의 옆에 다가온 하연성을 보자 이죽거리기 시작하였다.

《하연성동문 자존심도 없구만. 방금전까지 땅땅 큰소리치던 사람이 이게 뭔가. 소대를 아예 해산시키고말았으니.》

《말 말게. 경쟁도 동일조건에서의 경쟁이지 꽃같은 녀대원들을 가진데다 장군님까지 모셨으니 이게 어디 경쟁조건이 되는가?》

《그렇다면야 아예 흰기를 들고 나타날것이지. 소대를 해산시켜 가지고 슬밋슬밋 다가들다니, 유격대지휘관다운 품성도 아니지.》

장군님께서는 두 소대장의 악의없는 싱갱이를 지켜보시면서 즐겁게 한마디 던지시였다.

《김택근동무,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는데 너무 박대하지 말아야겠소. 동무네야 사람들 좋기로 소문난 소대가 아니요?》

장군님, 그런게 아니라 하연성동무의 심보가 곱지 않아 그럽니다. 방금전에도 불무지를 먼저 피워놓고 녀동무들을 데리러 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군. 녀동무들의 인기가 대단하오. 대단해. 횡도하자에서 군중정치사업을 할 때에도 녀동무들이 크게 한몫하지 않았소. 그러니 어려운 행군길에서 녀동무들을 특별히 잘 도와야겠소.》

녀대원들은 겉으로는 태연한체하면서도 속으로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너무 도고해지는바람에 국이 넘어나는것을 알아챈 녀대원이 없었다. 국이 넘어나서 불무지가 칙칙소리를 내고 재티와 뜬김이 날아올랐다.

《아이, 이걸 어쩌나?》

진옥이와 성숙이는 얼결에 국가마뚜껑을 집으려다 말고 손을 데우고 물러섰다. 그바람에 국가마가 기울어졌다. 구수한 토장국을 통채로 잃어버릴 난감한 순간에 하연성소대장이 재빨리 뛰여들어 국가마를 허궁 들어 불무지밖에 내려놓았다.

녀대원들만아니라 구수한 토장국냄새를 페장깊이 들이키고있던 대원들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대원들은 식사를 하려고 배낭들을 뒤졌다. 근거지에서 꾸려가지고 온 음식들을 아끼고 아꼈다가 지금에야 그것을 헤쳤다.

김택근소대장의 배낭에서는 수수지짐과 기름에 튀긴 산천어가 나왔다.

원정을 떠나는 남편의 길량식을 꾸리려고 그의 안해가 청년의용군에 들어가있는 시동생을 데리고 강에 나가 산천어를 잡아 기름에 튀긴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그 산천어를 보시자 지난 여름에 십리평으로 넘어가는 골짜기에서 병상에 드셨을 때에 김택근내외가 산천어를 잡아 몸보신을 해주던 일이 새삼스레 돌이켜지시였다.

《김택근동무는 그새 소북구쪽에 나가있었으니 동무의 손으로 산천어를 잡았을리는 만무하고 이건 안해의 손으로 잡은 산천어가 틀림없을거요.》

장군님의 말씀에 김택근은 목덜미까지 달아올랐다. 지극한 안해의 정성을 헤아려주시는 장군님의 말씀이 쑥스럽기도 하였으나 한편 행복하기도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하연성소대장을 넌지시 지켜보시였다. 그의 안해 고만녀가 살아있다면 남편의 길량식을 착실히 꾸려줄 녀자였다.

소박하고 진실하고 부지런하기 이를데없던 온성녀인, 혁명을 위해 부지런히 살고 혁명을 위해 참답게 목숨을 바친 젊은 혁명가의 안해를 장군님께서는 잊지 못하시였다.

안해를 잃고 홀로 난 하연성은 배낭속에 무엇을 꾸려가지고 왔나?… 장군님께서는 배낭안에서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끄집어내고있는 하연성을 눈여겨 살피시였다. 옆에서 바라보던 대원들이 야! 하고 환성을 질렀다. 그의 배낭안에서 번쩍거리는 통졸임통들이 굴러나왔다. 얼마전에 쌍하진의 적들을 치고 근거지에 돌아온 최춘국정치지도원이 적들에게서 빼앗은 식료품지함 하나를 하연성소대에 넘겨준것이였다.

《대단하군 대단해. 전령병동무, 우리 배낭엔 무엇이 들어있나 어디 좀 봅시다.》

장군님께서는 불무지앞에 주런이 내놓인 음식들을 살펴보시면서 전령병의 배낭을 벗기려 하시였다.

장군님, 이 배낭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리밥 몇덩이를 꿍져가지고 왔다가 도중에서 먹어치웠습니다.》

전령병은 장군님의 손에 배낭을 잡히지 않으려고 이쪽저쪽으로 몸을 돌리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다.

《그러지 마오. 전령병동무의 배낭속에서 별나게 구수한 냄새가 풍긴다고 동무들사이에 소문이 분분했단말이요. 아낄 때가 따로 있지. 지금은 먹는것보다 근거지인민들의 정성을 보는것이 더 기쁘오. 헤쳐놓으라구.》

전령병은 할수없이 배낭을 헤치고 무명보자기에 싼것을 들어냈다. 거기에는 요영구유격구의 사냥군인 리호검로인이 장군님을 위해 품을 들여 마련한 구운 노루고기가 들어있었다.

《동무들, 이번에는 구운 노루고기맛이 어떤지 좀 보오. 차일진동무같은 대처사람들이야 이런걸 꿈에나 구경했겠소. 한번 맛들 보라구.》

장군님께서는 대원들에게 구운 노루고기토막을 나누어주시였다. 김택근이도, 하연성이도, 진옥이도, 성숙이도, 차일진이도 모두 한쪽씩 들고 맛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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