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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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호검로인은 적구에서 돌아온 혜정이에게 몸보신을 시키려고 노루사냥준비를 서두르고있었다.

로인은 빈틈없이 탄알을 박아넣은 탄띠를 배허벅에 거느적이 늘여띠고 피나무껍질로 결어만든 구럭을 짊어진 한쪽 어깨에 쌍대배기렵총을 메였다. 로인이 멘 피나무구럭에는 술통, 노루가죽 한장이 들어있었다.

리호검로인은 마당뜰을 나서면서 낫꽂이개에서 낫을 뽑아 꽁무니에 차고 짝바라지에 걸려있는 삼바오리를 손바투 허벅다리우에 늘여찼다.

로인이 떠나간 뒤에 방안을 거두고있던 안늙은이가 야단을 때리며 돌아갔다.

《이사람아, 이걸 어떻거나. 글쎄 저 늙은이가 구럭은 지고가면서 점심보자기를 떨구어놓았으니.》

《그래요? 어머니, 어서 주세요. 제가 얼른 가져다드리고 올게요.》

혜정은 베보자기에 꾸린 점심그릇을 들고 로인이 올라간 산마루 오솔길로 줄달음쳐 갔다. 방금 뜰안을 벗어진것 같은 로인이 어찌나 날래게 걸음을 짚어가는지 숨차게 고개 하나를 넘고 널직한 개울바닥을 지나 다시 맞은편 산허리를 밟아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님!》

혜정은 높지 않은 소리로 여기저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로인의 자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혜정은 종주먹을 쥐고 다시 내달렸다.

산속의 외통 오솔길은 사방 참나무숲으로 둘러막힌 널직한 버덩으로 그냥 한정없이 뻗어들어갔다.

아버님, 아버님 어디 계세요?》

혜정은 사방을 향해 높은 소리로 웨쳤다.

《그게 누구냐, 혜정이 아니냐?》

멀지 않은 숲속에서 로인이 렵총을 벗어들고 뛰여나왔다.

《어떻게 예까지 왔느냐 엉?》

아버님 점심보자기를 가지고 왔어요.》

《뭐? 이 정신보지… 그렇다구 예까지 따라올건 뭐냐.》

호검로인은 점심보자기를 받아 구럭에 넣어 짊어지더니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

《한데 예까지 따라왔으니 어떡헐가?

무인지경 산속길로 총없이 나다니기도 안될노릇이고… 이왕 먼길 왔던바에 노루 한마리 얼른 쏴가지고 함께 내려가자.》

혜정이도 그랬으면싶었다. 이 먼곳에서 노루를 쏴눕힌다면 늙은이의 몸으로 끝고오느라 얼마나 힘겨울것인가?

혜정은 로인의 역사를 돕기 위해서도 따라나서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호검로인은 구럭을 한번 추슬러올리더니 호걸스레 말하였다.

《가자, 사냥에서는 포수가 앞서는 법이니 너는 두어발작뒤에서 걷거라.》

리호검로인은 성큼성큼 걸음을 내짚었다. 나이는 환갑이 다 되였어도 걸음은 한창때의 그대로다. 로인은 앞산으로 올라가 남쪽으로 뻗은 등줄기를 타고 한동안 내려갔다. 부지런히 산속을 살피면서 약간 모재비걸음을 쳐 슬쩍슬쩍 걸어나가는데 송혜정의 걸음으로는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숨이 차지 않느냐?》

로인은 걱정스레 물었다.

아버님, 조금도 숨이 차지 않아요.》

로인은 좀더 걸음을 다그어 걷는다.

《이만하면 어떠냐?》

《일없어요, 아버님.》

혜정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반달음쳐걸었다. 목도리를 둘러감은 목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하였다. 혜정은 목도리를 풀어쥐고 좀 거뿐해진 몸으로 세차게 활개를 내저었다. 로인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더니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걸음을 그렇게 걷는게 아니다. 그렇게 땅을 탕탕 굴러쳐서야 되느냐. 짐승들은 모두 귀가 밝아서 멀리서 울리는 발자국소리를 듣고도 놀라서 도망치기가 일쑤란다. 발바닥이 땅에 넙적넙적 가붙게 걸어라. 습관되면 그게 아주 편하니라.》

로인은 등짐을 추슬러올리고 약간 어깨를 굽히더니 보기에도 시원해보이는 그 슬쩍슬쩍 내딛는 걸음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행전을 둘러감은 다리에서는 바람이 휘감기는 소리가 나고 큰 발이 지나갈 때마다 눈가루가 풀풀 날렸다.

혜정은 놀랍기만 하였다. 포수의 걸음은 본따기도 힘들고 당해내기도 어려운것이였다. 마치 날랜 표범이 털이 부르르한 큰 발을 소리없이 슬적슬적 내짚으며 숲사이를 휙휙 지나가는것 같은 모습이였다.

《포수는 두가지 재간을 가지고있어야 한단다.》

로인은 즐거운듯 중얼중얼 외웠다.

《하나는 걸음이고 하나는 멱수를 보는 눈치다. 걸음이 빨라도 멱수를 보는 눈치가 없으면 허사요, 멱수를 잘 보아도 걸음이 느리면 그것도 랑패인게다. 그러니 이 둘중에서 어느 하나만 놓쳐도 이 쌍대배기는 막대기신세가 되고말거든.》

송혜정은 로인의 말이 우스웠으나 소리내여 웃지도 못하고 입을 가리고 소리를 죽여가며 웃었다. 아무리 늙은이 사랑이 지극해도 어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짐승잡이로 일생을 살아온 로인은 모든 면에서 색다르게 솔직하고 과감하고 집요하였다. 혜정이를 아끼고 사랑하는것도 그렇게 색다르게 솔직하고 과감하며 집요한것이였다. 혜정은 이런 때 어쨌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오늘의 사냥도 혜정에게는 눈물나게 고마운것이였으나 동시에 너무나 색다른 일이였다. 이런 때 로인의 재미있는 말동무나 눈치빠른 조력자로 되여줄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이사람아,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느냐. 그러지 않아도 한번 말하려던 참인데 공작지에 가있더니 말이 없구 생각만 하는 사람이 되여왔고나. 하기사 그게 오죽 험한 사지판이였겠냐. 잠도 잊었지, 말도 잊었지, 생각만 하는 사람이 되였으니 오죽 힘든 역사가 아니고야 사람이 그렇게 변할수 있느냐.》

아버님, 제가 달라지기야 뭐가 달라졌겠습니까. 공작지일이 처음엔 손이 설어 힘들었지만 조직이 도와주어 괜찮았습니다.》

《본인이야 그렇게밖에 생각지 못하지. 거울안을 보듯이 자기를 들여다보지는 못하는게거든. 내가 말이 없는 녀자로다, 이러면 벌써 말을 하게 되는거다. 내가 생각만 하는 녀자다 이래도 벌써 행동을 앞세우는게다. 그걸 모르고 그걸 판별하지 못하니까 내 눈에도 알리는게 아니냐. 이제는 마음을 푹 놓아라. 근거지가 제 집이 아니냐. 장군님께서 계시구 장군님께서 세워주신 인민혁명정부가 버젓이 솟아있는 여기가 제 집이 아니고 무엇일테냐. 나는 근거지가 꾸려진 다음에는 나그네길도 안간다. 외지에 나가서는 하루밤도 편한 잠을 잘수가 없거든. 나는 짐승을 잡아도 왜놈들과 산길이 붙어있는 남쪽산의 짐승만 잡는다. 북쪽산의 근거지 짐승들은 내 뜰안의 집짐승같아 못잡겠거든.》

혜정은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아버님, 그래서 집을 남쪽산밑에서 북쪽산밑으로 옮기셨나요? 제가 공작지로 떠날 때만 해도 집은 남쪽산밑에 있지 않았습니까?》

《아니다. 거기엔 사연이 있었지. 하루는 장군님께서 근거지를 돌아보시다가 어느 골짜기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맛보았는데 그게 별맛이더라고 하시는게 아니냐. 내가 그게 어디 골짜기 물이냐고 자상히 물은즉 장군님께서 방바닥에 금을 그어가시며 샘물터 위치를 알려주시더구나. 그래서 내가 생각을 곰곰히 했었다. 장군님께 그 샘물을 아침저녁으로 떠드릴수는 없을가 하고… 물통으로 나르자면 길이 멀어 얼마 나르지 못할것이고 물맛도 변할것인데 그나마 장군님께서 그 일을 아시면 큰일났다고 야단하실것이지… 그래 이리저리 궁리를 더듬다가 장군님께서 전투를 나가신 사이에 아예 집을 떠옮겼고나. 저 마촌에서 이사해온 김진세로인이 목수기술이 있어서 나를 도와주었단다. 지금은 장군님께서 북만에 가계시지.》

혜정은 가슴이 찌르르하였다. 언제보나 장군님을 받드는 로인의 마음은 한량이 없었다.

문득 로인은 걸음을 멈칫하였다. 노루가 산을 내려간 자리를 발견한것이다.

《이놈봐라. 송아지만한놈이로다.》

로인은 노루발자리를 손매듭으로 재보면서 기뻐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혜정이 보기에도 꽤 큰 노루임에 틀림없었다. 눈속에 깊이 빠진 발족자리는 송아지 발통만하였다.

리호검로인은 쌍대배기를 벗겨들고 아까처럼 약간 모재비걸음을 치면서 내달아갔다.

노루는 신통히 발목에 눈을 묻히기 싫어하는놈처럼 나무군 길을 따라 곧추 내려갔다.

로인의 걸음은 갈수록 빨라졌다.

《따라올만 하느냐?》

《예.》

《숨이 차지는 않구?》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버님.》

《사냥이란 힘든노릇이다. 제 피를 깎아먹는노릇이라니. 그렇지만 한놈 쏴갈기면 온몸 피로가 연기처럼 사라진단다.》

리호검로인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쌍대배기에 총알을 재웠다. 육감으로 짐승의 체취를 가까이 느낀 모양이였다. 아닐세라 가둑나무 숲이 와삭하더니 토끼 한쌍이 눈가루를 파던지며 내달아갔다. 로인은 불이 번쩍 하는 동작으로 발을 멈추고 쌍대배기를 어깨에 붙였다. 그러나 곧 머리를 젓고 총을 내리웠다. 큰 짐승을 앞에 두고 이럴수는 없었던것이다.

리호검로인은 다시 걸음을 내짚었다.

《옳지, 이놈의 노루가 여기서 산등을 넘어갔군.》

로인의 앞으로 가로질러 산등을 넘어간 발자국을 보았다. 로인은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산세를 굽어보더니 이놈의 노루가 재등을 두개는 넘어갔으리라고 하였다. 노루가 발을 멈출만한 골짜기는 이쪽에는 있음직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나 재등 두개를 넘으면 우묵한 골짜기가 있고 동삼에도 얼지 않는 샘물이 있다. 여기서 산등을 넘은걸 보니 노루가 물먹으러 간 모양이다.

리호검로인은 빨리 다쫓아가야겠다고 조바심쳤다. 로인은 노루발자국을 따라 산등을 가로질러나갔다. 그러다가 로인은 갑자기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혜정이가 이 눈속을 걷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것이였다. 아닌게아니라 혜정이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속을 걷어차며 따라오느라고 쌕쌕거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혜정이 발을 얼구겠군.》

로인은 난감해서 멍청하니 서있었다. 몸보신을 시키려다 발을 얼궈놓으면 그것도 야단이다. 원정부대가 돌아오면 제 남편을 따라 줄창 산길을 톺아다녀야 할 사람인데… 로인은 참으로 딱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아니지, 발을 얼구다니.》

리호검로인은 가슴아픈 생각마저 들어 부랴부랴 돌아섰다.

《이사람아, 어서 나가게.》

리호검로인은 큰일난것 같이 손을 마구 내저으며 혜정이를 돌따 세웠다. 그리고 도로기안에 들어간 눈을 털어신게 하였다. 혜정이가 신을 털어신을동안 로인은 다시금 산세를 굽어보고 해짐작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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